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엿장수와 빨간 풍선/우련 송영욱
동네입구에 있는 용호네 방앗간에서 발동기가 통통통 돌아가며 하늘에 흰 점 같은 연기를 퐁퐁 쏘아 올린다 봄 햇살 양지바른 양짖뜸에 엿장수가 들어선다 빨간 풍선 몇 개를 매단 손수레 엿판 가득 달콤한 엿을 싣고서……
엿 장수가 흔들어대는 빠르고 경쾌한 가위소리가 봄바람 타고 가깝게 들렸다 멀리 들렸다하며 잔디 썰매 타고 있는 언덕배기까지 올라온다 가을 운동회에서 눈깔사탕 따먹기 할 때 같이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마른침도 꼴깍 넘어간다 먼저 춘수가 집으로 내달았다 아이들 하나둘씩 뒤 따르며 머릿속에서 엿과 바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벽에 걸린 마눌 몇 줄, 깨진 무쇠 솥, 구멍 난 고무신 찬장 밑에 숨겨둔 줌 쌀 몇 움큼 밭 갈다 부러진 쟁기 끄트머리…… 마루 밑을 뒤져서 찾은 자루가 빠지고 빨갛게 녹이 올라붙어 볼품없는 호미를 엿장수에게 내밀자 넉넉한 엿장수 자루를 박고 비려 봄에 쓸 농기구라며 다른 것을 찾아보란다 서먹해진 순이 에게 맘씨 좋은 엿장수는 맏배기를 쳐 준다 조그만 손에 하얀 가루 듬뿍 묻은 기다란 엿이 건네진다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 순이 신명난 엿장수의 큰 가위 소리와 집집마다 제일 큰 기둥에 매달린 스피카에서 울려나오는 “자~알 살아 보세~ 자~알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자~알 살아 보세~” 힘 있는 노랫소리에 엉거주춤 어깨가 올라간다
곱고 부드러운 흰 분가루가 묻은 엿 맛은 참 기가 막힌다 단물이 주체 못하게 줄줄 흘러나와 침과 함께 입 밖으로 살살 흘러내린다 엿은 순이 입속에서 녹고 냄새는 내 코 속에서 맴돌고 있으니 참으로 목이 메어지는 일이다
*송영욱의 시집 <빗 소리를 찻잔에 담다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