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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보셋이 살해됨 4:1~7
1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2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군 지휘관 두 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레갑이라 베냐민 족속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이더라 브에롯도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니
3 일찍이 브에롯 사람들이 깃다임으로 도망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우거함이더라
4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5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길을 떠나 볕이 쬘 때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마침 그가 침상에서 낮잠을 자는지라
6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7 그들이 집에 들어가니 이스보셋이 침실에서 침상 위에 누워 있는지라 그를 쳐 죽이고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가
다윗이 바아나와 레갑을 처형함 4:8~12
8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하니
9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10 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보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11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 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12 청년들에게 명령하매 곧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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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아브넬의 죽음이 이스보셋과 온 이스라엘에 알려집니다. 이스보셋의 군 지휘관 레갑과 바아나는 낮잠 자는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 목을 베어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바칩니다. 다윗은 악인이 의인을 침상에서 죽였다며 그들을 죽이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헤브론 아브넬의 무덤에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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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보셋이 살해됨 4:1~7
아브넬이 죽은 후 사울 가문은 급격히 몰락합니다. 이스보셋과 온 이스라엘은 아브넬의 죽음 소식에 충격을 받고 이제 대세가 다윗에게 넘어갔다고 판단합니다. 그러자 이스보셋의 군대 지휘관인 베냐민 사람 바아나와 레갑은 밀을 가지러 온 체하며 이스보셋의 집으로 들어가 낮잠을 자던 이스보셋을 죽입니다. ‘찌르고’(6절)와 ‘쳐 죽이고’(7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같은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나카’는 칼로 찔러 죽이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바아나와 레갑은 이스보셋의 배를 찔러 죽인 후, 그의 머리를 잘라 내어 이를 가지고 도망합니다. 이스보셋의 죽음으로 사울의 남자 후손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만 남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아브넬이 죽은 후 바아나와 레갑은 어떤 짓을 저질렀나요?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일에 앞장서는 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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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바아나와 레갑을 처형함 4:8~12
바아나와 레갑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다윗 앞에 섭니다. 그들은 이스보셋을 죽인 것이 다윗의 원수를 갚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다윗이 기뻐해 큰 상과 권력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아나와 레갑의 행동은 자신들의 주군에 대한 배신이요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입니다. 다윗은 그들을 ‘무죄한 피를 흘린 악인’으로 규정하며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들을 죽인 후에는 팔과 다리를 잘라 헤브론 못 가에 매달아 놓습니다. 이를 통해 다윗은 자신이 이스보셋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왕을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하고 악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다윗은 이스보셋을 살해한 이들을 어떻게 판단했나요?
어떤 사람의 악행이 내게 유리하게 작용한 경우, 나는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한절묵상:사무엘하 4장 8절
잘못된 행실에 신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를 갚으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을 신앙적 구실로 포장해 보상을 받으려 한 것입니다. 자기 행실을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신앙을 가장한 기만행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뜻을 알았기에 광야에서 두 번이나 사울을 살려 주었습니다. 신앙적 의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삶에 부여해야 합니다.
어떤 이의 말과 행실이 거룩하지 않다는 것은 그가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 로저 캠벨
오늘의 기도
하나님, 자기 유익을 위해 남의 생명을 취하는 죄를 저지르고도 그것이 악행인 줄 모르는 영적 무딤이 저에게도 있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악행을 합리화하는 자기기만을 버리게 하시고 악행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게 하소서. 칭찬과 인정에 속아 악에 동조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오늘의 찬송(새 325 예수가 함께 계시니)
하나님은 당신의 뜻과 계획을 따라 움직이는 우리를 위해 모든 조건들이 갖추어지고,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들을 기억하고,
그 약속들이 어떻게 성취되고 이루어 가시는지를 지켜 보면서 감사를 올려 드리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시는 그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기대하자
우리의 뜻과 계획이 아니라, 우리가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께 먼저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판단하고, 행동해 나가자
하나님은 우리의삶속에 앞장서서 가심을 신뢰하며
말씀의 약속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섭리속(주권)에서 내가 살고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워나아가자
시9: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다윗은
눈 앞에 이익보다 정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쟁자가 없어졌다는 유리한 소식에 기뻐하지 않고
불의에 분노하고 불의한 이익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
고전13: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하나님은
시키시고 돌보심/살아계신 여호와
/생명을 여러 환란 가운데서 건지시는 여호와.
삼상20:14.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뿐 아니라
15.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오직 자기들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악행을 저질러 놓고도 뻔뻔하게
그 행위가 다윗 왕과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고 의로운 척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욕심을 빙자한 교만
지금도 이런 간교한 자가 많습니다
자기의 탐욕과 정욕으로 악을 행하고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자기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기회주의자를 처세술에 능하다 칭찬하며,
지저분한 일을 대신 해 준 것에 기뻐하며, 성공을 보상으로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는 이런 자가 설 자리는 저주와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아 비열한 자들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모든 사람들이 보게 했습니다
참으로 지금은 마지막 때라 비열한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뜁니다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시12:8)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비열한 자가 높임을 받지 못하고 없어질 것입니다
"천한 사람을 더이상 고상하다고 부르지 않을 것이며
야비한 자를 관대하다고 말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천한 자는 비열하게 말하고
그의 마음은 죄악을 행하며 위선을 행하고 주를 거역하여 불경건함을 발설하며
주린 자의 혼을 공허하게 하고, 또 그는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사32:5~6)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세상의 비열함을 피하여 믿음과 사랑과 경건을 따르기 원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6:11~12)
오직 선을 행하고 화평을 따르기 원합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벧전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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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죄까지도 정당화하며 결과를 얻어내는 것을 권장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말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이 유능한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모습과 반대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가 삶 속에 드러나야 합니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자신의 욕심을 따라 움직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사욕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저자는 의인의 길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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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겼던 니고데모(요한복음 3장)
자신이 삶이 옳다고 여겼던 부자 청년(마태복음 19장)도
오직 주님 앞에 나와서 그 진리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삶이 비춰본 뒤에야
수정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이었던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로 대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은혜는 측량할 수 없지만
그 은혜에 합당한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성령을 거역하면
그 가지는 잘려 불에 태워지고
두 번 대속하는 방법이 없음을 주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옳다 여긴 일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고침과 나음을 입는 한 주간의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가복음 3:28~29)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한다. 사람이 어떤 죄를 짓든지
어떤 비방의 말을 하든지 그것은 모두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그것은 영원한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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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빈손으로 나오는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은혜를 알고 그 은혜만 붙들고 뛰어나오는 자를,
혹은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자라도 환영하고 기뻐하십니다.
단, 그 손이든 발이든 자기 공로를 다 제거한 자를 받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위에 아무것도 얹지 않고, 덮으려 하지 않고 그저 은혜만으로
만족하고 감격하여 나오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이런 주님을 알지 못하고 엉뚱한 일에 매달려 살다가는
주께서 이루신 진정한 평화와 만족의 끝자락도 만지지 못한 채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아나와 레갑이 전혀 낯설지 않아 보입니다.
은혜 앞에서도 늘 불안해 하는 나 자신 때문입니다.
주신 것과 주신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더 해야만 할 것 같이 자꾸 돌아보는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께서 부르신 성도라면, 우리는 마땅히 나병 환자였을 것입니다.
귀신들린 자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다 우리인 줄 알고 주께서 부르셨는데
무엇을 또 들고 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감사하고 만족하며 있는 대로 주께 나아갈 뿐입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시간 동안 말입니다.
그렇게 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만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나를 바라보지 말고,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항상 나를 은혜로 구원하신 예수만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런 하루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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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 된다고 하더니 오늘 말씀이 딱 들어 맞는 말이다.
사무엘 하를 시작 할 때에 아말렉의 한 청년이 사울왕의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자신이 사울왕을 죽였다고 자랑스럽게 다윗에게 고한 아말렉 청년이 있었다.(삼하1:10)
다윗에게 칭찬을 받고 큰 상을 기대하고 길보아에서 시글락까지 먼 길을 찾아 왔지만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는냐?(삼하1:14)고
책망받고 오히려 죽임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오늘도 동일한 역사의 반복이다.
다윗에게 이르러서는 왕의 목숨을 빼앗으려던 왕의 원수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에 있습니다.(8)
여호와께서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하고(8)
뻔뻔스럽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자신의 주인을 죽인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강변하며 자신감에 차 있다.
사사기 17장 6절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죽었을 때 이 때가 내게 주신 기회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암살자이자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말 한자들은 처형하고
이스보셋은 아브넬의 무덤에 묻어 줌으로 사울 왕에 대한 충성을 끝까지 보이며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실 것을 기대하면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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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넬이 왕처럼 산 시간도 2년이 채 못 되는 시간이고
이스보셋이 허수아비 왕으로 산 세월도 2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인생입니다.
그래서 너무 움켜쥐려고 애쓰는 인생을 살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길지 않은 인생입니다. 오늘을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살아갈 일입니다.
아브넬이 이스보셋보다 먼저 죽었고
이스보셋이 2년 만에 죽었다면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왕으로 있었던 시간 중에 5년 6개월이
어디로 간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죽은 후 5년 6개월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우리는 4장과 5장 사이에 사라진 5년 6개월이 숨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통일 왕국의 왕이 된 것은 아마 2~3절에 나오는 대로 이스보셋이 죽은 후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헤브론에서 통일 왕국의 왕이 되어 5년 6개월을 다스린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겨서 다스린 기간이 삼십 삼 년인 것입니다.
그것은 5:6절 이하에 나오는 예루살렘 정복 기사를 보면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거기에 진정한 다윗 궁을 세우기까지
5년 6개월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헤브론에서 다스린 7년 6개월이 통일 왕국이 아닌
유다만을 다스렸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헤브론에서 통일 왕국의 왕이 된 것은 이스보셋이 죽은 후인 것입니다.
그래야 아브넬이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 장로들을 설득했고
3:37절의 온 백성이 아브넬을 죽인 것이
다윗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말도 종합적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레갑과 바아나가 살아가는 이 삶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다시 다짐해 봅니다.
부족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기회주의자적인 삶을 택하지 않겠노라고 말입니다.
시류를 좇아, 이익을 좇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다윗은 이례적으로 레갑과 바아나를 성문에 효시합니다.
사지를 잘라서 효시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보셋의 죽음에 대해 나는 깨끗하다는 의미,
또 하나는 기회주의자들의 말로에 대해 분명한 다윗의 의지를 천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윗이 일관되게 아말렉 소년과 레갑과 바아나를 처리하고 있는 모습에서 감사를 느낍니다. 어쩔 수 없이 정치 일선에 서 있는 다윗입니다.
통일 왕국을 이루고 나머지 지파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어려움을 간직한 다윗입니다. 그러나 원칙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신실 성을 잃어가면서까지 얻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닙니다. 기회주의자들의 손을 잡고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아브넬의 손을 잡은 것도 이런 충직한 다윗의 마음속에는 어떻게든 분열이 아닌 화평으로 나라를 세워보려는 노력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야합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백성들을 염려하는 다윗의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심이 됩니다.
기회주의자들과 손잡지 않고 그들을 단호하게 처리하는 다윗에게서 그가 다스릴 나라가 기대되게 합니다.
단호해야 하는 일에는 단호하게 대처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기회주의자들과 손잡고 뭔가를 해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 앞에, 말씀 앞에,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 앞에 정직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오늘 하루도 승리합시다. 레갑과 바아나처럼 살지 맙시다. 직장에서 정직하고 성실합시다. 그리스도인답게 삽시다. 자, 또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하루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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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절 : 1.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2.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군지휘관 두 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레갑이라 베냐민 족속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이더라 브에롯도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니
정의보다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바아나와 레갑은 브롯 출신이었습니다.
브에롯은 본래 여호수아를 속이고 평화조약을 맺은 히위 족속의 네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수 9:17) 훗날 베냐민 지파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베냐민 땅에 사는 외국인을 없애려 했을 때(참조. 21:25)
브에롯 주민은 깃다임으로 도망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브에롯 사람들은 사울 가문과 관계가 껄끄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군지휘관 지위까지 오른 바아나와 레갑은 분명 상황 변화에 민감하고 약빨랐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브넬이 죽고 힘없는 이스보셋에게 희망을 걸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들에게 가장 유리한 길이 무엇인지 바로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보셋의 목을 다윗에게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인정을 받고 통일 이스라엘에서 한자리씩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것이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아무 잘못도 없이 잠들어 있던 이스보셋을 살해하는 악을 저질렀습니다.
만약 므비보셋이 다리를 절지 않았다면, 왕위를 이을 만한 사람이었으면, 그들은 므비보셋까지 죽였을 것입니다. 생각이 이익만을 향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맙시다. 무엇이 정의인지, 어느 쪽이 옳은 길인지 생각합시다. 그래야 죄악으로 기우는 삶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9-12절 : 9.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하나님이 자신을 돌보신다고 믿는 사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고 믿는 사람은 눈앞의 이익보다 정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좋아할 거라는 바아나와 레갑의 생각과 달리, 다윗은 경쟁자가 사라졌다는 유리한 소식에 기뻐하지 않고 무고한 사람이 죽임을 당한 불의에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레갑과 바아나를 처형하고, 억울하게 살해당한 이스보셋을 장사함으로 정의를 구현했습니다. 환난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아는 다윗은 불의한 이익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눈앞의 이익에 움직이지 않는 사람, 눈앞의 이익으로 흔들 수 없는 사람이야말로 고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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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집안에 대한 다윗의 선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 다윗 왕권을 공고히 확립하는데 더 크게 이바지한다.
Q.이기적인 기회주의적 사고로 판단하고 선택한 적이 있는가?
아브넬의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암살당했습니다.
레갑과 바아나가 이스보셋을 암살한 것을 다윗이 시켜서 한 짓이라고 충분히 오해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은 재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다윗은 이스보셋을 죽인 암살자 레갑과 바아나를 즉시 처단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에게 자신은 이스보셋의 죽음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데 꼭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준비를 착실하게 해나갔습니다.
1. 이스보셋을 죽임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6절)
하나님의 뜻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왕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서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뜻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악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말로만 그렇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2.다윗이 암살자를 처단함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이기에 다윗도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은 모두 그러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마음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 신앙인 자신에게도 진정한 이익이 됩니다.
다윗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누가 의인이고 악인인지를 생각하였습니다.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
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11절)
이스보셋을 암살한 장군과 그것을 처리하는 다윗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며 악을 행하곤 합니다.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것을 행하는 것인지 진정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구분해야 합니다.
이스보셋을 암살한 장군들처럼 악을 행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2차적 악에 대해서도 구분하고 철저히 악에서부터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 편에 서라. 우리에게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입니까?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보셋의 두 장군은 자신들의 이익을 좇아 사울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에게 갔지만 다윗은 그들을 영웅대접하기는커녕 그들을 악인이라 칭하며 그들이 흘린 피의 값을 치르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이겼습니다.
그는 자신 편에 선 사람을 진리로 여긴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에 따라 진리가 있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이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죄 즉 자신의 이익을 따라 진리를 왜곡하는 죄를 이긴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자신의 이익을 따르게 하는 죄를 이겨야 합니다.
세상에 산재해 있는 많은 편 가르기식 진리이해로 인하여 진리가 왜곡되고
집단 이기주의가 심각합니다.
집단 이기주의, 자신의 이기주의로 사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어느 곳에 있든지 항상 진리를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이익을 좇아가는 어리석은 생각을 깨트리고 항상 진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따라갈 때 진정한 자기 이익이 실현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은 어리석은 자기이익이 아니라 오직 진리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따르는 사람
진리를 따라 가는 삶
신앙인이 가야 하는 길은 ‘진리의 길’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때로는 그것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든 이익이 되지 않든 우리는 진리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자신에게 복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신앙인입니다.
다윗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자신을 찾아온 이스보셋의 두 장군에게 말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11절)
하나님 아버지~~
환난 가운데서 생명을 건지시고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그 성호에 영광과 존귀를 영원토록 홀로 받으시옵소서
하나님의 그 광대하심의 크고 넓은 사랑과 계획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넘쳐
온 우주,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 아침에 감사 찬송합니다.
얄팍한 생각으로 자신이 섬기던 군주를 찔러 죽이고
전향한 이스보셋의 두 군장의 이기주의적 아첨과 기회주의 사고 방식을
가진 자의 전향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수족을 베어 헤르몬 못 가에 매어 달아
이스보셋의 죽음이 사울가에 대한 보복이 아님을 백성들에게 공표한 다윗.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방법과 순리를 따라 왕권을 공고히 해
나가는 다윗의 신실함이 기록된 말씀을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삶을 뒤돌아 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이 부족하면 상황에 따라 형편에 따라
악인의 공로에 의지할 유혹을 받기 쉬움을 고백합니다.
깨어 성령의 인도하심을 사모하지 않으면 언제나 얄팍한
이기적 인간의 산물인 기회주의적인 사고와 방식이 지배하는
육체의 소욕의 종의 모습일 뿐인 나를 봅니다.
나의 의지대로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이기적인 기회를 따라
행동했음을 자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원하고 부러워하는 것들을 따르지 않고 오직 주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올려드리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하고 새롭게 되어 보내어진 곳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며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어지는 좋은 땅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와 허물이 있었던 심령에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때마다 시마다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하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항상 지키시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으로 인도하여 주시읍소서
무슨 일을 행하든지 주님 편에서 생각할 수 있길 원합니다.
제 뜻대로 판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원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갖길 원합니다.
오늘도 저를 붙드시고 바른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