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유언(창47:13-31)
1. 젊은 목사님이 어느 교회 부목사로 부임했습니다. 부임 인사를 하고 사역을 시작했는데, 한 장로님이 선물이라며 주셨어요.‘이게 무엇이죠?’하고 물으니, 장로님이 장난감 권총이라고 말했어요. 장난감 권총을 주면서 장로님이 좀 엉뚱한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교회를 섬기다가 스트레스가 쌓이고 일이 풀리지 않으면 교회 뒷산으로 올라가서 이것을 쏘면서 풀어요! 젊은 목사님이 생각지 않은 선물에 당황했지만, 장로님이 주신 선물이라 받아서 서랍 한쪽에 두고 지냈습니다. 교회에 부임한지 몇 개월이 지나면서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어요. 기도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잘 풀리지 않았어요. 그때 장로님이 준 선물이 생각났고, 장난감 권총을 가지고 교회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장난감 권총을 꺼내서 발사하는데, 어디선가 담임목사님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어요. 담임목사님이 권총도 아닌 기관총을 발사하며 함성을 질렀습니다.(야...)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 특이한 교회입니다. 코로나 규제가 풀어지고 있지만, 3년째 지나는 동안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서로 위로의 말을 전하죠. 코로나 기간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영화를 소개하는 한 영상을 얼마 전 본 적이 있어요. 제목이 특이했어요.“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2015년 작품) 어느 언론사 신입 사원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이름이 도라희-발음을 주의해야, 박보영이 주연했어요. 괴팍한 부장(정재영)을 만나 좌충우돌하는 이야기입니다.(코믹 영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닌 사회생활 현장 이야기에요.(열정을 강조하는 부장과 그 틈에서 일하는 스텝들의 이야기)
2. 오늘도 삶의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며 건강하게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요기도회, 요셉의 생애를 나누고 있습니다. 요셉의 삶이 파란만장하게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은 아버지 야곱이 늙어 죽기 전에 요셉을 불러서 유언을 남긴 이야기에요.(인생의 끝자락 이야기) 유언을 말하면 분위기가 심각하죠. 유언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사람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월동준비는 할 줄 알면서, 죽을 준비는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심각한 분위기 전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27절,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의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야곱이 130세에 애굽으로 이주했는데, 그의 나이 147세 때 그가 죽기 전의 상황이었습니다.
야곱이 애굽에서 17년을 살았고, 그동안 후손들이 엄청나게 번창했습니다. 그동안 야곱의 가족이 얼마나 자랐을까요? 70명이었던 가족이 17년 만에 수백 명에 이르렀습니다. 야곱은 13남매를 두었고, 요즘 우리처럼 둘이나 셋을 낳는 시대가 아니었어요. 야곱의 자손들이 많은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야곱과 요셉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순종했고 온 가족이 순종할 때, 이스라엘은 민족 규모로 점차 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순종하면 역사가 이뤄집니다. 야곱 부자가 원한 것은 애굽에서의 출세나 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었어요. 민족 규모로 수가 차면,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누릴 하나님 나라(기업)입니다.
3. 가나안은 약속(언약)의 땅입니다. 이 언약-약속을 지키는 것이 믿음입니다. 야곱은 요셉과 후손들이 이 언약-믿음을 지키도록 유언하였어요. 세상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자들은 돈-명예-권세가 사라지면 끝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놓지 않으려고 온갖 몸부리을 다합니다. 이스라엘의 꿈-비전이 이뤄지는 날-출애굽 대장정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것은 400년 후의 일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무엇을 유언하였습니까? 야곱은 유언하기 전에 요셉의 손을 그의 허벅지 아래(환도뼈-하체)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부자지간이라도 좀 민망한 모습이에요.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엘리에셀에게 그랬고 야곱도 이런 방식으로 했어요.
중요한 약속을 할 때에(맹세) 대대로 해온 전통 족장 시대의 전통입니다. 반드시 약속을 지키라고 권할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 부모의 유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들이 행합니다. 널리 알여진 청개구리 이야기도 그렇고요. 야곱의 유언은 한 가지에 집중했어요. 자신이 죽으면 애굽 땅에 매장하지 말라고요. 그의 조상들의 묘지-선영에 장사하라고 했습니다.(29-30절) 그들의 선영은 가나안 땅-헤브론의 막벨라 굴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을 일찍이 샀어요. 당시 지역민들이 아브라함에게 땅값을 받지 않겠다고 극구 사양을 했습니다만, 아브라함은 끝까지 땅값을 지불했어요. 미래를 대비할 줄 알았던 아브라함의 지혜와 결단이었습니다. 합당한 대가지불은 이처럼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4. 왜 야곱은 애굽에 좋은 묘지 터가 많았는데, 굳이 멀리 가나안 선영까지 가서 장례를 치르라고 했을까요? 애굽은 나그네로서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곳입니다. 그들이 영원히 거할 처소는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 땅입니다. 우리도 이 땅은 잠시 거처 가는 임시 처소에서 사는 나그네 인생이에요. 야곱의 본향은 애굽이 아니고 가나안땅이에요. 애굽에는 그들에게 어떤 미련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천국입니다. 찬송가 479장,“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이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이 땅에 너무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마6:19-20, 예수님은 우리가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아프리카 선교사님이 오셔서 선교주일로 지켰잖아요. 선교사님이 이 날 오시기로 약속하고, 저희 아들 예찬이에게 기왕에 집에 오려면 선교사님 오실 때 집에 오라고 권했습니다. 다행히 아비의 말을 듣고 지난 주말에 왔습니다. 선교사님이 사도 바울처럼 귀하게 쓰임받는 신앙과 인격을 겸비한 분이라고 도전 좀 받으라고 권했죠. 하나님께서 울 아들에게 어떤 도전을 주실까 기대하며 기도했습니다.
5. 뜻밖의 도전은 선교사님이 저희 자녀들에 대해서 1박2일 있으며 계속 자세하게 물었어요. 우리 아들 소개를 듣고 주일 찬양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본 후에, 제게 아들을 여름방학 한 달간 탄자니아에 보내주면 안 되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하고 신경주역으로 함께 가는데, 우리 교회에서 제공한 교통비와 그 날 방문한 한 권사님의 헌금 등을 그대로 제게 주었습니다. 예찬이 비행료로 보태라고 했어요. 예찬이가 가지 않겠다고 하면 용돈으로 주라고. 예찬이가 영어 찬양 인도(기타 연주하며) 어린이 청소년 설교를 담당해주면 좋겠다는 부르심이었습니다. 8년간 미국에서 공부한 것을 이제 선교적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도전이었습니다.
아들에게 말했더니, 가는 것은 좋은데 비용과 제반 사항이 되어야지 않겠냐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나와 붕어빵 원조 박복남 장로님이 탄자니아 신학대학 순회사역을 위해 미리 싼 가격에 티켓팅했지만, 코로나 규제가 풀리며 비행료가 급등하는 상황임을 아들도 알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기회를 주시는지, 비행료도 우리가 미리 예매한 것과 다를 바 없이 싼 가격이 나왔고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고 순종을 권하자, 주일 이후 3일 만에 다 이뤄졌습니다. 예찬이가 7월2일-8월2일까지, 탄자니아 이솔래 지역에 의료선교팀과 또 세렝게티 지역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6. 생각지 못한 도전과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후 재정-건강-찬양 및 메시지 준비 등에 기르부으심이 온전히 임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비가 먼저 가서 신학교 및 교회 사역을 하고 아들이 바로 바턴을 받아서 나아가는 귀한 여름이 시작됩니다. 저희 가정과 우리 교회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순전하게 이뤄져 가는 과정입니다. 이번 단기선교는 여러 면에서 새로운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박장로님이 빵과 전도 사역도 함께 하고요)
야곱의 유언은 지금 당장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지만 후대를 위해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야곱이 17년을 애굽 땅에서 지냈습니다. 이미 이주한 후 5년의 흉년 기간이 지나갔어요. 자연의 이치가 정상으로 회복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자기 생전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어요. 그는 젊어서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남을 속이고 또 남에게 속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7. 하지만 자기가 말한 것처럼 험악한 세상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만 살았습니다. 이제 성숙한(변화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어요. 이런 야곱을 누가 만만하게 볼 수 있겠습니까? 직분을 막론하고 야곱처럼 성숙하고 변화되지 못하고 그처럼 살지도 못하면서, 야곱을 만만하게 본다면 참 우스운 모습입니다.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올 때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왔어요.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기에 애굽에 왔습니다. 애굽에서 그의 생전에 가나안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도, 하나님의 지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거기까지가 그의 생의 마지막이었어요.
야곱은 유언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야곱의 시신이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에 매장함으로, 이스라엘이 훗날 하나님의 때에 그 땅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어요. 이것을 400년 후에 후손들이 기억하도록 그의 유언은 반드시 실시되어야 했습니다. 400년 후에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요셉의 유골을 들고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 머물지 않고 조상들의 땅으로 발길을 향했는데, 야곱의 유언을 기억했기 때문이에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대대로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들은 요셉이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할 것이라고 맹세했습니다.
8. 요셉은 온전한 인격의 소유자였어요. 그는 끝까지 아버지의 말을 들을 줄 알았고 또 아버지의 말대로 행하는 효를 다하였어요. 아비의 말을 귀하게 여기고 지체하지 않고 지켰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말대로 행하여, 야곱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다녀와서 다음 세대에게. 다음 세대는 그 다음 세대에게 가나안 땅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야곱의 유언은 자기 몸을 가나안에 장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일로 인해서 후손들이 가나안을 방문하게 되고. 그 이야기가 대대로-출애굽 때까지 전승되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하자, 야곱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야곱의 생애는 예배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예배를 떠나서 살지 않았어요. 그는 예배로 시작하고 예배로 마쳤어요. 그가 유언을 하고 아들이 맹세를 하자마자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예배를 생활화 하는 것이에요. 마지못해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범사에 생활화 되어-몸에 배어야-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립니다. 늘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참 멋있는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은 100%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시144:15,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다고 노래합니다.
9. 시23은 하나님이 목자이심을 노래합니다. 우리는 그의 양이고요! 시인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녀들의 복과 경제의 복과 평안의 복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입술로만이 아니에요. 변화된 야곱과 같이 삶의 현장에서 주님이 주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난 백부장의 말과 같이, 우리의 상관-주인이신 주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것이에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참된 자세입니다. 야곱과 요셉 부자가 보여준 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도록 이 시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