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dish Realist
스웨덴의 국민화가 칼 라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뛰어난 미술적 재능 덕분에 일찌감치 국립예술학교 예비반에
입학합니다. 프랑스 파리와 스웨덴을 오가며 그림을 하던 그는 프랑스에서 카린 베르그와 결혼하고 유럽 각 지역을 두루
여행한 후 스웨덴에 정착. 칼 라손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자신의 집과 가족을 소재로 한 그림이었습니다.
1899년 책으로 펴낸 <가정(ett hem)>은 아내, 아이와 함께 시골의 낡은 집을 개조해 살아가는 모습을 24장의
그림에 담은 것이었습니다.
칼의 책은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군인들이 구약성서와 함께 꼭 간직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카디나비아식 디자인에 뿌리를 두고 있는 칼 라손(Carl Larsson)은 스웨덴 문화를 전 세계에 유행시킨 주인공이다.
칼 라손은 그 부인 카린과 함께 발전시킨 새로운 형태의 라이프스타일과 거주 양식을 선보였다.
이 특별한 스타일은 스웨덴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국가들, 심지어 미국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자극했다. 거의 혼자서 하나의 스타일을 창조하고 스웨덴 국경 너머까지 퍼뜨린 이 남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1853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칼 라손은 아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 교사가 그의 미술적 재능을 발견하고
그에게 예술아카데미의 준비반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낮선 땅 프랑스에서 스웨덴 여류화가 카린을
만나 결혼을 하고 라손은 아버지로부터 시골에 있는 낡은 목조 가옥을 선물로 받는다.고향의 이 목조가옥은 칼 라손과 그의 부인이 삶을 영위하며 예술을 창조하는 중심점이 되었다. 라손 부부는 그 집을
그들의 취향에 맞게 만들어 갔다.그들은 전통과 현대를 편안하게 조화시켰다. 카린은 카펫과 별지 탁자보 그리고 소품가구들을 디자인 했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물론 나무였다. 바닥과 천장뿐만 아리나 벽을 장식하는 데에도 나무가 사용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조로움을 자아내지는 않았다. 어떤 자리의 나무는 원목 그대로 사용하였고, 다른 자리에선
상큼한 색상이 칠해 지기도 했다. 그들이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흔들의자를 카린은 빨갛게 칠했다.라손 부부의 집에 있는 방들은 각각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신선하고 흥겹고 가볍다는
점에선 모두가 공통이었다. 각 방들은 딱 필요한 만큼만 가구를 놓아서 쾌적하고 넒은 느낌이었다.이런 스타일은 당시 스웨덴과 다른 유럽 국가들의 시민층이 좋아하는 실내형태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실내공간에 어두운 색상의 무거운 고급가구를 꽉꽉 채우는 것을 좋아했다. 수를 놓은 천과 벨벳으로
장식한 푹신한 소파와 화려한 커튼들이 거실을 장식하고 있었다.이와 달리 라손의 집 가구는 벽에 붙어있었고 방 가운데는 자유로운 공간을 남겼다. 이 예술가 부부는 시민들의
살롱문화가 보여주는 흐릿하고 거만하고 과장된 분위기와 허식에 완벽하게 대비되는 스타일을 보여 주었다.그 집은 누구에게나 보여 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싶어 라손은 집 안팎을 그대로
묘사한 여러 장의 밝은 수채화를 그렸다. 라손은 가족과 평화로운 분위기를 속에 파묻혀 살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을 사회개혁가라 보았고, ‘취향과 가족의 삶을 개혁’하는 목표를 품고 있었다.20세기 로 접어들어 칼 라손의 화집들은 <우리 집> <해님이 함께 사는 집> <전원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 화집들은 대성공을 거두면서 카이저 시대 독자들에게 스웨덴 거주문화의 매혹적인 모습을
소개했다. 라손의 그림을 접한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당시에 산업화가 강력하게 진행 중인 도시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라손이 그들에게 보여준 목가적인 풍경에 쉽게 감동하고 단단히 사로잡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라손 부부는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실제로 스웨덴의 디자인과 라이프 스타일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볼때 스웨덴의
궁핍에서 비롯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국민 모두가 떠나 버려 결국 텅 빈 나라가 되는 끔찍한 상황을 막기
위해 스웨덴 의회는 1913년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하게 된다. 그런 조치들 속에슨
값이 싸면서도 아름다운 모양의 가구와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사람들이 집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예술가들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 가능한 제품의 디자인을 도왔다. <스웨덴 가구왕국의 상상초월 성공 스토리 -이케아>에서 발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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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천 중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