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물
정 인자
녀석이 죽고 나서야 이름도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6개월을 한집에 살았는데 이름이라도 알아두는 게 사람으로서 취할 옳은 태도인 것 같았다.
녀석과 처음 연을 맺은 것은 인근 백화점에서였다. 어린이날 사은품 행사로 고객들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선물한다고 했다. 손주들 생각이 나서 날름 받아들고 왔다.
들고 올 땐 의당 금붕어려니 했었다. 생김새가 열대어 같긴 한데 지금까지 흔히 보아왔던 그 화려한 열대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새끼손가락만큼 작은 몸뚱아리가 먹물 뒤집어쓴 듯 온통 새까맣다. 물고기가 까만색이란 게 이렇게 싫을 수가! 눈 코 입이 어디 붙었는지 분별도 잘 안 된다. 그렇다고 되돌려줄 수도 없는 일. 작은 유리항아리에 물을 붓고 조약돌 몇 개를 깔아주었다. 에어 펌프(산소 공급 장치)가 없으니 제까진 게 살면 얼마나 오래 살겠는가. 그렇더라도 배 곯렸단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먹이를 구하러 수족관 파는 가게엘 들렸다. 울긋불긋 온갖 모양새의 물고기가 수족관마다 넘실거린다. 그 한쪽 곁에 우리 집과 같은 어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신기하게도 우리 집과 똑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질 않은가. 더욱 의아한 건 역시 외톨이로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네, 저건요, 저렇게도 잘 살아요. 물어뜯고 싸우는 습성이 있어서 다른 물고기와 같이 놓아두면 안되구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백화점에서 왜 딱 한 마리의 그런 물고기를 주었는지. 에어 펌프를 달아줄 필요가 없다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꼼짝없이 오래 키우겠구나 싶었다. 못생긴 게 성깔까지 쌈닭 같아 혼자 살아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이라니! 그러고도 종족보존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름 물어볼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짐작했던 대로 녀석은 손주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손주들은 떠오르는 녀석의 주둥이를 손가락으로 쿡 찔러보거나 먹이 몇 번 뿌려주면 그걸로 끝이었다.
녀석은 오로지 우리 부부 차지가 되었다. 활짝 핀 호접난 곁에 두었으니 거실 소파에 앉으면 싫든 좋든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녀석은 먹이를 잽싸게 낚아채기도 하고, 윤무 하듯 획획 돌기도 하다가, 슬그머니 제 몸체를 몇 배 부풀려 유리항아리에 투영시키는 유령놀음을 즐기기도 한다. 처음 얼마동안은 그런대로 심심찮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미동도 하지 않은 꽃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질 않는데 녀석의 행동거지는 갈수록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허구한 날 비좁은 공간에서, 그것도 혼자 외롭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녀석의 행태가 야릇한 비애감을 안겨주었다. 도대체 녀석은 무슨 재미로 사는 걸까. 하고많은 생물체 중에 하필이면 왜 물고기로 태어났을까. 녀석의 존재에 물음표가 붙으면 환생과 업보, 천국과 지옥을 말하는 종교문제로까지 비약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질 때도 있었다. 녀석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던 탓일까. 어느 날 문득, 창조주가 내려다보고 계시다면 녀석의 행태나, 쓸데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죽이는 나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깨달음이 왔다. 소파에서 뭉그적거리는 안락함이 나태와 무능이라는 자책으로 이어질 땐 참기 힘들 정도로 괴롭다. 그럴 때 녀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기회가 와 준 것은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열흘 이상 집을 비워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녀석을 어찌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목욕탕 욕조에 물을 반쯤 채우고 제 집을 넣어준 후 먹이를 잔뜩 뿌려주었다. 녀석에게 베푸는 나의 마지막 자비심이었다. 제아무리 특출한 생명력을 타고 났다 하더라도 먹이와 물갈이를 제때에 해주지 않는다면 녀석이 무슨 수로 버틸 것인가.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녀석은 태평양 만난 듯 욕조를 맘껏 누비고 있질 않는가. 녀석이 별 볼일 없는 생을 자연스레 마감해주었으면 했지만, 그 생명력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늘 혼자인 것도 모자라 빈 집에 버려지듯 했는데 그 외로움을 이겨낸 극기력 또한 놀라웠다. 불현듯 시골에 계신 친정아버지가 떠오른 건 녀석이 아버지의 인내심을 쌍둥이처럼 닮아서였을까. 아버진 올해로 아흔 셋이 되셨다. 짝 잃은 외기러기로 산지 어느덧 10년. 아버진 새벽이면 뒷동산에 올라 흙이 되어도 한참 되었을 부모님, 아내(친정어머니)를 불러본 후 하루를 시작하신다고 하셨다. 애지중지 키웠던 자식들보다 그분들이 심적으로 더 큰 힘이 되었던 것일까. 그 메아리가 환청으로 귓불을 적실 때면 내 등이 다 시려오는데도 아버진 언제나 인생예찬론자이셨다. 뒤늦게 터득한 살림 솜씨는 또 얼마나 알뜰하던지…. 강인한 잡초 같으면서도, 그냥 내버려두어도 저 혼자 잘 노는 순한 어린 양 같은 녀석에게 처음으로 연민의 정이 뭉클 솟았다.
녀석은 그 후 넉 달을 더 살았다. 그 대단한 생명력으로 그렇게밖에 살지 못한 건 사육에 서투른 우리의 무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료가 맛없어 보인다며 별식으로 부드러운 생선살을 발라 주곤 했는데 그게 명 재촉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녀석의 마지막 가는 길은 사람이 운명하는 모습과 흡사했다. 녀석이 폐로 호흡을 하기 때문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지만. 마지막 삼일은 물위에 뜨지도 못하고 눈 뻔히 뜬 채 돌 틈에 누워 숨만 헐떡거렸다. 한시라도 그 고통을 덜어줄까도 싶었지만 차마 어쩌진 못했다.
수족관 옆의 그 자리엔 전과 다름없이 같은 어종의 물고기가 외톨이로 살고 있었다.
“아줌마! 이 물고기 이름이 뭐예요?”
“베타예요, 베타….”
생각보다 이름이 예뻤다. 집에 돌아와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졌는데 이게 웬일인가. 무지개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총 천연색의 물고기들. 마치 호화로운 샹들리에 불빛을 보는 듯하다. 베타는 투어(싸움하는 물고기)하는 물고기로 유명하나, 그 화려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직접 폐로 호흡을 하기 때문에 수질 수온이 적당하면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고 쓰여 있었다. 베타는 귀족출신의 어떤 무사였을까. 감히 검은색의 세련됨을 몰라보고 괄시를 했었구나 싶었다. 베타가 주었던 묵시(黙示)의 메시지를 떠올려 본다. 사람으로 태어난 그 목숨의 가치와 자유에 대해서…. 그리고 아버지 생각을 참 많이 하게 했던 녀석이다. 햇살이 한층 부드럽고 깊어졌다. 비스듬히 누운 햇살이 베타가 외롭게 살았던 자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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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 협회 회원, 대표에세이 회원, 남도수필 회원
저서- 해돋는 아침이 좋다
첫댓글 베타는 투어(싸움하는 물고기)하는 물고기로 유명하나, 그 화려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직접 폐로 호흡을 하기 때문에 수질 수온이 적당하면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고 쓰여 있었다. 베타는 귀족출신의 어떤 무사였을까. 감히 검은색의 세련됨을 몰라보고 괄시를 했었구나 싶었다. 베타가 주었던 묵시(黙示)의 메시지를 떠올려 본다. 사람으로 태어난 그 목숨의 가치와 자유에 대해서…. 그리고 아버지 생각을 참 많이 하게 했던 녀석이다. 햇살이 한층 부드럽고 깊어졌다. 비스듬히 누운 햇살이 베타가 외롭게 살았던 자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베타는 귀족출신의 어떤 무사였을까. 감히 검은색의 세련됨을 몰라보고 괄시를 했었구나 싶었다. 베타가 주었던 묵시(黙示)의 메시지를 떠올려 본다. 사람으로 태어난 그 목숨의 가치와 자유에 대해서…. 그리고 아버지 생각을 참 많이 하게 했던 녀석이다. 햇살이 한층 부드럽고 깊어졌다. 비스듬히 누운 햇살이 베타가 외롭게 살았던 자리를 어루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