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 그리고 곰과 호랑이
굴은 토속신앙의 대표적인 성지이다. 더구나 팔공산은 굴과 관련된 전설이 많다. 대부분이 원효가. 또는 김유신 장군이, 스님이 도를 닦아서 깨우침을 얻었다는 형태이다. 깨우침을 얻었다는 것은 새롭게 태어남 즉 탄생을 의미한다. 굴은 잘 알다시피 모신신앙의 전형으로서 성기 신앙으로 발전한다.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에도 굴이 아주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 곰과 호랑이 이야기가 신화로 등장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산신령을 예로서 굴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절에 가면 거의 예외 없이 산신령을 모시고 있다. 칠성님과 같이 모신 곳도 있다. 그러나 절의 구석자리로 밀려나 있어 옳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팔공산의 파계사와 은해사에는 산령각을 두었다. 북지장사에는 산신각을 두었다. 동화사와 부인사에는 칠성각을 두었다.
전각 안에 모셔져 있는 도상을 보면 산신은 호랑이와 칠성님은 봉황을 , 용신은 거북을 탈 것으로 묘사한 것이 많다.(호랑이는 지상의 왕이고, 봉황은 하늘의 상징이며, 거북은 우리의 전통 수신이다.) 민간에서 실제로 믿고 있는 산신은 수염이 허연 노인이 아니다. 산군이라면서 호랑이를 모시는 것이 관습이다.
얼마 전에 팔공산이라는 산 이름의 유래를 ‘곰’이 뿌리로서 ‘공’으로 음이 변하였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우리 지역에는 곰을 산신으로 모시는 곳은 없다. 더욱이 경산 지방에서 전래되는 곰의 전설이 두 어 개 있지만 곰은 모두 악령으로 표현하였다.
산신은 원래 지신적 요소가 있다. 단군신화에는 곰이 호랑이보다 우위에 있다. 학자들이 단군신화를 해석하기를 ‘토착 농경문화와 북방에서 유입된 유목민들의 천신족 문화가 결합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북방의 유목민에게는 햇빛이 생명의 상징이다.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하는 동굴에서는 생명의 상징인 햇빛을 보지 못한다. 동굴에서 삼칠일 만에 인간으로 재생하는 곰, 즉 옹녀는 곡물신이자 생명신으로 농경문화의 상징이다. 이 두 문화가 결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단군신화이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곰이 우리의 어머니 신이어야 하고, 곰이 우리의 산신령으로 되어야 한다.
4-5천 년 전에 북방의 유목민이 남하하여 남방의 농경민과 혼합을 이루는 것은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역사적 사실이다. 유목민과 농경민 사이에는 특징적 차이점이 있다. 유목민은 무력이 강한 반면 문화적 힘은 농경민이 강하다. 유목민은 무력으로 농경민을 정복하지만 그 후에는 문화적 정복을 당한다. 그래서 두 문화는 서로 결합하고, 융합하게 된다. 단군신화도 그와 같은 역사-문화적 맥락을 보여준다.
토착민들은 남하해오는 유목민들과 어떻게 관계를 정립하였을까? 쉽게 동화하기도 하였지만 거칠게 저항도 하였다. 유목민이 남하하면서 토착민의 저항을 불러왔다고 하여 6. 25 전쟁 때처럼 무기를 들고 처내려 와서 전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풀을 따라 서서히 이동하면서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본다. 그 과정에 토착민과 다투기도 하고, 같이 어울려 살기도 하면서 만들어 낸 신화가 단군신화이다. 유대 민족이 가나안 땅으로 이동해서 토착민인 블렛셋 족과 관계를 맺는 과정과 같다. 지도자 가문이 혼인도 하였다. 다윗처럼 전쟁도 하였다. 내 나름으로 설명을 해보자면 곰을 토템으로 하는 토착민은 혼인의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동화되어 갔고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농경민은 저항하였으라라고 믿는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고구려의 동쪽에 있는 예에서는 호랑이를 신으로 모신다고 기록하였다. 예맥은 오늘의 함경도 지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