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상을 버리지 않는 이유’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너무 웃자라 불편하거나 쓸모가 없는 나무가 있을 경우 톱이나 칼로 잘라버리는 대신 온 부락민들이 모여 그 나무를 향해 크게 소리지른다고 한다. 예컨대 ‘너는 살 가치가 없어!’ ‘우린 널 사랑하지 않아.’ ‘차라리 죽어버려!’ 등 나무가 들어서 가슴 아파 할 말만 계속하면 시들시들 말라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말 한 마디가 이렇게 생명을 좌우할 만큼 폭력적일 수 있고, 오래 동안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렇지만 물론 육체적 가학이 언어적 학대보다 낫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인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은 ‘욕’일지도 모른다. 아주 옛날 원시인들이 모닥불 피워놓고 둘러앉아 환담하다가 어떤 이해 관계로 논쟁이 붙고, 누군가 화가 나서 상대를 곤봉으로 내리치려다 대신 욕 한 마디 하고 나서 분노를 삭혔다면, 그래서 그의 생명을 해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인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운명은 인간의 것이지만 생명은 신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뻬앗을 권리는 없고, 그 무슨 명분을 갖다 붙인다 해도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한 사람의 생명을 뻬앗는 것은 그의 꿈, 소망, 사랑을 송두리째 없애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네의 일기(the diary of Anne Frank 1947)’ 는 문자 그대로 안네 프랭크라는 열 세 살 난 유대인 소녀의 일기이자 전쟁의 참화를 가장 현실적이고, 감동적으로 전하는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6월 14일부터 2년여에 걸쳐 쓰여진 이 일기는 감수성 예민한 어린 소녀의 눈으로 전쟁의 비극을 묘사한다. 유태인 말살 정책을 편 히틀러를 피해 안네의 가족은 다른 두 가족과 함께 비밀 입구가 있는 은신처에서 은둔 생활을 한다. 언제 발각되어 수용소로 보내질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 다른 동거 가족들과 갈등, 안타깝게 기다리는 연합군 상륙 작전과 승전 소식, 함께 사는 또래 소년 페터에 대한 안네의 사랑과 꿈, 그리고 무엇보다 비참한 삶을 희망으로 바꾸어가려는 안네의 슬픈 의지가 경건한 감동을 준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 준 것일까요?’ 라고 자문하는 안네는 ‘만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 세상에 살아남는 일이 허락된다면 나는 꼭 이 세상을 위해, 인류를 위해 일하겠습니다.’ 라고 꿈을 밝힌다. 작가가 되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은 안네의 소망은 단지 일상의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 – 마음대로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젊음과 자유를 누리는 그런 삶이었다.
“가끔씩 나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곳으로 숨어 들어오지 말고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이 비참한 고통을 겪지 않고 우리를 보호해주는 사람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도 없겠지요.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을 거두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자연의 목소리를 잊지 않았고, 여전히 모든 일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 1일로 끝난다. 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안네는 자신의 이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내가 세상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인간은 결국 선하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란과 불행과 죽음 위에 내 희망을 쌓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계가 차츰 황폐해가는 것을 보고 수백 만의 고통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보면 언젠가는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이 잔악함도 결말이 나고, 또 다시 펑화와 고요가 돌아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이성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정말 그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니까요.”
그러나 결국 그날은 오지 않았다. 안네의 가족은 1944년 8월 4일 체포되고, 이듬해 3월 안네는 베르겐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는다.
말보다는 무기로, 타협보다는 대결로 끊임없이 전쟁을 일삼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에 안네의 이상은 너무나 크고 아름다웠다.
첫댓글 안네 프랑크는 처형당하여 죽은 것이 아니고 1945년 5월에 장티푸스로 수용소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게 그것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