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창조주 하나님
나비의 눈보다 더 아름다운 나비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진은 하얀 꽃 위에 살포시 앉아있는 노란 나비의 모습을 크게 확대한 것이었는데, 사진 속의 나비는 큰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눈으로 본다면 나비는 꽃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많은 것을 한꺼번에 잘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만히 그 사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비나 벌 같은 곤충은 두 개의 겹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개의 겹눈은 육각형 렌즈 같은 수많은 낱개의 눈들이 모여서 된 것인데, 나비의 겹눈은 평균 2만 개 정도의 낱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천 또는 수만 개의 낱눈에서 나온 시신경들이 하나로 합쳐져 뇌에 연결되어 있어, 나비나 벌은 이 겹눈으로 대상의 형태뿐만 아니라 움직임까지 재빨리 포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눈이 여러 개가 있어서 곤충이 보는 영상은 마치 멀티비전 같답니다. 그리고 그 멀티비전 각각의 화면을 하나로 통합해서 뇌에 받아들이기 때문에 머리를 돌리지 않아도 여러모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겹눈으로 공중을 날아다니면서도 물체를 재빨리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나비나 벌은 또 자외선 감지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은 볼 수 없는 자외선을 볼 수 있습니다. 자외선 감지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꿀이 있는 중앙으로 갈수록 꽃의 색이 진해 보입니다. 이렇듯 나비는 꽃 속의 꿀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신기한 눈을 가지고 있지요.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눈을 가지고 우리를 보고 계실까요? 얼마나 여러 각도에서 우리를 이해하고 계실까요? 그리고 어떤 신기한 눈으로 우리 마음속까지 꿰뚫어보고 계실까요? 생각해 보셨습니까? 나비의 눈보다 더 자세하게, 그리고 더 정확하게,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분, 나비의 눈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나비의 눈에는 꽃만 보이듯이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만 보인다는 것을&.
그분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 때로 듣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있습니다. 귀에 닿는 소리는 진동하고 마음을 울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소리는 물체의 진동에 의해 발생하는데, 사람은 1초당 진동수 20~20,000Hz까지의 음을 청취할 수 있으며, 진동 횟수가 1초에 20번에서 2만 번 정도 되는 것을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가청음 이라고 합니다. 진동수가 20,000Hz 넘는 소리는 우리가 들을 수 없으며 이것을 초음파라고 부릅니다. 음파는 공기가 매개 물질일 때 일어나는 파동을 가리키고, 초음파는 공기뿐만 아니라 액체나 고체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박쥐나 돌고래는 진동수가 2만이 넘는 초음파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놀라운 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입으로 초음파를 내보내고 레이더처럼 반사되어 오는 소리를 귀로 느껴 물체를 확인하고 주변의 상황을 알아낸다고 합니다. 소리의 울림을 귀로 받아 이것을 분석하여 주변을 보는 것이지요. 깜깜한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박쥐는 빛을 겨우 느낄 정도의 시력을 지니고 있지만, 청력을 사용하여 활동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소리나 초음파 등의 반향으로 물체의 위치를 아는 것을 에코로케이션(echolocation)이라고 하는데, 박쥐의 초음파는 20,000Hz~130,000Hz이며, 돌고래가 내는 초음파의 진동수는 1초에 15만 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박쥐와 돌고래가 가진 초고성능 음파 탐지기는 과학자들이 증명한 놀라운 것입니다. 인간의 귀가 들을 수 없는 주파수의 소리를 박쥐나 돌고래의 귀로 들을 수 있다면, 한갖 동물이지만 초음파를 보내 반향되어 오는 소리로 물체를 탐지해 내는 놀라운 청력을 가졌다면, 그들의 신기한 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귀는 우리들의 소리를 얼마나 잘 들으실까요? 우리가 부르짖는 기도 소리를, 아니, 미처 입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만 쌓인 애절한 간구를 얼마나 잘 들으실까요? 그리고 우리가 있는 위치를 얼마나 잘 추적하여 알고 계실까요? 하나님의 귀는 하늘 천사들의 거룩한 찬양대의 우렁찬 찬미 소리 속에서도 연약한 인간의 작은 기도 소리를 들으려고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골방에서 마음의 소원을 쏟아놓을 때나 길을 가면서 조용히 묵상으로 기도할 때에도, 비록 그것이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마음의 소리 없는 소원이라 해도, 그 기도 소리는 우주의 침묵 속에 사라지지 않고 하늘 보좌에 상달 됩니다. 거리의 소음과 군중의 소요를 넘어 우리의 간구와 소원은 하늘로 올라가 그분의 귀를 울리는 소리가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기도라면, 우리를 향해 열려 있는 그분의 사랑의 큰 귀에&. 따스한 가슴 동물 중에 유대류에 속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유대류란 주머니를 가진 동물을 가리키는데, 캥거루나 코알라, 주머니쥐 외에도 많은 유대류 동물들이 있습니다. 유대류 동물들이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들은 다른 포유류 동물에 비해 태반이 발달하지 않아서 배아기의 초기인 임신 30~36일 만에 새끼를 낳으므로 그 새끼를 넣어 키울 주머니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몸집이 큰 캥거루라도 그 갓 태어난 새끼는 매우 작아서 크기가 2.5cm, 몸무게는 1~2g 정도에 불과하답니다. 처음 난 캥거루 새끼를 보면 그것은 동물이라기보다는 마치 빨간색의 꿈틀대는 벌레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작게 태어난 캥거루 새끼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서 어미 몸에서 나오자마자 어미의 배를 기어올라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주머니 안은 안전할 뿐 아니라 젖꼭지가 있어 새끼는 충분히 먹고 따뜻하게 자며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어미의 주머니에 들어간 새끼 캥거루는 대략 9개월 가량을 주머니 안에서 지낸 후 밖으로 나오며, 생후 18개월까지 주머니를 들락거리다가 독립하게 됩니다. 주머니를 가진 유대류 동물들은 새끼가 커서 혼자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되기까지 많은 위험으로부터 새끼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주머니를 가진 것입니다. 외부의 적과 위험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고 잘 기르라고 유대류 동물들에게 따뜻한 주머니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를 품으시며 잘 돌보실 수 있는 넓고 따스한 가슴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 (사 40:11)십니다. 마치 잃어버렸던 아들이 멀리서 보이자 맨발로 뛰어나와 덥석 안은 아버지처럼,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한 걸음만 내딛는다 해도 그분은 서둘러 무한하신 사랑의 가슴으로 우리를 안아 영접하십니다. 옛날 성소에서 제사장이 입던 덧옷인 에봇 에는 흉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 정사각형의 흉패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 새겨진 열두 보석들이 네 줄로 배열되어 있었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 (출 28:29)을 주님께서는 명령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 앞에 그 피로 탄원할 때, 회개하고 믿는 각 영혼의 이름을 그분의 가슴에 지니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가슴에 품어진 이름은 결코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마치 어미 캥거루가 자신의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주머니에 품는 것처럼, 우리가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그분의 자랑스러운 자녀로 크게 성장할 때까지 주님께서는 우리를 가슴에 품어주십니다. 마치 그 영혼 하나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각 개인의 이름과 사정을 아시며&. 모든 창조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품의 특징들을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혹시 한 사람이라도 그 창조물들을 바라보다가 그분의 사랑을 발견할까 기대하셔서, 그리고 그 창조물에 나타난 사랑을 바라보고 혹시 구원의 소망을 발견할까 기대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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