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인간에서마녀로
언제나 눈이오던 이곳에도 봄은 오는건지 오늘따라 날씨가 다른때보다는 따뜻했고 화창했다.
나와 어머니는 집 바로옆에있는 풀밭에나와 가족들이 함께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있었다.
언제나 어머니가 하시던 집안일을 도왔던 나이기에 오늘또한 거리낌없이 일을 하고있는데
갑자기 거실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땐 분명히 창문 넘어로는 아버지와 히에르가 공을 차며 놀고있었다.
인적이 꽤 드문 마을에서도 약간 외진곳에 있는 우리집에 오는 손님은 거의 친척들뿐이라고 해봤자
그것도 세달에 한번 올까말까 했었는데.
도대체 누구인지 어머니와 나는 눈을 마주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나서 어머니는 치마에 물묻은 손을 닦으시고는 그대로 거실로 나가셨다.
그 와중에도 히에르와 아버지는 공놀이를 하고계시던 참이었다.
"…누구…꺄아악!!!!"
갑자기 들려오는 찢어질듯한 어머니의 비명소리에 나는 놀라서 거실쪽으로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채 몸을 돌리기도 전에 들려오는 아버지와 히에르의 비명소리에 그곳을 바라보았다.
………말할 수 없을정도로 참혹했다.
창문에는 누군지 모를 사람의 피가 여기저리 튀겨져있었다.
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아무말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못한채 그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때였다.
내 뒤로는 뚜벅뚜벅 하는 소리와함께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자리에 멈출수밖에 없었다.
그 누군지모를 사람의 다리에 잔뜩 굳어버린 몸이 부딪혀 버렸기 때문에….
제대로 말을 듣지않는 목을 서서히돌려 그 누군가의 얼굴을 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히에르를 죽인 살인마의 얼굴을.
"……"
"히에리. 맞나?"
"……(끄덕)"
"좋다."
"……"
듣기좋은 중저음의 딱딱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묻는 그 누군가.
놀랍게도 그는 칠흙같이 검은 흑발을가진, 처음보는 붉은색 눈동자의 멋진 미남자였다.
머리카락을 귀찮게 여기는지, 대충 칼로 자른것같은 짧은머리는 생전 처음보는 스타일이였고,
온몸에 검은색의 망토를 입은 그는 남루해 보이기도 하는 여행자같았다.
그는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그자리에 천천히 쭈그려앉으며 내이마에 검지와 중지손가락을 대었다.
차가운 느낌. 비록 작은 면적이지만 온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서서히 그의 손가락 끝에는 파란색의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서서히 졸려옴을 느꼈다.
"……"
"…히에리라…쿠쿡…"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어주신 나의 소중한 이름을 비웃는듯한 그의 웃음은 내 기분을 나쁘게했고,
나는 그 기분나쁜 비웃음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뒤로 쓰러진것 같지만 다행히도 그가 내몸을 받쳐준듯 바닥에 몸이 닿지는 않았다)
* *
"…여기까지가 이소녀의 기억인것 같군요."
"어. 꽤나 무겁더군."
"풋… 감사합니다, 칼리안님."
"……이녀석. 내가 가족들을 죽였다고 생각할것같은데."
"걱정안하셔도 좋습니다. 인간으로써의 기억을 모두 지울테니…"
"그래. 잘있어 할망구."
히에리의 가족을 알게모르게 모두 죽여버렸던 웨어울프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는 흑발의 남자.
그녀의 가족들과같이 웨어울프에게 잡아먹힐뻔했던 히에리의 앞에 나타난 바로 그남자였다.
그의 이름이 칼리안이었는지 그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금발의 여인.
중년처럼 보이는 외모에도 매우 뛰어난 외모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였다.
히에리의 머리위에 두었던 그리 쭈글쭈글 하지않은 두 하얀손을 거두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는
마녀계의 수장이자 최초의 마녀인 샤이아였다.
정신을 잃고서 한눈에 보기에도 푹신한 이불위에 누워있는 히에리를 힐끗 바라보고서는
천천히 커다란 창문이 있는 방의 나무문 밖으로 나가는 칼리안.
샤이아는 칼리안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이내 히에리에게 돌아서며 다시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이마위에 올려놓고는 중얼거렸다.
"아픈것은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것이 자리잡으리라…."
"……"
"추악한 인간이아닌 아름답고 순결한 마녀가되어라, 소녀야."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서 인간이 마녀가 될 수 있는 자신만의 주문을 외우며 손을 떼는 샤이아.
샤이아의 긴 손가락이 자리잡고있던 히에리의 이마를 떠나자,
사람들 사이에서도 꽤나 이쁘장하게 생겼다는 말을 듣던 히에리의 손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히에리를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앉혀놓고는 그녀의 눈동자를 유심히 바라보던 샤이아.
약간은 심각해 보였던 샤이아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지면서 말했다.
"…안녕. 마녀가 된 소녀야."
첫댓글 와- 인간에서 마녀라...마녀가 등장하는 소설은 처음이에요
정말재밌어요!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