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클라멘 (외 1편)
김은우
꽃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사방으로 자동차가 질주했다 새 울음소리가 지나간 하늘이 흐려졌다 외마디소리가 들려왔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꽃잎들이 흩어졌다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앰뷸런스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붉은 핏자국이 남았다
취우(驟雨)
근육질의 덩치 큰 사내가 긴 머리 키 작은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간다 사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진 좁다란 길로 황급히 사라지는 그 여자의 어두운 표정 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 사위가 어두워진다 건너편 학원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소리가 건물을 탕탕 두드리고 빗방울이 우두두 쏟아진다 천천히 걷던 사람들이 가방을 머리에 이고 빗속을 달린다 숨을 헐떡이며 줄넘기를 하던 소녀가 줄넘기를 멈추고 뛰기 시작한다 골목의 담벼락이 젖고 길가의 포장마차가 젖고 버스가 한 대 지나간다
조금 전 끌려갔던 여자가 갔던 길로 되돌아 나온다 피투성이가 된 채 헝클어진 머리 갈가리 찢긴 옷차림으로 기진맥진 금방 쓰러질 것 같다 잠시 후 비가 그치자 거짓말처럼 햇살이 환하다 ―시집 『만난 적은 없지만 가본 적은 있지요』 2024.9 --------------------- 김은우(金殷雨)/ 광주 출생. 1999년 《시와사람》겨울호로 등단. 시집 『바람도서관』 『길달리기새의 발바닥을 씻겨주다 보았다』 『귀는 눈을 감았다』 『만나 적은 없지만 가본 적은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