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없는남자’
작가 ; 로베르트 무질(1880-1942)
완결판 출판 ; 1933
무질은 알프레드 무질(독일어: Alfred Musil, 1846년-1924년)과 그의 아내 헤르미네(독일어: Hermine, 1853년-1924년)의 아들이다. 이들은 혈연은 아니지만 "삼촌"이라 불리는 하인리히 라이터(독일어: Heinrich Reiter, 1856년생)과 함께 살았다.
빈 기술사관학교, 브륀 공과대학 등에서 수학하면서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메테를링크, 에머슨 등의 작품을 읽었다. 이후 베를린대학에서 철학과 논리학,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첫 소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Die Verwirrungen des Zoeglings Toerleß, 1906)을 발표하여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무질은 1902년 슈투트가르트 공과대학의 조교 시절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1908년 같은 대학에서 에른스트 마흐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철학 교수직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하고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1930년과 32년 평생의 역작 ≪특성 없는 남자≫(Der Mann ohne Eigenschaften) 1, 2권을 출간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울리히의 눈을 통해 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도덕적 및 지적 쇠퇴를 다루고 있다. 배경은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의 비엔나이다. 무질은 1914년에서 1918년 사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에서 사무관으로 종사하였었다.
《특성없는 남자》는 1938년 나치 정권에 의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 이후 ≪특성 없는 남자≫를 완성하기 위해 스위스로 이주했으나 질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미완성인 채로 제네바에서 숨을 거두었다. 생전에 평단 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특성 없는 남자≫는 아돌프 프리제가 유고를 정리한 전집이 출간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지금은 20세기에 발표된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로 꼽히고 있다.
이들 작품 외에 단편집 ≪합일≫(Vereinigungen) ≪세 여인≫(Drei Frauen), 희곡 ≪몽상가들≫(Die Schwaermer), 문집 ≪생전의 유고≫(Nachlass zu Lebzeiten) 등이 있다.
* 소설, 특성 없는 남자는 2천 페이지가 넘는 장편이지만 읽기 쉽도록 짧은 ‘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프루스트나 조이스와 비견할 만큼 명작으로 꼽힌다. 19세기 말의 퇴폐주의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을 완전하게 기록해낸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의 길이에 비하여 풀릇은 놀랄만큼 간단하다. 주인공 율리히는 인생에서 아무런 목적도 찾지 못하는 수학자이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지만 계속하여 실패만 거듭한다.
‘에세이즘’이라고 불리는 무질의 문체는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하나의 철학을 구체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는 20세기 모더니즘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소설은 서사보다는 작가의 사유가 주를 이루고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태어난 무질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19년 <특성 없는 남자>의 집필에 들어간다. 당시 카카니엔(Kakanien·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별칭)의 수도 빈은, 그곳에서 활동하던 철학·사상·예술가들의 면면-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에른스트 마흐, 클림트, 실레, 쇤베르크 등등-만큼이나 다양하고 풍성한 사상과 이데올로기, 예술이 모여 들끓고 있었다.
무질은 소설에서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대를 풍미한 사상들-과학철학, 심리학, 군국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등-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보여준다. 그런 까닭에 밀란 쿤데라는 <특성 없는 남자>를 ‘소설 역사상 사유가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작품’, 다시 말해 ‘사유(思惟)소설의 정수’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