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하느님,
뭇 백성을 한데 모으시어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셨으니
세례로 새로 난 이들이
같은 마음으로 믿고 서로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 되게 하소서.
제1독서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3,11-26
그 무렵 치유받은 불구자가 11 베드로와 요한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데,
온 백성이 크게 경탄하며 ‘솔로몬 주랑’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12 베드로는 백성을 보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6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20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21 물론 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예로부터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합니다.
22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야 한다.
23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
24 그리고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 말씀을 전한 모든 예언자도
지금의 이때를 예고하였습니다.
25 여러분은 그 예언자들의 자손이고,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희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시며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어 주신 계약의 자손입니다.
26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부속가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4,35-48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의 기쁨을 위해 반드시 준비할 것: 진리(하늘의 뜻)는 은총(부활의 기쁨)을 담는 그릇
영화 ‘나이야드’(2023)는 다이애나 나이야드(Nyad)의 2015년 회고록 『길을 찾아라』를 원작으로 합니다. 이 영화는 2013년 상어 우리의 보호 없이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수영한 최초의 사람이 된 미국인 장거리 수영 선수 다이애나 냐드(Diana Nyad)의 전기 드라마입니다. 나이야드는 책에서 본 한 문장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말해봐. 단 한 번밖에 없는 이 삶을 걸어서 네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약속을 취소하고 침대에 드러눕는 게 일상이 된 다이애나는 어느새 60세에 이르렀습니다. 그녀가 이루고 싶은 것은 이제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어렸을 때의 꿈을 보게 되자 생각이 바뀝니다. 30년 전에 쿠바와 플로리다 해협까지 110마일을 수영으로 완주하겠다는 평생의 꿈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이애나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코치의 지원을 받아 30년 전에 실패한 쿠바에서 플로리다 해협까지 110마일 바다 수영을 완주하겠다는 평생의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여기에서 그녀의 이름 ‘나이야드’가 중요합니다. 그녀의 이름 나이야드는 ‘그리스의 물의 요정’을 뜻합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지어준 그 이름을 굳게 믿고 도전에 도전을 이어가다 5번째에 성공하여 미국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나이야드가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동료의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아무도 믿지 못할 도전을 꿈꿨고 그것을 위해 많은 전문가가 함께했습니다. 코치와 배와 바다 전문가가 필요했고 상어 퇴치 전문가와 독 해파리 전문가, 그리고 의료팀 등도 필요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꿈을 돕는 자에게 하늘도 돕는 자들을 보내주십니다.
도움은 은총입니다. 그 은총을 위해 진리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는 방향입니다. 꿈이고 하늘의 뜻입니다. 하늘의 뜻을 들어주는 자라야 하늘이 은총을 내려주십니다. 운전도 못 하는 아이에게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주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은총입니다. 그런데 그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은총을 주시는 분의 뜻을 따를 결심을 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러한 사명을 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제가 ‘돈쭐’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던 때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월세도 못 내고 있던 차에, 돈이 5천 원밖에 없는 형제에게 무료로 치킨은 내어줬던 치킨집 사장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형이 프랜차이즈 본사에 보낸 편지가 알려지면서 이른바 돈쭐의 주인공이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선행이 알려진 뒤 따뜻한 마음을 악용해 협박하거나 손찌검하는 사람들로 마음고생했습니다. 사장은 그 와중에도 조용한 선행을 계속 이어왔다고 합니다. 돈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사장이 가지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행을 하면서 오히려 내어주는 기쁨에 중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돈을 주는 이유는 단지 그 형제에게 선행을 베푼 것만 보고서는 아닐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돈을 주어도 앞으로 계속 그런 선행을 할 뜻을 보고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이에게 나타나시고 은총을 주십니다. 내가 살아갈 방향, 곧 이웃 사랑이 진리입니다. 그 진리가 은총을 담는 그릇이 됩니다. 자녀 앞에 그릇을 먼저 준비시키지 않고 음식을 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아름답고 멋진 장소에 가시면 무엇부터 하십니까? 아마 감탄사가 먼저 나올 것이고, 그리고 이를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사진도 찍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장소라도 자기 몸 상태에 따라 하지 않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10년 전, 남미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행기 탄 시간만 하루가 될 정도로 먼 곳에 있는 곳이고, 이제 다시 이곳에 오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체험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일정을 마치고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페루 쿠스코에 도착했을 때, 울고 싶었습니다. 안데스산맥 사이의 해발 3,399m에 위치한 15세기에 세워진 고도시입니다. 볼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지만 사진 한 장 찍기도 힘들었습니다. 두통과 어지러움, 계속해서 붕 뜬 느낌과 소화 불량이 계속 제 몸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산병 때문입니다.
고산 증세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과연 아름답고 멋진 경치가 눈에 들어왔을까요? 사람들이 감탄사를 외치는 곳에서 저는 한숨만 내쉬면서 빨리 낮은 곳에 가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고산 증세는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하룻밤을 묵고 나서는 다시 생생해졌고, 그제야 아름답고 멋진 장소가 눈에 보였습니다. 이제는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의 이해에 따라 달라지는 주변 환경에 대해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 환경에 적응하고 바라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보인 것처럼, 주님께도 완전히 적응해야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방문을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자기들 역시 죽지 않겠냐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이미 예수님께서 직접 3번이나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몰랐던 사건이 아닙니다. 3번이나 예고하셨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잊어버렸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이해가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는 희망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을 환호하는 많은 군중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 역시 세상 안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한 군중의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치는 소리, 예수님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는 모욕적인 군중의 모습에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하셨던 모든 말씀을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면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오늘의 명언: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고사성어).
사진설명: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