뛸 것인가 말 것인가? (Jump or not jump?)
번지점프를 하려면, 뒤끝이 당기는 공포감을 누르고 뛰어 내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때 사람의 뇌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독일 튀빙겐 대학(University of Tübingen) 연구팀이 무려 192m나 되는 엄청나게 높은 위치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사람의 뇌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이 측정한 것은 심리학, 뇌과학,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준비전위’(準備電位 readiness potential)이다. 이들은 극한적인 야외에서 처음으로 준비전위를 확인했다.
독일어로 Bereitschaftspotential(줄여서 BP)라고 하는 준비전위는 사람이 어떤 동작을 하기 전에 뇌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전기적 신호의 변화이다.
192m 높이 번지점프에서 실험
튀빙겐대학의 심리학자이면서 뇌과학자인 수르조 슈카다(Surjo R. Soekadar)와 그의 박사과정 학생인 마리우스 난(Marius Nann)은 사상 처음으로 번지점프 하는 사람의 준비전위를 측정하고, 이 결과를 저널에 싣기 전에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발표했다.
준비전위는 사람이 어떤 의도적인 행동을 할 때 두뇌에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전기적 신호의 변화를 말한다. 이 같은 신호는 남녀 모두 행동하기로 결정했음을 의식하고 행동하기 전에 나타난다.
뛰기 전에 준비전위가 나타난다. ⓒ Pixabay
준비전위는 1964년 한스-헬무트 콘후버(Hans-Helmut Kornhuber)와 뤼더 디케(Lüder Deecke)가 처음 발견한 것으로 두 사람은 사람 손가락 움직임을 수백 번 실험실에서 측정해서 확인했다.
준비전위는 여러 번에 걸쳐 연구되었지만, 한번도 야외에서 측정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준비전위에서 나타나는 전압의 변화는 수백만분의 1볼트로 아주 미미하기 때문에 좋은 조건을 갖춘 실험실에서나 측정이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번에 튀빙겐 대학 연구팀은 야외에서 그것도 192m 높이의 번지점프를 하는 사람에게서 측정에 성공한 것이다.
연구팀은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의 개발에 중요한 개념인 준비전위를 모든 일상환경에서 측정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이번 실험에는 두 명의 세미프로 다이버가 머리에 뇌파 측정기(EEG)를 달고 번지점프를 했다. 실험 장소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은 번지점프대가 있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부근의 유로파 브리지(Europa Bridge)에 있다.
연구팀은 불과 서너 번 점프했을 때 확실하게 준비전위를 측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슈카다는 “뇌기술이 곧 우리들의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될 것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박사과정 학생인 난은 “몇 번의 번지점프로 실험이 성공했다는 것은 번지점프를 하기 전의 준비전위가 아주 잘 표현됐음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번지점프 대기하기. 왼쪽 그래프는 전형적인 준비전위를 나타내는 뇌파그래프이다. ⓒ Surjo Soekadar
그렇다면 준비전위를 측정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준비전위는 인간의 행동과 자유의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개발될 뇌-기계 인터페이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번지점프 같이 심호흡을 하고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의 쾌감을 느끼기 위한 용감한 결정을 할 때는 물론이고, 버튼을 누르는 것 같이 사소한 의식적인 행동을 할 때도 행동 직전에 음전위로 나타난다.
이번 번지점프 실험에 참가한 두 사람은 모두 남성으로서 평균 연령은 19.3세였다. 연구팀은 번지점프에서 측정한 준비전위의 시공적역학(spatiotemporal dynamics)이 실험실조건에서 실시한 것과 유사하게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이 같은 결과는 최근 발전한 무선기술과 휴대용 EEG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것으로 생명에 위협을 주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도 역시 두뇌에 나타나는 것임을 확인했다.
준비전위는 의식적으로 근육이 움직이기 전에 두뇌의 운동피질(motor cortex)에서 나타난다.
준비전위는 자유의지와 행동의 고리 역할
보통 사람들에게 준비전위가 무슨 중요성이 있을지 의구심을 가질지 모르지만, 1964년 준비전위가 처음 발견됐을 때, 당시 과학계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간단한 실험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금속공을 떨어뜨려 운동의 법칙을 조사한 것’에 비유했을 정도이다.
심리학과 철학에서는 준비전위의 발견에 더욱 큰 의미를 뒀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자유의지는 인간의 자유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대전의 여파로 당시의 시대정신은 자유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자유는 환상이고 행동주의와 프로이디즘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준비전위는 이 풍조에 새로운 논란을 제기한 것이다.
준비전위를 처음 발견한 콘후버와 디케는 행동을 하기 전에 자유의지가 있지만, 완전한 자유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람이 수양을 쌓으면 자유의 정도가 늘어나지만, 자기관리를 잘 못 하면 자유의 정도가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 들어 벤자민 리베(Benjamin Libet)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기 0.35초 전에 준비전위가 시작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016년에 존 딜란 헤인즈(John Dylan Haynes)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려다가 취소할 수 있는 최후의 시간이 얼마인지를 측정했다. 그는 행동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은 실제 움직이기 0.2초 전이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