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한하운(1919∼1975)>
이 시는 한센병(문둥병)에 걸린 시인이 끝없는 천형(天刑)의 길을 걸으며
애수와 절망의 극한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문둥이로 살아가는 시적 화자의 독백으로 감정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으며,
인생을 유랑의 여정에 비유하여 표현한 시다.
시인의 본명은 한태영(韓泰永), 함경남도 함주 출신이다.
1932년 함흥제일공립보통학교를 나와 1937년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39년 동경 세이케이고등학교 2년을 수료했다.
그 해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1943년 북경대학 농학원을 졸업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난히 감성이 풍부했던 그는
고향 여학생과 더불어 로맨틱한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5학년 때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한센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인생은 한센병에서 오는 저주와 비통(悲痛)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다간 천형(天刑)의 시인이었다.
이 시는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있는 나병환자 수용소로 찾아가는
시인의 고달픈 삶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첫댓글 애절한 글에 눈물 나네요.
얼마나 마음 시렸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