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용 가구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이템이 아마도 장(wardrobe, cabinet, chest of drawers)일
것이다. 과거 유럽에서는 장을 사용 목적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하였는데, 그 하나는 거실
의 장식, 진열 및 잡화를 넣어두는 장과 옷을 비롯한 잡화를 보관하는 요즘의 단독 방에 놓이는
다용도 수납장이며, 다른 하나는 침실에 놓여 침구나 옷을 넣어두는 장롱류로 구분되었다. 그리
고 당시에는 이 목적에 맞춰 제품이 개발되고 디자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장롱 프
로그램이 대체로 구별되어 사용되었던 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그 구분점이 없이 사용 목적에 따
라 그 변화와 대치가 매우 다양하도록 개발한 장롱 시스템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닫힘과 열림
또는 `폐쇄와 공개라는 형태적인 언어가 시스템 가구 디자인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느 때보다 단순하면서도 넓게 디자인된 문짝은 깨끗히 가공된 알루미늄의 틀에 우
유빛 반투명의 유리로 제작되어 수납장에 잘 정돈되어 있는 정장이나 넥타이들이 엷게 유리를
통과하여 드러나게 하는 그런 일상의 그림을 연출하기도 하고, 또는 일부가 세련된 수납 시스템
으로 문짝 없이 드러나 있어 대형 유리 문짝과 대조적으로 잘 어울려 마치 조형미가 훌륭한 부
띠끄의 실내 수납 시스템이나 벽면의 실내 마감처럼 느껴지게 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요즘은
공간의 크기와 사용 목적에 따라 여러 형태로 쉽게 조립할 수 있는 시스템 장롱이 주류를 이루
고 있는데,그 단위의 크기는 일정한 폭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높이는 사용자의 주문 형식
에 따라 가변적인 점이 특징이다.
폭이 많이 좁아진 대신 상대적으로 높이가 높아져 시각적으로 문짝의 하중이 염려되지만 실지
로는 미닫이 구조이거나 접이 형태의 디테일을 가지고 있어 매우 안정적이며, 흰색 계통의 환한
표면 처리나 모서리의 단조로운 디테일이 미니멀 디자인의 요소를 설명하기에 충분한 형태를
지닌다. 안쪽의 선반이나 서랍을 비롯한 수납 시스템은 매우 기능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준 높은 디테일의 연구로 대부분의 하드웨어가 숨겨져 있으나 열리거나 닫히
는 포인트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일치되는 점이 특징으로 자리한다. 더불어 자재의
개발에 의해 얇은 합판재, 철판재 그리고 유리 판재들이 선반의 바닥 또는 서랍의 바닥으로 사
용되어 무거운 책이나 잡화들의 무게의 중압감에도 불구하고 무리없이 잘 받치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의 장롱 시스템에서 발견된다. 요즘은 디자인의 조형성보다는 새로운 재료의 발견에서
디자인력을 신장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환경보호 차원과 에너지 절약 등의 사회 캠페
인에 기인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감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재료 자체를 단순히
적용한다기보다는 그 재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을 발견하고 변이시켜 얻어지는 현상들
을 이용하는 사례가 매우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반투명의 우유빛 유리
가 안쪽 면과 바깥쪽의 표면 처리를 상반되게 하여 표면에서 나타나는 느낌 자체가 햇빛에 빛나
는 전원 주택의 유리창의 그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처리 자체가 매우 정교하고 깔끔
하여 고급 오피스의 모던 가구와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또한 이 유리를 통하여 비쳐 나오는
일상의 물품이 연출하는 구성적 그림은 따뜻하게 꿈꿀 수 있는 환상과 함께 쉽게 수납장의 물품
을 구별할 수 있는 기능성까지도 제공하여 준다. 그리고 저녁의 분위기를 위해 안쪽이나 위에서
유리문을 타고 흐르는 조명 빛의 은은함은 주거 공간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켜 주는 역할을 한
다. 여기에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재료들이 눈에 띄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구
멍이나 주름이 접힌 얇은 스테인레스 또는 알루미늄 판재, 표면 반사가 없는 부드러운 고무 판
재, 텍스타일 구조가 돋보이는 섬유질 특수판재, 나무 무늬가 그대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원목
판재, 나무의 다양한 무늬와 색상이 하나의 꼴라쥬를 이루어 환상적 무늬를 자아내는 특수 목판
재 등이 밀크 글래스와 함께 평면 구성적 조형미를 한껏 발휘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디자인에 있어서는 과거에는 조형적, 장식적 요소가 주는 느낌 자체가 두드러졌으나 오늘날에
는 색채 대비 등의 발견이 가구 디자인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더 이상 짧은 사용 기간을 강요하는 단기간의 유행적 디자인 요소나 환상적인 특정 효과를 인위
적으로 연출하려 하는 노력보다는 섬세한 디자인의 질과 계산적이기는 하지만 개인적 디자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자신만의 클래스를 연출하려고 하는 의도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
다.행복에 대한 정서가 그 어느 시대보다 강하게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더 친밀감이 요구
되는 생활 가구는 인간에 대한 친근성이 형태적, 기능적으로 있어야 하며, 또한 친절해야 한다
는 숙제도 함께 갖는다. 이를 위해 다양한 크기와 배치의 비를 갖는 선반 및 서랍 등의 수납 설
치나, 육중한 문짝이 마치 새의 깃털이 날리듯 스르르 미끄러지는 문짝의 열리고 닫힘, 서랍의
가장 깊숙한 곳에 놓인 사물을 끝까지 열리는 서랍 시스템의 친절로 흩트리지 않고 꺼내거나 정
리하여 놓을 수 있는 배려가 매우 친근감 있게 다가오고 있다. 이것을 단지 디테일의 발전에서
나온 기술적 진보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며, 사용상 편리와 친밀하게 어우러지기를 희망하는
연유에서 나온 디테일 연구의 결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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