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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룬산맥 아래 펼쳐진 사막엔 古城 흔적만’
‘양고기 맛 진수’느낄 수 있는 ‘천산남로’(아홉)
(2009년 4월 4일 ~ 4월 12일)
황량하고 삭막한 색, 자연의 진정한 색이라고…
허톈시가지 벗어나면서 물이 많고 농산물이 풍부한 지역이라고 한 마르크 폴로(Marco Polo : 1254 ~ 1324)의 글이 실감이 난다.
푸른 버드나무숲과 쭉쭉 뻗은 백양나무길 주위의 너른 경작지는 푸르고 싱싱하다.
작물들의 성장이 그만큼 잘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경작지대를 지나자 백양나무가로수길이 곧게 쭉 뻗었다.
그리곤 멀리 쿤룬산맥(崑崙山脈)의 만년설 덮인 연봉이 나타나면서 일망무제의 사막이 펼쳐진다.
(사막 속에 토성 흔적만 남은 메리카와트 고성터. 고성흔적만 확대시킨 사진.)
(사막 속 복판에 보이는 흙무기가 바로 고성터다.)
(물이 풍부해 나무들도 무성하게 자라는 오아시스 도시 허톈, 메리카와트고성가는 길.)
(황량하고 사막한 사막이 펼쳐진다.)
황량하고 삭막하다.
이 ‘황량하고 삭막한 색’을 두고 수필가 김정화(金貞花 : 조선닷컴 블로그 필명‘창가에’)는 그의 수필집 ‘새에게는 길이 없다’의 ‘얼음재’란 작품에서 이렇게 썼다.
“자연의 진정한 색은 겨울 색이라 생각된다. 황량하고 삭막하다고 여기는 겨울의 ‘안 고븐 색’(‘안 고운 색’의 경상도사투리)’이야말로 한 해의 결산인 셈이다.”고 말이다.
그는 “유채색 계절에 뒤이은 겨울 빛깔은 나머지 계절을 모두 더한 색이니 이것이야말로 진전한 ‘고븐 색(고운 색)’이 아닐까.”라고 했다.
그의 글처럼 이 사막 또한 ‘고운 색’이란 느낌에 동감하면서 모래바람 풀풀 날리는 비포장 길을 달린다.
(사막 속에 살아가는 작은 도마뱀. 몸놀림이 민첩하다.)
한참 뒤 올록볼록한 자갈더미 속에 드문드문한 물웅덩이가 보이는 너른 강바닥이 나타난다.
이 강바닥은 저 멀리 눈 덮인 쿤룬산맥에서 비뚤 비뚤거리며 흘러내린다.
바로 백옥하(白玉河 : 玉龍喀什河 : 위룽 카슈 : Yurung-kash)다.
올록볼록한 자갈더미는 옥을 캐려고 걸러낸 무더기이며, 물웅덩이는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란 걸 나그네는 뒤늦게 알아챈다.
(백양나무 묘목을 심어 관리하고 있는 백옥하 둔치.)
그 강둑엔 키 큰 백양나무가 이어지다가 어느 해 큰물에 쓸려버렸는지 그 사라진 곳엔 백양나무묘목을 일정한 간격으로 몇 줄씩 심어뒀다.
물론 때때로 물 댄 흔적이 남은 것으로 봐 정성스럽게 관리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삐꺽대는 철문 안 너른 모래밭에 고성 흔적이
그런 길 달리다가 버드나무와 백양나무숲길이 이어지는 오아시스지역이 나온다.
파란 경작지가 있으니 농촌도 있기 마련.
농촌이래야 그저 여남은 집이 드문드문 모랫길 양쪽에 자리했다.
전부 전형적인 위구르 식 흙벽돌집이다.
(쭉 곧은 비포장길이 고성으로 가는 길이다. 그 뒤편에 작은 오아시스 마을이 보인다.)
(오아시스마을과 고성으로 들어가는 마을 안길.)
이들 농가의 수입은 물론 경작지에서 생산된 농작물과 운이 좋으면 캘 수 있는 옥이다.
그 외에 비포장 길이 비좁아 큰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마을이라 입구에 내려 고성까지 걸어 들어오는 관광객을 나귀수레에 태워주고 받는 수입도 한 몫을 차지한다.
나귀수레꾼은 아녀자들이다.
우리일행은 몸체가 적은 지프를 타고 고성까지 들어왔기에 아녀자들이 끄는 그 나귀수레를 타볼 기회도 가져보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고성 입구의 철제 대문과 관리동.)
메리카와트고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삭아가는 철재대문이 비뚤하게 막고 있다.
그 옆에 자그마한 낡은 관리인 막사가 있으나 관리인은 보이지 않는다.
삐꺽대는 문짝 비집고 안으로 들어서니 그야말로 넓은 모래밭뿐이다.
멀리 모래밭 살펴보니 작은 언덕 같은 흙무더기가 눈에 잡힌다.
(메리카와트고성 표지석.)
(나그네가 사막 속에 세워진 고성의 표지석 옆에 섰다.)
바람에 날리고 씻겨버려 그나마 남은 언덕이래야 삼간오두막에도 훨씬 못 미치는 흙무더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고성임을 알리는 검은 표지석이 서있다.
위구르어로 쓴 고성이란 글자보다 몇 배나 큰 한자로 쓴 ‘买力克阿瓦堤古城(매력극아와제고성)’이란 글씨가 표지석의 한복판을 장식하고 있다.
이 표지 석을 배경으로 사진만 한 컷씩 찍는다.
옥을 캐는 백옥하와 경계엔 철조망이 쳐졌다.
불교 몰아낸 이슬람세력 고성을 폐허로…
10세기 때 불교를 숭상했던 우전국(于闐國 : Yutian)과 서쪽에서 몰려온 이슬람세력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난다.
이 때 이 고성은 이슬람세력의 승리로 폐허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래에 묻혀 이젠 겨우 몇 점 흙더미성터의 흔적만 남았다.
그러나 죽음의 사막에 묻혀있을 인간의 흔적, 그 자체만으로도 나그네는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고개 들어 드넓은 모래밭을 다시 훑어보곤 아쉬운 발길 되돌린다.
(사막 속에 초가3칸 처럼 솟아오른 흙더미가 고성터임을 알려준다.)
◆ 메리카와트고성(买力克阿瓦堤古城 : 매력극아와제고성 : Melikawate Ruins)이란? : 백옥하(白玉河 : 玉龍喀什河 : 위룽 카슈 : Yurung-kash)를 끼고 남북 10km, 동서 2km에 달하는 넓은 사막에 묻힌 토성이다. 당시 우전국(于闐國 : Yutian)의 왕궁인지? 별장인지? 사원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단지 3곳의 토혈(土穴) 밑바닥 모래 속에서 질그릇 파편과 동전, 그리고 불상 등 당대(唐代)의 위구르 풍 유물이 조금 나왔다고 한다.
‘옥 줍기’가 아니라 이젠 ‘옥 캐기’로…
일행은 다시 허톈(和田 : 화전 : Khotan)시내로 들어온다.
시내중심가를 가로질러 백옥하 교각을 지난다.
너른 강바닥엔 옥을 줍거나 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떼 지어 고개를 자갈밭에 떨어뜨리면서 헤매는 모습이 나그네의 눈길 잡아맨다.
백옥하(白玉河 : 玉龍喀什河 : 위룽 카슈 : Yurung-kash).
쿤룬산맥(崑崙山脈)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이 강의 물줄기는 옥(玉)을 씻겨낸 물이라 마치 우윳빛깔이란다.
그래서 예부터 ‘땅에서 흘러내리는 우유’ 즉 지유(地乳)라고 불렀다.
(백옥하 교각 아래서 옥을 찾는 사람들.)
옥 줍기. 옛날엔 이 강이 범람하고 나면 옥을 줍는 사람들이 강을 거슬러 오른다.
이 땐 횡대로 손을 잡고 천천히 강바닥을 맨발로 더듬으면서 훑는다.
옥은 돌보다 표면이 매우 매끄럽다.
발바닥에 닿는 그 매끄러운 감촉만으로 옥을 찾아냈다고 한다.
(백옥하 상류쪽엔 중장비가 동원됐으니 하류엔 아직도 옥을 줍고 있다.)
요즘은 ‘옥 줍기’가 아니라 ‘옥 캐기’라고 불린다.
강바닥을 곡괭이와 삽으로 뒤지다가 그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중장비를 동원해 그 길고 너른 강바닥을 마구 들쑤셔댄다.
마치 자갈밭을 중장비로 퍼 올려 자갈과 모래를 구멍이 굵은 어레미로 분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백옥하 교량을 중심으로 윗쪽과 아랫쪽으로 펼쳐진 옥 시장.)
백옥하 교량을 건너자 강변도로엔 울긋불긋한 대형파라솔이 길게 이어진 옥시장이 나타난다.
멀리서 봐도 이 시장은 크게 붐빈다.
옥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댄다.
그들이 내지른 목소리가 차안까지 들려온다.
실크공장 공정도 현대화, 옛 모습 볼 수 없어
도로는 오른쪽으로 꺾인다.
왕복 2차선으로 좁아진 길, 양쪽엔 키 높은 백양나무가로수가 중천에 솟아 토해내는 강한 햇볕을 가리고도 남는다.
백양나무 흰 굵은 둥치는 한낮 햇살 받아 더욱 더 희게 빛난다.
마치 시베리아 자작나무숲의 둥치처럼 말이다.
몰풍치한 사막 가운데서 모처럼 청음(淸陰)함을 느낀다.
(실크공장으로 가는 길. 백양나무 가롯수길이 햇살을 막아준다.)
(허톈에 있는 실크로드공장 입구. 포도넝쿨 아치길이 돋보인다.)
이 길 따라 닿은 곳이 실크수작업공장이다.
‘和田市吉亞鄕古老絲綢乂特萊斯廳(화전시길아향고로사주예특래사청)’이란 금빛 간판이 걸렸다.
높은 포도넝쿨아치로 이어진 안길 끝에 공장이 자리한다.
공장 입구벽면엔 옛 대상이 이끄는 사막 위의 낙타행렬을 배경으로 한 큰 천에 ‘吉亞古代乂德萊斯綢(길아고대예덕래사주)’라는 글이 새겨졌고, 주위엔 비단 짜는 옛 그림들이 프린트되어 걸렸다.
(옛 수공예작업을 통해 실크를 생산하던 공정을 프린트해 걸어뒀다.)
(......)
뽕밭과 누에치기 → 고치 생산 → 고치에서 물레를 돌려 명주실 뽑아내기 작업 → 명주실 염색작업, 그리고 제직작업 등 비단의 일관생산 작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프린트물이다.
이젠 그 공정과정도 상당히 현대화되었다.
물레는 물론 베틀이 옛 모양이 아니라 아쉽다.
(명주실을 뽑기 위해 물레를 돌리는 위구르여인. 정 사장님이 공정을 지켜본다.)
(위구르족이 즐기는 빗살무늬 문양의 명주를 짜고 있는 현장.)
(물레와 베틀을 돌리는 현장. 베틀은 대부분 돌리지 않고 있다.)
하긴 인간의 문명이란 당연히 발달 ․ 발전되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전시장에서 실크제품 한 점씩을 기념으로 사곤 발길 돌린다.
나그네는 위구르풍의 독특한 문양인 빗살무늬(타카아이라스)천의 실크모자 한 점을 산다.
단결광장 복판 모택동과 쿠얼판 동상이 눈길
허톈(和田 : 화전 : Khotan)시내로 들어오면서 옥석시장을 보게 된다.
정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도로부터 시장안쪽까지 크게 붐빈다.
일행이 “어차피 옥(玉)을 사지 않을 텐데~”라면서 “그냥 지나치자”고 말한다.
혼자 억지부려가면서 “옥(玉)시장 눈요기나 하고 갑시다.”고 할 분위기가 아니라 아쉽지만 무언으로 동의하고 만다.
(허톈의 가장 넓은 '단결광장'에 우뚝 솟은 모택동주석과 '쿠얼빤'의 동상.)
백옥하(白玉河 : 玉龍喀什河 : 위룽 카슈 : Yurung-kash) 다리 건너면서 ‘단결광장’이란 곳에 닿는다.
너른 광장 복판 높은 기단 위에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동상이 눈길 잡아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운 중국공산당주석 마오쩌둥(毛澤東 : Mao Zedong : 1893 ~ 1976)과 ‘쿠얼빤’이란 늙은이가 악수하는 장면이다.
그 뒤론 중화인민공화국의 붉은 홍기가 높이 펄럭인다.
이곳 위구르인은 그 동상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나그네도 쓴웃음이 지어졌다.
(단결광장을 중심으로 해 시원스레 뻗은 도로들.)
◆ ‘쿠얼빤’은 누구일까? : 위구르인이다. 중국공산당이 이곳을 지배하면서 토지개혁을 통해 위구르인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해준다. 소작농이던 그는 이 정책 때문에 형편이 나아진다.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가 마오쩌둥에게 ‘고맙습니다.’란 인사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곳 특산물 가득 싣고 사막 속을 나귀수레 끌고 말이다.
1년 이상의 긴 여정으로 북경에 닿는다. 그러나 서역 땅 위구르인 한 농부가 어찌 마오쩌둥을 만날 수 있겠는가. 그 후 이 소식이 마오쩌둥에게 알려지면서 쿠얼빤을 북경으로 초청한다. 그땐 기차 타고 베이징으로 가 마오쩌둥을 만났다는 감격적인 얘기의 주인공이다.
중국공산당은 쿠얼빤의 이 같은 행적을 높이 받들며 그를 이용해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을 선전하려고 인민광장에 이 큰 동상을 세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