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5. 26. 일요일.
비가 내린다.
<월간 국보문학>에 오른 앵두에 관한 글을 읽고는 내 고교 여자친구의 카페에서 확인한다.
앵두와 관련된 글이 250건이 넘는다.
하나를 골라서 여기에 올린다.
앵두와 나
최윤환
지난 6월 초순, 아내는 앵두를 땄다. 열 그루도 더 되는 앵두나무.
올해에는 가물어서 앵두는 다른 해보다 일찍 익었다. 5월 27일이 최적기인데도 나와 아내는 6월 1일에 내려갔더니만 앵두는 너무 익어서 풀 위에 마구 떨어졌고, 곰팡이가 슬었고, 손만 대면 우두둑 떨어졌다.
그래도 아내는 앵두를 땄으며, 굼뜬 아내가 더디 따는 것을 보다가 속이 상해서 내가 다음날 종일 앵두를 마구 털었다. 마구 땄다.
잡것이 잔뜩 든 앵두를 큰 물통에 넣고 휘저으면 잡것(나무가지, 잡티)가 둥둥 떴다. 두 손으로 건더기를 걸려서 내버리기를 여러 번. 잘 씻은 뒤에 큰 소쿠리에 담아서 물기를 빼려고 하는데도 잘 빠지지 않았다.
아내는 비닐봉지에 앵두를 담아서 냉동고에 차곡차곡 채웠다.
얼리지 않는 앵두는 틈 나는대로 퍼 먹었다. 밥 먹은 자리에서도 먹고, 아무 때나 앵두씨를 내뱉었다.
나는 삼십여 년 전에 폐암으로 죽은 아버지의 제사를 지낸다며 서울로 올라왔다.
차 트렁크에 실은 큰 그릇 안에는 앵두가 든 봉지를 세 개 실었다. 서울에서도 먹는다고.
오늘, 아내가 냉동고에서 꺼낸 앵두를 작은 그릇에 담았다.
얼어서 통통했고 알이 무척이나 굵어졌다.
언 앵두를 한참이나 놔둬서 저절로 녹인 뒤에 티스픈으로 떠서 입안에 넣고는 오물거렸다.
앵두 맛. 아주 달랐다.
앵두는 나뭇가지를 잡아당겨서 앵두를 따서 그참 먹어야 달콤한 맛이 그대로 입에 밴다.
그 자리가 아니면 앵두맛은 벌써부터 변해서 맛이 줄어든다. 하물며 앵두를 큰 물통에 넣고 여러 번 씻으면 맛은 거의 다 사라진다. 앵두가 많으면 별 수 없이 냉동고에 얼려서 보관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앵두잼을 만들거나 설탕가루 부어서 발효주로 만들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앵두를 얼리면 또다른 맛이 난다.
어름이 서걱거리고, 차가운 앵두를 먹으면 이(치아)가 얼얼하다.
이런 맛으로 오늘은 여러 차례 앵두를 떠 먹었다.
그런데 아쉽다.
부실한 이(치아, 이빨)이 문제다. 금니로 떼운 어금니가 얼얼하게 통증이 살짝 오기 시작했다.
얼음이 밴 앵두가 이에 닿지 않도록 혀 위에 올려놓고는 오물거려야 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제철이 아닌데도 앵두를 먹는다는 것이.
내가 서울로 가져온 앵두는 물앵두.
알이 무척이나 고르며, 맛은 달짝지근하다.
나한테는 양앵두도 있다. 양앵두는 6월 중순경에 익는데 맛은 시클털털하기에 그다지 먹고 싶지 않다.
오늘은 6월 19일이니 아마도 지금쯤 양앵두는 너무나 익어서 땅바닥에 숱하게 떨어졌을 것이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것도 곰팡이가 잔뜩 슬었을 게다.
물앵두, 양앵두 이외에도 산앵두나무도 있다. 아직은 묘목 수준이지만 지난 6월 초에 봤을 때에는 그래도 잔챙이 열매가 다닥다닥 열렸다. 그거는 그냥 눈맛으로 즐겨야 할 것 같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앵두 씨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얼핏 보니 쌀을 담은 냄비가 보였다.
생쌀을 조금 쥐어서 입안에 털어넣었다.
혀로 오물거리면 생쌀이 침에 부를까 하면서.
이런 생각이 전혀 잘못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부실한 어금니, 금니를 잔뜩이나 해 박은 치아로서는 생쌀을 오독오독 씹는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 생쌀을 씹어서 먹으면 그런대로 맛이 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수십년 전, 구루마(달구지)에 볏가마니를 잔뜩 실고는 이웃마을 방앗간으로 가서 방아를 찧었다.
쌀겨가 많은 생쌀을 한 줌 쥐고는 입김으로 후후 불어 쌀겨를 얼렁뚱땅 털어낸 뒤에 볼이 미어져라 씹어 먹었던 때를 떠올린 게 잘못이다.
지금은 초로의 늙은이다. 이(치아)가 부실한 탓으로 딱딱한 쌀을 씹을 수도 없고, 얼음을 으드득 깨물어 먹을 수도 없는 세월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이(이빨)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거지 뭐 하면서도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앵두나무.
열댓 그루의 앵두나무는 늙었다. '앵두 따기 어려우니, 톱으로 베어내세요'라고 아내는 숱하게 말했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늘은 앵두나무를 베어낸 뒤 대체해야 할 어린 묘목을 별도로 마련하지 못했다.
퇴직 직후이던가. 친구가 앵두나무 묘목을 원했다. 새 뿌리를 내린 앵두나무 묘목 예닐곱 개, 무화과 묘목도 서울 가져와서 친구한테 넘겼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모두 죽였다고 말했다.
경기도 토질과 기후가 서해안 중부보다 더 척박하고 추웠던 탓일까.
그 뒤로는 나는 새로운 묘목을 마련하지 못했다.
앵두에 관한 옛기억을 더듬는다.
거의 오십 년 전의 일이다. 딸기와 앵두를 따서 트럭에 실어서 서울에서 팔았던 이종형. 딸기 상자에 설익은 앵두를 서울로 가져오면 장사꾼들이 가격을 높게 쳤다고 했다.
내 어머니는 이웃 마을에 사는 이모네로 앵두 따러 다니셨다는 이야기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내 시골집 텃밭에도 딸기를 그득히 심어서 차떼기로 넘겼던 내 엄니도. 이종형도 무덤에 묻혔다.
앵두나무에 관한 흔적을 내가 조금 유지한다.
일전 시골에 머물면서 윗밭에 제멋대로 번식하던 딸기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겨우 몇 포기만 발견했다. 전멸한 이유는 있었다. 하늘을 찌를 것처럼 마구 큰 매실나무, 밤나무, 왕보리수 밑에서 딸기 모종은 자연도태되고 있었다. 수십 년 전의 모종이라서 딸기 알은 자잘한데도 맛은 시콤달콤했다.
이번 시골로 내려가거든 딸기 모종을 캐서 다른 곳으로 옮겨서 종자보존을 해야겠다.
나는 건달농사꾼이다.
콩알만큼이나 작은 앵두가 열리는 앵두나무를 아직껏 재배하는 농가가 있으랴?
요즘에는 열매가 크고 굵은 체리, 불루베리, 아로니아 등 외국작물을 선호해서 재배한다.
나도 이들 몇 품종을 몇 그루씩 키우고 있다. 실험삼아서 이들을 재배하고 있지만 증식 성과는 창피할 정도다. 불루베리 묘목은 몇 차례나 실패했고, 아로니아 묘목은 용케도 성공했기에 지난해부터 자잘하게나마 열매를 매달도 있다.
지난 6월 초에 콩알만큼이나 자잘한 열매를 보고는 서울로 올라왔다.
시골 냉장고의 윗칸 냉동고에 꽉 찬 앵두 봉지.
그거 언제 다 먹지?
요즘 신세대들의 입맛은 노인네와 사뭇 다른 것인가. 네 명의 자식은 앵두와 같은 자잘한 열매는 별로이다
'애들이 앵두를 쳐다보지 않는다'며 아내는 몇 차례나 말했다.
올해 딴 앵두는 앵두 딴 나와 아내한테 책임이 있으니 둘이서 오물거리며 씨앗을 뱉어내야 할 게다.
2017.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