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부터 내리던 비가 지금까지도 내리네요.
진짜 봄비에요.
마른 땅을 적시는, 그래서 나무에 생기를 머금게 하고, 아직 피지 못한 봄꽃을 깨우는 봄비에요.
전 가을을 타는 편이라 가을부터 침잠하다가, 겨울에는 거의 동면하는 곰처럼 꼼짝을 안했어요.
10월 공연 마치고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가는 일, 볼일 때문에 잠깐 외출해야 하는 일 외에는 두문불출했어요.
누가 그러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11월부터 1월까지 꼭 3개월간을 스스로 골방을 만들어 그 안에 저를 가뒀어요.
그러다가 저를 깨운 것은 박완서작가였어요.
그녀의 죽음이 저를 골방에서 나오게 했어요.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의 책을 통해서 그녀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었고,
나이 마흔의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문단에 등단하고 그후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좋아하는 작가 이름을 대라면 꼭 그녀의 이름을 대는 애독자가 되었죠.
이제후로는 그녀의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조금 용기를 내서 당신을, 당신의 작품을 좋아하노라 편지라도 한 장 쓸 걸 하는 후회를 하면서,
그녀의 삶과 죽음을 그리는 추모방송을 보면서 눈물로 그녀를 떠나 보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있을때도 그로 인해 영향을 많이 받지만, 어떤 사람의 죽음을 통해 얻는 깨달음의 깊이는 한층 깊은 것 같아요.
전에 존경하던 은사님께서 돌아가셨을 때나, 권정생선생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상실감이 다시 한 번 크게 다가왔어요.
더욱 저를 골방에서 나오게 한 것은 그녀가 세상에 나온 나이가 현재 제 나이와 똑같다는 것이었죠.
불혹의 나이. 세상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롯하게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나이.
뭘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은 나이라는 걸 알려주던 그녀처럼, 저도 무언가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감히 어디다 찍어다 붙이냐고 뭐라셔도 괜찮아요. 이제 준비가 되었거든요. 하하.
그냥 요즘 뭐 하고 사나 궁금해 하시는 몇 분 선생님을 위해 그동안 이러고 살았다고 알려드릴 생각에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네요.
참, 저 졸업했어요. 졸업과 동시에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지요. 정말이지 2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어요.
이제 앞으로 열심히 일할 일만 남았네요. 졸업하면 뭘 할 건가 고민도 많이 했어요.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작은도서관이에요.
제 남은 생애에서 평생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 결과가 그것이에요.
신학을 공부한 것, 국문학을 공부한 것, 사회복지를 공부한 것, 그 모든 결정체가 작은도서관이에요.
사람들과 마을, 책, 문화 소통의 장소가 될 작은도서관사업에 투신하기로 했어요.
그동안 다른 데는 돈을 안쓰고 책을 사는 바람에 이사할 때마다 애물단지 같았던 책을 남주기도 많이 하고,
버리기도 많이 버렸는데 이천권이나 되더라구요.
작은도서관 등록규정에 장서가 1000권 이상 되어야 한다는데 그 배가 넘더라구요.
참 끈질긴 책과의 인연이 결국엔 도서관을 시작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었네요.
평소에도 작은도서관에 관심이 있었지만 진로를 결정하고나서는 본격적으로 관련된 책이나 자료들을 구해 공부하고,
규정에 맞게 장서와 공간 등을 정비해서 2월 초에 영월군에 도서관등록신청을 했습니다.
전에도 영월군에 문고나 작은도서관이 몇 군데 생겼던 것 같은데, 지금은 운영을 안하는 건지,
아니면 군청에 정식등록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영월군 제1호 작은도서관이 되었어요.
그리고 3월 초에 한국도서관협회 문학나눔사업에서 추진하고 있는 우수문학도서 배분사업 수요처 신청하는 게시판에
글을 올렸는데, 3월 말에 수요처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년에 네 번 분기별로 55권씩 신간 우수문학도서를 기증받게 되었어요.
아동청소년문학, 시, 수필, 희곡평론, 소설 등등 따끈따끈한 신간을 3개월에 한번씩 공급받는 행운이 주어졌어요.
사실 운영비나 도서구입비가 보장되지 않는 민간 작은도서관이 회원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새책을 구입하는 게 큰 문제거든요.
참 다행이죠. 2월부터 매월 20권씩 도서를 구입하고 있는데, 연간 이백 여 권의 책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준다고하니 얼마나 좋은 일인지요.
그리고 도서관등록증이 나온 2월 11일에 강원도청 홈페이지에서 2011년 강원도작은도서관지원사업이 있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는데 혹시나 하고 신청했었죠.
이제 시작한지 얼마 안된 도서관인데 설마하니 선정되겠는가 싶어 그냥 신청이나 해보자고 사업계획서며 신청서를 적어서 제출했어요.
2월 18일까지가 등록기한이었어요. 도서관등록이 조금만 늦었어도 자격사항 없음이 될 뻔 했어요.
3월 초에 발표한다더니 발표가 안나와서 하루에도 몇 번씩 도청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는데, 한 달이 넘도록 발표가 늦어져서 기다리다 지쳐 안되는가보다 생각했는데,
어제 아침에 군청 담당자로부터 지원확정되어 사업보조금을 받게 되었다는 통보를 전화로 받았어요.
덕분에 리모델링이나 도서관리프로그램, 집기와 도서구입 등에 사업비를 지원받게 되어, 아주 기본적인 모양은 갖출 수 있게 되었어요.
순천이나 다른 지역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작은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몇 억씩 지원하는 것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얼마나 소중한 밑거름이 되는지요. 참 잘 되었지요?
그런데 막상 지원금이 나온다고 하니 그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야할 지도 고민되네요.
잘 꾸미려고 하면 끝도 없는 비용이 들어갈텐데 말이에요.
작은도서관을 시작한다고 하니 그 어려운 걸 어떻게 하려고 하냐고 걱정해주던 몇몇 분들께 이 소식을 알렸더니
잘 되었다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시더군요.
작은도서관운동은 어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회원과 지역주민들과 함께 마을문화의 소통의 장, 사랑방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한분 한분 소중한 분들과 함께 행복한 꿈을 이뤄가려구요.
함께 축하해 주시고 많은 조언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다음주부터는 더 바빠질 것 같아요. 리모델링 계획도 세우고, 공사업체도 선정해야 하고, 차근차근 처리해야 할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올테니까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공사도 진행되고, 개관준비가 되면 개관식 날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물론 틈나는대로 진척사항도 전할게요.
그리고 작년에 거리공연을 맛본 친구들이 올해는 안하냐고들 물어오는데 5월부터 10월까지 거리공연도 준비해야죠.
작년엔 첫해라 여섯 번의 공연마다 고생을 엄청했는데, 올해는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간만에 올리는 글이라 엄청 길어졌네요. 별로 말을 잘하지도 못하고, 말수도 적은데 그 수다를 이렇게 글로 풀어놓네요.
뭐 다들 제 스타일을 잘 아실테니까, 뭘 이렇게 또 길게 썼냐고 흉보시고 말테니까 씩 한 번 웃으면서 이만 맺습니다.
모두 행복한 봄맞이하세요.
첫댓글 너무 잘 되었네요. 그 작은 도서관 꼭 활성화되길 바랄께요...
시간내서 한 번 가본다는게 아직도 못가고 있네요. 같은 영월에 살면서...
많이 바쁘시죠? 공부에 직장에... 제가 찾아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요.ㅎㅎ
도전하는 선생님 정말 멋집니다. 그곳에서 지금 껏 배운 많은 것 쏟아 부으시기 바랍니다. 파이팅
네. 감사합니다. 물론 NIE 수업 받은 것도 쏟아부어야겠죠?
우리 딸아이가 학교에서 어린이강원일보 구독하고 있어요.
경험이 중요한 게 맞긴 맞네요.
작년에 엄마랑 10기 선생님들이랑 집에서 모여 오리고 붙이고 신문 만드는 걸 본 게 자극이 되었나봐요.
제 스스로 신문 보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선생님, 멋져요. 작은 도서관이 영월에도 생긴다고 하니 영월군민들은 복 받았네요.
선생님은 더 바빠지겠군요. 도서관 개관식날이 언젠지도 알려 주세요.
개관식은 보궐선거와 단종문화제 지나, 아이들 단기방학이 끝나고 5월 둘째 주 정도로 잡고 있어요.
5월 14일 둘째 주 토요일. D-day를 그때로 잡아놓고 열심히 준비중이랍니다.
다음주부터 바빠질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리모델링을 시작하거든요. 그동안 어찌 꾸며야 할 지, 공사업체를 어디를 선정해야 할 지 고민많았어요.
이제 고민은 그만하고 공사를 시작해야죠. 공사를 마치고 정식으로 도서대출을 시작하려고 아직 정식 개관을 안했는데도 아이들이 조금씩 놀러와서 책 읽고 가고 있어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오후에 한 시부터 여섯시까지 열고 있으니까 영월 오실 일 있으시면 언제든 들르세요. 맛있는 커피 대접하겠습니다.
기대되네요. 어디에서 시작하는 건가요? 샘이 있는 까페에서 아님 다른 곳? 한번 가보고 싶어요. 개관식날짜 장소 모두 공지하세요.
기대와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하네요. 카페 건물 1층과 2층입니다.
영월도서관 페인트공사때문에 잠시 NIE교육장소로 사용했던 2층 아시죠?
1층은 북카페를 겸한 다양한 문화교실 장소로 활용하고, 2층은 주로 서가를 구성할 계획입니다.
개관식은 5월 14일로 예정하고 있어요. 갈 길이 먼데 찬찬히 진행하려구요.
개관식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준비되는대로 개관식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어차피 지속적으로 관리와 발전을 시켜야 할, 지역사회를 위한 열린 공간이니까요. 한 번 놀러오세요.
역시 열정을 가신 선생님이라 일을 해 내시는군요.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이서화선생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실 거라는. 하하.
주천에만 다녀 가시지 마시고, 영월읍내에도 들러주세요.
주천에 계시는 한 분이 도서관운영위원으로 도움 주시기로 약속하셨어요.
저도 영월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