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계간 『미네르바』 신인상
부처가 된 노가리 / 이 효
장엄한 일출을 숯불에 굽는다
벌겋게 익어버린 노을
질긴 바다를 굽고 또 굽는다
쪼그라든 몸통, 가시는 슬픔의 무게를 던다
머리는 어디로 갔을까?
짭짤한 맛, 고단한 날들의 바람
바다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식탁에 놓인 고뇌의 모서리
씹힐 때마다 걸리는 가시
거친 세상에서 시간을 견디는
휘우듬한 등은 일어서지 못한다
실핏줄도 막혀버린 어제와 오늘
수심 깊은 시퍼름이 울컥 올라온다
바다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출렁이는 꼬리가 잘린 것
부드럽게 짓이긴 속살
누군가의 입에서 상냥한 저녁이 된다
허공을 움켜잡은 바다의 조각들
수상한 부처가 되어간다
단팥죽의 비밀 / 이 효
끈적한 남자의 눈은 겨울이다
동동 떠 있는 하얀 눈동자
초점 잃은 아버지다
불안한 내 손은 탁자 아래서
울컹거리는 안부를 갉아먹는다
시간을 거슬러 복잡한 탄생을
긴 개 혓바닥처럼 중얼거리는 남자
베레모를 쓴 양복은 슬픔을 부른다
제기랄, 이놈의 단팥죽
달기는 왜 이리도 달지
애꿎은 물컵만 붙잡고 벌거벗은
무정을 벌컥 들이킨다
흘러나오는 노래, 사랑의 상처는
달콤하단다, 지랄
아버지를 만나는 이유는 굳은살이다
말과 말 사이를 빠져나오고 싶은 적막
그 뜨겁고 끈적거린 시간을
수저로 떠서 혀끝에 댄다
아버지는 빗방울처럼 또 사라졌다
난 그 후로 단팥죽을 먹지 않는다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물컹한 기억들
동네 단팥죽 가게 앞을 멀리 돌아간다
내 유년은 붉은팥만 한 눈물이
보름달 안에서 툭툭 터진다
횡단보도 / 이 효
얼룩말 한 마리 누워있다
하얀 줄무늬에 덧입힌 시간의 무게
수많은 자동차가 정글을 몰아낸다
무수히 밟힌 발자국 소리에도 침묵하는
얼마나 그리웠을까, 고향이
귀환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는 직선들
도시로 몰려온 사람들 마음에 그은 선
싸늘한 백기들이 태양 아래 시든다
바퀴 달린 네모난 폭력은 달린다
호랑이 우는 소리도 하얗다
사나운 이빨은 도시 밀실 속에 감추고
하루 종일 밟히는 자도, 밟는 자도,
아스팔트 바닥에 끈끈한 인연으로 밀착된다
파란 신호등이 켜지고
등을 밟고 내일로 건너가야 하는 도시
미안하다는 말도 잊은 채 오늘을 흘린다
세상을 향해 벌떡 일어난다
자동차들이 너의 몸통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아우성친다
내가 있는 여기는 어디일까
눈, 코, 입을 빌딩 창문에 걸어두고
밤마다 흔들리는 나무도 미친 동물이 된다
나무가 대신 수신호를 보내는 저쪽으로
슬픈 줄무늬는 초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효 시인 약력
2021년 월간『신문예』등단
2022년 시집 『당신의 숨 한 번』
2024년 시집 『장미는 고양이다』
제3회 아태문학상 수상
제1회 서울시민문학상수상
제24회 황진이문학상 본상
2025년 계간 『미네르바』 신인상
미네르바 회원
한국문인협회
국제PEN 한국본부
노원문인협회 회원
인사동시인협회부회장
카페 게시글
┏…시,시조,동시
부처가 된 노가리 / 이 효
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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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7
25.03.26 16:2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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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효 선생님 축하드립니딘
남승원 선생님 ^^ 감사합니다.
2025년 노원문인협회가 새로 구성된 임원진과 함께
무궁한 발전이 있길 기원합니다. ^^
미네르바 신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시가 재미있고 소재가 독특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