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채 가기 전에 성질 급한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하얀 목련이 그 자리에서 봉오리를 말아 움켜쥐고 있을 때 내일의 찬란한 봄을 그렸다. 눈곱만큼의 의심도 없었다. 그것은 지나간 날들처럼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오늘이라고 생각했다. 벚꽃 피는 좋은 날에 꽃놀이 가자며 꿈에 부풀어 있을 때 정체불명의 그것은 어느 집의 문고리나 냉장고의 손잡이에서 꿈틀거리면서 살아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시내의 한 레스토랑에서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경계의 눈빛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그 사람이 거쳐 간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혼란과 두려움에 떨었다. 거대한 조직에서의 집단감염이 용오름처럼 일어나고 응급차의 사이렌이 사람이 사라진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도 하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나간 이웃의 소식이 들리면서 죽음이 내 곁에 도사리고 있음을 생전 처음 느꼈다.
대구는 봄을 도둑맞고 고립된 섬이 되어갔다. 미지에서 온 도둑의 정체는 오리무중이었다. 모이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악착같이 공격했다. 들숨과 날숨을 파고들어 교묘하게 자손들을 번성시키며 세를 확장했다. 인간의 몸은 그들에게 최적화된 집이었다. 방심한 틈에 집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에 아무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명 수배를 하고 도둑을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문단속을 철저히 하여만 했다.
생계도 접은 채 단조로운 일상에 몸을 맡겼다. 누가 세월을 낚는다고 했던가. 나는 강태공이 되어 낚싯대를 드리웠다. 우편물에 붙은 비닐 한 조각도 깨끗이 떼어내고 우유 팩을 헹구어 반듯하게 펼쳤다. 물에서 제 몸을 불린 팥을 삶아 으깨어 팥죽을 끓이고, 반나절을 무던히 기다려야만 부풀어 오른 밀가루로 술빵을 만들었다. 반죽 속에 피어난 무수한 실타래가 꺼질세라 바빠진 손동작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를 확인하며 안심했다. 평소에 바빠서 못했던 것들, 시간이 많으면 해야지 하고 미루었던 생각을 끄집어내려고 애썼다. 시간은 얼마든지 내가 연주하는 대로 흘렀다.
가족을 못 본 지가 두 달째다. 남편은 부산에서 밥벌이 중이다. 복통으로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대구에 주소를 두었다는 표적은 집 잃은 난민 신세였다. 병원 입구에 설치되어있는 파란 천막 안에서 주사를 맞았다고 볼멘소리를 해댄다. 서울 기숙사에 있는 아들은 눈칫밥을 먹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해왔다. 집에 오고 싶다는 아들의 목소리가 마른풀처럼 푸석거린다. 유학생이 해열제를 한 움큼씩 먹고 고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비난보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마음이 아렸다. 머나먼 이국땅에서의 이방인은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차별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돌아올 곳을 찾아 필사적으로 탈출했는지 모른다.
안부 전화를 묻는 사람들의 연락이 끊이질 않는다. 긴 통화로 인해 마른기침이 나왔다. ‘찰나의 정적’ 당황해하는 수화기 너머의 숨결이 전해왔다. 서둘러 전화를 끊는 지인의 태도가 서운했지만 어이가 없어서 한참이나 웃었다. 코로나가 겁나는 게 아니라 대구사람이 무서운 걸까?
집에만 갇혀 있어도 몸은 계절을 기억한다. 애쑥이 돋아나올 때쯤 되면 쑥국이 먹고 싶다.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온 남편과 들판으로 나갔다. 벚꽃은 어디로 갔는가. 꽃잎 진자리가 슬퍼 나는 허수아비처럼 섰다. 어느 시인은 ‘꽃만 저렇게 하야다 지면 뭐 헌다냐 꽃도 사람이 있어야 꽃이다.’라는 말로 봄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했다. 내가 눈도장을 찍지 않으니 이 세상은 미완성인 채였다. 잃어버린 봄날처럼….
마른 풀잎을 헤쳐 쑥을 뜯고 있다가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한번 다녀가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늘 이맘때쯤 시골에 가서 시금치며 상추를 보며 품을 연 땅의 기운을 느꼈다. 엄동설한을 견뎌낸 요즘 채소가 가장 달고 맛있다. 엄마도 이 난감한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채마밭에서 자라는 푸성귀를 바라보며 자식의 얼굴을 떠올렸을것이다. 시골 텃밭에 도착하니 텃밭머리에는 보따리가 세 개나 있다. 안의 물건을 살피지도 않고 서둘러 차에 싣는 꼴이 영락없는 도둑이다. 지갑에 있는 돈을 털어 일회용 장갑에 넣어서 돌담 구석에 쑤셔 넣었다. 따스한 밥 한 끼 사드리지 못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을 꽁무니바람이 낚아챈다.
시골집에는 들르지 못한다고 전화를 드렸다. 나이 드신 부모님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혹여 대구에서 자식들이 다녀갔다는 소식을 동네 사람이 알면 눈총이나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자동차를 타고 돌아 나오는데 저 멀리 두 분이 허둥지둥 대문을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아슬아슬한 몸짓에서 아쉬움이 묻어나온다. 나는 손을 흔들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두 분은 오래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꼭꼭 싸맨 검정 비닐봉지를 풀어헤치니 콩나물시루가 나왔다. 노란 종이 한 장이 비닐에 쌓인 채 시루 안에 고이 펼쳐져 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비닐을 벗겨보니 눈에 익은 종이다. 엄마는 절에 다녀오시면 노란 종이 한 장을 베갯잇 속에 넣어 주었다. 그것은 부적이었다. 딸의 안녕을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이제 겨우 실눈을 뜬 초록 콩 사이로 반짝인다.
딸에게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종종걸음치는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갈무리해 둔 참깨 보따리를 풀고 겨우내 안방에 모셔 두었던 노란 호박 한 덩이를 아버지에게 내어놓으라 하였을 것이다. 냉동고에 얼려 두었던 생선이며 고기를 찾아 몇 번이고 뒤적였을 것이다.
콩나물시루를 통째로 자식에게 주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예전에 엄마는 어디에 갈 일이 있으면 콩나물에 물 주는 것을 신신당부했다. 내가 아무리 우겨도 물을 자주 주지 않았다고 나무랐다. 물이 모자라면 콩나물에 잔 발이 난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는다. 물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루 새 커가는 콩나물을 바라보니 웃음이 삐죽 새어 나왔다. 가슴 한켠에 두둑한 이랑이 생겼다. 뭐라도 심어 가꾸고 싶은 본능이 우울하던 마음을 다독인다.
무심결에 찍은 부모님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오래전의 모습과 비교하니 세월의 흔적이 오롯하다. 미국의 사진작가가 오랜 시간을 걸쳐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부모님이 자식을 배웅하는 모습이었다.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계실 줄 알았다. 어느 순간 쓸쓸한 공터만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면서 가슴에 커다란 바위를 안은 적이 있다. 부모님의 자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처럼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날이 시나브로 온다는 사실에 그리움이 나를 매어 둔다.
‘인간은 결코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라고 헤밍웨이는 말했다. 우리는 태연자약하게 일상으로 돌아가 살아갈 것이다. 의도치 않게 삶의 쉼표가 주어졌던 몇 달간이다.
부적을 꺼내 본다. 엄마의 마음을 손으로 읽는다. 주말에는 콩나물 한 줌 빼서 부모님을 만나러 갈 수 있을까? 봄 도둑은 그리움을 남기고 저만치 도망치고 있다.
첫댓글 코로나가 갈라놓은 부모자식간의 애닲은 사연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모든 문장이 진솔하고 맛깔스럽게 느껴지고 다시 음미하고 싶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