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2021.3.5.금
■코스
○고하도: 이충무공유적지-고
하도 공영주차장 갈림길-말바
위-탕건바위-고하도 전망대-고
하도 해안데크-이순신장군 동
상-용머리-용머리 전망대-고하
도 전망대-고하도 해상케이블
카 스테이션-(원점회귀)
○ 솔대목산(108.4M)-두리봉
(120.6M): 삼호중학교-솔대목
산-솔매봉-Back-두리봉 입구-두리봉(주리봉)-Back-대불산
단 쪽 500M 진행-Back-신호
정-밀성박씨 숭모재-삼호고교
(원점회귀)
※고하도에서 승용차로 13.2
KM 이동
■구간거리/평균속도: 총 14.36KM
○고하도: 9KM/3.1KM
○솔대목산-두리봉: 5.36KM/
3.48KM
■후기: 그 유명한 고하도를 첨 가봤습니다. 원래 고도가 낮거
나 트레킹 코스를 별로 안좋아 하다 보니까 이제사 갔는데, 특
별한 황홀경에 감회가 새로웠습
니다. 고하도는 몇년전만 해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해서 안갔
고, 목포대교가 개통된 뒤로는 차로 갈 수 있었지만 트레킹을 별로 안좋아 하다보니 안갔고, 목포 해상케이블카가 생긴 뒤에
도 제작년 유달산에 올랐을 때, 케이블카 타고 건너가 보려다가 터무니없는 요금(유달산이면 중
간지점 탑승인데도 전구간 요금
을 달래서 안탔음) 책정에 이해 불가라서 안갔었는데, 아무튼 이제사 가보니 후회막금이었습
니다. 그야말로 탁월한 조망과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가 압권이
었습니다. 유달산ㆍ서해바다 등 주변 조망은 물론, 거의 전구간
에 가드레일과 야자나무 거적을 깔아 놓는 등 코스 관리가 뛰어
난데다, 전망좋은 곳 표지판 등
을 빠짐없이 설치해 놓은 모범 트레킹 코스였으며, 4.5KM 정
도의 길쭉하고 좁은 섬의 위용
이 인상깊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낮은 고도임에도 군
데군데 아기자기한 바위군이 분
포해 있었는데, 특히 말바위ㆍ
탕건바위는 일품이었고, 고하도 해안데크 길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해안데크길로 유명한 부
산 이기대길ㆍ강릉 정동진 부채
길 등과 견줄 수 있는 최고 수준
의 환상적인 코스였습니다.
또한, 블로그 상으로는 고하도 공영주차장에서 용머리 까지 왕
복 6KM라고 안내되어있는데, 저는 가장 먼거리인 해안 끝쪽 이충무공유적지에서 출발하다 보니, 총거리가 예상보다 50%
가 늘어나 9KM 정도가 되었습
니다. 단, 이곳 출발지는 승용차
2~3대만 주차할 수 있는 해변
이었습니다. 더욱이 야간 트레
킹이 가능하도록 가로등이 설치
되어 있었습니다.
암튼 고하도 트레킹 코스는 낮
은 해발고와 잘 관리된 코스 덕
분에, 속도를 낼 수가 있어 일찍 하산하는 바람에 대불산단으로 이동하여 솔대목산-두리봉 코
스를 연계산행 했는데, 이 코스 또한 목포시에서 코스 관리를 참 잘해 놓았드라구요. 솔대목
산 코스는 조망도 좋고 체육 시
설과 정자를 몇군데 설치해 놓
아서 시민들이 잘 이용중이었지
만, 정녕 정상에는 아무런 표지
판이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두리봉에는 삼각점은 있
었고, 어느 산객이 아크릴로 표
지판을 조그맣게 나무에 걸어놓
았드라구요.
아쉬운 점은 고하도에서 사진을 많이 찍다 보니 배터리가 방전
되어, 자칫하면 트레킹 도중에 GPS 트랙을 기록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할 우려가 예상되어, 호등산을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산악회의 연말 송년 산행이나 시산제 산행으로 고하도 트레킹
코스가 안성맞춤이겠습니다(단
, 고하도 공영주차장 출발).
■차기 산행: 2021.3.8.월, 화
순군 도곡 중봉산 + 광주 쥐봉~
분적산 코스
■산 소개
고하도(高下島)는 현재 목포시
충무동에 속해 있는데, 고하도
(高下島)는 고하도(孤霞島), 고
화도(高和島), 보화도(寶和島), 비하도(悲霞島) 등 여러 이름으
로 불렸다. 그러나 목포 사람들
은 고하도를 흔히 ‘용섬’이라 부
른다. 목포해양대학교 부근이나 신안비치호텔에서 보면 섬의 옆
면을 잘 볼 수 있다. 산의 형상이 솟거나 낮아지기를 반복하다가 용머리 부분이 굵게 변해 풍수
지리설의 용(뱀의 형상)을 닮았
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
다. 지금은 육로를 통해 쉽게 건
너갈 수 있으나 예전엔 바다로 둘러싸여 배를 통해서 갈 수밖
에 없었다. 고하도는 목포 북항
과 2012년 6월 29일 개통된 목
포대교를 통하여 연결되고 있다
. 새로운 목포의 명물로 등장한 목포대교는 두 마리 학이 마음
껏 멋을 내면서 날갯짓을 하는 형상이다. 고하도로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
는 목포항에서 신진페리호를 타
면 된다. 이 배는 목포 근해의 고
하도 허사도 달리도ㆍ 율도ㆍ외
달도 매월도를 순회한다. 또 하
나는 자동차를 가지고 목포 하
구언을 지나 진도방향으로 좌회
전하여 가다가 용당의 삼호중공
업 아파트를 거쳐 연륙교를 통
해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마
지막 또 하나는 2012년 개통된 목포대교를 통하여 쉽게 고하
도에 들어갈 수 있다. 양쪽에 다
리가 놓이기 전, 고하도 사람들
은 ‘바다의 시내버스’라 하는 근
해 순회관광선을 타고 뭍을 오
갔지만 지금은 정기항로인 여객
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충
무공의 혼(魂)과 일제강점기의 한(恨)을 품은 고하도는 일제시
대에 목포항이 3대항으로 발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사적 장소인 고하도가 있다. 역사·문
화적 자원과 함께 관광 상품으
로 활용하려고 이곳에 목화밭을 조성했다. 이 섬은 우리나라에
서 최초로 육지면이 재배되었고 한다. 충무공의 유적지 근처의 언덕 고하도 선착장에는 너비 62cm, 높이 183cm, 폭 33cm
의 ‘조선육지면발상지비’(朝鮮陸地綿發祥之碑)가 세워져 있
다. 육지면은 고려 대 문익점 선
생이 들여온 재래면과 달리, 원
산지가 남미로 따뜻한 곳에 잘 자라는 면화이다. 미국면이라고
도 하는데 최초의 시험 재배지
를 이곳으로 한 것이다. 1899
년 일본영사 와카마츠 도사부로
가 미국산 육지면을 시험 재배
하기 시작하였고, 재배에 성공
하면서 전국으로 퍼졌다. 육지
면 재배의 시작을 기념하기 위
해 1936년에 비를 세운 것이
다. 이 비에는 ‘1904년에 고하
도에서 처음으로 육지면 재배를 시작하였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해방 이후 이 비는 뽑혀서 인근에 버려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역사를 담고 있는 의미가 있는 유산이라며 다시 세웠다고 한다. 러·일의 고하도 토지 침탈은 조선이 개항을 시
작할 무렵, 제국주의 나라들은 목포와 마주한 고하도를 전략 지역으로 삼기 위해 치열한 각
축전을 벌였다. 이 사건은 개항 초기 일본의 조선 내 토지침탈
의 대표적 사건이다. 뿐만 아니
라 러·일 양국 세력이 서로 맞서
서 격렬하게 이권을 추구했던 사건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육
군 부령이 군함을 앞세우고 매
입한 토지의 지계 발급을 감리
에게 요청했다. 이때 일본은 군
대의 기밀비를 투입하여 조선인 고관을 앞세워 토지를 매입한 뒤 일본과 영구차용계약을 체결
하여 고하도 전토의 대부분을 침탈하였다. 이때 러시아는 고
하도 토지 매입을 위해 주민들
에게 1만원 정도의 땅값을 지급
하였다고 한다. 목포항을 차지
하기 위한 두 나라 간의 첩보전
이 이 작은 섬을 무대로 전개되
고 있었던 셈이다. 그때만 그랬
을까. 지금 우리가 우리의 영토
를 잘 지켜가고 있는지를 자문
해 볼 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
무 많음을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