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1860~1920)께서 1920년 연해주 4월 참변 때 일본군에게 살해된 곳이
연해주의 니콜라예프스크(니항)라는 곳이다는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ㅎㅎ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연해주 일대의 독립운동사를 다루는 분들중에 오류를 계속해 사실이라고 기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명 소설가 박경리의 작품 '토지'를 비롯해 심지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일본어 번역문 일부도 우수리스크(문화어 : 우쑤리쓰끄)의 옛날 이름이 '니콜라예프스크'라고 적고 있습니다.
박경리 님의 소설은 소설이니 그냥 넘어가지만
독립군 두목? 박엘리야가 계획적으로 니콜라예프스크를 공격하고 어린이까지 학살한 니항사건(니콜라예프스크 사건 = 니콜라옙스크)에 대한 보복으로 1920년 4월 일본군이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 출병하여 해삼위나 니콜라예프스크에 계신 최재형 선생 등을 살해했다는 대목 등에서 그냥 코미디를 보는 듯 합니다.
김진명 소설가님은 그래도 사실이라도 좀 있는데.. ㅎㅎㅎ
우수리크스의 예전 약칭은 '니콜스크(Никольск-Уссурийский = 혹은 니콜리스크)'입니다. '니콜'이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니콜스크(현재의 연해주 우수리스크)'와 '니콜라예프스크(니항=니콜라예프스크 나 아무레)'와는 발음과 철자가 많이 다릅니다.
두 도시의 도로상 직선 거리는 대략 1,590Km입니다. 한마디로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입니다.
https://youtu.be/vTpF99B2GVk?si=YsmbZSB9ZqxZ0ju2
<연해주 우수리스크 시의 예전 모습>
우스리스크(예전 명칭은 니콜스크-우수리스키, 혹은 니콜스카예 등등)는 예전부터 고려인이 많이 살았고
현재도 러시아내의 고려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도시중 하나입니다.
아마 국외의 재외동포 거주지중 구 소련권 국가중에서는 최대 규모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수분하 넘어 목단강 연길의 조선족들과도 말이 통해서 국경 넘어 장사도 다니시고 했는데
이제는 한국어 하는 분들이 갈수록 줄어듭니다.
https://youtu.be/o5hAaUq_6r8?si=VudEq9NQySxFB7dZ
1921년 자유시 참변이 일어난 자유시와 중국령 '흑하'시도 아무 관련 없어
1921년 자유시 참변이 일어난 도시가 '흑하'시이고, 자유시 참변이 '흑하사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로 이르쿠츠크파가 자유시 참변이 일어난 곳과 도로상 직선거리 약 200km 떨어진 중국령 '흑하'를 혼동시킬 목적으로 떠든 것이 오늘날까지 잘못 전해진 것이었죠.
상식적으로 '흑하사변'이라고 하면 '흑하에서 일어난 사변'을 말하는 것이죠.
자유시에서 200km 떨어진 곳 말입니다.
마치 서울에서 사건이 일어났으니 '강릉사변'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외국의 사정과 지리, 지명을 혼동시키고
자기 주장만을 세뇌시키려고 한 점도 있어 보입니다. 예전에 현지에 사셨던 분들이 그걸 혼동했겠습니까? ㅎㅎ
첫댓글 오해를 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