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목적 (시2-17)
2026년 2월 4일 (수요일)
찬양 : 주 예수보다 더
본문 : 시17:1-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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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짧은 묵상을 드려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삼고 공의로운 판결을 호소하는 탄원시이다. 1-2절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들으소서, 주의하소서, 기울이소서, 판단하시며, 살피소서>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대상이 상대방이 아니라 <나> 즉 다윗 자신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말을 들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속속들이 살피셔서 공의로 판단해 달라는 요청이다.
억울함을 호소할 때 우리는 자신을 보기보다 상대방을 향하기 쉽다. 그러나 다윗은 오늘 그 억울함의 현장에서조차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살피시기를 당당히 요청한다.
근자에 나는 상대를 바꾸려는 태도에서 나를 바꾸어야 함을 많이 느끼고 있다.
인생의 진정한 변화는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변화에서 온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머리에서일 뿐이고,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내가 아니라 상대와 환경을 바꾸려고 했다. 아니 나를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다윗은 분명 답답한 상황에 탄원하면서 자신을 살펴달라고 외치는 모습이 참으로 큰 울림을 준다.
그는 분명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 그가 부르는 하나님은 <내게 응답하시는 하나님, 주께 피하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주, 눈동자 같이 지키시며, 주의 날개 그늘아래에 감추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지금 다윗을 고통하게 하는 대적들은 <압제하는 악인들,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이다. 이들에 대해 다윗은 마음이 기름에 잠겼다고 했고, 입은 교만하게 말한다고 한다.
이들은 그러니까 양심이 무뎌지고, 약한 자들의 아픔을 외면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로 타인을 무시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자들이다. 권리만 있고 주어진 책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자들이란 말이다.
이들의 삶에 대해 다윗은 이렇게 정의한다. 14절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이것을 히브리 원문의 뜻을 따라 그대로 현대적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 이 생이 전부인 사람들에게서
나를 건져 주소서. 그들의 몫은 오직 이 삶에 있고, 주께서 감추어 두신 것으로 그들의 배는 채워집니다.
그들은 자식들로 만족하며, 남은 재산을 자기 자녀들에게 남길 뿐입니다.>
정리하면, 다윗을 대적하는 이들의 삶은 이 땅이 전부인 인생이며, 현재의 배부름이 최고의 삶이며, 자식과 재산이 인생의 완성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그런 이들과 달리 다윗이 탄원하는 이유는 차원이 다르다. 15절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살펴달라고 탄원하면서 내가 추구하는 삶의 진정한 목적은 <주님을 의로운 중에 뵙는 것이며, 주의 형상을 닮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더 나아가 다윗은 <주님, 이 땅이 전부인 사람들의 풍요 속에서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는 탄원일 수 있다.
나도 이런 기도의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은 끝없는 욕구를 채우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달려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내가 드려야 할 기도가 바로 이런 다윗의 기도임을 배우는 아침이다.
진실로 나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는가?
세상에 지지 않으려는 애씀의 기도는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세상을 미워하며 분노하는 자포자기의 기도는 아니었는지 ~ 진실로 다윗처럼 나를 살펴달라고 외치며 의로운 중에 주님을 뵐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주의 형상을 닮기를 유일한 소원으로 두고 살고 있는지 말씀 앞에 서는 아침이다.
이제 인생의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으로 돌아서는 시간, 다윗의 기도가 변화되었듯 나의 기도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님은 가르쳐 주신다.
주님, 나의 후반전 진실로 주님의 형상을 닮기 원하고 의로운 중에 주님을 뵙는 종이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기도는 세상을 담는 시간이 아니라, 주의 형상을 닮아가는 시간이다.>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적용 질문
1. 답답한 때, 나의 기도는 상대를 바꾸는 기도인가, 자신을 살피는 기도인가?
2. 지금 내 삶에서 ‘이생이 전부인 사람들’처럼 부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3.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상황의 변화인가, 주님의 형상을 닮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