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삶의 종말 (시2-14)
2026년 2월 1일 (주일)
찬양 : 충만
본문 : 시14:1-7절
☞ https://youtu.be/b_Ev_H2mpxc?si=KygjQbcXmiE9hkTG
어제는 무거운 마음으로 조카의 천국 시민 된 1주기 추모예배를 하나님께 온 가족들이 함께하여 드렸다. 준비하면서 참 많은 무거운 것들이 나를 붙잡고 힘들게 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영원한 집을 완벽하게 준비해 주시고 환영해 주시며 이 땅의 모든 근심을 면케 하시며 다시 오실 때에 데리고 오실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했다. 주님의 은혜 베푸시며, 유가족들을 위로하시며 하나님의 평강으로 마음과 생각을 붙잡아주시기를 기도한다.
참된 피난처인 하나님만이 주시는 소망을 마주하고 맞이하는 거룩한 주일 아침이다. 오늘도 나의 온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예배자로 서서 하나님을 찾는 자 되기를 다짐한다. 주여 받아주소서. 주님 기억하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의 종착역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3절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신기하지 않은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뿐인데,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 않을 뿐인데 왜 이렇게 다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지 못할까? 이들이 만들어 가는 사회를 부패한 사회, 가증한 행동, 선을 행하지 않는 사회라고 정의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들의 특징을 다윗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4절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이것을 히브리 원문의 뜻을 살려 해석해 보면 이들은 정말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분명 불의를 알고, 연약한 자의 부당한 대우를 잘 알지만, 책임을 회피하며 그 일을 반복적으로, 구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말하기를 <내 백성을 떡(빵)먹듯이 먹는다>고 한다.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너무 당연한 듯이 그런 악한 일을 행한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약자를 일상적으로 고통케 하는 구조로 바뀐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다윗은 언제 이런 일을 경험하며 이렇게 기술하고 있을까?
아마도 사울 왕의 말년에 경험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사울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왕위를 지키려고 했다. 그러자 모든 군대와 조직과 사람이 약자를 괴롭히는 일에 혈안이 되어 버리는 세상을 경험하며 이런 고백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죄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이 본문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을 부르지 않을 때, 찾지 않을 때 믿음의 사람도 이렇게 돌변할 수 있음을 주목한다.
최종적인 심판이 없을 때 인간 권력은 결국 약함과 부족을 부끄러움과 수치로 간주하며 외면하고 오직 강자 중심의 사회, 약육강식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르는 자, 하나님을 찾는 자, 비록 세상의 힘은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헤세드를 믿고 믿음으로 그 계획을 붙드는 자는 여호와께서 그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다윗은 고백한다. 6절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왜 세상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여기나? 세상 기준으로 보면 이들 믿음의 사람들이 가진 계획은 비효율적이다. 현실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들은 조롱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다윗의 삶은 그와 같았다. 그의 신하들조차도 그런 다윗이 부끄러웠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피난처가 되었음을 깊이 묵상하는 아침이다.
거룩한 주일 아침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삶, 찾지 않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깊이 깨닫게 된다. 나의 경험과 지식과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부르지 않게 한다. 아울러 내 욕망이 하나님에 의해서 막혀진다고 생각될 때 회개하기보다 하나님을 외면하며 사울처럼 달려갈 수 있음을 묵상한다.
주님 이 종이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부르며, 찾으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지는 세상이 볼 때 가난한 자의 계획으로 무시되고 조롱을 당해도 하나님이 피난처 되심을 믿고 나아가는 종 되길 원합니다. 이 종을 붙들어 주소서.
한줄 묵상 :
<하나님을 부르지 않으면, 나는 모르는 사이 약자를 삼키는 편에 설 수 있다.>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적용 질문
1. 나는 요즘 어떤 영역에서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결정하고 있는가?
2. 내 판단이 누군가를 ‘떡 먹듯이’ 소외시키거나 부담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3.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포기하지 말아야 할 ‘가난한 자의 계획’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