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IF 제2제국이 이런 식으로 서부전선 육.해군 총공세를 펼치면?" 올렸었는데, 달린 덧글 가운데 40%
가량이
"유틀란트? 그게 독일이 이긴거라 봐야 하나?"
"유틀란트 갖고 영국 못 이김"
이런 식의 댓글들이 많이 달려서 말입니다.... 일일히 다 덧답 달아 반박하는 것보다 차라리 새로운 게시글
하나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올립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면, 대체 왜 유틀란트 해전이 독일의 승리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교환비 보면 영국이 두배는 더 많은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영국도 그 해전에서 치명타를
입었으며, 당시 영국 해군 지휘관이였던 비티 제독이 '우리 배에 문제가 많은듯... 망할 ㅠㅠ' 이랬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유틀란트에서 수많은 영국 군함들을 침몰시키고도 자신감을 되찾지 못하고 항구에 쭈그려서 나올
생각을 안 했던 독일 해군도 문제가 많다는 건 인정한다만, 그렇다고 해서 왜 독일의 승리라고 보기 어렵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교환비 보면 진짜 로열네이비의 치욕이다 할 정도로 끔찍하게 털렸고, 훗날 2차대전 때의 말레이 해전을
제외하면 로열네이버 역사상 가장 참혹한 패배라고 해도 무방해 보이는데 어딜 봐서 독일의 승리라고 하기도
애매하다는 건지 궁금합니다.
고작 그 정도로 무너질 로열네이비가 아니라는 말씀들이신가요?
제가 볼 때에 독일 해군이 자신감을 되찾고 유틀란트 이후에 대양함대 전체를 다 영불해협에 출격시켰다면
뭐가 되더라도 됬을 것 같은데 말이죠. 2제국 함대가 마음먹고 유틀란트 이후에 모든 해군을 전부 출격.
기본적으로 항구 방어할 극소수의 배 제외하고 죄다 온갖 배들과 잠수정들을 영국 근처로 뿌려버렸다면
아무리 대영 제국이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첫댓글 해군 전체 전력차이를 어케 뒤집죠? 독일이 교환비 좋게 이겼다고 해도 독일이 피해를 1도 안입는건 아닌데요. 그렇기되면 전투라는 전술승리는 가져가도 전쟁이라는 전략패배가 예견된거죠. 이걸보고 지난글에서 사람들이 영국과 독일이 체급차이가 난다고 한겁니다.
독일의 목적인 봉쇄 해제가 실패했으니 패배죠
참.....ㅠㅠ 영국 해상 봉쇄 해제 실패는 공감합니다..... 근데 그것도 독일 지들 스스로 항구에만 안 처박혔어도 어찌해볼 도리가 있었는데 참 독일 해군도 멍청하지요.
유틀란트의 기세를 몰아 도주하는 영국 배들 끝까지 뒤쫓아서 죄다 수장시킨 다음, 적극적으로 독일 해군이 다 전멸되든 영국의 해상봉쇄를 풀든 한번 부딫혀 봤어야
하는데 말이죠.. 만약 유틀란트 해전 이후인 1916년 7~8월 즈음부터 적극적으로 독일이 전 해군을 다 영불해협이 부어버렸다면 영국 해상 봉쇄는 풀렸을 수도 있을 겁니다
@빅토르레즈노프 글쎄요 영국 해군력이 압도적 1위라 독일 단독으로 뭘 할 수가 없었을텐데요 그리고 해군 전부 꼴아박으면 연합군이 독일 북부로 상륙할지 누가 압니까
경악스럽네요. 부디 대체역사소설은 문화게시판에 올려주시길.
개인적으론 전술적인 부분에선 이겼지만 전략적인 목표달성에는 실패했기에 최종적으로는 졌다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ㅠㅠ 아......... 대양함대가 유틀란트 승리 이후, 전 해군을 다 출격만 시켰어도... 그렇게 되면 연합군이 동맹군을 이기기 훨씬 더 어려워졌을 겁니다.
@빅토르레즈노프 그래도 집니다
뭐 목표였던 게 실패해도 그 중간과정은 그럭저럭 빛나는 게 종종있죠.
(마켓가든이랄지)
At the end of the battle, the British had maintained their numerical superiority and had 23 dreadnoughts ready and four battlecruisers still able to fight, while the Germans had only 10 dreadnoughts.[126]?One month after the battle, the Grand Fleet was stronger than it had been before sailing to Jutland
영문위키에서 3분 만에 찾은 서술입니다.
애초에 질문 자체가 유틀란트 해전의 승패를 묻는 것인데 왜 유틀란트 해전 이후의 희망사항이 가득 담긴 시나리오를 if로 상정하는지 이해가 안가는군요.
그냥 단지 독일이 저렇게 했더라면, 독일 입장에서 더 좋고 승리할 가능성이 지들 딴엔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고 써본 겁니다..;;
@빅토르레즈노프 드레드노트 10척으로 23척을 격파하는 게 가당키나 할까요.
분명 처음에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이전 게시글에서 유틀란트 해전을 독일의 승리라 평가하지 않은 것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글을 쓰기에 앞서 종합적으로 유틀란트 해전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텐데, 전문서적은 커녕 인터넷을 3분만 검색하면 나오는 정보도 알려고 하지 않은 체로 현실과 동떨어진 가정이나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게 비난하신 지식인 게시글과 다를 게 뭡니까.
독일이 영국과 같은 클래스의 세계급 제국을 포기하고 지역강국급 강자로 돌아가려던 이유가 해군력에 있습니다. 이미 10년 이상 전부터 있어왔던 자기파괴적인 해군양성으로 세계 2위규모의 해군력을 얻긴 했지만 그래도 로열네이비와 격차가 심하게 났어요. 그 시기 영국이 자극받고 더 무리해서 함들을 만들기도 했으니 격차를 좁히는건 말그대로 무리였습니다.
유틀란트 해전을 승리했는데 왜 독일이 안나왔을까요? 그래도 영국은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그 병력으로 끝이예요. 아무리 그래도 대영제국이면 어쩔 수 있을것 같네요.
영국배가 더 많아서요. 이길가능성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이긴들 남은 프랑스해군은 어떻게 극복하려고요??
... 당시 프랑스는 해군이 약하지 않았나요? 2제국 해군과 비교불가일 정도로.... 아니 꼭 1머전 프랑스 해군이 아니더라도 프랑스가 해군이 쎘던 적이 없엇던 것 같은데요?
@이상엽 하기사 생각해보니 청년학파가 점령했던 시절이군요.
@클박클박 Mk.II 당통급, 꾸르베급, 브르타뉴급이죠. 그렇게 13척의 드레드노트를 만들게 되는거고요.
독일 대양함대 제독들은 빡머갈이라 현존함대 전략을 취했나보군여
저는 말씀하신대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명색이 세계 2위인데 참 안타까울 따름이죠.. 저는 대전 내내 대양함대가 적극적으로 운용되면서 영불해협 봉쇄를 시도했
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봅니다. 그래도 명색이 대영제국 라이벌인데...ㅜㅜ
@빅토르레즈노프 독일에게 영국은 라이벌이지만 영국에게 독일은 감히 같은 급에 오르려고 하는 건방진 놈 수준입니다. 고작 영국 절반도 안되는 해군력을 유지하는것도 고통스럽던 독일인데요. 그 이상 해군력을 올렸으면 대전 이전에 독일이 망했고, 그 함대로 영불해협으로 치고 가면 한순간에 전부 잃고 훨씬 일찍 망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요. 하긴 이후 독일 입장에선 그게 나을수도 있겠네요. 졌다는걸 깨끗이 인정할테니 히틀러가 권력 잡기도 쉽지 않겠고, 세계평화가 좀더 오래갈수 있을지도요.
자신감을 되찾지 못하고 항구에 쭈그려서 나올
생각을 안 했던 독일 해군도 문제가 많다는 건 인정한다만, <-- 이런걸 보고 보통 교전의지 상실이라고 하죠. 각국 군대의 작전목표에 빠지지않는 바로 그거 말이죠.
승리란게 전술적 승리와 전략적 승리란것으로 나뉘는데 관점차이죠.
전투 하나가 전쟁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예외는 있지만(그리고 많지만) 유틀란트는 전쟁을 바꿀만한 전투는 아니였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만약 거함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면 독일 해군이 괴멸되엇을 수도 잇었던건가요?
그 교환비로 계속 교환해도 영프가 이겨요... 게다가 넓은 바다에서는 유틀란트와는 달리 진짜로 쪽수가 유의미해져서 훨씬 나쁜 교환비가 나올테구요.
어떻게 1차대전 끝난지 10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프로이센식 교환비 뽕에 취해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 참...
제가 되게 좋아하는 구절인데, 어디서 봤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전국책이나 사기열전이겠죠.
노가 제와 세번 싸워 세번 이기니, 노의 국력이 크게 쇠퇴해 노나라 성벽이 무너지면 제나라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흉노도 그랬다죠. 한과의 전쟁으로 인구100만중 20만이 죽었지만 신기하게 이기긴 했죠. 결국은 망 ㅋ
@HESSE KINGDOM 흉노는 다른 케이스 아닌가요? 묵특때 이미 한에게 조공을 받겠다는 약조를 얻어서 목적을 달성했고, 한무제 이전까지 잘나갔습니다. 한무제가 곽거병와 위청 이광을 앞세워서 흉노를 결국 몰아냈지만 결국 한도 문경때의 돈을 잃고 골골거리게 되죠. 엄연히 흉노는 밑의 한에게 공격받은 상태였고 싸우지 않는다면 그간의 체제가 무너지는 상황이었습니다. 한이라면 맞을 수도 있겠네요. 안싸우고 번영을 누리던걸 싸워서 이전보다 약화시켰으니.
@검은모자 문제 경제 시절 흉노의 세력권이 만리장성 이남으로 깊숙히 내려왔던지라 그건 좀 아니죠. 한무제가 각잡고 흉노와 맞짱뜨지 않았으면 얼마안가 하북이 흉노 손으로 자연스겁게 굴러떨어질 수도 있었고 그건 곧 한왕조의 멸망을 뜻합니다.
@bookmark 그럼 한도 싸울 이유가 충분했군요. 새로운 걸 알아갑니다.
유틀란트 해전은 영-독 전초부대의 교전일 뿐이죠. 영국 대함대가 접근한다는 사실을 알자 독일 대양함대는 그냥 후퇴해버립니다.
독일의 전술적 승리이지만 전략적으로는 패배죠.
이런건 그냥 키건을 참고하는 것만으로도 답이 나올겁나다.
전쟁 발발 직전 영국과 독일 해군 함대의 총 톤수 비는 2.1 대 1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빌헬름 2세가 98년에 함대법 제정하고 미친듯이 뽑은 덕에 좁혀진 게 저정도입니다. 더구나 독일과 근소한 차이로 해군력 3위인 프랑스도 연합국이니;;;; 유틀란트의 교환비로 계속 교환해도 진다는 말은 절대 허언이 아닙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서 이런일이 있음 안되겠지만 남중국해에서 미해군이랑 중궈랑 교전이 일어나서 중궈항모한척 미해군은 두척잃었다고 해서 중국이 이겼다고 보나요?
히퍼의 순양함대가 순양전함5척, 경순양함5척, 구축함30척 쉐어의 외양함대가 전함이 16척, 드레드노트 이전 구형전함 6척, 경순양함 6척, 구축함 31척입니다. 비티의 함대는 전함4척, 순양전함 6척, 수상기모함 1척, 경순양함 14척, 구축함27척에 본토 대함대는 전함 24척, 순양전함3척, 장갑순양함 8척, 경순양함 12척, 구축함 50척, 기뢰부설함 1척이었습니다. 주력함 비율이 1.8배입니다만.. 그리고 침몰 주력함은 영국 순양전함2척 장갑순양함1척 독일 순양전함 1척입니다.
그나마 침몰한 순양전함은 비티제독 휘하였고요. 본토 대함대에서는 장갑순양함 1척 침몰입니다. 그리고 근접하기전에 외양함대가 튄겁니다. 1차대전에서도 영국해군은 독일해군 암호체계를 털고 있었고, 무선감청등으로 독일해군의 계획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역 이용하기위해 계획을 꾸민게 유틀란트 해전입니다. 뭐 작전계획대로 된건 아니었습니다만..
@루드비히 베크 그렇군요... 그렇다면 설사 제 말대로 독일 해군이 전 함대 출격! 이러면서 대양함대 전체를 이용하여 브리튼섬 봉쇄계획을 짠다해도 영국은 다 알아내고 대비를
하겠군요;;
@빅토르레즈노프 참고로 영국이 저 당시 취하던 해군 정책이 2국 표준입니다. '1위의 해군력을 유지하면서 2,3위의 해군국이 연합해도 우리가 숫자 톤수에서 우위를 점하자.'는 정책이거든요. 독일이 함대법발효시키고 건조하기 시작하자 영국도 덩달아 더 빠르게 건조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유틀란드 해전 당시 영국과 독일의 전력비입니다. 주력함의 1.8배 우위에 총톤수는 1.9배의 우위
이 숫자에서 독일은 이미 망입니다.
...유틀란트 해전은 독일이 먼저 선제 스트레이트를 갈긴 다음 영국이 각잡고 두들겨패기 전에 재빨리 튄데 불과한데요.
독일해군이 철수를 결정하기 직전 영국해군이 어설프게나마 T자의 머리를 잡고 있었고, 그대로 전투를 이어갔으면 독일 대양해군은 완파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당장 그 혼란 속에서도 T자의 머리를 잡아내던 영국해군의 숙련도를 생각하면 동수로 싸워도 독일 대양해군이 최종적으로는 박살날 기센데 주력함 비율도 영국해군이 더 많죠. 이걸 이긴다?....
읽은지 오래됬긴 하지만 제 기억이 맞다면 존 키건의 1차대전사에 그 답이 정확히 나와있을겁니다. 윗분들의 말들도 모두 맞긴 하지만 글쓴분 께서 헷갈리시고 있는 두가지는 유틀란트해전의 결과와 그 이후의 독일 해군의 행동입니다.
첫번째로 유틀란트에서 피해는 영국이 컸지만 독일함대 또한 피해를 입었다는거죠.
함대의 수가 압도적인 영국과 반대로 독일은 유틀란트의 피해를 복구하기 전까지는 함대운용자체가 불가능이었다는 겁니다.
두번째는 유틀란트해전 이후로 독일함대가 방콕했다는 건데 키건옹에 따르면 유틀란트 이후로 독일해군이 전면적 충돌을 피했을 뿐 그 이후로도 출격자체를 멈춘건 아니었다 합니다.
정리하면 기존 통념의 방콕하다 싸다귀날리고 돌아간 독일해군과는 달리 유틀란트에서 전략적패배를 당한 독일해군이 전투의지 상실(정확히는 예비전력 부재로 인해 함대보존을 중시함)로 전면적 충돌을 피하고 산발적 저항에 집중, 결국 열세인 전력을 극복못하고 시망. 이런 느낌이기에 유틀란트 이후 독일함대가 전쟁의 향방과는 상관없다고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