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 뎅- 뎅-.'
지난 9일 오전 11시 45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성 마오로 플라치도 수도원(이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낮 기도를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경내에 울려퍼졌다.
금속공예실, 농장, 기념품의 집 등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내 각자의 처소에서 소임을 다하던 수도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대성당 안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검은색 수도복 차림의 수도자들은 제대 앞에서 예를 표한 뒤 양편으로 나눠 앉았다. 그리고 시작된 그레고리안 풍의 청아한 기도문, 찬미가가 무반주로 울려 퍼졌다(이날 파이프오르간은 연주되지 않았다).
■국내 최초의 남자 수도원
남자들만의 목소리가 이토록 아름다운지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국내 최초의 남자 수도원으로 70여 명이 함께 생활하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선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하루 다섯 차례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그리고 각자 소임대로 하루 8시간 정도 노동에 몰두했다.
뾰족 지붕·붉은 벽돌 …
기도하고 일하는 왜관수도원
아름답기로 유명한 가실성당
무엇을 해야할지 답 구하던 난
위안 얻으려 왔는지 모르겠다
낮 기도가 끝나자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자 '영적 스승'인 아빠스(Abbas·대수도원장)를 필두로, 종신서원(일생을 마칠 때까지 하느님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서원하는 일)을 약속한 수도자들이 일제히 열을 지어 성당문을 나섰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경건함 그 자체였다. 문득,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봉헌된다는 주일 미사가 궁금해졌다.
수도원을 안내해 준 고진석(이사악) 신부는 "일요일의 경우, 인근 대구 마산 대전 등지의 신자는 물론이고 멀리 수도권에서도 차량을 빌려 내려오기도 한다"면서 "여기 미사에선 파이프 오르간도 연주하고, 라틴어 그레고리안 성가도 부르는 등 여타 성당 미사에선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전례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2만여 평에 달하는 수도원에는 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성작, 행렬십자가 등 성물을 만드는 금속공예실, 교회용 가구를 맞춤 제작하는 목공예실, 초공예실과 유리화공예실, 분도출판사와 인쇄소, 독일 정통 수제 소시지를 만드는 분도식품(겔브 및 마늘 소시지 택배 문의 054-971-2733), 농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었다. 우리가 익히 들었던 분도(芬道·향기로운 길)는 베네딕도의 한자를 차음한 것이라고 했다.
대성당 1층의 전시실에는 지난 2005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이 80여 년간 소장하고 있다가 영구 대여 형식으로 국내 반환한 조선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의 화첩 사본과 지난달 성인품에 오른 요한 바오로 2세의 친필 휘호가 새겨진 도자기 한 점도 전시돼 있었다. 전시실은 안내소에 별도 요청을 할 경우, 문을 열고 불을 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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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박도행(프와넬) 신부가 설계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구 성당 및 사제관(왼쪽)과 가실성당 모습. 1928년 건축된 '구 성당'은 왜관 최초의 성당이고, 가실성당에선 권상우·하지원 주연의 영화 '신부수업' 등이 촬영되기도 했다. 박도행 신부는 대구 계산성당, 전주 전동성당 등 많은 한국 천주교회 건축물을 남겼다. |
■'아름다운' 성당, 가실(佳室)가실성당(주임신부 황동환 이사악)은 왜관수도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승용차로 10여 분이면 당도한다. 1895년 조선 교구 11번째 성당으로 출발한 가실성당은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오랫동안 '낙산성당'으로 불리다가 지난 2005년에야 가실(佳室)이라는 마을의 본래 이름을 되살리면서 성당 이름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황 주임신부는 설명했다.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의 가실처럼 참으로 예쁜 모습을 하고 있는 성당이었다. 특히 오후 햇살을 받은 뾰족 지붕과 붉은 벽돌 건물은 더욱더 빛이 났다. 성당 옆 아카시아나무에서 나는 꽃 향기는 사방에 진동했고, 종탑을 덮을 듯 울창하게 자란 팽나무는 5월의 싱그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였다. 지금도 미사를 보고 있다는 성당 건물은 1922~23년 지어진 그대로라고 했다. 전체적인 건축 양식은 고딕, 종탑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자는 왜관수도원 '구 성당'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인 박도행(빅토르 루이 프와넬) 신부였다. 성당과 구 사제관은 90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잘 보전돼 200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됐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남과 북 양측 군인들이 번갈아 가며 야전 병원으로 쓰면서 전쟁의 와중에도 보전될 수 있었다고 한다.성당 안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예수의 일생을 담은 총 14개의 색유리화(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었다. 이 색유리화는 독일의 색유리화가 고 에기노 바이네르트의 마지막 작품(2000년)으로 황 주임신부 직전에 있던 현익현(바르톨로메오) 신부의 요청으로 성사됐단다. 가실성당 안에는 다른 성당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예수상과 성모상이 없는 대신 안나 성모상이 있는 것도 특이했다. 게다가 가실성당의 성체등(감실등)은 전동식이 아닌, 지금도 직접 파라핀을 채워 넣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1926년 5월 축성된 '안나' 종은 지금도 미사 전에 치고 있는데 아름다운 종소리까지 들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싶었다.■아빠스 그리고 "참회합니다"다시, 수도원 이야기로 되돌아 가 본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왜 모여 사는 것일까? 고 신부가 답했다. "우리는 공동 기도의 전통이 있습니다.그래서 성당이 중요한 것이고요."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일일 수도원 기행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 왜관수도원으로 향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왜관수도원이야말로 '언제나 열려 있는 성당'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인근의 가실성당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마로니에북스)에 꼽힐 만큼 아름답다는 정평이 나 있었다. 두 곳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종교를 초월해 혼자서 조용하게 기도라도 올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위안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뭔지 모를 답답함이 이 사회를, 개인을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을 근 한 달째 품고 있었고,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던 참이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저 여행이었을 뿐인데, 왜관수도원 제5대 수도원장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를 대면할 수 있었다. 가톨릭에서 아빠스는 주교와 동등한 지위로 상급 장상에 속한다. '수도원의 원장', 그것도 엄격함의 상징인 아빠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해맑은 얼굴이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7일은 그가 아빠스가 된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사회 분위기가 너무나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아빠스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 수도원에서도 세월호 참사 가족들을 위해서도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하는 역할이라는 게 수도원 안에서 살면서 우리끼리 잘 살자는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해 계속 깨어 있고, 세상을 위해 기도해 주는 처지인 것처럼요."아빠스와의 대화 맥락은 공교롭게도 가실성당의 황 주임신부를 만나서도 이어졌다. 황 신부는 말했다. "지금은 슬퍼하고 분노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봤던 것에 대해 성찰하고, 벽에 대고 소리라도 지르는 마음으로, 바위에 계란 던지는 꼴이라도 뭔가 움직여야 됩니다."가실성당을 돌아나오는 길, 성당 게시판에 붙여 놓은 종이 한 장에 눈길이 멈추었다. 그곳엔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란 제목 아래 '참회합니다'라는 부제가 붙은 황 신부 명의의 참회문 한 장이 붙어 있었다."…엄연한 사실을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며 현실과 타협하는 건 사제의 몫이 아님을 뒤늦게 깨닫고 참회합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무능한 정부, 오만한 정권, 부패한 자본, '쓰레기 언론'도 문제이지만 한 사람의 신부로서 당당하지 못하고,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할 뿐입니다."비수에 찔린 듯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어느 정도는 명쾌해지는 듯했다. 황 신부 가슴에, 그리고 왜관수도원 성모상 가슴에 누군가 달아 놓은 노란 리본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면 말이다.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첫댓글 한번 꼭 가보고 싶네요
저도 꼭 한번가서 미사에 참례하고 싶네요
오래전에 다녀온적이있는데..
다시 한번가서 머무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