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무너진 여리고(Ⅱ) / 한성진 목사
요 약
여리고성의 두 번째 의미는 타인의 완악함을 처리하는 것이니 전도론이다. 그 방법으로는 먼저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그 영혼을 이미 주심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위해 늘 기도하며, 인간이 할 일에 최선을 다하여 감동시키고, 의심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할 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면 그 영혼에 예수의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며, 성령의 권능을 입도록 도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삶이 되도록 할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순복하는 성도가 되어진다.
설 명
<전도의 원리>
1. 그 영혼을 허락하셨음을 믿으라
2절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2. 신앙의 방법으로 전도하라
8-9절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3. 인간 할 일에 최선을 다하라
3절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의심하지 말고 계속하라
10절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5. 완전한 복음을 전하라
6절 "제 칠 일에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라"
6. 말씀으로 양육하라
21절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7. 성령의 권능을 입도록 돕는다.
24절 "불로 - 모든 것을 사르고"
(강해)
오늘 말씀의 제목은 "무너진 여리고"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여리고성은 옛사람의 자아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아 처리란 하나님 주권중심의 회복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아 처리란 내 자아만이 아니라 타인의 자아도 처리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이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전도입니다. 우리가 전도하여 자행하던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전도 즉 타인의 자아 처리라는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어떻게 타인을 전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복시킬 수 있을까요?
1. 이미 그 영혼을 허락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2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자가 완악하더라도 이미 주셨음을 깨닫고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부터 마음의 문을 여는 작업입니다. 완악하면 완악할수록 더 귀히 쓰일 사람으로 여기고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전도가 안 되는 것은 문제가 불신자 편에 있지 않습니다. 내 믿음이 부족하고 나의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아서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이 열려 불신자들을 향하여 대문처럼 열린 마음과 대낮처럼 밝은 우리 얼굴의 날이 오기를 기도하십시다. 이 자신이 먼저 열리는 문제가 가장 시급합니다.
2. 신앙의 방법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8-9절에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무장한 자들은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히 신앙으로 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없이 전도하면 결실이 없습니다. 간혹 전도를 받지 않고 예수 믿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누군가의 기도라도 사용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띵 리 메이 목사는 그의 학생 1,100명을 기도명단에 실어 날마다 기도했는데 수백 명이 그리스도께 인도되었고 다수가 기독교의 사역자가 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기도만 해서도 안 되고 기도 없이 나서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신앙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3. 인간이 할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절에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자녀가 부모를 전도하려면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본분인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기도하고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야로 공부하는 그 모습을 부모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배우자를 전도하려면 남편은 남편 아내는 아내로서의 본분을 다하면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벧전3:2). 기도 많이 해도 행함이 없거나 반대로 부부 금슬은 좋은데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교회가 사회인들을 전도하는 데도 그들이 감동될 만큼 사랑의 사역을 계속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뿌린 씨앗을 통해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서울 목민교회의 부흥의 일화를 보면 김동엽 목사님이 부임했을 당시에는 사람들이 교회에 돌팔매질을 하던 달동네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김목사님은 그 행위를 그들의 고난에 함께 하지 않는 교회에 대한 저항으로 보고 먼저 가난한 가정에 쇠고기와 쌀을 돌리고 구제사업을 오늘날까지 펴 온 결과 특별히 대 교회를 구하지 않았는데도 지역이 복음화되어 무려 만 명이 나오는 대교회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여리고 성을 돌 듯이 매일 밤중에 동네를 돕니다. 그것도 믿음이라면 비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의식적인 방법보다는 매일 매일 기도로 돌고, 사랑으로 돌고, 봉사로 돌아야 하겠습니다. 이적이 나타날 때까지 신앙으로 돌고 돌아야 합니다.
4.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계속해야 합니다.
10절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가시적인 효과가 즉시 보이지 않는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뿌린 씨앗은 피곤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부흥에는 년 월 일 시가 있습니다(계9:15). 어떤 일자라는 뜻이 아니고 우리의 기도의 분량이 차고 사랑의 분량이 차는 그 때입니다. 그래서 벧전2:12에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여기 권고하시는 날 즉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응답의 날이 있습니다.
1907년은 우리 한국교회의 부흥의 운동이 일어난 해로 유명합니다. 선교사들이 매일 모여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달을 기도했건만 부흥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부 선교사들 중에는 낙심하여 결실이 없으니 이제는 개인적으로 기도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더 많은 시간을 정하여 더 기도하자고 하여 실천했습니다. 그 결과 평양 장대현 교회를 시작으로 한국에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가 오려면 믿음이 분열되지 아니하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5. 그리스도의 완전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6절에 "제 칠 일에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제 칠 일은 하나님의 때를 상징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사람의 일을 계속하면 감동의 하나님의 때가 옵니다. 이때가 하나님의 역사의 때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즉시 전도해야 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역사의 때를 만들어서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일곱 양각나팔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복음을 상징합니다. 양은 그리스도의 예표요, 뿔은 권세의 상징이요, 나팔은 복음의 예표입니다. 7 나팔이므로 이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이 완전한 복음이란 먼저 확실한 복음 이해를 뜻하고, 또 성령으로 감화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때 듣는 자는 살아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믿는다는 성도들조차 체계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해 복음을 모르는 자가 많은 실정입니다.
6.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21절에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했습니다.
여기 칼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를 위하여 할 일이 바로 말씀의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르신 제자들을 삼 년간이나 말씀으로 양육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을 입혀야 합니다.
24절에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했습니다.
말씀의 연단을 받은 제자들이 다음 단계로 오순절 날 성령을 받았듯이 말씀의 양육만이 아니라 나아가 성령의 능력을 받도록 도와야 비로소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어떤 구역장은 새 교인이 나오면 함께 기도원에 들어가서 금식하며 부르짖어 체험케 만듭니다. 그 결과 초 신자들이 믿음의 용사로 변하는 것을 봅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지금은 성서시대 당시의 과도기적 상황과는 달리 믿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하심은 경건함으로 주를 섬길 때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목회적인 견지에서 보면 성서시대의 단계적 상황은 좋은 교훈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능력을 강조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7단계의 사항을 참고하여 성령의 권능을 받아 그리스도의 중인이 되기까지 전도하고 양육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여리고 작전은 단지 당시에 있었던 하나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 역사는 오늘 우리를 통하여 또 다시 계속되어야 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먼저 내 자아의 여리고 성부터 무너뜨리십시다. 그리고 주님을 믿지 않는 불신의 여리고 성을 정복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심령들이 지옥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믿고 오늘부터 도십시다.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들레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까지 돌고 또 도십시다. 이 작전 속에는 놀랍고 부푼 복음화의 비전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내외적인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이 귀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충성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