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칠백예순여덟 번째
야만의 시대
히틀러와 나치의 만행을 처음 접한 것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카포(Kapo)’는 나치 강제수용소 안에서 완장을 차고 수용소의 행정이나 감시 업무를 맡은 죄수 출신 하급 관리자였습니다. ‘완장’이라고 하면 윤흥길의 소설 <완장>에서 동네 건달 임종술이 감시원 완장을 차고 동네를 활보하는 장면을 떠올릴 겁니다. 카포들 역시 수용소 안에서 그랬습니다. 이들은 속된 말로 ‘앞잡이’를 의미하는데, 카포를 뽑기 위해 과거의 이력을 꼼꼼하게 살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남에게 큰 피해를 입힌 자를 골랐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 앞잡이와 다를 바 없지요. 또 한 부류가 있는데, 죽음의 공장 노동자들이라 불리는 존더코만도 sonderkommandos입니다. 가스실과 화장장에서 시신을 처리하던 유대인 수감자들로 구성된 작업반입니다. 이들은 나치 학살 증거를 직접 목격한 증인들이었으므로 보안 유지를 위해 몇 달 간격으로 모조리 살해되었답니다. 그러니 결국 남아서 증언하는 건 살아남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나치보다도 더 동족들을 잔인하게 다루었답니다. 같은 사건을 겪었더라도 사람마다 기억하는 것은 다르기에 나치는 그러한 ‘기억의 이중성’을 활용해 그들의 만행을 소련군의 학살로 위장했고, 훗날 학살과 수용소의 존재를 철저하게 부정해 ‘사실(Fact)’을 ‘논쟁’으로 만들면 증언 자체가 ‘개인의 주장’에 머문다는 사실까지 계산했답니다. 이런 증언들을 들으면서 어쩌면 일제 군부와 똑같은지,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행태도 똑같은지 놀랐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긴 프리모 레비는 그럽니다. “사람들은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소녀상’을 모욕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