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에 대해서는 99년에 쓴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책에 이미 언급을 해둔 바가 있었습니다만,
몇마디만 하지요.
우선 화랑세기는 조심스럽게 전제를 깔고서 인용해도 될 정도의 책이다고 봅니다. 삼국사기 정도는 아니어도 삼국유사에 비견될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을 굳혀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창화의 나머지 책에 대해서는 인용해서는 안될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박창화의 글 들이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봅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창화의 이력 가운데 일본 궁내성도서료에 1933년부터 1942년까지 사무촉탁직으로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1999년 5월에 kbs 역사스폐셜 팀과 함께 박창화의 아들인 박인규씨 집에 가서 직접 원본 책들을 보았습니다.
1박 2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게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그 날 거의 잠도 안자고 책들을 뒤져 보기도 했고,
이후로 나는 박창화의 글들에 대해서 한동안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그 책들에 대한 사본을 올려놓았을 때 당연히 입수를 해서 다시금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처럼 그 책들을 꼼꼼하게 읽고 완전히 분석할 정도로 읽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박창화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들을 만들었을까를 고민해보았습니다.
그는 한학자, 유학자 입니다. 주역 등에 관심이 많아 직접 주역 책을 옮겨적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나는 그가 을불대왕전과 같은 파격적인 책을 상상해낼 수 있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나는 그가 일본 궁내성도서료에 근무하면서, 원본 자료를 갖고 나올 수 없었으므로 그 책들을 보고 기억에 의존해서 베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박창화가 그가 남긴 책들 가운데 일부를 창작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몇몇 책들은 그가 창작해서 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많은 책들을 그가 창작했다기 볼 수는 없습니다. 베낀 것이 대다수임에 분명합니다.)
박창화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직접 지은 책은 [강역고]라고만 말했다고 햇습니다.
그리고 [화랑세기] 만큼은 자식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책에 대해서는 박인규씨 말로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박창화에게 나머지 책들은 특별히 가치가 없었거나, 그 자신도 고증을 하여 인용할 만한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겨놓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던 듯 합니다.
그는 위서를 만들려고 했던 여러 사람들과는 전혀 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유립과 달리 체계적인 책을 남기지 않았고, 자신의 역사상은 [강역고]로 말하고 끝냈습니다. 나머지 책들은 베낀 것이 대다수라고 생각됩니다. 백제 관련 책은 삼국사기 백제 본기와 거의 유사합니다. 위서를 만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굳이 이런 책을 남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만큼 박창화를 위서 창작자로 몰아붙이는 것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문제는 박창화가 남긴 책들의 원본들이 대체 어떤 성격의 책이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박창화가 어떤 책을 베낀 것이라고 해서, [쌍선개장기]와 같은 책이 정말 신뢰할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박창화가 본 책들은 일본이 조선에서 가져간 책들 가운데 주로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도가 계통의 문학작품들과 사서들이라고 봅니다. 즉 조선의 문학작품과 야사라고 본다면, 사서로서의 가치는 거의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사학사적 가치만을 인정받겠지요.
그의 책 가운데 저자가 있다고 기록한 책은 나의 기억으로는 [추모경] 뿐인 것으로 압니다. 나머지도 더 있는지는 대충 읽어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책들은 원본이 설령 일본에서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언제 쓰여졌는지도 명확하지 못하니 문체나 어휘 등으로 통해 연구를 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대개는 조선 후기의 도가 문학 작품이나, 도가 계통 사서라고 단정되어 버리고 끝나 버릴 것입니다.
[추모경]의 경우 고려시대 황주량이 쓴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책을 절대로 고려시대 작품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 책 역시 조선 후기 작품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나는 오히려 박창화의 이런 책들 보다는 [청학집], [삼한습유],[오계집]과 같은 도가 문학이 더 먼저 주목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참고로 이 3권의 책은 최창록 교수에 의한 번역본이 나와 있음)
이런 책들을 통해서 나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발견하려고 했던 우리 고대사상(像)이 무엇인지가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지금은 화랑세기를 제외한 박창화의 다른 책들에 대한 관심은 꺼 버리고 있습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