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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漢字)는 오늘날에도 동양(東洋)의 대한민국(大韓民國),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중화민국(中華民國), 일본국(日本國)에서 사용(使用)되고 있는 전통적(傳統的) 문자(文字)입니다.
그런데 한자(漢字)의 의미(意味; 뜻)와 달리, 한자(漢字)의 발음(發音; 소리)은 이른바 동양(東洋) 삼국(三國)에서 그 차이(差異)가 있습니다.
한자(漢字)가 최초(最初)로 만들어진 때부터 하나의 한자(漢字)마다 여러 가지의 발음(發音)이 설정(設定)되었거나, 처음부터 지역(地域)에 따라 그 발음(發音)이 서로 달랐을까요?
아니면, 세월(歲月)이 점차(漸次) 흐르면서 지역별(地域別)로 자연(自然)스럽게 한자(漢字)의 발음(發音)에 차이(差異)가 발생(發生)하였을까요?
한자(漢字) 음운(音韻)의 변천(變遷) 원인(原因)을 규명(糾明)하는 일은 언어학(言語學)의 영역(領域)이지만, 한자음(漢字音)에 관(關)하여 살펴보는 것도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에 한 발짝 다가서는 방법(方法)이라고 필자(筆者)는 생각합니다.
역사적(歷史的)으로, 한자(漢字)에는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이라는 발음(發音)이 존재(存在)하였다고 합니다.
그럼,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의 일반적(一般的) 정의(定義)는 무엇일까요?
‘두산동아(斗山東亞)’의 <새 국어사전(國語辭典)> 제4판(第四版))에 따르면,
‘정음’(正音)은 글자의 ‘바른 소리’ 또는 ‘제소리’라고 하며, ‘속음’(俗音)은 ‘익은소리’ 또는 ‘버릇소리’라고도 하며 한자(漢字)의 원음(原音)이 변(變)하여 널리 통용(通用)되는 소리(音)라고 합니다.
속음(俗音)의 사례(事例)는 ‘솰’(刷)을 ‘쇄’로, ‘협’(洽)을 ‘흡’으로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정음(正音)은 본음(本音) 또는 원음(原音)으로 볼 수 있고, 속음(俗音)은 관용음(慣用音) 또는 통용음(通用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자음(漢字音)을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으로 구분(區分)하는 기준(基準)은 무엇일까요?
한자(漢字)가 사용(使用)되는 지역(地域)을 기준(基準)으로 할까요?
아니면, 한자(漢字) 사용(使用)의 주체(主體)를 기준(基準)으로 할까요?
예(例)를 들어, 정음(正音)은 귀족(貴族)들이 주(主)로 사용(使用)하였고, 속음(俗音)은 서민(庶民)들이 즐겨 사용(使用)하였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기준(基準)으로 구별(區別)되었을까요?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과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에서는 ‘지역’(地域)을 기준(基準)으로 하여 ‘중국’(中國)의 한자음(漢字音)을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으로 구분(區分)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그 자료(資料)를 소개(紹介)합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에 따르면,
현재(現在) 규장각(奎章閣) 도서(圖書)에는 <周易正音(주역정음)>을 제외(除外)한 목활자본(木活字本) <書傳正音(서전정음)>‚ <詩傳正音(시전정음)>‚ <春秋正音(춘추정음)>‚ <大學正音(대학정음)>‚ <中庸正音(중용정음)>‚ <論語正音(논어정음)>‚ <孟子正音(맹자정음)>이 있으며, 이 책(冊)들이 늦어도 1735년에 간행(刊行)된 초간본(初刊本)인 것으로 추정(推定)된다고 합니다.
[출처=규장각한국학연구원, http://kyujanggak.snu.ac.kr/]
예(例)를 들어, <孟子正音(맹자정음)>은 무엇일까요?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에 따르면,
<孟子正音(맹자정음)>은 유교(儒敎) 경전(經典)인 <맹자(孟子)>의 원문(原文)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중국(中國)의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을 함께 병기(倂記)한 책(冊)이며, <맹자(孟子)>의 주음표기(注音表記)는 원래(元來) 중국어(中國語) 역관(譯官)들에게 중국(中國)의 원음(原音)을 정확(正確)히 가르치기 위한 목적(目的)으로 간행(刊行)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음류(正音類)는 원문(原文)에 대(對)한 언해(諺解)가 없는 것이 특색(特色)이라고 합니다.
이 책(冊)에서는 <맹자(孟子)>에 나오는 3만(萬) 8985개(個)의 한자(漢字)에 대하여 일일(一一)이 표준음(標準音) 곧 정음(正音)인 북방음(北方音)과 속음(俗音)인 남방음(南方音)으로 구분(區分)하여 왼쪽(左側)에는 표준음(標準音)인 정음(正音)을, 오른쪽(右側)에는 속음(俗音)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표기(表記)하였으며, 사성(四聲)의 표기(表記)인 방점(傍點)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책(冊)은 당시(當時) 중국(中國) 한자음(漢字音)의 북방음(北方音)과 남방음(南方音)의 음운(音韻) 체계(體系)가 상당(相當)히 다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국(中國)은 어느 지역(地域)을 가리키며, 정음(正音)인 ‘북방음’(北方音)과 속음(俗音)인 ‘남방음’(南方音)의 실체(實體)는 무엇일까요?
위에 인용(引用)된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의 자료(資料)에 따르면,
중국(中國)이 북방(北方)과 남방(南方) 지역(地域)으로 구분(區分)되고 있습니다.
두 지역(地域)은 구체적(具體的)으로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중국(中國)은 이른바 지나(支那) 대륙(大陸)의 전역(全域)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만약(萬若) 그렇다면, 중간(中間) 지역(地域) 없이, 황하(黃河) 또는 장강(長江)을 기준(基準)으로 지나(支那) 대륙(大陸)을 북방(北方)과 남방(南方)으로 구별(區別)하여, 크게 두 지역(地域)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황하(黃河)와 장강(長江) 사이의 중간(中間) 지역(地域)을 별도(別途)로 좁은 뜻(狹義)의 ‘중원’(中原)이라 부르고, 이곳을 기준(基準)으로 북(北)쪽 지역(地域)을 북방(北方)으로, 남(南)쪽 지방(地方)을 남방(南方)으로 구분(區分)하여, 크게 세 지역(地域)이 되는 것일까요?
한자음(漢字音)에 관(關)하여 더 구체적(具體的)으로 살펴보려면, 이른바 중국(中國)과 동국(東國)의 관계(關係)도 함께 검토(檢討)할 필요(必要)가 있습니다.
<孟子正音(맹자정음)>에서는 한자(漢字)에 대(對)하여 ‘중국’(中國)의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18세기(世紀) ‘동국’(東國)의 한자음(漢字音)은 어떠하였을까요?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에 따르면,
세종대왕(世宗大王) 때에 엮은 <東國正韻(동국정운)>(1447년~1448년)이라는 음운서(音韻書)는 1443년 훈민정음(訓民正音) 완성(完成) 후(後)에 한자음(漢字音)의 혼란(混亂)을 바로잡기 위하여 중국(中國)의 운서(韻書)인 <廣韻(광운)>, <集韻(집운)>, <洪武正韻(홍무정운)> 등(等)을 참고(參考)로 삼아 엮었다고 합니다.
18세기(世紀) ‘동국’(東國)의 한자음(漢字音)은 15세기(世紀)의 <東國正韻(동국정운)>에 나오는 한자(漢字) 발음(發音)과 얼마만큼 차이(差異)가 있었을까요?
중국(中國)과 동국(東國)은 그 성격(性格)이 서로 완전(完全)히 다른 것을 지칭(指稱)하는 낱말일까요?
중국(中國)과 동국(東國)은 모두 ‘조선’(朝鮮)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나라(國; 邦)들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중국’(中國)에도 한자(漢字)의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이 있었고, ‘동국’(東國)에도 한자(漢字)의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이 있었을까요?
중국(中國)의 한자음(漢字音)과 동국(東國)의 한자음(漢字音) 둘 중(中)에서 어느 쪽이 원형(原型) 또는 원조(元祖)일까요?
<대륙사관(大陸史觀)>을 토대(土臺)로 하여 위에 인용(引用)된 자료(資料)를 검토(檢討)해보니까, 여러 가지 의문(疑問)이 필자(筆者)의 머리 속에서 떠오릅니다.
지금(只今)부터는 “한자(漢字)의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에 관(關)하여 다소(多少) 전문적(專門的)인 자료(資料)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8세기(世紀)의 <經書正音(경서정음)>에 관(關)한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에 따르면,
<經書正音(경서정음)>은 <周易正音(주역정음)>, <書傳正音(서전정음)>‚ <詩傳正音(시전정음)>‚ <春秋正音(춘추정음)>‚ <大學正音(대학정음)>‚ <中庸正音(중용정음)>‚ <論語正音(논어정음)>‚ <孟子正音(맹자정음)>으로 구성(構成)되는데, 8종(種)의 유교(儒敎) 경전(經典)의 원문(原文)에 각(各) 한자(漢字)마다 두 가지의 한어(漢語) 발음(發音)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달아 놓은 책(冊)이라고 합니다.
구체적(具體的)으로 설명(說明)하면, 한어(漢語) 원문(原文)의 각(各) 한자(漢字) 밑에 좌우(左右)로 한어음(漢語音)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표기(表記)하는 방식(方式)은 사역원(司譯院) 역학서(譯學書)에서는 <飜譯老乞大(번역노걸대)>와 <飜譯朴通事(번역박통사)>에서 등장(登場)하기 시작(始作)하였으며 이후(以後)의 한학서(漢學書)들에도 나타나는데,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 표기(表記) 중에서 왼쪽(左側)은 한어(漢語) 규범음(規範音) 또는 표준음(標準音)인 정음(正音)이며‚ 오른쪽(右側)은 한어(漢語) 현실음(現實音)인 속음(俗音)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經書正音(경서정음)>의 좌측음(左側音)은 <洪武正韻譯訓(홍무정운역훈)>, <四聲通解(사성통해)>의 정음(正音)과 거의 일치(一致)하고 있으나 운미(韻尾)에 있어서만 차이(差異)를 보이는데, <經書正音(경서정음)>의 좌측음(左側音)에 나타나는 입성운미(入聲韻尾)와 지지치(支紙寘) 3운(韻)의 종성(終聲) 표기(表記)는 오히려 <洪武正韻譯訓(홍무정운역훈)>이나 <四聲通解(사성통해)>의 속음(俗音) 표기(表記)와 가깝고, 18세기(世紀) 간행(刊行)의 <老乞大諺解(노걸대언해)>(1745년)‚ <朴通事新釋諺解(박통사신석언해)>(1765년)‚ <重刊老乞大諺解(중간노걸대언해)>(1795년~) 등(等)의 좌측음(左側音)과 일치(一致)한다고 합니다.
한편 <經書正音(경서정음)>의 우측음(右側音)은 <老乞大諺解(노걸대언해)>(1670년)의 우측음(右側音)과 일치(一致)하는데, 이 책(冊)이 간행(刊行)된 시기(時期)의 한어음(漢語音)을 반영(反映)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비슷한 시기(時期)에 간행(刊行)된 <朴通事新釋諺解(박통사신석언해)>나 <重刊老乞大諺解(중간노걸대언해)>가 구개음화(口蓋音化)‚ 촬구호(撮口呼)에서의 변화(變化)‚ 일모자(日母字)에서의 변화(變化)‚ 산섭계(山攝系) 운모(韻母)의 변화(變化) 등(等) 17세기(世紀)~18세기(世紀)에 북방(北方) 한어(漢語)에서 일어난 음운변화(音韻變化)를 우측음(右側音)에서 생생히 반영(反映)하고 있는 반면(反面), <經書正音(경서정음)>의 우측음(右側音)은 초간본(初刊本)은 물론(勿論) 1784년 간행(刊行)의 중간본(重刊本)도 이러한 변화(變化)를 전혀 반영(反映)해 주고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經書正音(경서정음)>의 우측음(右側音)은 금속음(今俗音)이라기보다는 전(前)시대(時代)의 한어(漢語) 현실음(現實音)인 속음(俗音)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妥當)해 보인다고 합니다.
<經書正音(경서정음)>은 독자적(獨自的)인 언어학적(言語學的) 자료(資料)로서의 가치(價値)보다는 기존(旣存)의 경서(經書) 원문(原文)에 한어음(漢語音)만을 달아 놓은 책(冊)을 간행(刊行)한 이유(理由)가 무엇인가에 대(對)해 더 관심(關心)이 기울여지며, 현재(現在)로서는 한어(漢語) 통역관(通譯官)들에게 당시(當時)의 북방(北方) 한어음(漢語音)으로 경서(經書)를 읽도록 하여 통역(通譯)에서 경서(經書)가 인용(引用)될 경우(境遇)에 대비(對備)하게 하였다는 견해(見解)가 가장 설득력(說得力) 있어 보이지만 앞으로 보다 면밀(綿密)한 검토(檢討)가 요구(要求)된다고 합니다.
[출처=규장각한국학연구원, http://kyujanggak.snu.ac.kr/]
추가적(追加的)으로, 8종(種)의 <經書正音(경서정음)> 중(中)에서도 <춘추정음(春秋正音)>에 관(關)하여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를 검토(檢討)해보겠습니다.
<춘추정음(春秋正音)>은 <춘추(春秋)>의 경문(經文)에 정음(正音)과 속음(俗音) 두 개(個)의 발음(發音)을 표기(表記)하였는데‚ 이 두 가지의 중국어음(中國語音)은 1517년에 간행(刊行)된 최세진(崔世珍, ?~1542년)의 <四聲通解(사성통해)> 권말(卷末)에 수록(收錄)된 <飜譯老乞大朴通事凡例(번역노걸대박통사범례)>의 설명(說明)에 따르면, i) 좌측(左側)은 이상적(理想的)인 중국음(中國音) 곧 정음(正音)이고‚ ii) 우측(右側)은 당시(當時) 북방(北方) 중국어(中國語)의 현실음(現實音) 곧 속음(俗音)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원문(原文) 각(各) 한자(漢字) 아래에 두 가지의 중국어음(中國語音)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표시(表示)하는 관습(慣習)은 16세기(世紀)부터 19세기(世紀) 말(末)까지 간행(刊行)된 <老乞大諺解(노걸대언해)>, <朴通事諺解(박통사언해)> 등(等)의 모든 언해본(諺解本) 한학서(漢學書)에 일관(一貫)되게 나타나는 특징(特徵)이라고 합니다.
18세기(世紀) 이전(以前)에 간행(刊行)된 언해본(諺解本) 한학서(漢學書)들의 좌측음(左側音)은 <洪武正韻譯訓(홍무정운역훈)>과 <四聲通解(사성통해)>에서 제시(提示)된 속음(俗音)과 대체(大體)로 일치(一致)하지만‚ <經書正音(경서정음)>을 비롯하여 18세기(世紀)에 간행(刊行)된 현존(現存) 한학서(漢學書)들의 좌측음(左側音)은 <四聲通解(사성통해)>의 정음(正音)에 더 가까우며, 우측음(右側音)은 17세기(世紀)~18세기(世紀)에 간행(刊行)된 언해본(諺解本) 한학서(漢學書)들의 우측음(右側音)과 대체(大體)로 일치(一致)한다고 합니다.
[출처=규장각한국학연구원, http://kyujanggak.snu.ac.kr/]
바로 위에 인용(引用)된 자료(資料)에서는, 중국(中國)의 한자음(漢字音)을 i) 이상적(理想的)인 중국음(中國音) 곧 정음(正音)과 ii) 당시(當時) 북방(北方) 중국어(中國語)의 현실음(現實音) 곧 속음(俗音)으로 구별(區別)하고 있습니다.
결국(結局), 여기서는 정음(正音)을 ‘이상음’(理想音)으로, 속음(俗音)을 ‘현실음’(現實音)으로 설명(說明)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필자(筆者)가 앞에서 소개(紹介)한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의 <孟子正音(맹자정음)> 자료(資料)에서는, 정음(正音)을 중국(中國)의 북방음(北方音)으로, 속음(俗音)을 중국(中國)의 남방음(南方音)으로 설명(說明)하고 있어서 서로 차이(差異)가 나는 것이 문제(問題)입니다.
<춘추정음(春秋正音)>이든 <孟子正音(맹자정음)>이든 모두 <經書正音(경서정음)>에 해당(該當)되는 것이므로 그 내용(內容)이 서로 다르면 문제(問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자료(資料)에 오류(誤謬)가 있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관련(關聯) 자료(資料)를 추가적(追加的)으로 검토(檢討)해보겠습니다.
8종(種)의 <經書正音(경서정음)> 중(中)에서 <中庸正音(중용정음)>에 관(關)한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에 따르면,
<중용(中庸)> 원문(原文)의 한자(漢字)를 중국음(中國音)의 정음(正音) 곧 북방음(北方音)과 속음(俗音) 곧 남방음(南方音)으로 구분(區分)하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병기(倂記)한 책(冊)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大學正音(대학정음)>에 관(關)한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에 따르면,
<대학(大學)> 원문(原文)에 중국(中國)의 정음(正音)인 북방음(北方音)과 속음(俗音)인 남방음(南方音)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표기(表記)하여 놓은 책(冊)으로 토(吐)나 언해(諺解)는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 창제(創製) 동기(動機)는 중국(中國) 한자음(漢字音) 전체(全體)를 표기(表記)하기 위한 문자(文字) 체계(體系)가 아니라 정음(正音)의 표기(表記)를 위한 것이 아닐까 라고 추측(推測)된다고 합니다.
또한 도산본(陶山本) <大學諺解(대학언해)>의 한자음(漢字音)과 비교(比較)하면, 이 책(冊)에 나오는 중국(中國) 한자음(漢字音)의 정음(正音) 및 속음(俗音)과 동국(東國)의 한자음(漢字音)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冊)에 나오는 중국(中國) 북방음(北方音)의 표기(表記)가 15세기(世紀) <東國正韻(동국정운)>(1447년~1448년)의 표기(表記)와 일치(一致)하고 있으나, 동국(東國)에 있어서 18세기(世紀) 당시(當時)의 현실(現實) 한자음(漢字音)은 남방음(南方音)에 가까웠던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자음(漢字音) 자체(自體)가 <大學正音(대학정음)>이 간행(刊行)된 당시(當時)의 것인지는 의문(疑問)이지만, 어쨌든 18세기(世紀) 중국(中國) 한자음(漢字音) 연구(硏究)를 위한 자료(資料)로 가치(價値)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규장각한국학연구원, http://kyujanggak.snu.ac.kr/]
<書傳正音(서전정음)>‚ <詩傳正音(시전정음)>‚ <論語正音(논어정음)>‚ <孟子正音(맹자정음)>에 관(關)한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에서도,
경전(經典) 원문(原文)에 중국(中國)의 정음(正音)인 북방음(北方音)과 속음(俗音)인 남방음(南方音)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표기(表記)하여 놓은 책(冊)이라고 합니다.
[출처=규장각한국학연구원, http://kyujanggak.snu.ac.kr/]
지금(只今)까지 추가(追加)로 검토(檢討)한 자료(資料)들을 종합(綜合)하면,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춘추정음(春秋正音)> 자료(資料)에 나오는 “북방(北方) 중국어(中國語)의 현실음(現實音)”이라는 표현(表現)을 “중국(中國) 남방음(南方音)”으로 이해(理解)하여야 된다고 필자(筆者)는 생각합니다.
18세기(世紀) 중국(中國)에서는 한자(漢字)의 남방음(南方音)이 유행(流行)하였을까요?
가령(假令) 18세기(世紀) 중국(中國)의 강역(疆域)을 지나(支那) 대륙(大陸)으로 본다면,
그 당시(當時) 지나(支那)의 북방(北方) 지역(地域)보다는 남방(南方) 지역(地域)의 인구(人口)가 훨씬 많았으며, 대항해(大航海) 시대(時代)부터 서양(西洋) 세력(勢力)에 의(依)하여 바다(海)에 인접(隣接)한 남방(南方)의 주요(主要) 도시(都市)들이 개항(開港)되어 그곳에 산업(産業)과 인구(人口)가 지속적(持續的)으로 집중(集中)되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춘추정음(春秋正音)>에 관(關)한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에서는 정음(正音)을 ‘이상음’(理想音)으로, 속음(俗音)을 ‘현실음’(現實音)이라고 설명(說明)하고 있습니다.
‘이상음’(理想音)은 중국(中國)의 북방음(北方音)이고, ‘현실음’(現實音)은 중국(中國)의 남방음(南方音)일까요?
한자(漢字)의 ‘이상음’(理想音)과 ‘현실음’(現實音)을 구별(區別)하는 다른 기준(基準)은 없을까요?
사전적(辭典的)으로, 현실음(現實音)이라는 것은 현실적(現實的)으로 사용(使用)되는 발음(發音)이고, 속음(俗音)이라는 것은 관용음(慣用音) 또는 통용음(通用音)을 가리킵니다.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에 따르면,
중국어(中國語) 음운사(音韻史)에서는 i) 자음(字音) 곧 한자(漢字)의 음운(音韻)과 ii) 어음(語音)의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지금까지 어음사(語音史)에 속(屬)하는 것은 전(傳)하는 것이 없고, 자음사(字音史)에 관(關)한 자료(資料)만이 전(傳)하고 있다고 합니다.
운서(韻書)나 운도(韻圖)에서 보여주는 음운체계(音韻體系)는 어디까지나 중국(中國) 각(各) 시대(時代)의 자음(字音)에 관(關)한 체계(體系)일 뿐, 실제(實際)로 사용(使用)되고 있던 어음(語音)의 체계(體系)는 아니라고 합니다.
따라서 중국어(中國語) 음운사(音韻史)는 자음(字音)의 역사(歷史)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중국(中國) 한자음사(漢字音史)의 시대(時代) 구분(區分)은 학자(學者)에 따라 다르나, 대략(大略) 상고음(上古音), 중고음(中古音; 隋-唐代 音), 근고음(近古音; 宋代 音), 근대음(近代音; 元代 以後 音), 현대음(現代音) 등(等)으로 구분(區分)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韓國) 자음(字音) 곧 한국식(韓國式) 한자(漢字) 음운(音韻)의 모태(母胎)는 중국(中國)의 각(各) 시대(時代) 음(音)이 끊임없이 전래(傳來)되어 형성(形成)된 것이지만, 가장 큰 바탕이 된 것은 ‘당대(唐代)의 장안음(長安音)’인 것으로 인정(認定)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위의 자료(資料)에 따르면,
특이(特異)하게도 한자(漢字)의 ‘자음’(字音)과 ‘어음’(語音)이 서로 구별(區別)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음’(字音)은 운서(韻書)나 운도(韻圖)에서 보여주는 ‘한자(漢字)의 음운(音韻)’을 가리키며, ‘어음’(語音)은 입(口)으로 소리(聲)를 내거나 귀(耳)로 들을 수 있는 ‘실제(實際) 발음(發音)’이라고 보입니다.
운서(韻書)나 운도(韻圖)에서 보여주는 음운체계(音韻體系)는 ‘자음’(字音)에 관(關)한 체계(體系)일 뿐이므로, 실제(實際)의 어음(語音)과 자음(字音)은 서로 일치(一致)하지 않는 경우(境遇)가 많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推測)됩니다.
거의 모든 ‘소리’(聲)를 문자(文字)로 표기(表記)할 수 있다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가 상고(上古) 시대(時代)부터 한자(漢字)의 발음(發音) 부호(符號)로 줄곧 사용(使用)되었다면 그러한 일이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필자(筆者)는 생각합니다.
한국식(韓國式) 한자(漢字) 음운(音韻)의 가장 큰 바탕이 된 것은 ‘당대(唐代)의 장안음(長安音)’이라고 하므로, 이러한 자음(字音)이야말로 15세기(世紀) 동국(東國)의 한자(漢字) ‘정음’(正音)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상음’(理想音)은 ‘자음’(字音) 곧 운서(韻書)나 운도(韻圖)에서 보여주는 음운체계(音韻體系)이고, ‘현실음’(現實音)은 ‘어음’(語音) 곧 실제(實際)로 일상(日常) 사용(使用)되었던 발음(發音)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지금(只今)까지 한자(漢字)의 ‘중국’(中國) 정음(正音) 곧 이상음(理想音)과 속음(俗音) 곧 현실음(現實音)에 관(關)하여 검토(檢討)하였습니다.
그럼, 18세기(世紀) ‘동국’(東國)에서는 한자음(漢字音)을 어떻게 구분(區分)하였을까요?
무엇보다 먼저 ‘화음’(華音)과 ‘동음’(東音)이라는 한자음(漢字音)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18세기(世紀)의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라는 책(冊)을 검토(檢討)해보겠습니다.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의 ‘華東’(화동)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이와 관련(關聯)하여, 조선(朝鮮) 전기(前期)의 학자(學者) 김종직(金宗直, 1431년~1492년)의 시문집(詩文集)인 <점필재집(佔畢齋集)>의 일부(一部) 내용(內容)을 아래에 소개(紹介)합니다.
<안음현(安陰縣)에 향교(鄕校)를 새로 창건(創建)하다>
“조선(朝鮮)이 황제(皇帝)의 명(命)을 받아 동하(東夏)를 다스리면서 으뜸으로 학교(學校)를 개설(開設)하여 인재(人才) 양성(養成)하는 것을 급무(急務)로 삼았다. 그리하여 아무리 궁벽(窮僻)한 고장의 먼 곳 백성(百姓)들에게도 향교(鄕校)가 있지 않은 데가 없어, 이로 말미암아 문명(文明)의 치적(治績)이 전고(前古)를 초월(超越)하였다.” (後略)
<安陰縣新創鄕校>
“朝鮮受帝命 尹東夏 首以闢庠序 育人才爲務 雖窮陬遐裔 莫不有鄕校 由是 文明之治 度越前古” (後略)
[출처=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
여기서 동하(東夏)를 중국(中国)이라고 번역(飜譯)하는 자료(資料)도 있습니다만, 동하(東夏)는 ‘동방(東方)의 화하(華夏)’라는 뜻이며 ‘동국’(東國)의 다른 표현(表現)이라고 보입니다.
화하(華夏)와 동하(東夏)는 서로 똑같은 것일까요?
<네이버(NAVER) 국어사전(國語辭典)>에 따르면,
화하(華夏)는 중국(中國)의 다른 이름이라고 합니다.
일반적(一般的)으로는 중국(中國)을 중화(中華)라고도 말합니다.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의 ‘華東’(화동)이라는 것은 ‘華夏’(화하)의 ‘華’(화)와 ‘東夏’(동하)의 ‘東’(동)을 각각(各各) 가리킨다고 필자(筆者)는 생각합니다.
‘中國’이라는 낱말은 15세기(世紀)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서문(序文)에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 서문(序文)의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이라는 한문(漢文)에서, “國之語音”의 ‘國’은 문맥상(文脈上) 중국(中國)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동국’(東國)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5세기(世紀)의 <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에 따르면,
“國之語音”의 ‘國’은 ‘나라’로 언해(諺解)하였고, “異乎中國”의 ‘中國’은 ‘황제(皇帝)가 계시는 나라’로 언해(諺解)하였는데, 둘 다 ‘나라’라고 표현(表現)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에서는 분명(分明)히 중국(中國)을 ‘황제국’(皇帝國)이라고 표현(表現)하였는데, 동국(東國)은 어떤 나라이었을까요? 이른바 ‘제후국’(諸侯國)이었을까요?
그 당시(當時)의 황제(皇帝)는 누구이었을까요?
하여간(何如間) ‘華夏’(화하)와 ‘東夏’(동하)는 서로 구별(區別)된다고 보이므로, ‘華’(화)는 중국(中國)을 말하고 ‘東’(동)은 동국(東國)을 가리킵니다.
결국(結局), 화음(華音)은 중국(中國)의 한자(漢字) 정음(正音)이고, 동음(東音)은 동국(東國)의 한자(漢字) 정음(正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의 자료(資料)를 살펴보면,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는 조선(朝鮮) 영조(英祖) 때의 음운학자(音韻學者) 포암(圃菴) 박성원(朴性源, 1697년∼1767년)이 1747년에 집필(執筆)한 운서(韻書)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冊)을 <정음통석(正音通釋)>이라고도 하는데, <삼운통고(三韻通考)>와 <사성통해(四聲通解)>를 바탕으로 하여 당시(當時)의 조선(朝鮮) 한자음(漢字音)과 중국(中國) 한자음(漢字音)을 밝힌 음운서(音韻書)라고 합니다.
특(特)히,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는 최초(最初)로 ‘중국’(中國)의 한자음(漢字音)과 ‘동국’(東國)의 한자음(漢字音)을 병기(倂記)한 책(冊)이라고 합니다.
반면(反面), 필자(筆者)가 앞에서 소개(紹介)한 <經書正音(경서정음)>은 동국(東國)의 한자음(漢字音)이 아니라, ‘중국’(中國)의 한자음(漢字音)만을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으로 구별(區別)하여 병기(倂記)한 책(冊)입니다.
또한 <한국운서(韓國韻書)의 이해(理解)>(정경일 지음, 2002년, 아카넷)라는 책(冊)에 따르면,
한자음(漢字音)은 화음(華音)과 동음(東音) 두 가지가 있는데, 조선(朝鮮) 전기(前期)에는 이들을 각각(各各) 표기(表記)하는 운서(韻書)가 만들어지다가, 조선(朝鮮) 후기(後期)에 들어서면서 이들을 통합(統合)하여 병기(倂記)하는 운서(韻書)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內容)을 <반도사관(半島史觀)>으로 검토(檢討)하면,
화음(華音)은 지나(支那) 대륙(大陸)의 중국(中國) 또는 중화(中華)의 한자음(漢字音)이고, 동음(東音)은 반도(半島)의 동국(東國) 또는 조선(朝鮮)의 한자음(漢字音)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게다가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에 나오는 <孟子正音(맹자정음)>의 내용(內容)을 추가(追加)로 반영(反映)하면,
지나(支那) 대륙(大陸)의 화음(華音)은 정음(正音)인 북방음(北方音)과 속음(俗音)인 남방음(南方音)으로 다시 나뉜다는 뜻이 됩니다.
한편 <대륙사관(大陸史觀)>을 도입(導入)한다면, 조선(朝鮮)은 중국(中國)을 포함(包含)하는 광대(廣大)한 영토(領土) 개념(槪念)이 성립(成立)됩니다.
예(例)를 들면, 중화(中華) 또는 중국(中國)을 조선(朝鮮)의 황제국(皇帝國) 또는 천자국(天子國)으로, 동방(東邦/東方) 또는 동국(東國)을 조선(朝鮮)의 제후국(諸侯國)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見解)는, 중국(中國)과 동국(東國)을 조선(朝鮮)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별개(別個)의 나라(國; 邦)들이라고 보는 개념(槪念)을 적용(適用)한 것입니다.
가령(假令) 중국(中國)을 조선(朝鮮)의 중앙정부(中央政府)로 본다면, 동국(東國)은 조선(朝鮮)의 지방정부(地方政府)로 볼 수 있겠습니다.
조선(朝鮮)의 황제국(皇帝國)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조선(朝鮮)의 중앙정부(中央政府)가 남(南)과 북(北)으로 다시 나뉘는 것을 과연(果然) 납득(納得)할 수 있을까요?
혹시(或是),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나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의 자료(資料)와 같이, 중국(中國)의 정음(正音)을 북방음(北方音)으로, 중국(中國)의 속음(俗音)을 남방음(南方音)으로 보는 견해(見解)에 문제(問題)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편 <대륙사관(大陸史觀)>을 견지(堅持)하더라도, 중국(中國)과 동국(東國)의 관계(關係)에 대(對)하여 또 다른 개념(槪念)을 도입(導入)할 수 있습니다.
중국(中國)과 동국(東國)은 모두 조선(朝鮮)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나라(國; 邦)들이라고 보는 주장(主張)과 달리, 동국(東國) 자체(自體)가 지나(支那) 대륙(大陸) 전역(全域)이며 곧 조선(朝鮮) 전역(全域)이라고 주장(主張)하는 연구자(硏究者)도 있습니다.
이 경우(境遇)에 동국(東國)은 중국(中國)을 포함(包含)하는 개념(槪念)이고, 결국(結局) 중국(中國)은 동국(東國)의 중심지(中心地)라고 보는 학설(學說)입니다.
이러한 주장(主張)에 따를 경우(境遇) 동국(東國)의 한자음(漢字音)을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으로 구분(區分)하는 것은 무방(無妨)하지만,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와 같이 한자음(漢字音)이 동음(東音)과 화음(華音)으로 구별(區別)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理解)하여야 할까요?
이러한 학설(學說)에서는 중국(中國)을 곧 동국(東國)의 중심지(中心地)라고 보기 때문에 중국(中國)의 한자음(漢字音)은 정음(正音)에 해당(該當)되며 곧 화음(華音)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동음(東音)은 무엇에 해당(該當)될까요?
여기서 동음(東音)은 속음(俗音)이 되어야 하는데,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에서는 화음(華音)이든 동음(東音)이든 모두 정음(正音)이기 때문에 문제(問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화음(華音)과 동음(東音)은 실제(實際)로 얼마만큼 차이(差異)가 있을까요?
구체적(具體的)인 분석(分析)은 언어학(言語學)의 전문(專門) 영역(領域)이므로, 여기서는 간단(簡單)한 사례(事例) 하나만을 검토(檢討)해보겠습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에 관(關)한 자료(資料)에 따르면,
이 책(冊)은 각각(各各)의 한자(漢字)에 대(對)하여 왼쪽(左側)에는 동음(東音)을‚ 오른쪽(右側)에는 화음(華音)을 각각(各各)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표기(表記)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方式)은 이 책(冊)에서 처음으로 시도(試圖)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冊)의 서문(序文)에 의(依)하면 화음(華音)의 표기(表記)는 역관(譯官) 이언용(李彦容)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이 책(冊)에는 한자(漢字)의 규범음(規範音) 곧 정음(正音) 이외(以外)에도 몇몇 한자(漢字)에 대(對)해서는 난상(欄上)에 ‘俗X’와 같은 형식(形式)으로 그 속음(俗音)을 제시(提示)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령(假令) 한자(漢字) ‘殄’(진)에 대(對)하여 동음(東音)과 화음(華音)을 모두 ‘뎐’이라고 하였지만, 난상(欄上)에 ‘殄俗딘’이라고 표기(表記)하여 그 속음(俗音)을 밝혀 주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규장각한국학연구원, http://kyujanggak.snu.ac.kr/]
바로 위의 자료(資料)에 따르면,
‘중국’(中國)과 마찬가지로, ‘동국’(東國)에도 한자(漢字)의 정음(正音) 이외(以外)에 속음(俗音)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한자(漢字) ‘殄’의 동국(東國) 정음(正音)과 화음(華音)은 모두 ‘뎐’이라고 하므로, 둘 다 똑같은 경우(境遇)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딘’이라는 18세기(世紀)의 동국(東國) 속음(俗音)은 오늘날의 한국식(韓國式) 발음(發音) ‘진’과 비슷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18세기(世紀)의 화음(華音) ‘뎐’은 오늘날의 중국(中國) 북경(北京; Běijīng; 베이징) 표준음(標準音)인 ‘티엔’(tiǎn)과 차이(差異)가 납니다.
그 이유(理由)는 무엇일까요?
세월(歲月)이 많이 흘러서 ‘뎐’이 ‘티엔’으로 자연(自然)스럽게 바뀐 것일까요?
한편, 한자(漢字) ‘殄’의 오늘날 중국(中國) 남방(南方)의 광동어(廣東語; Guǎngdōngyǔ; 꽝뚱위) 발음(發音)은 ‘틴’(tin)입니다.
여기서 ‘틴’(tin)이라는 발음(發音)은 18세기(世紀) 동국(東國)의 한자(漢字) 속음(俗音)인 ‘딘’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事例)를 통(通)하여, 18세기(世紀) 당시(當時) 동국(東國)의 현실(現實) 한자음(漢字音) 곧 속음(俗音)은 중국(中國)의 남방(南方) 한자음(漢字音)에 가까웠던 것 같다고 하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大學正音(대학정음)> 자료(資料)를 이해(理解)할 수 있을까요?
한자(漢字) ‘殄’의 18세기(世紀) 동국(東國)의 정음(正音)을 ‘뎐’이라고 하는데, 오늘날의 한국식(韓國式) 발음(發音) ‘진’과 분명(分明)히 차이(差異)가 납니다.
그 이유(理由)는 무엇일까요?
세월(歲月)이 꽤 흘러서 ‘뎐’이 ‘진’으로 바뀐 것일까요?
아니면, 18세기(世紀) 동국(東國)의 속음(俗音) ‘딘’이 ‘진’으로 바뀐 것일까요?
분명(分明)한 사실(事實)은, 동국(東國)의 정음(正音) ‘뎐’과 그 속음(俗音) ‘딘’이라는 발음(發音)은 18세기(世紀) 당시(當時)에 공존(共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8세기(世紀)의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에서는 동음(東音)과 화음(華音)이 서로 구별(區別)된다는 것입니다.
모두(冒頭)에서도 필자(筆者)가 의문(疑問)을 제기(提起)하였지만, 한자(漢字)의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을 구분(區分)하는 정확(正確)한 기준(基準)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한자(漢字)가 사용(使用)되는 지역(地域)에 따라 크게 둘로 나뉜 것일까요?
아니면, 한자(漢字) 사용(使用)의 주체(主體)를 기준(基準)으로 구분(區分)되었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기준(基準)이 있을까요?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에서 중국(中國)의 한자음(漢字音)을 북방음(北方音)과 남방음(南方音)으로 구별(區別)하는 근거(根據)는 어디에 있을까요?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에 따르면,
14세기(世紀) 지나(支那) 대륙(大陸)의 화중(華中)과 화북(華北) 지방(地方)에 직업(職業)과 계층(階層)과는 관계(關係) 없이 두루 통용(通用)되는 공통어(共通語)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중원아음’(中原雅音)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이러한 공통어(共通語)가 다른 지방(地方)에도 확산(擴散)되었고, 이를 ‘관화’(官話)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나(支那) 대륙(大陸)의 화중(華中)과 화북(華北) 지방(地方)에서 사용(使用)된 14세기(世紀)의 ‘중원아음’(中原雅音)이 후대(後代)에 이르러 북방음(北方音)인 표준음(標準音) 곧 정음(正音)으로 인정(認定)된 것일까요?
또한 <대륙사관(大陸史觀)>의 일설(一說)에 따르면,
이성계(李成桂) 조선(朝鮮) 왕조(王朝)의 초기(初期) 수도(首都) 또는 경도(京都)는 오늘날의 ‘서안’(西安; Xī'ān; 시안) 곧 옛날의 ‘장안’(長安)이었다고 합니다.
만약(萬若) 그것이 사실(史實)이라면, 늦어도 15세기(世紀) 세종대왕(世宗大王) 때에 한자(漢字)의 표준음(標準音)은 당시(當時) ‘장안’(長安) 지역(地域)의 그것과 똑같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에 따르면,
현대(現代) 중국어(中國語)는 8대(八大) 방언계(方言系)로 크게 나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各) 방언(方言)의 문법(文法)과 어휘(語彙)는 대체(大體)로 일치(一致)하고 어음(語音)은 서로 대응관계(對應關係)에 있지만, 차이(差異)가 심(甚)하여 외국어(外國語)처럼 서로 통(通)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오늘날 중국어(中國語) 성조(聲調)의 경우(境遇) 지나(支那) 대륙(大陸) 북방(北方)의 북경(北京; Běijīng; 베이징) 어음(語音)을 표준(標準)으로 규정(規定)한 보통화(普通話; pǔtōnghuà; 푸퉁화)는 4성(四聲)이지만, 지나(支那) 대륙(大陸) 남방(南方)의 광동어(廣東語; Guǎngdōngyǔ; 꽝뚱위)는 8성(八聲) 또는 9성(九聲)이 사용(使用)된다고 합니다.
14세기(世紀) 지나(支那) 대륙(大陸)의 화남(華南) 지방(地方)에서 사용(使用)된 한자음(漢字音)이 후대(後代)에 이르러 속음(俗音)인 남방음(南方音)으로 인정(認定)되었을까요?
이른바 ‘광동어’(廣東語; Guǎngdōngyǔ; 꽝뚱위)는 속음(俗音)인 남방음(南方音)의 하나에 해당(該當)되는 것일까요?
앞에서도 언급(言及)되었지만, <大學正音(대학정음)>에 관(關)한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에 따르면,
18세기(世紀) <大學正音(대학정음)>에 나오는 한자(漢字)의 중국(中國) 북방음(北方音) 표기(表記)는 15세기(世紀) <東國正韻(동국정운)>(1447년~1448년)의 표기(表記)와 일치(一致)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理由)는 무엇일까요?
물론(勿論), <大學正音(대학정음)>에 나오는 중국(中國)의 한자(漢字) 정음(正音)과 속음(俗音) 자체(自體)가 이 책(冊)이 간행(刊行)된 18세기(世紀) 당시(當時)의 실제(實際) 중국(中國) 한자음(漢字音)인지는 확실(確實)하지 않습니다.
혹시(或是) <大學正音(대학정음)>에서는 15세기(世紀) <東國正韻(동국정운)>(1447년~1448년)의 표기(表記)를 그대로 답습(踏襲)하였을 가능성(可能性)도 있습니다.
동국(東國)의 한자(漢子) 정음(正音)은 15세기(世紀)뿐만이 아니라 18세기(世紀)에도 중국(中國)의 북방(北方) 한자음(漢字音)과 똑같다고 볼 수 있을까요?
18세기(世紀)의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1747년)에 관(關)한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에 따르면,
각각(各各)의 한자(漢字)에 대(對)하여 왼쪽(左側)에는 동음(東音)을‚ 오른쪽(右側)에는 화음(華音)을 각각(各各)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표기(表記)하고 있으며, 이렇게 동음(東音)과 화음(華音)을 구별(區別)하여 각각(各各) 병기(倂記)한 방식(方式)은 이 책(冊)에서 처음으로 시도(試圖)된 것이라고 합니다.
<大學正音(대학정음)>이라는 책(冊)은 늦어도 1735년에 간행(刊行)된 초간본(初刊本)으로 추정(推定)된다고 하므로,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1747년)와 거의 같은 시대(時代)의 책(冊)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8세기(世紀) <大學正音(대학정음)>에 나오는 중국(中國)의 북방(北方) 한자음(漢字音) 곧 정음(正音)은 18세기(世紀)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에 나오는 화음(華音) 곧 중국(中國)의 정음(正音)과 똑같다고 보아도 무방(無妨)할까요?
한편, 18세기(世紀) 동국(東國)의 한자(漢字) 속음(俗音)은 어떠하였을까요?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大學正音(대학정음)> 자료(資料)에 따르면,
18세기(世紀) 동국(東國)의 현실(現實) 한자음(漢字音) 곧 속음(俗音)은 중국(中國)의 남방(南方) 한자음(漢字音)에 가까웠던 것 같다고 합니다.
세월(歲月)을 거슬러 올라가서, 15세기(世紀) 중국(中國)의 북방(北方) 한자음(漢字音) 곧 정음(正音)은 무엇이었을까요?
혹시(或是), 14세기(世紀)에 지나(支那) 대륙(大陸)의 화중(華中)과 화북(華北) 지방(地方)에서 두루 통용(通用)되었던 공통어(共通語) 곧 ‘중원아음’(中原雅音)을 가리킬까요?
15세기(世紀) 동국(東國)의 한자(漢字) 정음(正音)은 어떠하였을까요?
15세기(世紀) 중국(中國)의 북방(北方) 한자음(漢字音)과 비슷하였을까요?
15세기(世紀) 무렵에 한자(漢字)의 표준음(標準音) 곧 ‘정음’(正音)만을 정확(正確)히 표기(表記)하기 위해서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문자(文字) 곧 ‘언자’(諺字)가 만들어졌을까요?
<大學正音(대학정음)>에 관(關)한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에 따르면,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 창제(創製) 동기(動機)는 중국(中國) 한자음(漢字音) 전체(全體)를 표기(表記)하기 위한 문자(文字) 체계(體系)가 아니라 ‘정음’(正音)의 표기(表記)를 위한 것이라고 추측(推測)합니다.
물론(勿論), 세종대왕(世宗大王) 당시(當時)에는 ‘정음’(正音)의 정확(正確)한 표기(表記)가 최우선(最優先)이었다고 보이지만, 속음(俗音) 또한 결코 무시(無視)할 수 없는 발음(發音)이므로 정음(正音)이든 속음(俗音)이든 모두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표기(表記)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필자(筆者)는 생각합니다.
당연(當然)한 것이지만, 15세기(世紀)에 세종대왕(世宗大王)과 집현전(集賢殿) 학자(學者)들은 새로운 ‘문자’(文字)를 만들어낸 것이지 새로운 언어(言語)나 새로운 발음(發音)을 창조(創祖)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기존(旣存) 언어(言語)의 발음(發音)을 ‘소리 나는 그대로’ 표기(表記)할 수 있는 표음(表音) 문자(文字)를 새롭게 만들어낸 것입니다.
예(例)를 들면, <經書正音(경서정음)>에서는 한자(漢字)의 중국(中國)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을 모두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언자’(諺字)로 병기(倂記)하고 있으므로, 오로지 규범음(規範音) 곧 정음(正音)만을 표기(表記)하기 위해서 ‘언자’(諺字)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보이며, 기존(旣存)의 어떠한 발음(發音)이든 모두 표기(表記)할 수 있도록 당시(當時)의 학자(學者)들이 새로운 표음(表音) 문자(文字)를 만든 것으로 필자(筆者)는 생각합니다.
예조판서(禮曹判書) 정인지(鄭麟趾)의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서문(序文)에 따르면,
물건(物件)의 형상(形象)을 본떠서 글자(契字)는 고전(古篆)을 모방(模倣)하고 소리(聲)에 인(因)하여 음(音)은 칠조(七調)[=칠음(七音);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5음(五音)과 반치(半徵)-반상(半商) 2음(二音)]에 합하여 삼극(三極, 天地人)의 뜻과 이기(二氣; 陰陽)의 정묘(精妙)함이 구비(具備)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二十八字)로써 쓰지 못하는 소리(聲)가 없고 간략(簡略)하면서도 요령(要領)이 있고 자세(仔細)하면서도 통달(通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15세기(世紀)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서문(序文)에 나오는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이라는 한문(漢文)의 언해(諺解)는 “나랏말미 듕귁에 달아 문와로 서르 디 아니”입니다.
여기서 “國之語音”을 더 정확(正確)하게 풀어보면 ‘國’은 ‘나라’로, ‘語’는 ‘말씀’ 또는 ‘말’로, ‘音’은 ‘소리’로 해석(解釋)할 수 있으므로, 결국(結局) “國之語音”은 ‘나라의 말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에서는 한자어(漢字語)인 ‘中國’을 ‘듕귁’으로, ‘文字’를 ‘문’로 표기(表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자(漢字) 발음(發音)은 당시(當時)의 속음(俗音)이 아니라 ‘정음’(正音)이었다고 보입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이었기 때문입니다.
‘문’라는 15세기(世紀)의 동국(東國) 발음(發音)은 오늘날의 한국식(韓國式) 한자(漢字) 발음(發音)과 비슷합니다.
‘듕귁’과 ‘문’라는 발음(發音)은 15세기(世紀)의 ‘이상적(理想的)인 중국음(中國音)’ 곧 중국(中國)의 정음(正音)과 똑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한자어(漢字語) ‘中國’과 ‘文字’에 대(對)한 오늘날의 중국(中國) 북경(北京; Běijīng; 베이징) 표준음(標準音)은 각각(各各) ‘쫑꾸어’(Zhōng-guó)와 ‘원쯔’(wén-zì)입니다.
한자어(漢字語) ‘中國’에 대(對)한 18세기(世紀)의 중국(中國) 북방음(北方音)도 ‘듕귁’이라고 추정(推定)할 수 있을까요?
한편, 21세기(世紀) 중국(中國) 남방(南方)의 광동어(廣東語; Guǎngdōngyǔ; 꽝뚱위)로는 한자어(漢字語) ‘中國’을 ‘쫑꾸억’(Zung-gwok)으로, ‘文字’를 ‘만찌’(man-zi)로 발음(發音)합니다.
이러한 광동어(廣東語) 발음(發音)은 18세기(世紀)의 <經書正音(경서정음)>에 나오는 중국(中國) 남방음(南方音) 곧 속음(俗音)과 얼마나 차이(差異)가 날까요?
지금(只今)까지 필자(筆者)가 한자음(漢字音)에 관(關)한 여러 자료(資料)들을 검토(檢討)하면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의문(疑問)들을 정리(整理)해보았습니다.
필자(筆者)가 예전에 “중국(中國)과 동국(東國)”에 관(關)하여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한자(漢字)의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에 관(關)한 문제(問題)도 이와 무관(無關)하지 않다고 봅니다.
최근(最近)에는 <반도사관(半島史觀)>을 제외(除外)한 <대륙사관(大陸史觀)>의 여러 학설(學說)에서 중국(中國)의 위치(位置)조차 다양(多樣)하게 비정(比定)되고 있는 실정(實情)입니다.
그렇다면, 18세기(世紀)의 <經書正音(경서정음)>에 나오는 중국(中國) 북방(北方) 및 남방(南方)의 후보지(候補地)도 여러 곳으로 비정(比定)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중국’(中國)이라는 지역(地域)이 시대별(時代別)로 변천(變遷)되었기 때문에 결과적(結果的)으로 다르게 나오는 것일까요?
중국(中國)과 동국(東國)은 역사적(歷史的)으로 어떠한 관계(關係)이었을까요?
만약(萬若) 18세기(世紀) 중국(中國)의 강역(疆域)을 지나(支那) 대륙(大陸)으로 볼 수 없다면, <네이버(NAVER) 백과사전(百科事典)>이나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章閣韓國學硏究院)>의 자료(資料)에 나오는 중국(中國) 북방음(北方音) 및 남방음(南方音)의 실체(實體)는 무엇일까요?
앞으로 이러한 의문(疑問)들에 대(對)하여 더 깊게 연구(硏究)하여야 된다고 필자(筆者)는 생각합니다.
“한자(漢字)의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이라는 주제(主題) 속에는 어떠한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이 숨겨져 있을까요?
<참고(參考) 자료(資料)>
<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정음통석운고)>의 목판본(木版本) 일부(一部) 내용(內容)
[출처=http://www.kobay.co.kr/servlet/wsoff/item/offItemView?item.itemseq=0911EIB85ZF]
<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의 일부(一部) 내용(內容)
[출처=위키백과(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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