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黃東奎) - 동백나무
그 여자는 또 손을 반쯤 들고 서 있구나
햇빛이 잔잔한 속에
밀려 있는 하나의 파도와 같이.
햇빛은 얼마나 잔잔한 것일까
얼마나 고요한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우리를 느끼게 하는 것일까
그 여자의 마음속을 적시는 맑은 물결의 흐름을.
햇빛처럼 내리는 지난날의 이야기에
가느단 폭포처럼 쏟아지는 알 수 없는 속삭임에
그 여자는 지금 손을 적시는가.
바람은 머얼리서 또 가까이서 기웃거리며
지워주고 있는가
그 여자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모든 생각들을.
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허나 우리는 안다. 그 여자가 손을 반쯤 들고 서 있는 것을
그리고 맵시 있게 모든 하고픈 말을 않고 있는 것을.
*황동규[黃東奎, 1938. 4. 9.~, 서울 출생, 부친 황순원(黃順元)] 시인은 서울대학교 영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서 수학한 후 교수를 역임하였고, 1958년 ‘현대문학’에서 시 “시월”, “즐거운 편지” 등으로 추천받아 문단에 등단하였고, 세련된 감수성을 바탕으로 서정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어떤 개인 날’(1961), ‘풍장’, ‘비가’(1965),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 ‘몰운대행’(1991), ‘미시령 큰바람’(1993), ‘외계인’(1997), ‘버클리풍의 사랑노래’(2000),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등이 있으며, ‘사랑의 뿌리’(1976), ‘겨울의 노래’(1979), ‘나의 시의 빛과 그늘’(1994), ‘꽃의 고요’, ‘사는 기쁨’,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2001), ‘삶의 향기 몇점’(2008) 등의 산문집이 있습니다.
*시인은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위 시는 “황동규 시전집” ‘어떤 개인 날~악어를 조심하라고?’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