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서대전역 수요”를 운운하던 국토부가 서대전역뿐 아니라 계룡역, 논산역에까지 재래선 KTX 운행을 남겨두면서 ‘공주역 유령역화(化)’란 새로운 문제가 떠올랐다. 호남고속철 고속선로상에 신설된 공주역 자체가 논산, 계룡의 수요를 포함한 것을 전제로 건설됐기 때문이다. 공주역이 공주, 논산, 계룡, 부여 4개 시·군의 한가운데 지점에 들어선 까닭도 4개 시군의 철도 이용 수요를 한데 끌어모으기 위해서였다. 국토교통부 철도건설과는 “2006년 8월 정해진 호남KTX의 공주역 위치는 공주, 부여, 논산, 계룡 등 공주권 4개 인접도시의 균형적인 접근성, 열차운영 효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국토부의 새 운행계획에 따라, 논산역과 계룡역에 KTX가 계속 투입되면 현지 승객들이 굳이 KTX를 타러 공주역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어진다. 코레일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논산역과 계룡역은 각각 148만명, 61만명이 이용했다. 자연히 공주·논산·계룡·부여 등 4개 시·군의 수요를 합산해 예측한 공주역의 이용 수요 역시 반토막나는 것이 불가피하다.
공주역 잠재이용인구로 설정된 공주(11만), 논산(13만), 부여(7만), 계룡(4만)을 다 합쳐도 35만명에 불과하다. 인근 청양(3만)까지 끌어모아도 38만명이다. 지방의 어지간한 중소도시에도 못 미친다. 신설역의 조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4개 시·군을 합한 것을 전제로 한국철도시설공단(KR)이 예측하는 공주역의 오는 2025년 일평균 수송수요는 2219명. 이마저도 비슷한 규모의 전북 정읍역(4024명)의 절반에 불과하다. 호남고속철 선상에 있는 익산역(1만8300명), 광주송정역(1만2875명), 오송역(2만2970명)에 비해서는 크게 못 미친다. KTX역이 계속 존치되는 논산과 계룡을 떼고, 공주와 부여를 합친 숫자는 18만명. 오는 4월 호남고속철 개통과 동시에 ‘유령역’으로 전락할 확률이 거의 100%다. 공주역은 역사 건설에만 185억원이 들어갔다.
‘공주역 유령역화’는 국토교통부에서도 염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공주시(시장 오시덕) 전략사업과 관계자에 따르면, 고용석 국토교통부 철도건설과장은 지난 1월 30일 공주시에서 열린 ‘공주역 활성화 대책회의’에서 “호남고속철 KTX 68회 중 34회를 공주역에 정차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날 회의에는 공주 지역구 박수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 차경수 코레일 관광사업단장이 참석했다.
이에 철도계 일각에서는 “국토부 차관이 고향역(논산역)을 살리기 위해 공주역을 버렸다”는 얘기를 한다. 논산은 호남고속철 운행계획의 사실상 최종결정권자인 국토교통부 제2차관(교통차관)의 고향이다. 국토부 서승환 장관은 주택·부동산 전문가로, 교통정책은 제2차관이 사실상 총괄한다. 충남 논산 출신인 제2차관은 대전고를 나왔다. 제2차관은 향후 지역 국회의원 선거 출마가 거론되는 유력 인사다.
“국토부에서 서대전역 경유 운운한 것도 실제로는 논산역을 염두에 둔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국토부와 코레일이 주장하는 ‘서대전역’ 수요 때문이라면 KTX를 서대전역까지 내려보낸 뒤 서대전에서 회차시키는 방안도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서대전역은 2014년 기준으로 일평균 4995명이 이용했다. 서대전역(대전 중구)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경부고속철도 대전역(대전 동구)은 이미 포화상태다. 대전역의 경우 일평균 수용능력이 4만2871명인데, 4만6819명이 이용 중이다. 적정 수용인원을 3948명이나 초과한 상태다. 또 세종시 출범 이후 공무원들이 KTX 좌석을 입도선매하면서 경부선 KTX 이용률은 2014년 기준 103%로 좌석 여유가 거의 없다. 경부고속철 대전역은 오는 2016년을 목표로 증축을 추진 중이다.
그렇다면 남는 KTX 고속열차들을 포화상태인 경부고속철 등으로 돌려 좌석난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굳이 선형 자체가 극도로 불량해 KTX가 제 속도를 못 내는 서대전~계룡~논산~익산 재래선 구간에 투입해 45분이나 더 묶어둘 필요가 없다. 서대전에서 익산역까지 총연장 82.2㎞ 중 46.6%인 38.8㎞가 곡선반경 1200m 이하 구간이다. 곡선반경이 400m에 불과한 급곡선도 무려 4.7㎞에 달한다. 지금도 호남선·전라선 KTX는 차륜(열차바퀴) 손상은 물론 여름철 선로가 늘어져 탈선(脫線) 위험까지 안고 있는 이 구간을 매일 통과 중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호남고속철 차량 구입비로는 7360억원이 들어갔다.
호남고속철 개통 초기부터 신설 공주역이 유령역으로 직행할 경우 추가 시설투자도 요원해진다. ‘승객저조-편수감소-투자감소-승객저조’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공주시와 논산시 경계인 공주시 이인면 신영리에 있는 신설 공주역은 지금도 진입도로가 왕복 2차선 농로(農路)에 불과하다. 선형도 구불구불해 좀처럼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국토교통부 철도건설과는 “KTX 공주역은 이용에 다소 불리한 측면이 있으나, 정부와 관련기관 및 지자체 합동으로 호남KTX 개통 후 공주역 이용객의 불편이 최소화되도록 연계교통망 구축 등의 대책을 추진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에 “공주역이 제2의 광명역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광명역은 당초 ‘남서울역’이란 이름의 KTX 시종착역으로 계획됐다. 하지만 시종착역이 용산역·서울역으로 오락가락 바뀌는 통에 사실상 유령역으로 전락했다. 엄청난 덩치에도 불구하고, KTX도 드문드문 정차하고 이용객도 얼마 안 돼 ‘세계 최대 유령역’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고속철 운영주체인 코레일마저 광명역 관리에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지난 2005년 이철 당시 코레일 사장은 “광명역 건설에 4000억원이 들어갔는데, 연간 운영적자만 420억원에 달한다”라며 광명역 관리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코레일도 광명역을 살리기 위해 KTX 운행시간을 조정하면서까지 ‘셔틀전철’을 투입하는 등 골머리를 앓았다. 더욱이 광명역은 주변 영등포역, 수원역에까지 KTX가 정차하면서 수요가 분산돼 회생에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코레일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광명역의 전체 이용객은 724만명으로 수원(1324만명), 영등포역(1065만명)에 한참 못 미친다.
그나마 개통한 지 10여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외국계 쇼핑몰인 코스트코(2012), 이케아(2014)를 비롯 롯데아울렛(2014) 등 대형 쇼핑몰들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점점 살아나는 조짐이다. 물론 당초 기대수요에는 여전히 미달이다. 국토교통부의 오락가락하는 교통행정은 지주들과 건설업자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5년 국토교통부의 철도 예산은 정부안(7조3026억원)보다 1025억원 증가된 7조4051억원으로 확정됐다. 이는 지난 2014년(6조8032억원)보다 6019억원이나 늘어난 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