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주일이 한 주간의 절정이듯, 주님 부활 대축일은 전례주년의 절정을 이룬다. 죽음과 악의 세력을 이겨 내신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큰 기쁨이고 희망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은 하느님의 권능과 주님 부활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날이다.
본기도
하느님,
오늘 외아드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저희가 주님의 부활 대축제를 지내며
성령의 힘으로 새로워지고 생명의 빛을 받아 부활하게 하소서.
제1독서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0,34ㄱ.37ㄴ-43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여러분은 37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3,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부속가
<오늘은 의무이고, 팔일 축제 동안에는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7
1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2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3 그들은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하고 서로 말하였다.
4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돌이었다.
5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6 젊은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7 그러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한 예수님 만나는 유일한 법: 갈릴래아로 가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면 부활을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먼저 부활이 내 안에 없으면 부활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개가 꽃이 예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개에게는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을 리도 없고 꽃을 보아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볼 수도 없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했던 일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머리숱이 적은 어머니가 처음 가발을 쓰신 것을 본 날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진짜 아줌마로 불렀습니다. 예상하지 못하면 알아볼 수 없습니다.
한 국제 육상 경기에서 선두에 한참 뒤진 채 꼴찌로 달리던 선수가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뚫고 끝까지 완주해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에 따르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2023 동남아시안게임 여자 5천m 경기에 출전한 캄보디아 대표 보우 삼낭(20) 선수는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기록은 1위에 6분 가까이 뒤진 22분 54초였습니다. 대부분 선수가 이미 결승선을 통과한 상태에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달렸습니다.
가난 때문인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스트레스 때문인지, 평소 빈혈에 시달려 온 이 선수는 경기 당일에도 코치가 출전을 만류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악천후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역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알려지면서 하루아침에 유명 스타가 됐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물론 경기를 포기할 권리가 있었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의무가 더 중요했고, 포기하지 않으면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끝까지 달렸습니다.”
삼낭 선수는 자기를 위해 달렸다기보다는 나라와 희망이 필요한 이를 위해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 달리기는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달렸습니다. 분명 피의 열매가 있을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믿는 이에게 부활한 분이 보입니다. 그녀에게 감동한 많은 이들이 그녀를 돕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부활한 이들입니다.
중학교 때 개신교 전도사 한 분이 우리에게 종교 교육을 해주었습니다. 그분은 한국에서 전교 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가지 않는 오지 나라로 가서 선교사로 죽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가야 해서 그 목적을 위해 몇 년 간 계속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젠 돈이 얼추 모여서 떠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은행으로 돈을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돈을 찾고 나올 때 소매치기들에게 몇 년 동안 모은 돈을 모두 털리고 만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위협할 때 그동안의 모든 꿈을 접어야 함에도 돈을 순순히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 오지로 선교를 떠나겠다면 돈을 전액 지원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웃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을 때만 부활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차인표 씨도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목소리라도 한번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성경 공부하고 예수님 역할의 연극도 4년을 했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순간은 갈릴래아로 가서였습니다.
신애라 씨 대신 인도 콜카타에 가난한 이를 위해 봉사해야 했을 때입니다. 그는 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고 비행기도 혼자 1등석을 타고 갔습니다. 도착 후 가난한 한 아이가 손을 내밀 때 그는 목사님이 부탁한대로 “하느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 너는 소중한 존재다.”라는 말을 해주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통해 차인표 씨에게 그 말을 들려 주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죽을 줄 아는 이는 이미 부활을 믿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움을 믿는 사람이 꽃을 발견하듯, 이미 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도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가난하고 냄새나는 사람에게 봉사하고 안아주려고 할 때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것과 같습니다.
만약 저도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지 않았다면 아직 사해쪽에서 헤매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책을 통해 내가 추구하던 것을 버리고 이웃을 행복하게 하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신학교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이 갈릴래아였고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너 내게 많이 주었니? 근데 나는 네게 다 주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웃 사랑의 실천 안에 계셨습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주님의 날인 주일이 한 주간의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오늘은 전례 주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과 악의 세력을 이겨내신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 역시 부활하리라는 큰 희망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 기쁨으로 오늘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강론을 시작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고 싶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불행을 함께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성공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일까요?”
불행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과 함께해 주는 것은 큰 위로와 힘이 됨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불행을 함께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성공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랫동안 일이 풀리지 않아 고생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은 힘들어하는 친구와 함께하면서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대박이 난 것입니다. 사업이 잘 풀리면서 경제적 여유와 안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변에 함께해 준 친구들보다 훨씬 더 잘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친구들이 그의 곁에서 떨어져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 친구가 돈 벌더니 변했어.”
친구들에게 고마워서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는 “너 돈 자랑하는 거니?” 하면서 인상을 쓰더라는 것입니다.
불행을 함께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기란 정말 힘듭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우월성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더 우월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시기와 질투가 작동하면서 함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행보다 성공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함께 기뻐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쁨에 함께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 할까요?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이날에 더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부활의 기쁨을 나의 이웃들에게도 알려야 하고, 진정으로 기뻐하는 삶을 스스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따로, 나 따로 삶을 살면 어떨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지, 내가 부활한 것인가?’라면서 자기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함께 기뻐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 기쁨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날입니다. 주님의 진정한 친구라면 말입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의 소명을 사랑하면 필시 세상도 사랑하게 된다(류시화).
사진설명: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