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부의 의미
하나에서 백까지 수를 센다.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 목숨의 밧줄을 재어 올리듯, 최초에서 출발하여 최후를 성취하듯, 그런 심정으로 나는 가끔 수를 센다.
그러노라면 악보를 읽을 때 쉼표를 만나는 것처럼 나는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는 몇 번의 휴지부를 갖는다. 휴지부란 그치고 쉬라는 부호만은 아니다. 그것은 보다 사나운 소용돌이가 되기도 하며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격정을 한데 몰아다가 천근같은 침묵으로 용해하는 터질듯 팽만한 절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때로는 단조롭고 때로는 밋밋하게 싱거운 우리들의 생활에서 휴지부를 갖는다는 것은 커다란 구원이며 감격이 아닐 수 없다.
열일곱.
나는 우선 여기서 쉰다. 사분의사박자 한 소절을----.
그러면 내 숨결은 유연한 탄력을 회복하고 다음 음표의 발성에 강약의 음세와 기분을 산뜻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 열일곱이다.
이 나이에 나는 비로소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그들이 시키는 대로 어린 척하여 그들을 만족시켰다.
윤곽만을 갖춘 미왕성품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을 완성시킬 조각칼은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는 나를 소녀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소녀라는 말은 타인이 달아줘야 할 빨간 리본쯤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타인이 불러주는 소녀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야릇한 반발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처녀’라는 말은 더욱 싫었다. 그 어감이 무척 징그럽게 전달되어 왔다.
거울 앞에 서면 거울은 항상 비좁아서 나를 모두 비취지 못했다.
열일곱.
내가 여기서 맨 처음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은 그리움이다. 내가 열일곱이던 그때도 그랬었다. 무엇인지 누군지 모를 것이 그리웠다.
연습장에 가득 낙서를 하고 그림을 그렸었다. 제일 많이 그렸던 것은 꽃과 배(船)였다. 그림 속의 꽃들은 곧잘 하늘을 향해 얼굴을 치켜들고 꽃이 아닌 어떤 무엇으로 승화되어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
배는 이미 먼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우리들이 자라던 서해의 항구를 벗어나서, 새 대륙의 낙원을 찾아서.
그러나 우리들이 그린 배는 풍랑을 이길 만한 아무런 무장도 되어 있지 않았다. 풍랑 같은 것은 꿈에도 예상하지 않는 듯한 차림새였다.
그것은 군함같은 철갑선이 아니었다. 고기잡이 어선도 아니었다. 나그네를 태우고 옮겨가는 여객선도 아니었다. 돛단배. 평화로운 삼색의 이쁜 돛단배였다.
거기엔 즐거운 노래만 가득 실려 있는 듯했다. 이따금 갈매기가 끼룩끼룩 울며 지나가곤 하였다. 물빛은 초록으로 출렁거리고 하늘과 맞닿은 바다 끝에 구름이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뱃전에는 물결이 흰 옥인 양 부서지곤 했다. 해는 언제나 넉넉한 은총으로 금실을 늘이고 바람은 향기로웠다.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 속의 모든 것이 순탄하였다. 아무런 일이 없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났다. 무작정 외로웠다. 나를 올바로 이해해 줄만한 것은 하늘땅에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교실에서 내다보면 멀리 달리는 시외버스가 보였다. 그것이 문득 신작로에 정거하고 버스의 문이 사르르 열리며 누군가 한 사람이 내릴 것 같았다. 그가 나를 찾아 안개 같은 먼지 속을 손을 흔들며 달려올 것 같았다.
나는 기다렸다.
희망이니 이상이니 포부니 하는 말들은 기다림이란 말과 너무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우체부의 배부른 가죽 가방을 보면 가슴이 설레었다. 수 천리 창공을 날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갈피갈피 묻어 있는 보물의 창고처럼 나는 그 가방을 소중하고도 존귀하게 바라보곤 했다.
나는 밤마다 꿈을 꾸었다.
지평선에, 둥근 지구와 우주, 한 공간의 접합 점에, 일곱 필의 흰 말이 끄는 마차가 있었다. 끝도 없는 길을 그가 마차 위에 올라 앉아 달려오고 있었다. 자꾸만 자꾸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 꿈에 시달리거나 지치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거나 헛소리를 지르는 일은 더욱 없었다. 나는 과즙에 잠기듯 그 꿈에 잠겨 내 윤기를 찾았다. 마치 내 소망이 나를 키우듯 나는 꿈속에서 성장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밤마다 꿈을 꾸기를 기대했다. 꿈을 꾸지 못한 채 밝아오는 헛된 새벽을 나는 억울해 하였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물방앗간 초가지붕과 그 뒤쪽의 긴 둑길. 둑 위에 무성한 파란 잔디. 모내기 전의 이른 봄철 논바닥에 자욱한 자운영 꽃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꿈마다 그 긴 둑길을 걸었다.
사랑을 연습하며
꿈과 현실이 만나는 엄숙한 각성의 아침, 나의 창문은 몽롱하고 아련한 빛으로 채색되고, 나는 그 창문을 보면서 현실을 동행할 내 동무들을 생각했다.
나는 열일곱 무렵의 우정처럼, 우정이라고 우기는 사랑처럼 그토록 투명하고 절실한 감정의 몰입을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했다.
우정을 고백해 오던 내 동무의 깊은 눈. 떨려오던 그의 목소리. 우리가 손을 잡았을 때 땀에 젖어서 촉촉하던 손바닥의 감각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영원히, 영원히’라고 우리들은 약속하였다. 아무것도 겁내지 않고 손가락을 걸었다. ‘영원’이라는 말이 얼마나 멀고 엄청나며 서러운 말인지 우리는 몰랐다. ‘영원’이라는 말이 얼마나 막막하고 두려운 말인지도 우리는 몰랐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때 최초로 맹세의 죄를 지었던 것이다.
우리가 내걸었던 ‘영원’중에서 지금까지 그 생명이 지속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우습고 부끄럽다. 그리고 쓸쓸하다.
그러나 그때는 진실이었다.
파란만장한 우정의 질곡을 넘어 나는 결국 사랑을 연습하였다.
그 아픔과도 같은 감미로운 음악에 나를 버려두듯 맡기었다. 단 한 사람의 연인을 선택하듯 여러 명 중에서 나는 항상 한 두 사람의 동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 두 사람의 그들은 거대한 울타리처럼 나를 둘러싸서 수많은 다른 동무들을 만나볼 기회를 내게서 빼앗았다. 우리들은 소우주를 형성하고 비장한 출범이라도 하는 듯 한 자세를 취했었다. 우리는 만나서 무엇을 했던가. 똑같은 기항지를 향해 시선을 모으는 일이란 무엇이었던가.
숙제를 함께 하고 물건을 함께 고르고 얘기를 나누고 함께 짓까불고 그리고 다른 동무들의 흉도 보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래서 항상 미흡해 했었다. 우리들 머리 위로는 끊임없이 불편하고 우울한 기류가 맴돌고 있었다.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나를 터놓을 수 없었다. 내게는 제목이 없는 얘기가 너무도 많아서 그 실마리를 찾아 엉키지 않게 감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 얘기를 다하고 나면, 나는 필경 골도 빠지고 혼도 말라서 흐늘흐늘 지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해도 해도 다하지 못한 말이 여전한 분량으로 남아 쌓이고 그것이 나를 억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곤 했었다.
그때 우리들이 주고받은 말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공허한 것들이었다.
“난 히아신스가 좋아.”
“그건 너무 슬프지 않어? 꽃말이 뭔지 아니? ‘내 마음엔 슬픔만이 남아 있어.’야”
“난 슬픈 꽃이 좋아. 꽃이란 그 자체가 만족이니까. 난 만족 속에 스며 있는 슬픔을 택하겠어. 그것이 꽃을 아름답게 만든 핵심리라고 말하고 싶어.”
“난 안개꽃이 제일 좋아.”
“안개꽃? 어떻게 생겼는데.”
“몰라. 알 수 없어. 본 적이 없으니까. 이름이 좋아서 그래.”
“안개 같은 말이로구나.”
“아, 어서 4월이 왔으면 좋겠어. 만물을 얼음 속에서 끌어내어 지독한 소생을 유도하는 엘리엇의 4월.”
“너는 20년 후를 믿니?”
“글쎄. 우리는 지금 어차피 불확실한 세계에 살고 있지만 언제인가는 골격을 형성하겠지. 20년 후쯤. 나는 그때까지의 과정을 넘보지 않을 테야.”
우리는 하염없이 이런 종류의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누구나 가난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겹고 부끄럽지 않았다. 자랑스럽게 터놓고 떠들만한 것이라고 여긴 적은 없었지만.
우리들은 가난한 현실의 얘기를 되도록 피했다. 언젠가는 돌아오고야말 그날에 대하여 얘기하기를 즐거워하였다.
언젠가 그날.
키가 무릎쯤 닿는 낮은 판자 울타리를 세우자고 했었다. 거기에는 빨간 넝쿨장미나 하얀 찔레넝쿨을 올리자고 했었다. 울안에 깊은 우물이 있고 나는 두레박으로 얼음같이 찬 우물물을 길어 올려서 뜨거운 맨발 위에 퍼부을 것이다. 젊은 날의 회상으로 뜨거워진 내 발을 식힐 것이라고 했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짧은 가을 황혼에 나는 잎이 지는 등나무 밑 벤치에 앉아 있으리라고 했다. 오렌지색 털실을 무릎 위에 얹고서 뜨개질을 할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내내 기다릴 거라고 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특정한 사람도 아니고 세월 속의 한 부분도 아닐 것이며 목숨과 함께 지속되는 그리움 때문일 것이라고 하였다. 그 그리움 때문에 응시하는 끝 모를 미래라고 했다.
내 집으로 통하는, 양 옆에 하늘을 찌를 듯한 미루나무가 열병식을 하는 것처럼 늘어선 길엔 인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친구야. 네가 올 때는 흰 레이스의 모자를 쓰고 오너라.”라고 말했던가. 어쨌던가.
문을 닫아 건 겨울, 집안에서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먼 길까지 퍼져 나오면 그것은 그립던 친구를 한데 불러 모아 들였나보다 짐작해도 되리라고 했었다.
지금도 겨울날 사람들의 입김으로 유리창들이 질펀하고 물이 끓는 주전자의 뚜껑이 덜컹거 릴 때면 나는 우수에 젖는다. 몇 모금의 뜨거운 물을 삼키며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을 추억한다.
너무 오래 방채해 두었던 것들, 뽀얗게 먼지 낀 그 이름 위에 나는 참회하듯 손을 얹는다.
(이향아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