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dEnhX7-1g-U?feature=share
언약궤를 장막에 모심 6:16~19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17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18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19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윗과 미갈의 갈등 6:20~23
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23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의 궤가 들어올 때 미갈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깁니다. 다윗은 궤를 준비한 자리에 두고 제사드린 후, 백성에게 떡과 고기를 나눠 줍니다. 다윗이 돌아오자 미갈은 그의 모습을 비난했고, 이 일로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
언약궤를 장막에 모심 6:16~19
언약궤의 무사한 이동을 가장 기뻐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뛰놀며 춤을 춥니다. 언약궤는 미리 준비한 장막에 두었는데, 이곳은 성막과는 다른 임시 장소입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임시로 두었다가 후에 성전을 지으면 그곳에 안착시키려 했을 것입니다(7:1~3). 다윗은 언약궤가 무사히 도착한 것에 감사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리고 왕으로서 백성을 축복하고, 차별 없이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을 나누어 주며 모두가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과 언약궤 이동에 함께하신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언약궤를 무사히 옮긴 후 다윗은 그 기쁨을 모든 백성과 어떻게 나누었나요?
공동체 안에서 내가 나누고 싶은 하나님 은혜는 무엇인가요?
-------------
다윗과 미갈의 갈등 6:20~23
기쁨의 잔치에서 소외된 인물이 있는데, 바로 미갈입니다. 미갈은기뻐 춤추는 다윗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왕으로서의 체통을 잃은 모습이었다고 비난합니다. 이에 다윗은 미갈에게 하나님이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선택하셨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합니다(21절).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아무리 천하게 행동해도 자신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왕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서는 미갈을 ‘다윗의 아내’가 아닌 ‘사울의 딸’(23절)로 기록합니다. 즉 미갈은 다윗의 아내로서가 아닌 사울 가문의 마지막 인물로서 강제로 다윗성에 끌려왔기에(3:14~16) 언약궤를 무사히 옮긴 기쁨의 잔치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불화로 인해 미갈은 다윗에게 외면당해 자식을 얻지 못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언약궤를 맞이하며 기뻐 춤추는 다윗을 미갈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나요?
공동체와 함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절묵상:사무엘하 6장 21~22절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지도자의 덕목 중 하나입니다. 다윗은 왕의 위엄과 체면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미갈은 천하게 보인다며 다윗을 책망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할 수만 있다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지도자의 길을 따라갑니다. 지도자는 세상을 기뻐하는 넓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좁은 길에 서야 합니다.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진실을 깨달은 데서 감사와 찬양의 마음이 우러난다. - 도널드 맥컬로우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어느 때에 하나님을 기뻐하는지 돌아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하나님 앞에서 감추지 않고 오롯이 표현할 수 있게 하소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기쁨을 공동체와 나눌 때, 그 은혜에서 제외되는 이가 없도록 인도해 주소서.
오늘의 찬송(새 41 내 영혼아 주 찬양하여라)
참고:
법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귀환할 때 춤을 춘 다윗 왕의 모습을
영화 <King David>를 통해 보면서, 당시를 상상해 본다.
https://blog.naver.com/themanoffreedom/223079863976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고전10:31, 롬11:36, 시73:24~26, 요17:22~24)
삼하6:16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시24: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8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2: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마6:33~~구하는 자의 삶
다윗에게:마음에 합한자의삶
솔로몬의기도
10명의 문동병자중 ~1명,
--------------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따라 당신의 임재 안에 거하길 바라는
우리에게 넘치는 기쁨을 주시고, 놀라운 은혜와 복을 더하여 주실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우리와 더불어 기쁨의 교제를 나누어
주심에 감사하면서 온 힘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자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십자가의 사랑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베풀면서 이 기쁜 소식을 나누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자
사람들의 시선을 개의치 말고,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분과 더욱 더 풍성한 교제를 나누도록 하자
미갈은 자신의 근본을 잊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다윗에게는 아내의 자격이 없는 미갈이었습니다.
다윗이 남의 아내가 되어 있는 미갈을 단지 자신과 정혼했다는 이유 하나로 다시 데려오지 않았습니까?
다윗이 불러주지 않았다면 미갈은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다윗이 베푼 은혜입니다. 그런 다윗 앞에서 미갈은 자신의 왕비라는 지위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기쁨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베푼 자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도 은혜를 입기는 미갈이나 다윗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행하심에 언제나 하나님과 같은 마음, 같은 뜻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기가 다반사입니다.
우리가 성도 되어 구원의 은총 안에 있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죽어주신 예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근본은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생각도,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일에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하시만을 바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그런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앙생활을 염치로 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향한 기쁨을 억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기 전에, <하나님 앞에> 백성이고 예배자였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예배자가 자신으 신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본질이 <여호와 앞에서> 예배자임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사회적 위치가 매우 높다 하더라도 그 체면에 머물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사회적 위치가 매우 낮다고 해도, 그 위축감에 머물지 않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기쁜일이 없는 약자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에 기뻐하며 춤 출 수 있는 자가 됩니다.
우리가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는 예배자>로서 신분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미갈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
이를 바라보던 미갈은 다윗을 업신여깁니다. 이유는 다윗이 춤을 추아가 자기의 몸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20절) 이는 옷이 벗겨졌다는 의견도 있고, 너무나 힘을 다해 춤을 추었기 때문에 옷가지가 흐트러져 몸이 드러났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 다윗이 추었던 춤은 다윗 혼자의 춤이라기 보다는, 레위인들 여럿이서 어깨를 둘러싸고, 원형을 돌면서 추었던 춤에서 다윗이 유독히 소리와 몸짓이 컸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혹은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왕은 명령하고, 통솔하는 위치이고, 춤이나 노래는 하인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다윗의 춤은 미갈에게는 업신여김 받을만 했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높일만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높임을 반을만한 자가 되고 싶은지 소망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묵상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에 기뻐하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감격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무로만 섬기며, 체면치례하듯, 사는 삶도 있는듯 합니다. 예배자이기 보다는 율법적인 의무로서 어쩔 수 없이 예배를 때우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위에 올라있기 때문에 기쁜 것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워가시는 일에 기뻐했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았기에 기뻐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만군의 여호와이시라는 믿음이 있기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기쁨은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분명한 인지가운데 일어납니다. 또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확고해진 믿음으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내게 주신 은혜를 발견하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기쁨의 예배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운반할 때에 백성들 가운데서 뛰노는 다윗을 보고 다윗의 아내이자 사울의 딸 미갈은 마음으로 그를 멸시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오는 기쁨보다는 다윗이 왕처럼 행동하지 못한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미갈은 다윗의 믿음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자식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성도들에게 축복이며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하늘의 축복을 누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함께 나누는 교회 공동체가 되길 소원합니다.
세상의 빛과소금이며, 나는 복의근원이며,왕같은 제사장이다,
내 가정이 천국같지 않은 이유는 제사장이 다 잘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축복하러 가정에 들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군림하고 자녀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보다.
이제부터 나는 축복하기 위하여 가족에게 돌아와야 겠다
내일 부터 내가 집에 들어 올 때에는 내 가족을 축복한다고 선포하고 들어 와야 겠다.
나는 복의 근원이며, 왕같은 제사장이기에~ 축복의통로,구원의통로,은혜의통로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의빛과소금의역활을 감당하길
조금 발전하면 내가 회사에 출근하면서 내가 축복하러 회사에 왔다고 기도해야 겠다.
내가 다른 회사를 방문 할 때에도 내가 축복하러 이 회사에 왔다고 선포해야 겠다.
내가 식사하기 위하여 물건을 사기 위하여 어떤 음식점이나 가게에 들어 갈 때에도
내가 이 음식점, 이 가게를 축복하러 들어 간다라고 선포해야 겠다.
다윗은 광대가 되든 무엇이 되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모셔드리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춘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다윗의 기쁨 저편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 나 같은 사람을 높이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다는 것을 미갈은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에게는 다만 체신 없이 광대처럼 춤을 추는 경망스러운 왕이 보일 뿐입니다.
미갈에게는 그런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을 리 없습니다.
특히 나같은 자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오늘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음성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은 물어 오십니다.
너를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한 것이 많은 나입니다.
그런 나를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 또 새로운 날입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여호와 앞에서 내게 허락하신 삶의 자리,
내게 허락하신 모든 삶을 사랑합시다. 감사합시다. 춤추고 찬양하며 감사를 표현합시다.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이 좋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멘.
미갈은 왜 다윗을 비방했을까요?
육에 속한 사람이라 다윗의 영적인 행동이 어리석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지금도 미갈처럼 스스로 귀족인 척, 지식인인 척, 고상한 척 하면서, 우리가 가진 진리를 비아냥거리며 조롱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유1:18~19)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그러나 이들 육에 속한 자들은 미갈에게 자녀가 없어 생명이 없었던 것처럼 생명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성령 없이 육신의 생각을 따라 행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롬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고상한 척 하는 육에 속한 자들이 무어라 비방하든, 오직 지극히 거룩한 믿음과 성령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항상 깨어 있는 성령의 사람들 다 되기 원합니다
(유1:20~21)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다윗이 기뻐하는 이유는 언약궤가 자신과 함께 하는 것 때문입니다
자신이 언약궤를 호위하려고 하였을 때는 실패하였는데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해주시는 것으로 인해 기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는 것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주셔야 한다는 것 믿는 믿음을 구합니다
내 행위를 믿는 믿음은 다 죽기를 소원합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을 춥니다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심중에 다윗을 비웃습니다
아마 다윗이 정예부대 삼만 명으로 언약궤를 호위하여 갔다면 미갈은 좋아했을 것입니다
왕의 위신이 높아지는 화려함,하나님 보다
사람의 어떠함만 보는 미갈의 모습이 내 모습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멋있게 일 하고 싶어하는 것은
실패인 것 알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며 하는 일들이
마치 성공한 모습인양 착각하도록~ 누가봐도 멋잇게
일하고 네 이름을 높이라고 이 세상 신은 속삭이며 속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내 영광 챙기기에 바쁜 나는 아닌지 생각합니다
다윗이 함께 기뻐한 백성들을 축복하고
모든 백성에게 떡과 고기를 나누어주자 각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윗이 에봇을 입고 또 백성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모습에서
왕이시며 제사장이신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나에게 풍성한 하늘 양식인 당신을 나누어 주시는
왕이시며 제사장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다윗도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기 위하여 돌아오는데
미갈이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운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었다고 비난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여주심에 기뻐한 다윗의 모습이
미갈의 눈에는 방탕하고 염치없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뻐하는 지체를 비웃고 있는 나는 아닌지?
예배 형식이 뭐라고 그 형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지체를
정죄하는 나는 아닌지?
이런 미갈에게 다윗이 이렇게 한 것은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안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기에 여호와 앞에서 뛰놀겠다고~
내가 더 낮아져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게 말한 계집종에게서는 높임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누가 뭐라해도 하나님만 즐거워 하는 자존감 주님으로 인한 자존감이 높기를
사람의 어떤 말에도 사단의 정죄의 속삭임에도 주님 한분을 찬양드리는 일에
당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다고,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김으로 인하여 자녀를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미갈과 발디엘 사이에는 다섯 자녀가 있었다고 하니
미갈이 자녀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의 사이에 자녀가 없었다는 것은
다윗의 씨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내가 예수씨를 받지 못하고 생명을 낳지 못하고 있다면
신랑 예수를 비웃고 조롱하며 창피해 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볼 일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언약궤가 자기와 함께 한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체면과 위신이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이
어린아이가 기뻐서 춤을 추며 노는 것처럼
여호와 앞에서 뛰어 놀았다고 합니다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의 이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은혜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모르던 시절 은혜가 일 하시는 중인 지체의 기쁨을 이해할 수 없었던 미갈이었습니다
주님을 조롱한 미련퉁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을 나에게 긍휼을 베푸사 예수씨를 주시고
예수 생명을 낳게 하시는 은혜를 찬양드립니다
스스로 낮아져 비천하게 되어도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면
참으로 기뻐 수 있는 자로 지어져 가는 중입니다
오직 주님을 기뻐하는 자로 만들어주시는 주님을 영원히 찬양드립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2-15절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실어 옮기려던 실수를 바로잡고, 사람들이 직접 메어 옮기도록 했습니다. 여섯 걸음마다 멈추어 제사를 드렸고,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많던 악기는 사라지고 나팔만 남았지만, 지난번에 없던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관리하려던 웃사는 법궤 옆에서 죽었지만, 하나님을 즐거워한 다윗은 법궤 앞에서 춤추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규칙이나 공식처럼 여겨 맹목적으로 지키려는 사람이 아니라, 힘을 다해 하나님 앞에서 뛰어노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수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시 1:1,2). 말씀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진리와 함께 춤추고 있습니까?
16-20절 모두가 법궤의 입성을 즐거워하는 축제의 자리에 미갈 한 사람만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공유하는 잔치의 기쁨에 거리를 두고 홀로 냉소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왕의 모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왕 다윗의 모습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절대 권력자로서의 왕을 기대했던 사울의 딸 미갈은, 이스라엘의 왕은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대리인일 뿐임을 믿는 다윗의 나라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옛 관습에 갇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배척했던 유대인들과 같았습니다. 굳은 생각과 옛 관습에 갇혀 너무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한 일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21-23절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집니다(눅 14:11). 체면 차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뛰논 다윗은 높아졌지만, 그 모습을 비웃었던 미갈은 도리어 비천해지고 낮아졌습니다.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주님을 따르려 할 때, 높이 오르려는 욕망보다 큰 장애물은 없습니다. 복음은 고귀하지만 고상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주도 곤욕당했으니 나도 곤욕당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두려워 내려오지 못하는 자리나 버리지 못하는 자존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극히 낮아지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음을 기억합시다(빌 2:6-11).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피조물이고 또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작품도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본 뜬 모조품이고 아무리 높은 건물도 광대한 우주 세계와 비교하면 장난감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임재를 함께 기뻐하고 그 축복을 누리지 못했던 미갈의 세상적 편견은 스스로의 판단 속에 갇히게 만들었고 다윗을 예배자로 인정하지 못했던 그 마음은 그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외로움으로 채워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두신 곳에 시간을 드리고 여호와께서 기뻐하는 일에 인생을 바치는 예배자로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자의 자세
1) 기쁨을 표현함 (시126:2)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아 누린 자는 넘치는 기쁨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표현하는 것은 옳다. 그것은 곧 감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2) 함께 즐거워함 (롬12:15)
'나'에게 주어진 축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나님께 받은 복은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진다.
3) 영광을 하나님께 (시22:23)
우리의 기쁨이 상담될 곳은,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함께 기뻐하신다.
12-15절 :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실어 옮기려던 실수를 바로잡고, 사람들이 직접 메어 옮기도록 했습니다. 여섯 걸음마다 멈추어 제사를 드렸고,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많던 악기는 사라지고 나팔만 남았지만, 지난번에 없던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관리하려던 웃사는 법궤 옆에서 죽었지만, 하나님을 즐거워한 다윗은 법궤 앞에서 춤추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규칙이나 공식처럼 여겨 맹목적으로 지키려는 사람이 아니라, 힘을 다해 하나님 앞에서 뛰어노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수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시 1:1,2). 말씀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진리와 함께 춤추고 있습니까?
16-20절 :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모두가 법궤의 입성을 즐거워하는 축제의 자리에 미갈 한 사람만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공유하는 잔치의 기쁨에 거리를 두고 홀로 냉소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왕의 모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왕 다윗의 모습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절대 권력자로서의 왕을 기대했던 사울의 딸 미갈은, 이스라엘의 왕은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대리인일 뿐임을 믿는 다윗의 나라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옛 관습에 갇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배척했던 유대인들과 같았습니다. 굳은 생각과 옛 관습에 갇혀 너무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한 일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21-23절 :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집니다(눅 14:11). 체면 차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뛰는 다윗은 높아졌지만, 그 모습을 비웃었던 미갈은 도리어 비천해지고 낮아졌습니다.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주님을 따르려 할 때, 높이 오르려는 욕망보다 큰 장애물은 없습니다. 복음은 고귀하지만 고상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주도 곤욕당했으니 나도 곤욕당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두려워 내려오지 못하는 자리나 버리지 못하는 자존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극히 낮아지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음을 기억합시다(빌 2:6-11).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넘치는 기쁨과 사랑을 부어주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그 손길을 붙드는 주님의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누리지 못할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셨음을 감사하며 그 복된 소식을 증거하는 인생 여정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선하신 뜻을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고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베푸시고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크신 사랑 안에 평강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아버지 앞에 엎드리고 모든 교만과 악독을 버리고 겸손과 순종으로 나아오도록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은혜의 하나님
그 크신 성호에 영광과 존귀를 영원토록 받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주로 오셨으니 곧 하나님과 원수된 막힌 담을 그의 육체로 허시고 그의 십자가로 화평케 하시고 성령 안에서 어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셨으니 무한 영광이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이 내 안에 계심을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오늘 주신 묵상 말씀에서 주신 복을 인하여 기뻐하며 모든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며 춤추는 다윗 왕을 가진 이스라엘.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지도자를 가진 나라와 백성들은 복이 있습이다.
실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거울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하나님의 법을 자세히 살펴 연구하고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고 다시는 그와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겸손함을 보인 다윗은 힘을 다해 하나님 앞에서 뛰어놉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맹목적인 공식처럼 지키려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즐거위하여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진리와 함께 뛰어노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줄 깨닫도록 교훈하시 감사합니다.
날마다 복 있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일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누리지 못할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셨음을 감사하며 그 복된 소식을 증거하는 인생 여정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