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몸이 약했고, 유난히 침을 많이 흘렸다. 어느 날 아랫집에 사는 상관이네 할머니가 우리 집애 놀러 오자 할머니가 물었다. “우리 큰 손자가 몸이 약하고 저렇게 침을 많이 흘리는데 어째야 한 대요” “두더지 몇 마리 삶아 멕이면 나을 건디,” “두더지를?” “시집 간 우리 딸도 어려서 침을 많이 흘려서 두더지 몇 마리 삶아 멕였더니 낳더리구요.“ ”그런데 두더지를 어떻게 잡는 대요“ ”요령이 있지라우“ ”두더지가 영리해서 잡기가 어려운데, 이렇게 하면 잡을 수 있어요. 이른 새벽에 밭에 갈 때 꼭 삽을 가지고 가서 두더지가 땅을 파고 가는 것이 보일 때 두더지 뒤편을 도망가지 못하게 삽을 꽂아요, 그리고 앞에서부터 두더지 굴을 조근조근 밟아나가면 두더지가 땅 위로 올라올 때 삽으로 때려서 잡으면 돼요.“ ”아이고, 인자사 두더지 잡는 법을 알았네, 고마워유.“ 그 다음 날 새벽. 할머니는 삼촌을 데리고 이른 새벽에 일을 나갔고, 아침 먹으러 돌아올 때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쥐같이 생겼는데, 무섭거나 더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새카만 동물, 내가 처음 본 두더지였다. ”애야 이거 만져봐라, 이렇게 보드란 털 첨 봤다. 나만 두더지를 처음 본 게 아니고 할머니도 처음 본 것이었다. 그날 저녁 할머니가 부엌에서 냄비에다가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구수한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우고, 조금 있다가 할머니가 그 냄비를 가지고 와서 마루에 놓았다. 냄비 뚜껑을 열자 뽀얀 국물이 마치 사골국물처럼 우러난 그 아래 새카만 두더지가 보였다. 할머니는 그 두더지를 꺼내어 털을 벗기고서 한 점 한 점 살을 발라서 소금에 찍어 나에게 먹으라 했다. “”먹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먹어야 침을 안 흘린단다. 약처럼 생각하고 먹어라” 할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 눈을 감은 채 두더지 고기를 먹었는데, 의외로 맛이 있었다. “맛이 괜찮지?” “한 서너 마리만 먹으면 좋아진다더라. 그리고 이 국물 다 마셔야 한다, 알았지?” “예” 국물에 소금을 타서 마셨는데, 그리 역하지 않고 먹을만 했다. 그 뒤로 서너 마리를 더 먹은 뒤에 침을 안 흘리게 되었고, 두더지 고기를 먹던 시절이 막을 내렸다. 지금도 길을 가다가 두더지가 땅을 파고 지나간 흔적을 보면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 뽀얀 국물과 함께 보드랍던 그 털의 감촉이 손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 하다.
답사 중에 두더지 얘기를 하면 같이 길을 걷던 도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선생님이 건강하신 것은 어린 시절에 먹었던 두더지, 땅강아지, 왕매미, 매뚜기, 가재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가? 오래 전 호랑이가 담대 피던 시절에 먹었던 그 자양분들이 지금도 나를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하여간에 자연 속에서 살만서 자연주의주가 되도록 만든 ’자연’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