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2,12-18; 2코린 5,20─6,2; 마태 6,1-6.16-18
+ 찬미 예수님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사순시기가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본기도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그리스도를 믿는 저희가 거룩한 재계로 악의 세계와 맞서 싸우려 하오니 극기로 보루를 쌓게 하소서.”
사순이란 말은 40이라는 뜻인데요, 오늘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인 4월 20일까지 46일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신 것을 본받아, 초대교회에서는 40일 동안 단식하기도 하였는데,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날이니만큼 단식이 면제되었고,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하고 40일을 지내다 보니, 이렇게 46일 전인 수요일에 사순시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단식의 의무는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오늘과 성금요일에만 있는데요, 사순시기의 시작과 끝을 단식하며 사순시기 전체를 주님께 봉헌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오늘을 재의 수요일이라 부르는 까닭은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요엘 예언서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께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죄는 관계를 파괴합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주님께 돌아오라고 요엘 예언서는 초대합니다.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으라’는 말은, 오늘 전례에 비추어 보면, ‘머리뿐만 아니라, 너희 마음 위에 재를 얹으라’는 의미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라고 초대하며,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이며,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이라고 강조합니다.
유다인들에게 중요한 참회의 표지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었습니다. 작년에 우리 본당 사목 지표는 “하느님, 인간, 피조물,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성숙해 가는 신앙 공동체”였는데요, ‘자선’은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단식’은 피조물과의 관계,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언급하시며, 누구를 위해 이것을 하는지 살피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는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 ‘숨어 계신 네 아버지’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지금은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버지께서는 이를 영광중에 드러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받게 되는 보상은, 감추어져 있던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찬란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 영은 하느님 안에서 찬란히 빛날 것입니다.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님의 ‘재’라는 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과르디니, ‘거룩한 표징’, 장익 옮김)
“장미가 한 송이 곱게 피었다. 어제까지도 수줍게 봉오리만 짓고 있더니 어느새 살며시 피어 있다. 주옥같은 이슬방울 하나하나에 이른 아침 햇살이 고여 있다. 꽃잎에도 새벽이 물들어 있다. 새로운 그것이다.
그것을 누가 와서 싹둑 베어갔다. 병에 꽂아놓고 한동안 보더니 곧 싫증이 났는지 아궁이에 넣어버렸다. 잠깐 사이에 그 아름다움이 재가 되어버렸다.
불이 이렇게 잠깐 사이에 하는 일을, 세월은 끊임없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하고 있다. 잎이 무성한 고사리에서부터 날씬한 코스모스, 몇 아름씩 되는 느티나무까지도 다 마찬가지다. 가볍게 나풀대는 나비도 그렇고 날쌘 제비도 그렇다. 재빠른 다람쥐도 육중한 황소도 다름없다. 상처로든 병으로든 불에 타서든 굶주려서든, 꽃 피었던 모든 생명이 언젠가는 재가 되게 마련이다.
또렷하던 모습은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한 줌 재가 되고, 영롱하던 오색은 거무스레한 가루가 되고 만다. 그토록 따스하게 움트던 민감한 생명이 저 메마르고 죽은 흙, 아니 흙만도 못한 재가 되어버린다.
우리라고 다를 바 없다. 우리도 열린 무덤 앞에 놓인 해골 곁에 한 줌 재라도 보면 얼마나 소름이 끼치던가. “사람아, 명심하라. 너는 흙이고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렇다. 재가 말하는 바는 바로 무상(無常)이다. 다른 것들의 무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무상을 말해준다. 우리의 무상. 나의 무상. 사순시기에 들어서면서 며칠 전 성지주일만 해도 푸르렀던 가지의 재로 십자를 내 이마에 그으면서 사제는 바로 나 자신의 덧없음을 깨쳐준다. “사람아, 명심하라. 너는 흙이고 흙으로 돌아가리라.”
모두 재로 돌아간다. 내가 사는 집, 내가 입는 옷, 쓰는 그릇, 내 돈, 밭과 들과 숲, 나를 따르는 개와 외양간의 짐승까지. 지금 글씨를 쓰는 나의 이 손, 그걸 읽고 있는 눈, 나의 온몸이 재로 돌아간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 미워하던 사람, 그리고 두려워하던 사람들. 이 세상에서 내게 커 보이던 것, 작아 보이던 것, 하찮아 보이던 것, 모두 재로 돌아간다. 모두, 모두.
https://youtu.be/_R-WPQ01NZk?si=sUExNIln9_eYjRuv
부르흐, 콜 니드라이
삐에르 푸르니에(첼로) / 쟝 마르티농(지휘), 라무르 오케스트라
과르디니, "거룩한 표징" 장익 옮김, 분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