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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봉산성
봉덕산성
봉덕산성(鳳德山城: 봉황 봉, 큰 덕, 메 산, 재 성)
위치와 지정
예천군 예천읍 서본리 산14번지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 면적: 29,554㎡
1985년 8월 5일 지정
이는 국가유산포털 흑응산성 자료에서 확인됩니다.
구조
흑응산 정상부에 흙과 돌을 섞어 쌓은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 흙 토, 돌 석, 섞을 혼, 쌓을 축, 재 성 —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성)입니다.
주성인 내성
외곽에 붙은 익성 또는 외성
성벽 둘레 약 1,900m
잔존 높이 평균 3∼4m
우물터 2곳
연못 1곳
군수품 창고로 전해지는 터
성황당
예천군 공식 자료도 이 산성을 내성과 익성으로 이루어진 이중 구조라고 설명합니다. 예천군 문화관광 자료
출토·확인 유물
민무늬토기 조각
신라토기 조각
지석묘 3기
다만 민무늬토기와 지석묘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현존 성벽 전체가 곧바로 청동기시대에 축조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산 정상부가 선사시대부터 이용되었고, 이후 신라·고려·조선시대에 성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을 구분해야 합니다.
판단: 예천군 산성 가운데 실체와 구조가 가장 분명한 산성입니다. 그러나 최초 축성 시기는 정밀 발굴조사가 더 필요합니다.
3. 어림산성명칭
어림산성(御臨山城: 거느릴 어, 임할 림, 메 산, 재 성 — ‘임금이 친히 이르렀다고 전하는 산성’)입니다.
문헌과 조사보고서에서는 어림성(御臨城)으로도 표기됩니다.
위치
예천군 용문면 선리·어림호 일대
예천양수발전소 상부댐 주변
해발 약 700m 이상의 고지대
산 정상과 계곡을 함께 둘러싸는 복합적인 산성
일부 옛 자료에는 ‘하리면 금곡리’와 관련된 성으로도 나타나는데, 어림산성의 범위와 옛 지명 관계를 더 세밀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조사 근거
2005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가 『어림산성 시굴조사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보고서에는 다음 항목이 실제 조사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수구지(水口址: 물 수, 입 구, 터 지 — 성안의 물을 내보내던 시설의 자리)
성벽부
성 내부
상을곡성과 어림성의 관계
따라서 어림산성은 단순히 지명이나 전설만 전하는 산성이 아니라, 시굴조사(試掘調査: 시험할 시, 팔 굴, 살필 조, 조사할 사 — 일부를 시험적으로 파서 유적의 성격을 확인하는 조사)가 실시된 성곽유적입니다.
현재 상태
예천양수발전소 상부댐과 어림호를 조성하면서 성곽 일부가 영향을 받았고, 일부 구간과 문지 주변이 정비되었습니다.
현장 안내자료에는 다음 내용이 알려져 있습니다.
서남문지
여러 곳의 문지 추정지
암키와·수키와 조각
조선 전기까지 이용되었을 가능성
그러나 “왕건이 직접 이곳에 왔다”거나 “견훤군과 싸웠다”는 이야기는 지역 전승의 성격이 강합니다. 이를 역사적 사실로 확정하려면 『고려사』 등의 직접 기록과 출토 유물이 더 필요합니다.
판단: 산성의 실체는 발굴조사로 확인되었지만, 초축 시기와 왕건 관련 전승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4. 부로산성·부노산성명칭 문제
자료에 따라 다음처럼 표기됩니다.
부로산성(夫老山城: 지아비 부, 늙을 로, 메 산, 재 성)
부노산성
부로성산
부로산고성
부로성
성재
현재 예천군 은풍면 공식 지명자료에는 ‘부로산성’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예천군 은풍면 지명유래
위치
예천군 은풍면 우곡리 산57번지 일대
우곡리 안마을·평지마을·정자촌 뒤쪽 성재
옛 하리면 우곡리
송월리와의 경계에 가까워 송월리 산성으로도 소개되기도 함
구조
예천군 관련 향토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해발 약 350m 산정
테뫼식 산성
토석혼축
둘레 약 600m로 전하는 자료가 있음
도로 쪽을 향해 성벽이 이어짐
봉우리 위에 못이 있었다는 전승
테뫼식(테式: 산봉우리 둘레에 테를 두르듯 성벽을 쌓은 방식) 산성으로 설명되지만, 정밀측량과 발굴조사 결과가 공개된 것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시대
일부 향토자료는 선사시대 또는 삼국시대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출토 유물과 발굴 층위가 제시되지 않았으므로 시대를 확정하면 안 됩니다.
또한 “어림산성의 자성(子城: 아들 자, 재 성 — 큰 성을 보조하는 작은 성)”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이것 역시 지형적 관계에 따른 추정입니다.
판단: 성터와 성벽 흔적이 전하는 산성이지만 초축 시기와 어림산성과의 종속관계는 미확정입니다.
5. 원산성명칭
원산성(圓山城: 둥글 원, 메 산, 재 성 — 둥근 산 또는 산줄기에 쌓은 성)입니다.
위치
예천군 용궁면 향석2리 성저마을 뒤
비룡산·회룡포 전망대 일대
장안사와 회룡대 부근
내성천과 낙동강·삼강 방면을 조망할 수 있는 지점
예천군 자료에는 용궁면 향석2리 성저마을 뒷산의 산성으로 소개됩니다. ‘성저(城底: 재 성, 밑 저)’라는 마을 이름도 ‘성 아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구조와 현황
토성으로 알려짐
능선상에 성벽 흔적이 있음
회룡포·삼강·낙동강 수계 감시가 가능한 지형
봉수대와 가까움
현재는 성벽이 뚜렷하지 않은 구간이 많음
문헌 문제
『삼국사기』에 원산성이라는 이름이 나오지만, 그 원산성이 예천 용궁면 원산성과 같은 곳인지는 학계에서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삼국사기』의 원산성을 다음 두 지역 가운데 하나로 봅니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따라서 예천 원산성을 곧바로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원산성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산성」
또한 “마한의 마지막 산성”, “온조왕 7년에 함락된 성”이라는 이야기도 지역 전승의 성격이 강하며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은 아닙니다.
판단: 실제 성터는 확인되지만, 『삼국사기』 원산성과의 동일 여부 및 초축 시기는 논쟁적입니다.
6. 동학가산성·학가산성명칭
동학가산성(東鶴駕山城: 동녘 동, 학 학, 멍에 가, 메 산, 재 성) 또는 학가산성으로 불립니다.
위치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와 안동시 경계
학가산 814m봉 남동쪽 바위지대 일대
‘천주마을 뒷산성터’라고도 불림
학가산은 예천군과 안동시의 경계를 이루기 때문에 산성의 행정구역 귀속을 정확히 따지려면 성벽의 좌표와 지적경계를 대조해야 합니다.
확인 내용
현장·지역 조사자료에는 다음이 나타납니다.
자연 암반과 절벽을 이용한 석성
일부 돌로 쌓은 성벽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는 기록
학가산에 두 개의 성이 있었다는 전승
보문면 ‘산성리’라는 마을 이름
다만 “고려 공민왕 때 쌓았다”는 이야기는 전승으로 제시되고 있을 뿐, 현재 확인한 자료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판단: 산성 흔적은 있으나 예천·안동 경계 문제와 축성 시기를 함께 재조사해야 합니다.
7. 은풍면 금곡2리의 이름 없는 성터
예천군의 향토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은풍면 금곡2리에 어림성 외에도 성터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 기록은 예천군 관련 성터 자료에서 확인됩니다.
그러나 이 성터가 다음 가운데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림산성의 외곽 성벽
어림산성의 보조성
별개의 소규모 산성
옛 성벽으로 잘못 인식된 경계시설
따라서 독립된 산성으로 목록화하려면 현장 좌표와 성벽 구조를 다시 조사해야 합니다.
8. 현재 예천군도 성곽 5곳을 새로 조사 중입니다
예천군은 2026년 현재 「예천군 성곽유적 기초학술조사 연구용역—흑응산성 외 4개소」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업비는 3,500만 원으로 공고되었습니다. 예천군 발주계획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예천군도 기존 자료만으로는 산성의 정확한 규모·시대·성격을 확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흑응산성을 포함한 5개 성곽을 대상으로 기초학술조사(基礎學術調査: 터 기, 주춧돌 초, 배울 학, 재주 술, 살필 조, 조사할 사 — 본격 연구에 앞서 기본 현황과 역사적 가치를 밝히는 조사)를 추진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공개된 공고문 검색 결과만으로는 ‘흑응산성 외 4개소’의 나머지 네 곳 명칭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추측으로 채우지 않겠습니다. 어림산성·부로산성·원산성·학가산성일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추측입니다.
최종 판단
현재 사실에 근거하여 예천군 산성 목록에 우선 올릴 수 있는 곳은 다음 5곳입니다.
흑응산성
어림산성
부로산성·부노산성
원산성
동학가산성·학가산성
여기에 은풍면 금곡2리의 별도 성터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흑응산성은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실체가 가장 명확하고, 어림산성은 시굴조사보고서가 있어 고고학적 근거가 비교적 탄탄합니다. 부로산성·원산성·학가산성은 성벽이나 성터가 전하지만, 초축 시기와 역사적 사건은 아직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원산성을 『삼국사기』의 원산성과 바로 동일시하거나 부로산성을 어림산성의 자성으로 단정하는 것은 현재 근거만으로는 신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