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양 /
덕수는 숙부와 헤어지고 민철이가 기다리고 있는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다. 세마대가 있는 지곶동으로 가면 민철이와 조용한 대화를 나눌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시내 중간 농협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덕수의 차를 기다리는 민철이는 검정 양복을 입고 생전 신어 보지도 않았을 고급 구두를 신고 있었다. 민철이를 태우고 세마대로 달려갔다. BMW 사의 롤스로이스라 승차감이 좋고 소음이 없는 외제 차는 어두운 밤에도 확연히 티가 났다. 대리운전기사가 멋쩍게 웃으며 굽실거리듯 비위를 맞추었다.
"저 운전하면서 BMW 사의 롤스로이스 몰아 본 적은 몇 번 안 돼요. 사장님 덕분에 BMW 외제 차를 다 운전해 보네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덕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너처럼 돈 한 푼에 치를 떨었던 때도 있었다. 덕수는 칠억 얼마가 넘는 외제 차가 진짜 무엇이 좋은지도 몰랐다. 다만 아는 것은 튼튼하고 고장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차를 구입한 것이었다. 세마대에 도착한 덕수와 민철이는 대리운전사에게 명함을 건네받았다.
"콜 하십시오."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그를 보며
"콜 하면 금방 올 수 있겠지요?" 라며 민철이가 말을 걸었다.
"그럼요, 예 예 총알같이 오지요." 그가 돌아가자, 한정식당으로 들어간 덕수와 민철이는 조용하고 구석진 방을 잡고 한정식과 소주 몇 병을 시켰다. 사방은 정적 감에 휩싸여 늦가을 한기를 느끼게까지 하는 것이 더욱 적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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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그 코미디언 있지? 난 그 아가씨가 얼굴도 잘났고 걱실걱실하겠드라." 라고, 엉뚱한 이영자를 맘에 두고 좋아한다고 했다. "왜? 너는 맘에 안 드냐?"
"맘에 들고 안 들고가 어디 있어? 그래도 배우고 똑똑한 여자가 좋지요."
"왜? 걔는 똑똑하지가 않아? 내 보기에는 말도 잘하고 수더분하게 생겼던데. 억척스러워 보이고." 덕수는 아직 자신은 결혼이 늦었지만, 때를 기다렸다는 식으로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래, B 양은 뒷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B 양을 만나본다 해도 덕수 네가 자신이나 있을지 몰라?"
"......"
"번질한 앵커들이란 주로 박사나 금융전문가 아니면 의사들 같은 지체 높고 저명인들만 상대하지."
"......"
"막상 만나보면 덕수 네가 감당될지나 모르겠어?" 민철이는 속에 있는 말을 덕수에게 건넸다.
"한번 구릿네라도 나는 점이 있으면 정보를 가시고 와봐."
"여자 그게 그거지 뭐. 나도 성질께나 있고 만만한 놈이 아니라구.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깐. 한번 대화나 나눠보자고, 배우고 똑똑한 여자들은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속이나 떠보고 심지가 어떤지 알아나 보게." 덕수가 입을 씰룩거리며 조그맣게 말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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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여러 가지 설명을 했고 질문을 했으며, 덕수가 얼마나 돈이 많은지 알고 있는 듯했다. 민철이 후배 기자가 모든 사실을 귀띔해 주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덕수보다 민철이를 자꾸 더 쳐다보고 관심을 주는 것 같아 무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은 얼굴이나 보고 분위기를 파악하고 돌아가면 되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실상을 보고나니 의문이 풀린 듯 속이 후련해졌다.
집에 오자 노인을 모시라고 중국 아주머니를 한 분 두었는데 그때까지 두 분은 잠을 자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서울 간 일은 잘됐어?" 노인이 궁금해서 물었다.
"예." 빠르게 대답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머님은 늙어가고 계셨기 때문에 덕수가 하루빨리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결혼해서 아이들이라도 있으면 교육을 핑계로 서울로 이사하고 싶었으나 그것은 결혼하고 차후 생각해 볼 일이었다. 연고지가 오산 동탄이라, 친척들 친구들이 모두 주위에 있어서 쉽게 고향을 떠날 수가 없었다. 양감 사창리에 인삼밭 하던 15,000평이 중개인의 흥정이 들어왔는데 두 번 가서 지형과 개발 가능한지의 여부, 그리고 주위의 환경과 땅 생김새를 보고 어느 정도 마음에 들어 있던 차라 그 땅에 관해 서류 일체를 받아본 후 매수하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도서출판 AJ
<동탄의 덕수 이야기> / 김학성 작가의 소설, P130~15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