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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살로니키전서 4:13-18, 마태복음 25:1-13
테살로니키전서 4장 13-14절에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파울이 다루고 있는 새로운 주제는 “잠자는 자들”에 관해서입니다. 오늘날 사람이 죽은 것을 말하는 때에 “돌아가다”, “떠나다”를 쓰듯이, 고대세계에서도 죽은 것의 완곡어법으로 “잠자다”는 동사를 썼습니다. 테살로니키 크리스천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슬퍼하였던 것입니다.1)
신자들이 죽은 자들에 관하여 슬퍼하지 않아야 되는 이유가 나오는데, 파울은 그 이유를 “이는”(For)이라는 접속사로 언급합니다(살전 4:14). 한국어 성경은 14절과 15절 처음에 “이는”이라는 접속사를 생략합니다.
이는 만일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일어나신 것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도 잠자는 자들을 함께 데리고 오실 것임입니다(살전 4:14).
파울은 크리스천의 소망에 대한 2가지 근거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14절은 ‘첫 번째 이유’며, 15절은 ‘두 번째 이유’입니다. 첫 번째 근거는 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2)
이는 만일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일어나신 것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도 잠자는 자들을 함께 데리고 오실 것임입니다(살전 4:14).
예수님의 부활이 신자들의 부활의 보증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전체 교회가 단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신자들의 부활을 보증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죽은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백성의 부활을 확증하는 표시인 것입니다. 테살로니키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신앙고백을 믿으므로 예수님의 오심과 관련된 사건에 참여하게 될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3)
1. 재림의 때에 우리는 공중 안으로 집어 올려질 것입니다.
테살로니키전서 4장 15-17절에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은 15절 후반부가 아니라 16-17절로 볼 수 있습니다. 파울은 주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나 정확하게 인용하는 것은 아닌데, 공관 전승의 구절들을 느슨하게 언급하는 파울의 습관과 일치합니다.4)
주(Lord)께서 대천사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로 하늘부터 내려오시고 크리스트 안에 그 죽은 자들(dead)이 먼저 일어날 것입니다(살전 4:16).
주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호령하실 것입니다. 주 예수 크리스트께서 하늘에서부터 내려오시는 것이 첫 번째 단계며, 크리스트 안에 죽은 자들이 일어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5) 살아남은 신자들이 변화되기 전에 죽은 신자들이 부활할 것입니다.6)
우리도 구름들 안에 주(主)의 만남을 향하여 공중에 집어 올림을 받고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살전 4:17).
여기 “집어 올리다(catch up)”라고 번역한 단어(하르파조)는 “잡아채다”, “잡아채 가다”, “데려가다”, “이끌어 가다” 등을 의미합니다. 재림 때에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에 의해 공중으로 집어 올려질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휴거”라고 말합니다.
“휴거”는 “유괴”, “납치”를 의미하는 영어 “rapture”의 번역한 것으로, 영어 “rapture”는 영어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말입니다. 영어 “rapture”는 라틴어 성경의 번역을 가져온 것입니다.7)
“끌고 들다”라는 의미의 “휴거”라는 우리말 번역은 번역으로만 본다면 성경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끌어올리다”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휴거”라는 말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휴거”라는 말에 들어 있는 뜻이 공중 안으로 끌어올림을 받는 시점과 방법과 관련해 논쟁점이 있습니다.
클라렌스 라킨(Clarence Larkin, 1850~1924)이라는 사람이 기록한 『세대적 진리』(Dispensational Truth)라는 책은 여러 시대들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밝히겠다는 책입니다. 그는 세대주의자입니다.
클라렌스 라킨은 휴거와 재림의 시기를 구분하였습니다. 둘 사이에는 안티크리스트가 통치하는 7년이 있다고 합니다(단 7:19-27, 8:23-25). 그는 재림이 휴거와 재림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휴거되지 못한 사람들은 땅에서 7년 동안 환난을 당한다고 합니다.8)
2. 휴거는 세상의 끝이며 불신자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 “온 지구 위에 곧 오려고 하는 시험의 때에서 너를 지킬(keep)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에는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고 번역되었는데 원어에는 “면하게”라는 말이 없습니다.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은 7년 환난이 오기 전에 신자들이 휴거되어 환난을 면할 것이라 주장하나, 원어 성경에는 “시험의 때에서 너를 지킬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무엇을 뜻합니까? 신자들이 “시험의 때”를 피하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시험의 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지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테살로니키전서 4장은 부활과 휴거를 같은 시간상에 놓고 말씀하는데 크리스트께서 재림하실 때에 크리스트 안에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그의 재림의 날까지 살아남아 있는 신자들은 공중으로 휴거될 것입니다.
나팔 안에 재림과 휴거가 있게 됩니다. 나팔은 조용히 불지 못합니다. 나팔을 부는 것은 재림과 부활과 휴거가 공개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 영(靈)으로 재림하셨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가짜며 가짜는 자기가 재림 예수라고 말하려고 비공개적인 재림을 주장합니다.
휴거 후에 예수 크리스트께서 재림하신다는 세대주의자들도 틀렸는데 테살로니키전서 4장 15-17절에 언급하고 있는 동사들의 순서를 자세히 보십시오! 내려오시고(재림), 일어나고(부활), 집어 올림 받는(휴거), 재림→부활→휴거의 순서입니다. 그리고 재림, 부활, 휴거는 모두 한순간에 일어나는 사건들입니다!
3.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과 같이 준비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절에 “그때에 그 천국은 열 처녀들에 비교함을 받으니 자신들의 램프들을 취한 그녀들이 그 신랑의 만남 안으로 나갔으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 명의 여자들은 “처녀”들이었고 그녀들은 “램프”들을 취하였습니다. 그녀들은 크리스트께서 신랑이신 사실을 신앙고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참 신자들과 무늬만 신자인 자들도 겉모양은 비슷하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서부터 다섯은 어리석었고 다섯은 슬기로웠으니(wise). 그 어리석은 여자들은 그 자신과 함께 올리브유를 취하지 아니하였으나. 그 슬기로운 여자들은 램프와 함께 그릇 안에 올리브유를 취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주여, 주여”라고 부르나 행함의 열매가 없습니다. 그녀들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에 등록된 교인들입니다. 종교성이 있으며 종교적이지만 그들의 눈은 온통 세상에 쏠려 있습니다. 믿으면 복 받는다니까 이 땅 위에서 복을 받기 위해 믿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불신자들이 우상들에게 복을 비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맘몬”을 섬기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이라고 스스로 속고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졌지만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믿음이 있고 구원 받았다는 구원의 확신이 있으니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다’고 믿으며 신랑을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그들에게 ‘구원의 날’이 아닌 ‘심판의 날’이 되는데 나는 참 거듭난 사람인지 확인하고 성령의 올리브유를 갖추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5절에 “모든 여자들이 꾸벅꾸벅 졸았고 잠잤으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름을 취하였어도 꾸벅꾸벅 졸고 잠자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아들이 믿음을 발견하시기가 쉽지 않으실 것입니다(룩 18:8). 크리스트의 재림에 대비하여 깨어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랑의 만남 안으로 나오라’는 외침이 생겨났습니다(마 25:6).
저 모든 그 처녀들이 일어났고 그 램프들을 배열하였습니다(마 25:7).
그러나 그 어리석은 여자들이 그 슬기로운 여자들을 향해 말하였기를, “너희는 우리에게 너희의 그 올리브기름에서 달라(Give us of your oil), 우리의 램프들이 끔을 받는 것 때문이라.”라고 하였습니다(마 25:8).
그 슬기로운 여자들이 말하기를 “그것이 결코 충분하지 아니하지 않게 너희는 오히려 그 파는 자들을 향하여 가고 너희 자신들에게 사라.”라고 하였습니다(마 25:9).
어리석은 처녀들이 사기 위하여 가버린 순간에 그 신랑이 왔기 때문에 그 준비하고 있는 여자들은 신랑과 함께 그 결혼식들 안으로 들어갔으며 그 문이 닫혔습니다(마 25:10).
문이 닫힌 것은 최후 심판 때의 마지막 분리를 뜻합니다(룩 13:25).9)
그 후 또한 그 남은 처녀들도 와서 열어 달라고 하였습니다(마 25:11).
신랑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대답하였습니다(마 25:12).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처럼 아무리 예수 크리스트를 “주”로 고백해도, 자기가 이익을 얻기 위한 자기중심적인 신앙고백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에게 “너희를 모르노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마 25:13).
우리는 우리의 영혼의 문제를 부지런히 지켜보아야 합니다.10) 신랑이 언제 올지 알 수 없기에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11) 도적이 어떤 시점에 올지 모르니 뚫리지 않으려면 준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추정하지 아니하는 시점에 이렇게 그 사람의 아들도 오기 때문에 우리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마 24:44). 준비하고 있는 여자들은 신랑과 함께 그 결혼식들 안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며 준비하여야만 합니다(마 25:10-13).
올리브기름은 성령으로 해석될 수 있고 행위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결과론적으로는 같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 올리브기름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삶으로서 행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준비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재림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준비를 나중으로 미루어서는 안 되고 지금 준비하여야 합니다. 슬기로운 자들은 할 수 있는 한 힘을 다해 재림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결혼 잔치에 참여함으로써 보상을 받습니다.12) 우리가 준비하고 있을 올리브기름은 곧 성화 안으로 우리의 열매입니다.
이전과 달리 그 죄에서 해방되었으나 그 하나님께 노예로 만듦을 받은 우리는 성화 안으로 우리의 열매를 가지는데 끝은 영생입니다(롬 6:22).
이것은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이며 우리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동사는 과거 수동태니, 과거에 우리에게 행해진 일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아니합니다. 신자들은 영원히 죄의 지배와 통치에서 벗어난 자들입니다. 신자들은 죄에서 해방되었으므로 죄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13)
크리스트께서 우리를 자유에 해방시키셨습니다(갈 5:1). 우리는 서고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에 붙잡히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죄에서 해방되었으므로, 더 이상 죄에게 종살이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름에게 노예가 되었으며, 하나님께 노예가 되었습니다.14)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고 죄의 노예 노릇에서 벗어났습니다.15)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예속된 자는 성화 안으로 열매를 가집니다.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화 안으로 그들의 열매를 가지게 되는데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칭의는 죄책의 제거고, 성화(sanctification)는 부패의 제거입니다. 칭의는 단번에 완성되나, 성화는 지속적인 과정입니다.16) 칭의와 성화는 나누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는 동시에 차이도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크리스트의 죽음은 죄의 벌에서 해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죄의 능력에서 해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칭의와 성화는 다른 것이지만 둘은 분리될 수도 없습니다.17)
우리가 성화 안으로 우리의 열매를 가져야만 영생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열매는 크리스트 안에 머무르는 연합의 삶을 통하여 가능합니다. “믿음”은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그와 연합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파울이 로마서 6장의 첫 단락에서 다루었던 내용입니다.
그 안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그의 죽음 안으로 그런 것입니다(롬 6:3). 그의 죽음 안으로 세례를 통하여 그와 함께 묻히게 된 것입니다(롬 6:4). 믿는 자들은 그와 연합하여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매장된 것입니다.
예수 크리스트와 연합은 우리에게 성화가 일어나는 원동력입니다.18) 크리스트께서는 크리스천들에게 의로움과 성화가 되십니다(고전 1:30).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믿는 자들에게는 성화의 열매가 맺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요 17:17-19). 그는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안에 성별하여 달라고 기도하셨는데, 그들이 진리로 성별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성별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노예로 만들어진 자들은 성화 안으로 열매를 가지게 됩니다. 그와 연합하여서 그와 함께 죽음으로써 죄에서 해방된 것이 전제입니다. 크리스천들은 노예들이나 죄에서부터 하나님으로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자들만이 의롭다 칭함을 받았으며 성화 안으로 열매를 가집니다.
헬라어로 “믿음”은 크리스트를 믿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19) 믿는 자들은 크리스트와 연합하여 모든 것을 그와 함께하는 자들입니다. 이 연합은 “크리스트 안에”로 표현되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크리스트와의 연합이 성화의 토대입니다.20)
죄는 하나님께 반항이며 그를 창조주로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 대하여 계획적으로 거절하는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거절하고 피조물을 섬기는 우상숭배자입니다(1:25). 죄는 본래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는 불법적인 것과 관련됩니다. 죄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반역이며 그의 율법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부패시키는 능력을 소유한 인격체와 같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죄인을 죄에 복종하는 노예로 묘사하였습니다.21)
“성화 안으로 그 열매”는 성별된 행실(行實)입니다.22) 구원 경험의 결과는 성별된 행실을 얻게 합니다. 열매는 흔히 삶의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요구와 관련됩니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나무를 심는다면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선택은 성별된 행실과 연결됩니다(요 15:16). 선택되었다는 것은 책임 있는 성별된 삶으로 논증되고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선택하신 것이 열매 이미지로 묘사됩니다. 이 이미지는 구약에 있는 언약 사상에 특징적입니다(사 32:15-17).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의 열매는 특히 성화 안으로 열매입니다. 성화는 신자들이 구원을 얻고 성취하여 가는 현재적인 경험입니다. 선행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필요하며 구원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23)
주께서 영원한 생명의 상속을 위해 그의 자비에 의해 예정하신 것들은 좋은 행실들의 수단에 의해서입니다(by means of good works).24) 영원한 생명은 성별된 행실의 최종 결과입니다.25)
여러분!
사도 파울은 본문에 “죽은 자들”을 “잠자는 자들”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미 죽은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을 믿다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살아 있는 자들은 몸이 변화됩니다. 이들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마중하기 위해 공중 안에 집어 올려집니다. 그때에 예수님을 믿지 않아 집어 올려지지 않은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세대주의자들은 휴거되지 못한 자들은 환난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26) 오늘은 이와 같은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을 설명 드렸습니다. 휴거는 세상의 끝이며, 더 이상 세상에 불신자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전에 준비되어야 하며, 휴거 후에 기회가 주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크리스천들이 공중 안에 집어 올려지기 전에 예수님을 믿어야만 합니다. 믿지 않아서 남겨졌다가 그때에야 믿고서 구원을 받을 기회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날이 되기 전에 올리브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며, 그날이 되어서야 올리브기름이 없는 것을 깨닫는다면 너무 늦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올리브기름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고, 자신에게 올리브기름이 없는 것을 그날에 발견하게 되면 너무 늦습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처럼 아무리 예수 크리스트를 “주”로 고백해도, 자기가 이익을 얻기 위한 자기중심적인 신앙고백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올리브기름은 성령으로 해석될 수 있고 행위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 올리브기름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삶으로서 행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화 안으로 우리의 열매를 가지며 끝은 영생입니다(롬 6:22). 우리의 열매가 성화를 향하여야만 “구원영생”에 도달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욕망에 따르지 아니하고 성령에 따라서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면 성화의 열매가 맺힙니다. 성화의 열매가 맺히면 그것이 우리가 영생을 가진다고 보증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화 안으로 우리의 열매를 가져야만 영생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열매는 크리스트 안에 머무르는 연합의 삶을 통하여 가능합니다. “믿음”은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그와 연합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 안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그의 죽음 안으로 그런 것입니다(롬 6:3). 그의 죽음 안으로 세례를 통하여 그와 함께 묻히게 된 것입니다(롬 6:4). 믿는 자들은 그와 연합하여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매장된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에 함께 죽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내가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회개하여야 되는 것은 오늘 내가 살았는지의 문제입니다.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면서 살 때에 내가 죽고 크리스트께서 사십니다.
이러할 때에 우리는 성화될 것이며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찾으실 것입니다. 삶 속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와 좋은 열매를 맺는 복된 성도가 다 됩시다!
1) Weima, 『BECNT 데살로니가전후서』, BECNT 성경주석, 414-417.
2) Weima, 『BECNT 데살로니가전후서』, BECNT 성경주석, 411-423.
3) Weima, 『BECNT 데살로니가전후서』, BECNT 성경주석, 411-426.
4) Weima, 『BECNT 데살로니가전후서』, BECNT 성경주석, 429-430.
5) Weima, 『BECNT 데살로니가전후서』, BECNT 성경주석, 439.
6) Bruce, 『데살로니가전후서』, WBC 성경주석, 188.
7) Hoekema, 『개혁주의 종말론』, 238, n. 3.
8) Hoekema, 『개혁주의 종말론』, 237-238.
9) France, 『NICNT 마태복음』, NICNT 성경주석, 1090.
10) Henry, 『마태복음』, 매튜헨리주석전집, 965.
11) Turner, 『BECNT 마태복음』, BECNT 성경주석, 769.
12) Donald A. Hagner, 『마태복음 14-28』, WBC 성경주석 33하, 채천석 옮김 (서울: 솔로몬, 2008), 1118.
1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3』, 367-371.
1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3』, 372-373.
15) Robert Haldane, 『로마서 주석』, 김귀탁 (서울: CLC, 2021), 388.
16) Louis Berkhof, 『조직신학 하』, 권수경·이상원 옮김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2), 765-766.
17)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350.
18) Ferguson, 『성화란 무엇인가』, 52.
19) Ferguson, 『성화란 무엇인가』, 82.
20) Ferguson, 『성화란 무엇인가』, 95.
21) Richard B. Gaffin, 『구원이란 무엇인가』, 유태화 옮김 (고양: 크리스챤출판사, 2007), 61-65.
22) Haldane, 『로마서 주석』, 388.
23) 이한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665-666.
24)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Ⅲ. 14. 21.
25) Haldane, 『로마서 주석』, 388.
26) Hoekema, 『개혁주의 종말론』, 2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