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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실존에 대한 깊은 사유와 감각
ㅡ시집,『七支刀(칠지도)』 2011년 문효치, 『지혜사랑』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1. 외곽과 주변을 성찰하는 낮은 목소리
문효치(文孝治) 시인의 제10시집 『七支刀』(지혜, 2011)는, 우리 시단의 한 중진이 차분하게 돌아본 역사와 실존에 대한 잔잔한 기록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오랜 역사의 흔적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열정과 함께 자기 표현의 정직성을 농밀하게 보여준다. 그 점에서 그의 시편들은 역사에 다가서는 방법론에서는 잊혀졌던 외곽과 주변에 대한 가열한 탐구를 보여주고, 실존적 고백의 측면에서는 진정성의 한 정점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러한 탐구와 고백이 투명한 언어적 의장(意匠)에 감싸여 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시편들로 승화되는지 그 실례로서 기억될 만한 세계를 보여준다.
그만큼 시인이 선택하는 탐구와 고백의 태도는 주류 담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가지면서, 역사와 실존의 외곽과 주변을 성찰하는 낮은 목소리를 단단하게 담고 있다. 마치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오솔길을 걸을 때 말소리가 훨씬 크게 들리는 이치처럼, 우리는 문효치 시편의 단단한 고요함을 통해 더욱 선명한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이는 그가 택하는 대상과 작법(作法)이 세상의 소음에서 비켜서 단단한 침묵을 배후에 거느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효치 시학의 방법과 대상을 두루 살피면서, 그가 고요하고 낮은 목소리로 성찰하는 역사와 실존의 표정을 깊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2. 백제, 사유와 감각의 기원
이번 신작시집의 제1부는 시인이 그간 공들여 탐구해온 ‘백제(百濟)’라는 상관물에 대한 치열하고도 지속적인 탐사의 결실로 짜여 있다. 시력(詩歷) 50년을 쌓는 동안 상징적 역사 탐구의 노력으로 펼쳐온 이른바 ‘백제시편’의 최근 연작 모음이다. 이는 초기시로부터 지난 제9시집인 『왕인의 수염『(연인M&B, 2010)에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면모로서, 자신의 사유와 감각의 기원(origin)을 백제라는 상징적 이름에서 탐색하고 표현해온 결과이다. 아닌 게 아니라 문효치 시인은 그동안 백제의 지리적, 역사적, 정신적 흔적을 정성 들여 탐사하면서 “우리 모두의 집단 기억”(홍신선)을 아름답고도 섬세하게 펼쳐 보여준 바 있다. 이때 우리는 ‘백제’란 과연 그에게 어떤 의미를 띠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우리가 볼 때 그것은 흔하게 발견되는 유랑 의식의 상관물도 아니고 순수한 실증적 역사의 대상도 아니고, 오히려 시인 자신의 사유와 감각의 기원을 가파르게 암시하는 상징적 의미를 띤다 할 것이다. 다음 시편을 먼저 읽어보자.
이제는 나그네 되어
고향을 지나가다가
다리 쉬는 참에
감나무 저 잎사귀 잎사귀마다
긴 긴 강물이 흘러내리고 있음을 보았네
낙엽의 두엄 속에
천오백 년 묻혀 있던 별빛도
야윈 얼굴 내밀어 웃고 있음을,
아무리 진한 어둠이 내려
세상을 지워버려도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는 강을 보았네
― 「백제시 - 강」 전문
백제의 강이라면 ‘백강’, ‘금강’, ‘백마강’ 등이 그 이름을 역사에 올려놓고 있다. 역사의 설움과 아름다운 풍경을 동시에 지닌 곳들이라 할 것이다. 시의 화자는 고향 지나는 길에 있는 그 ‘강’에서, 감나무 잎사귀마다 “긴 긴 강물이 흘러내리고 있음”을 나그네 된 마음으로 바라본다. 여기서 ‘강’은 연면히 흐르는 역사나 시간을 은유하고 있고, ‘나그네’는 그 자체로 백제가 겪어온 오랜 유민(流民) 의식을 함의하고 있다. “낙엽의 두엄 속에/천오백 년 묻혀 있던 별빛”의 야윈 얼굴과 웃음을 바라보던 화자는, 진한 어둠이 세상을 지울 때조차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는” 그 ‘강’의 존재를, 마치 자신의 정신을 떠받치고 있는 상징적 수원(水源)으로 상상하고 있다.
이처럼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고 흐르는 백제의 ‘강’은, 문효치 시인으로 하여금 “‘백제’는 아직도 충분히 나를 사색의 그윽한 길로 끌어들인다. 나에게 있어서 그 광맥의 끝은 어딘지 모르겠다.”(「시인의 말」)라는 고백을 이끌어내는 상징적 진원지가 된다. 그래서 그에게 백제는 “천오백 년 외계를 방황하던/생각들 몸 안으로 차곡차곡 들이고//그보다도 더 오래 전/하늘의 가장자리에서 번쩍이던/천둥소리도 들이고”(「백제시 - 石熊」) 있는, 넉넉하게 오랜 시간을 탈환하고 있는, 상징적 거소(居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시편도 그러한 상징적 자장 안에서 펼쳐진다.
세월도 무덤이다
일곱 개의 칼끝에서 빛나던
별들이 떨어진다
찌르고 찌르다가
베어 문 일곱 개의 하늘이 무너져
무덤 속으로 든다
문득, 무덤 위 잔디에 섞여 솟아난
할미꽃의 슬픈 자주색이 내 눈을 후빈다
백제도 가고 왜(倭)도 가고
칼도 어딘가로 자꾸만 가서
또 한 송이의 자주색이 된다
― 「백제시 - 七支刀」 전문
‘칠지도’는 백제 근초고왕이 왜왕(倭王)에게 하사한 칼 이름이다. 일본 나라현의 한 신궁(神宮)에 안치되어 있는 양날이 뚜렷한 장도(長刀)다. 좌우로 일곱 개 가지가 칼날을 이루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 형상은 하늘과 연결되는 신성성을 상징하면서 당시 일본에 대한 백제의 우위를 역사적으로 입증하는 실례로 유명하다. 문효치 시인은 이 ‘칠지도’를 접하고 나서 그 칼이 지니고 있는 오랜 시간과 위용을 이번 시집의 표제로까지 삼았다.
시의 화자는 세월도 무덤처럼 흘러 칠지도의 일곱 개 칼끝에서 빛나던 별들도 떨어져버렸다고 상상한다. 칼이 찌르던 일곱 개 하늘도 무너져 무덤 속으로 잠겨갔다. 그 무덤 위 잔디에 핀 자주색 할미꽃은 “백제도 가고 왜(倭)도 가고/칼도 어딘가로” 가버리고 남은 퇴락한 시간을 함의한다. 한 송이 자줏빛 꽃으로 남은 무덤 같은 세월은, 자주색이 왕이나 천자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소멸해버린 역사에 대한 감각을 확연하게 보여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감각은 “천오백 년 세월도 건너고/죽음의 경계를 넘어”(「백제시 - 인물화상경 1」) 다다른 거울에도 나타나고, “왕실의 꽃병이었을까 권귀의 술병이었을까/아직도 그 향이 서려”(「백제시 - 인형문토기편人形文土器片」) 있는 토기 조각에도 나타난다. 그만큼 문효치 시인에게 ‘백제’는, 오래고 핵심적인 시적 기율과 방법으로 그 심원한 지속성을 지켜왔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시편에서도 그러한 흐름은 지속된다.
법당 근처 연못의
연잎들 위에선
물방울 몇 개 올려놓고 구슬을 만들고 있었다
마침 지나가는 부엉이의 울음소리나
별빛의 푸른 색깔도 조금씩 풀어 섞어가며
그 속에 부처님도 한 분 들여 모시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구슬을 굽고 있었다
연한 연잎 위에서
연잎보다 더 연한 물들이 굴러다니며
딴딴한 구슬을 굽고 있었다
― 「백제시 - 구다라산 조에이지」 전문
‘百濟山 長榮寺’를 부제로 달고 있는 이 시편은, 사찰의 풍경을 통해 백제의 오랜 기품에 가 닿은 결과이다. 오사카의 ‘구다라산 조에이지’는 고대 백제인의 숨결이 살아 있는 사찰로서, 고대 백제 사람들이 거쳐 가던 길목에서 생겨난 역사적 유물이다. 특별히 백제 고승 혜총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법당 근처 연못에 핀 연잎 위의 물방울이 구슬로 몸을 바꾸고, 그 구슬은 부엉이 울음소리와 푸른 별빛을 제 몸에 섞고 그 안에 부처님도 모시면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이 되어간다. 연잎보다 “더 연한 물들”이 굴러다니며 구워낸 그 “딴딴한 구슬”을 보며 화자는 ‘백제’의 오랜 흔적을 다시 더듬는다. 그렇게 시인은 연한 물들과 딴딴한 구슬을 통해 백제의 유적(遺蹟/遺跡)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안간힘으로 버텨온 천오백 년”(「백제시 - 백제사 삼중탑」) 세월을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속도’ 지향성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삶의 폭력적 에토스(ethos)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언필칭 파시스트적 속도라는 별칭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문효치 시인은 천오백 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천천히 거슬러 오르면서, 예의 속도 감각과는 정반대편에서 서서히 흘러간 백제의 시간을 탐색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역사의 외곽과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중요한 시간을 상상케 해주고, 속도의 반대편에 낮은 목소리로 발화되는 하나의 역상(逆像)을 만들어준다. 마치 ‘칠지도’의 예리한 칼날이 우리의 오랜 무의식을 일깨우듯이, 그의 시편들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백제의 역사와 기품을 경험케 해주고 있다. 그렇게 ‘백제’는 문효치 시인의 양도할 수 없는 상징이고, 그만의 사유와 감각의 기원이고, 독자적인 시사적 브랜드라 할 것이다.
3. 소멸의 형식을 통한 처연한 존재론
다음으로 우리가 이번 시집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은, 시인 스스로 견지하고 있는 처연한 존재론에 관한 음역(音域)이다. 문효치 시인이 노래하는 존재론적 풍경은, 아름다웠던 지난날에 대한 감상적 추억이나 나아질 미래에 대한 열렬한 희망을 향하고 있지 않다. 다만 시간의 무심한 흐름과 함께 그 안에서 차츰차츰 소멸되어가는 삶의 속성에 대한 쓸쓸함을 위해 바쳐질 뿐이다. 그래서 문효치 시인은 사물의 존재 형식을 개선하거나 그것을 새로운 가치로 이끌려는 지적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다만 사물의 심층에서 진행되는 소멸의 형식을 투시하고 표현하려는 남다른 미적 욕망을 보여줄 뿐이다. 이렇게 소멸의 형식을 통해 처연한 존재론에 다가서는 그만의 시작(詩作)을 한번 들여다보자.
달빛 중에서도
산이나 들에 내리지 않고
빨랫줄에 내린 것은 광대다
줄이 능청거릴 때마다 몸을 휘청거리며
달에서 가지고 온 미친 기운으로 번쩍이며
보는 이의 가슴을 조이게 한다
달빛이라도
어떤 것은 오동잎에 내려 멋을 부리고
어떤 것은 기와지붕에 내려 편안하다
또 어떤 것은 바다에 내려 이내 부서져 버리기도 한다
내가 달빛이라면
나는 어디에 내려 무엇을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사는 일에 아슬아슬한 대목이 많았고
식구들을 가슴 조이게 한 걸로 보면
나는 줄을 타는 광대임에 틀림없다
― 「광대」 전문
시의 화자는 산이나 들이 아니라 ‘빨랫줄’에 내린 달빛을 특별히 ‘광대’로 은유한다. 아마도 ‘빨랫줄’과 광대가 곡예를 할 때 타는 줄을 유추적으로 연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광대 달빛은 줄이 능청거릴 때마다 몸을 휘청거리며 화자를 가슴 조이게 한다. 이는 멋을 부리거나 편안해하거나 부서져버리는 달빛과는 사뭇 다른 존재 방식이다. 이때 화자는 “지금까지 사는 일에 아슬아슬한 대목이 많았고/식구들을 가슴 조이게 한” 까닭으로 자신이야말로 “줄을 타는 광대” 달빛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는 “말은 말하는 사람이 인지한 것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말하는 사람이 인지한 것이 먼저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하이데거(M. Heidegger)의 비유적 정언처럼, 화자가 달빛을 이성적으로 인지했다기보다는 그 달빛의 선연한 어떤 감각이 먼저 화자를 처연하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상상적 조응(照應) 과정일 것이다.
이처럼 광대로 은유되었던 ‘달’은 시집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낸다. “달빛 속에/단청의 서까래/대적광전大寂光殿 서 있다/달빛, 고요에 물들고 있다”(「저 달빛 속에 2」)라든지 “이제는 느린 걸음으로/걸어가는/말 한 필 저 달빛 속에 들어 있다”(「저 달빛 속에 4」)처럼 만물이 그 안에 편재(遍在)해 있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대체로 공간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될 때 시인의 의식의 상관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달빛이 비치는 공간은 향일성(向日性)의 감각보다 훨씬 더 처연한 감각을 노래하려는 시인의 의식이 투사된 결과일 것이다. 그 달빛의 상상력이 “영혼의 섬광/그 불빛 속으로”(「그대의 춤」) 사라져가는 소멸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은 ‘흙’이다.
흙이 삽질을 한다
씨앗을 심는다
제 몸보다 더 무거운
지게를 지고
들길을 건넌다
흙으로 빚어져서
잠시 모형을 이루다가
다시 흙으로 가는 길
발목에 잠기는
바람을 뜯어내고
허리에 서리는
안개도 걷어내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길
무거운 등짐을 지고
들길을 건넌다
― 「흙」 전문
스스로 삽질도 하고 씨앗도 심는 ‘흙’은 제 몸보다 더 무거운 지게를 지고 들길을 건넌다. 여기서 ‘흙’은, 흙으로 빚어져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운명적 존재론을 고스란히 온축하는 물리적 상징이다. 발목의 바람과 허리의 안개도 걷어내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길”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들길을 건너는 인간 삶의 과정을 연상케 한다. 이때 바람과 안개가 걷히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텅 빈 길은, 장자가 말한 ‘허실생백(虛室生白)’ 곧 그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이치를 포괄하는 흰 빛이 살아오는 공간임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 공간은 인간이 소극적으로 마련해둔 둔피처(遁避處)가 아니라, 생의 궁극적 소멸을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그러한 상상적 공간이 된다. 그러니까 ‘흙’은 “갈 때는/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소리 없이 사라져”(「낙조」) 버리는 사물들의 존재 형식에 대한 적절한 은유로 채택된 것이다.
푸른 들의 끝
여기 작은 집 모여 사투리로 하루하루를 엮어가는
전북 군산시 옥산면 남내리
이 검은 흙이 빚어져 얻은 목숨
처음으로 햇빛 보고 바람소리 듣던 곳
조상의 영혼이 별빛으로 달빛으로 어둠 속에서 빛나
언제나 내 살 속은 밝았나니
그 살 속으로 흐르는 사랑이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으로 내 발길은 다시 여기로 올 뿐
세월이 흘러 길이 바뀌고
물 또한 막힌다 해도
삶과 죽음의 발길은 다시 여기로 올 뿐
― 「고향 송」 전문
시인은 이 작품에서 고향을 향한 “오래 묵어/이제는 술 같은 향기가 되어버린 추억들”(「해운대의 달」)을 펼쳐낸다. 원래 모든 ‘기억’은, 고고학자의 시선처럼, 화석으로나 있을 법한 풍경을 탐사하면서 과거의 한순간을 현재 시점에서 구성해내는 원리를 말한다. 시인의 기억이 향하는 고향은, 푸른 들과 작은 집들과 사투리가 엮어지는 “전북 군산시 옥산면 남내리”이다. 지난 시집에서 이미 ‘남내리 엽서’ 연작이 시도된 바 있었거니와, 이 구체적 지명에서 비롯된 기억과 그리움은 이곳이야말로 “검은 흙이 빚어져 얻은 목숨”과 처음으로 듣고 보던 햇빛과 바람소리를 환기해준다. 동시에 그 기억과 그리움은, 현재에도 그 밝은 빛이 오랜 내력으로 흐르고 있고, 그 속에 흐르는 ‘사랑’이 ‘그리움’을 낳고 또 그 ‘그리움’으로 끊임없는 회감(回感)과 회귀를 요청받고 있는 화자 자신을 향한다. 결국 고향은 삶과 죽음의 발길이 다시 돌아오는 회귀적 공간인 셈이다. 사투리와 바람소리가 들리고 푸른 들과 밝은 햇빛이 보이는 남내리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삶과 죽음을 잇는 처연한 존재론의 상징적 자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듯 시에서 시간은 유장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공간은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문효치 시인에게 고향이라는 공간은 “먼 먼/우주의 중심에 묻어 둔/내 그리움의 한 토막”(「상원사」)의 이미지를 환기하면서, “비어 있을 때/더 많은 것들이 들어서는”(「빈 의자」) 삶의 역리(逆理)와 “세상 일/아무것도 모르고 살다가/이제 또/어디로 가야 하는가”(「묘비명」) 하는 실존 의식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근원적 공간에 침잠함으로써 생의 이법(理法)을 찾아가는 정통적 서정시의 작법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4. 실존적 난경으로서의 ‘병’과 더불어
이번 문효치 신작시집을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선명한 에너지는 ‘병’으로 비유되는 실존적 난경(難境)에 있다. 그 실존의 고통을 시인은 육신의 그것으로 치환하여 은유하고 있다. 그것은 “아픔과 흔들림으로/오히려 정물이 되어버린/눈물”(「내 안의 벽」)이 가득한 몸의 상황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우리는 그의 시편들이 일종의 퇴행(regression) 어법을 취하면서도, 사실은 무기력한 허무주의로 귀착하지 않고 삶에 대한 넉넉한 관조로 나아가는 힘을 만나게 된다. 대체로 허무가 삶의 지향점을 찾을 수 없거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혹은 사회적 진리의 정당성이 훼손되었다고 느끼거나 존재론적 불안이 엄습할 때 생겨나는 것이라면, 문효치 시편들은 삶을 새롭게 긍정하는 경계의 미학으로 허무를 견뎌내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병’에 대한 과장된 비관적 감각이 적고, 오랜 시간의 기억과 불편한 현재적 징후 사이에서, 기나긴 시간과 견뎌야 할 난경 사이에서, 새록새록 생겨나는 아득한 노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공허도 쌓이면 무겁다
어느 날 뼛속으로 날아든
저 하늘가의 공허가
내 몸을 무겁게 한다
뼈의 문이 열리고
그늘진 공허로 채워질 때
나는 통증으로 몸부림친다
공허는 텅 비어 있음이 아니요,
또 하나의 조밀한 아픔
무엇으로도
존재한다 함은
그 나름의 이름이 붙는 것
텅 빈 뼈 속에
새로운 이름
‘아픔’이 채워지고 있다
― 「골다공증」 전문
‘골다공증’이라는 병명이 선명하게 적힌 이 시편은, 뼛속의 공허로 몸을 무겁게 하는 노경(老境)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뼈의 문이 열리고/그늘진 공허로 채워질” 순간이 화자를 통증으로 몰아넣는 순간, 그는 ‘공허’가 ‘텅 비어 있음’이 아니고 오히려 ‘조밀한 아픔’이고 엄연히 존재하는 “그 나름의 이름”임을 발견한다. 그렇게 새겨지는 “텅 빈 뼈 속”의 새로운 이름은 ‘아픔’인데, 이처럼 문효치 시인은 육신에 찾아온 통증을 자신의 실존 형식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소멸 직전에 치러지는 통증 제의(祭儀)는, 시인의 고백에 남다른 진정성을 부여하면서 그의 시편들로 하여금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애가(哀歌/愛歌)가 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실존적 난경으로서의 ‘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다음 시편에서 절정의 감각을 얻는다.
너에게 사랑의 편지를 쓴다
가끔 이름은 바뀌었지만
평생 내 몸 속에 들어 나를 만들고 있었지
이런즉 병이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터
어머니가 나를 낳고 네가 나를 길러주었다
이제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사실은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노라 쓰기 위해선
내가 병을 가장 사랑한다라고 쓰면 된다
뭐든 오래 같이 있으면 정이 든다
평생을 함께 한 너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정들면 예뻐 보이는 법
야, 너 참 예쁘구나
세상이 모두 나를 버리려 하는 겨울의 문턱에서도
너는 내 속에 깊이 들어앉아 있구나
밭은기침으로 살과 뼈의 아픔이 잦아들지만
마음의 병도 함께 살고 있다
변치 않는 평생의 벗
오늘은 너에게 편지를 쓴다
― 「병病에게」 전문
일찍이 지훈(芝薰)이 쓴 동명(同名) 시편이 있었다. 그 시편은 의인화한 병에게 보내진 서간체 형식으로 씌어졌다.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하려 들다가도/내가 가슴을 치고 자네에게 경도하면/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라고 지훈이 노래할 때, ‘병’은 그야말로 삶의 벗이자 호환할 수 없는 생의 반려자로 나타난다. 그래서 지훈의 이 명편(名篇)은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임을 통해 생에 대한 관조적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이 선행 시편과 상호텍스트적으로 얽혀 있는 문효치 시인의 「병病에게」 역시 병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형식을 띠고 있다. 여러 이름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화자를 평생 따라다니면서 “몸 속에 들어 나를 만들고” 있었던 ‘병’은, 치유되어야 할 부정적 대상이 아니라 마치 “어머니가 나를 낳고 네가 나를 길러주었다”다는 고백처럼 화자에게 친숙하고 심지어는 필요하기까지 한 존재로 나타난다. 그만큼 화자의 삶은 병과 불가분리의 짝을 이룬다. 그래서 화자는 병에게 보내는 편지가 사실은 자신에게 던지는 언어라고 말한다. 이렇게 ‘나=병’이라는 등식을 바탕으로 화자는 자신을 사랑하듯이 병을 사랑해왔다고 고백하면서, 평생을 함께 해온 병에게 “야, 너 참 예쁘구나”라는 탄성을 이어간다. 모든 것이 소멸해가는 겨울에도 병은 화자 몸 속에 “밭은기침으로 살과 뼈의 아픔”으로 찾아온다. 이렇게 항상성의 도반(道伴)이 된 병과의 친화 과정을 통해 시인은 실존적 난경으로서의 ‘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병(病)’이라는 편재적 은유를 택하여, 그에 대한 불안이나 경계보다는 친화와 결속의 상상력을 보여준 것이다.
5. 삶의 보편적 이법을 탐구하는 고전적 열정
잘 알려져 있듯이, 시는 일종의 시간 예술이다. 시의 작법이 시간의 흐름에 의해 완성되고 시를 향수하는 데 시간의 흐름이 동반된다는 측면에서 시의 시간 예술로서의 속성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 하면, 시가 시간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한 진술은 가능할 것이다. 시를 생의 순간적 파악에 기초한 언어 예술로 정의한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 순간이란 오랜 시간의 흐름이 온축되어 있는 ‘충만한 현재형’일 테니까 말이다. 문효치 시인은 이러한 충만한 현재형을 통해, 오랜 역사의 외곽과 주변을 성찰적으로 재구(再構)하고, 소멸의 형식을 통해 처연한 존재론을 탐색하며, 육신의 고통을 통해 삶의 보편적 이법을 탐구하는 고전적 열정을 선연하고도 아름답게 보여주었다.
시인은 시선집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시월, 2011)에 실은 자술(自述) 연보를 통해 “내성적 성격에다 몰락한 지주의 후손, 그리고 월북자의 아들인 나를 또래 아이들이 멀리하여 늘 슬프고 쓸쓸하게 초등학교 생활”(「책머리에」)을 했노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이러한 고독의 원체험들이 아마 시인으로 하여금 외곽과 주변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늘 병치레로 시달렸던 육신의 고통도 삶의 활력이나 생성보다는 잔잔하게 소멸해가는 질서에 대한 사유와 감각을 깊이 있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기율에 의해 씌어진 문효치 시편을 통해, 우리는 그만의 낮은 목소리로, 그만의 소멸의 형식에 대한 밝은 발견으로 이루어진 역사와 실존에 대한 깊은 사유와 감각을 만나게 된다. 문효치 제10시집 『七支刀』를 우리가 기쁘게 받아드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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