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탈북자와 결핵을 소재로 한 영화 <크로싱>이 소개 되었었다. 서울에 다니러 갔다가 KTX를 타고 오면서 봤던 영화인데, 최근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가 경색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구호정책에 대한 비판이 끝없이 지속되고 있는 터라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만감(萬感)이 교차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북한에서는 1년에 4만명 이상의 폐결핵 환자가 발생한다. 남한의 경우 이보다는 덜하지만 2006년 10만명당 88명의 결핵이 발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제일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결핵 문제는 베일에 싸여 있고 더욱 심각하다. <크로싱>은 실제로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현실감있게 구성이 되었는데,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서 탈북자들이 많이 생기는 북한의 함경남도 탄광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 용수, 어머니 용화, 그리고 열한살 아들 준이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용수는 과거에 북한의 축구 국가대표로 활약하여 훈장까지 받았으며 단란한 가정의 젊은 가장이다. 어느날, 둘째를 임신하고 있는 아내 용화가 쓰러지고 폐결핵이란 사실을 알게 되자, 결핵약을 쉽게 구할 수 없는 북한의 형편 때문에, 용수는 아내의 치료약 마련을 위해서 중국행을 결심한다. 생사의 고비 끝에 중국에 도착해서 벌목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으지만, 불법현장이 발각되면서 모든 돈을 잃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탈북자 구호단체의 개입으로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멋모르고 탈북자 홍보 인터뷰에 응하게 되고, 이후 급박한 상황들에 의해서 남한으로 오게 되어 하나원 교육 및 남한에서의 정착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 사이 북에 남겨진 용화는 폐결핵으로 죽게 되고, 용수는 브로커를 통해 북에 남아있는 아들 준이와의 만남을 시도한다. 용수는 남한에서 구해놓은 결핵약과 아들에게 주려고 사놓은 축구공, 축구화를 들고 아들과의 만남을 기대하지만, 아들 준이는 압록강을 건넌 후 국경지대를 헤매면서 아버지와의 만남이 엇갈리다가(Cross) 결국 싸늘한 시신으로 아버지 용수 품에 안기게 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결핵”에 대한 흔적은 석기시대의 화석이나 이집트의 미이라 등의 척추결핵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고구려시대에 수입되기 시작한 한토의약서에서 내경소문 제9권 자열편에는 “폐열병자는 오른쪽 뺨이 붉다”는 기록이 있으며, 다른 한방서적에는 목소리가 변하거나 설사가 심하면 고치기 어렵고, 안정과 음식 섭취가 잘 되면 나아지는 수도 있으나 약만으로는 잘 안된다“는 서술이 있다. 21세를 살고 있는 현재도 결핵의 치료법은 완전 정복 되지 않았고, 다제내성 결핵(아이나, 리팜핀에 동시 내성이 생긴 결핵), 슈퍼내성 결핵(아이나, 리팜핀, 2차 항결핵제중 주요 주사제와 퀴놀론제에도 내성이 생긴 결핵)까지 출현하여 인류를 당혹하게 하고 있는데, 이는 적절한 질병 관리체계의 부재 및 이차 약제의 부적절한 사용에 기인한다.
하나원에서 남한생활 적응교육을 받고 있던 탈북자들을 방문해본 경험에 의하면, 실제로 탈북자들의 영양상태는 상당히 열악하고, 결핵 감염 여부에 대한 피부반응검사(PPD)에서 10mm 이상인 양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게다가 물집까지 잡혀서 터진 경우가 허다했다. 현재 북한에서 사용하고 있는 결핵 약제는 아이나와 스트렙토마이신 2가지인데, 이는 1960~70년대 결핵의 치료제로 추천되던 아이나, 스트렙토마이신, 파스의 3가지 약제 중 2가지만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비록 결핵 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다제내성결핵 발생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며, 구호약제마저 꾸준한 복용이 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사료되므로 실제로 다제내성결핵 가능성은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도 북한의 결핵 퇴치를 위해서 많은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유진벨재단의 J.A. Linton 등의 2005년의 보고에 의하면 북한의 결핵 치료소는 모두 67개가 있으며, 결핵 전문치료병원은 13개가 있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그러나 국제적인 약품 및 지원의 장비에도 불구하고 현재 북한에는 실제로 이러한 장비를 운영할 수 있는 깨끗한 물과 전기, 그리고 식량공급 구조 등의 하부구조가 구축되지 않아서 장비 및 시설 운영능력이 떨어지며, 제공되는 구호 운수물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때문에 많은 구호단체들의 지원에 대한 사후 모니터(monitor)가 필수적이라고 역설한 바가 있다. 역시 공중보건의 질병 문제가 항상 그러하듯이 질병자체의 치료 보다는 정치적, 사회적인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겠다.
결핵은 인체의 어느 곳에나 발생할 수 있는 급성 또는 만성 감염성 질환이다. 혈류나 임파관을 따라 몸의 어느 기관에나 전파될 수 있는데 폐가 가장 잘 침범받는다. 결핵균이 일단 몸에 들어오면 그대로 남아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 당뇨병, 알코올 중독, 영양실조, 면역억제 상태 등 인체가 저항이 약해지면 즉시 번식을 시작해 병이 나게 한다. 결핵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흔히 미열이 동반되고, 피로감, 식욕부진, 체중감소 같은 전신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객혈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활동성 결핵은 객담 비말핵을 통해서 타인에게 전염이 되는 전염병이므로 조기 발견 및 치료가 필수적이다. 결핵의 진단은 결핵균 도말검사와 배양검사로 환자의 객담이나 조직에서 결핵균을 검출하면 결핵이 확진이 되고, 흉부 X-ray나 흉부전산화단층촬영, 기관지내시경을 시행하기도 한다. 폐결핵은 조기에 발견, 항결핵제를 복용하는 것이 치료의 첩경(捷徑)이며,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도 예방할 수 있다. 약물치료 2주 정도면 전염성이 소실되고, 완치는 총 6~9개월 정도면 충분한데, 다제내성결핵의 경우는 18~24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약물치료이고 이와 함께 충분한 영양공급, 휴식 및 적절한 운동이 필요하다. 폐결핵은 처방받은 대로 투약을 잘하면 완쾌될 수 있는 질환이다. 그러나 불순종하여 투약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목숨도 잃을 수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한다.
이승헌 교수 l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호흡기내과 ☎ 051)890-62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