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사 공부를 하던 중 지난 토요일인 10/12일에 전주의 서예비엔날레를 다녀왔다.
강촌묵진회 회원들과 서울의 묵진회원들이 만나 전주 출신의 서예가인 유재 임종현 선생의 인솔로
하루 꼬박 걸리는 탐방길이 되었다.
전주는 80년대에 다녀온 적이 있는 도시였으나 내게는 인연이 직접 이어지진 못하였고 답사여정에서도
이리저리 약간 비켜난 동네였었다. 남산도서관에 나오는 하정 강승일 선생도 임실 출신이지만 유재
선생과 함께 전주에서 공부한 서예가인 만큼 낯설고 서먹한 탐방길이 될 염려는 없는 셈이었다. 서예전
관람이 주목적인 만큼 차분하고 조용한 탐방이다.

먼 행차인 만큼 새벽에 나서야 하는 고됨이 있었다. 6시에 출발한 서울 잠실행 버스를 간신히 세워서
타고 강촌에서 정재억 회장님을 비롯한 몇 분이 더 탄 우리 팀은 모두 5명이었다. 잠실에 내려 교대 앞
약속장소에 가서도 꽤 시간이 남았다. 8시에 버스가 오기까지 르미엘 커피점에서 회장님이 사신 커피를
들고 있자니 버스가 왔다. 아래는 덕소의 다리를 건너며 본 차창 밖의 미사리 앞 미호의 새벽 모습과
승차전 모습.



버스 두 대에 70분들이나 되었다. 중간에 유재 선생이 고향 전주에 대한 개괄적 설명을 들려주었다.
지자체마다 특장점을 내세우는 마당에 내륙도시인 전주는 누구나 아는 비빔밥, 그리고 판소리인 남도의
소리, 그리고 다른 도시보다 기반이 튼튼한 서예라는 세 가지를 내세우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줄줄이 소리 축제부터 서예전이 있고 곧 비빔밥 축제도 이어질 모양이었다. 유재 선생 자신도 대학 시절
지금의 한옥마을에 있던 강암 송성용 선생댁에 와서 몇 달을 자고먹으며 서예 훈련에 매진한 적이 있었
다고 하였다. 강암 선생은 근현대 서단에서 활동하며 사군자 등에 이르기까지 "고법의 전통을 현대적
조형미로 융화"시켜 강암체를 일궈낸 이 지역의 서예가였으며, 타계 뒤 한옥마을 한켠에 강암서예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탐방길에도 이 서예관을 관람할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늦어져 결국 지나가며 건물
만 쳐다보고 말게 되었다. 강암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기존의 일중과 여초라는 대가들이 장악하다시피
한 서단에서 이들의 부친인 김용진과 교유하며 서단의 한 부분을 지키고 있었고, 더구나 대나무 그림
에서는 영월 출신으로 일제 때 죽창 같고 철편 같은 대나무 그림으로 유명한 일주 김진우를 배우기도
했다는 점이다. 일주는 바로 의암 유인석 선생의 의병진에서 함께 의병 일을 했던 제자였다.(김진우의
대나무그림에 대해서는 앞에 필자의 몇 년 전 글이 있으니 참조해볼 것!)
중간쯤 되는 정안휴게소에서 쉬고 곧 전주에 당도하였으나 일정보다 늦어졌다. 덕진공원 뒤켠에 자리한
한국소리문화전당의 전시관에서 하차하였다. 프로그램을 보면 시내에 자리한 국립전주박물관(황욱전),
전북예술회관(정예작가전,초대전), 전북도립미술관(전북명인전), 강암서예관(강암전), 세연갤러리(한국
서각학회전/문인화전)들에서도 관련행사나 연계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5일에 개막하였고 학술
대회도 있었다.


이번 제9회의 주제는 '뿌리와 바람'이다. "한자문화권 고유 예술의 정수인 서예의 근원적인 예술성을 성찰함과 동시에 비록 아직은 작은 바람에 불과하지만 세계에 싹트기 시작한 현재의 서예바람을 점검하고, 나아가 미래의 서예 큰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는 설명이다. 아마 학술대회도 그래서 서예의
'세계문화 신조류 형성'이란 주제로 진행된 모양이었으나 자료는 얻어볼 수 없었다.
전시관은 3층까지 여러 주제로 이어져 있어 다채로워 보였다. 1층엔 모빌 서예전 등이 있었고, 2층부터
'서예의 철학전'에 한중일을 비롯한 109명의 국제적인 작품 전시였다. 그 옆엔 서방의 서예바람전으로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인도 러시아 멕시코 등 36명의 야릇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경을 테마로 한
사경전, 명사들의 좌우명전도 보였다. 그랑프리나 금상 수상작에 대해서는 안내데크에 별도로 작가
소개와 석문을 프린트하여 보도록 비치해놓았다.
먼저 큐레이터의 개략적인 설명이 있었으나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아래는 중국 치우전중(邱振中)의 <한묵지> 절록 초서작품으로 금상이다.

아래는 박원규의 이번 그랑프리작이다. "득중(得中)".

아래는 학정 이돈흥(1947년생)의 금상작 <서학첩요(書學捷要)>이다.

(이후 사진기 배터리가 다 되고 말아 간간이 휴대전화로 몇몇 장면만 찍었다! 참고로 본전시 사진을 담은 곳으로 다움블로그 http://blog.daum.net/unpa21/16522015 도 참조해볼 만함!)





아래는 중앙일보 10/17일자에 실린 기사이다. 8회비엔날레 그랑프리 수상자였던 황창밍 작품을 소개한 기사로서 손과정의 <서보> 일부를 잔 글자로 쓰면서 먹물 농담의 변화로 절묘한 부처 얼굴형상이 표현되도록 한 점을 높이 샀다.(위에 링크해놓은 곳에도 사진이 있으나 일간지에 기사가 보여 추기함!)

아래는 추사 글씨를 영상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모빌전.

몇 몇 눈에 띄는 작품들 말고는 여전히 현대서예의 시도들에 미숙한 내 눈에는 파격적인 작품들이 많아
보였다. 문자향 서권기라는 옛 한자문화의 주류였던 서예가 문자생활이 바뀌며 오히려 시각적인 효과만
과장되게 내세우는 듯 보였고, 법고창신이란 미명 아래 '법고'보다는 바람든 '창신'에만 들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화라니 시각적 시도가 주조를 이룰 수밖에 없을 터인데, 기량으로 밑받침
되지 못한 먹 놀음이 쉬이 진실되게 보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한문을 공부한다는 나 자신도 한참을
들여다 봐도 무슨 말을 쓴 것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글자들 모습을 보면서 느낀 생각이다.
이것이 솔찍한 소감일 것이다.
시간이 늦어 한옥마을 한켠 도로변의 백련회관에서 찹쌀연밥으로 점심을 먹고 나서 그 뜰에 모여
선생들의 휘호가 있었다. 저녁 때 회원들에게 퀴즈를 내고 상으로 나눠줄 작품이었다.


한옥마을은 주말 오후로 완전 만원의 장마당이었다. 1시간 가량의 자유시간을 주어 둘러보도록 하였다.
거리로 보아 다 둘러보기는 어려웠다. 약도를 보고 정재억 회장님과 일단 전주향교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어느 곳이건 축제행사들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아래는 태조영정이 모셔져 있는 경기전 정문과 행사장 모습.


아래는 1908년경 건립되기 시작한 전동(殿洞)성당. 아쉽게도 내부는 볼 수 없었다.

다시 모인 일행은 근처에 있는 전북예술회관으로 가서 전북작가전을 둘러봤다. 우선 지지난 해 공모전의 대상 수상작가인 김승민 초대전을 보고 정예작가전, 기념공모전 등을 봤다. 선생의 소개로 김승민
작가가 인사를 했고 구매자에게는 도록에 직접 필적도 담아줬다. 젊은 작가의 열정과 창의력이 돋보
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현대의 서예가란 먹물을 사용하는 일종의 문자 예술가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록도 나와 있었으나 워낙 고가여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록이 아니더라도 서예전시가 제대로
대중과 소통하려면 적어도 작품 중의 화제를 석문하고 해석한 글을 별도로 작품과 함께 바로 소개
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였다.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부실한 사진을 보충하는 겸, 공모전과 김승민전은 http://blog.daum.net/unpa21/16522011 및 http://blog.daum.net/unpa21/16522010 참조! 그밖에 세연갤러리의 서각전은 http://blog.naver.com/violetdust31?Redirect=Log&logNo=60201570466 참조!)
다섯 시 경이 되어 회관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이른 저녁식사를 위해 외곽인 삼례로 나갔다. 화순
순두부에서 저녁식사와 모임의 소개와 퀴즈 등을 마치자 7시가 돼가고 있었다. 춘천 가는 막차를 놓치면
안 되었으므로 재촉하여 밤길을 출발하였다. 주말이라 경부고속도는 정체고 밀렸다. 다행히 버스전용
차로는 나아서 2시간 반만에 남부터미널에 내릴 수 있었다. 전철이 시간이 정확하고 확실한 대안이었다.
결국 10시 45분 전철을 타고 귀춘하니,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당도하였다.
첫댓글 "되지 못한 먹놀음이 쉬이 진실되게 보이지는 못하는것 같았다" 이 말속에 답사기의 많은 부분이 내포한듯 느껴집니다.
서예나 그림이나 보는이의 내공도 큰 부분일텐데 요즘은 그런 내공 보다는 시각적 요소가 더 중요한 덕목이 되는 현실일테니 하염없이 지나는 세월과 속 없는 변화를 한탄할 뿐이겠지요.
답사의 줄거리를 잘 정리해 주셨으니 전주향교를 방문해 찍은 사진들을 앨범방에 올려 놓을 테니 참고하세요.
다시 보며 글을 고치자니 너무 직설적으로 썼네요! 아직 서예 기법에는 초보의 눈이라 그렇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서예는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여야 하는 예술이지만 분명 현대서예는 읽고 음미하기보단 보고 느끼게 하는 데 민간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예는 문자 조형미술이 되고 말았단 느낌인 거지요. 새로운 시도로는 한문 작품에 한글 서예를 함께 넣은 작품들을 선보인 김승민, 여태명 같은 이들의 시도가 눈에 들어왔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