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분 퍼옴 -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서, 십일조 시대가 지났을 뿐 아니라 기독교인은 원래부터 십일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한다면 중세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출교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많은 신학자들도 성경 연구를 통하여 십일조 시대가 지났음을 확신하면서도 교단의 눈치를 보며 양심적으로 학설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레니우스와 오리겐, 에피파니우스 같은 초대 교부들에 의해 십일조가 폐지된 것으로 결론난 지도 이미 1800여 년이나 지났는데 지금까지도 한국 교회는 그런 논의조차 기피하고 있는 형편이다.
보수적인 기독교 백과사전을 들쳐보아도 십일조는 폐지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들을 내리고 있는데 언제까지 한국 교회는 신자들의 눈을 가리고 있을 것인가?
화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누가복음 11:52)
목회자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헌금과 십일조에 관한 진리들을 풀어 허심탄회하게 신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연보의 패러다임(paradigm)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소유하고 있는 한국 교회가 헌금과 십일조라는 장애물 때문에 전도의 문이 닫혀 수많은 영혼들을 잃게 된다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연보의 패러다임은 다른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제시한 연보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린도후서 8:11-12)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고린도후서 9:5)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린도후서 9:7)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으니라. (고린도후서 8:14-15)
앞의 말씀들을 기초로 연보 원칙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있는 대로 하라
② 준비하는 자세를 가지라
③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
④ 즐거운 뜻으로 하라
⑤ 평균하게 나누는 뜻으로 하라
이 다섯 가지 원칙 이외에 다른 원칙이 있겠는가. 이것은 철저히 신자들의 자율적인 믿음을 존중하는 연보 원칙인 셈이다.
특히 '평균하게 나누는 뜻으로 하라'는 원칙은 깊이 새겨야 할 사항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많은 물질을 맡기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적게 맡기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서로 평균하게 나누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많은 물질을 맡은 자는 그 물질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말고 나누는 일에 기꺼이 내어놓아야 한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6:17-19)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웃을 돌아보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면서 잘못 이해한 말라기 3:10 같은 말씀들을 기초로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헌금을 하고 십일조를 하는 것은 이기적인 신앙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십일조 간증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런 이기적인 동기에 기초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복을 주실 적에는 나누어야 하는 책임도 동시에 안겨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되어 자기 중심적인 십일조 간증 같은 것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연보 원칙은 요즈음의 십일조 원칙과 양립할 수 없다. 십일조 이외의 헌금을 할 때는 이 자율적인 원칙을 적용시키고 십일조를 할 때는 율법적인 원칙을 적용시키는 것은 상호모순이며, 신자들을 계속해서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런 바울의 원칙대로 하면 신자들이 방자해져서 제대로 연보를 하지 않을 것이므로 십일조가 폐지되었건 어찌 되었건 반드시 십일조라는 명목의 헌금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신자들을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갈라디아서 4:2) 있는 어린아이들로 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울의 관점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헌금을 거두어온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며,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이때껏 헌금을 내어온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목회자들은 성경의 진리로 돌아가, 십일조 시대가 2000년 전에 골고다를 기점으로 이미 지났으며 그리스도인은 십일조와 아무 상관이 없음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성전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도록, 할례나 십일조의 멍에를 메지 않아도 되도록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음을 선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속죄의 제사를 다 드리셨으며, 우리 대신 예물까지도 이미 다 바치신 사실을 선포해야 한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그 은혜에 감격하여 주의 사업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욱 기꺼이 연보를 하게 될 것이다.
새삼 초대 교회 이레니우스 교부의 권면이 생각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으로부터) 해방을 얻은 자들로서 이제 주님을 위하여 (십일조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소유를 구별하여 떼어놓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분량을 기쁜 마음으로 자유롭게 연보로 드립니다.
예수의 피로 사신바된 우리 그리스도인은 십일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소식은 십일조 노이로제에 걸린 이 땅의 수많은 신자들을 자유케 하고 멍에를 꺾는 그야말로 '복음'이 될 것이다. 그러면 신자들은 수십 년 동안 무의식 속에 쌓였던 십일조에 대한 죄의식(도둑 의식)을 떨쳐버리고 생기에 넘쳐 헌신에 헌신을 더할 것이다.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으면 두려움의 영에 눌려 지낼 것이라고 한 켄덜 목사 같은 십일조주의자들의 말이 얼마나 거짓말인가 하는 것을 산 체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선포는 예수를 믿고는 싶으나 교회 나가면 십일조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는 불신자들에게 전도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 소식이 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더 넘치는 영적 물질적 축복 속에서 활짝 열린 전도의 문을 통하여 수많은 젊은이와 불신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편 110:3)
하지만 목회자들은 수많은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굳어진 사고 방식을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십일조가 이미 폐지되었음을 확신하게 된 신자가 십일조를 고집하는 목회자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그 교회에서 자신의 확신한 바를 다른 신자들과 나누어야 하는가? 그러면 그 교회의 영적 질서를 깨뜨리게 되어 덕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교회에 있는 동안에는 목회자의 방향을 따라주어야 하나 정말 견딜 수 없을 때는 그 교회를 떠나 십일조가 폐지되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수밖에 없다.
참으로 많은 기도와 영적 투쟁이 기다리고 있는 험함 도정이다. 목회자들의 고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신자들이 진리 아닌 것으로 쓸데없이 계속 갈등하게 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한국 개신교에서도 십일조 시대가 이미 지났음을 선포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이 일어서고 있다.
왜 이런 시점에 그런 교회와 목회자들이 하나 둘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은 상태가 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이사야 1:11-15)
바울이 제시한 연보의 원칙으로 돌아가 새로운 연보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교회들이 앞으로 더욱 많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는 누가복음 6:38 상반절 말씀이 한국 교회에서 널리 선포되어, 신자들이 실생활 속에서 이웃에게 주는 희생과 기쁨과 축복을 체험하는 가운데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 자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첫댓글
지난번에 올린글이 너무 길~어서 부분으로 다시 올립니다.
전 축복받으면 된다고봐요
@벌렌더
축복이 어디서 오느냐도 중요해요.
처음엔 달콤하나 결국엔 쓰고 몸에 헤로울수도 있어요
@jwha 그럴수있죠 그래서 이것도있어요
@벌렌더
먹는...아니고, 먹은...으로 ㅜ.ㅜ
@jwha ㅠ 근데 저것도있어요
@벌렌더
그러니까요.
진행형일것 같아요...
@jwha 네 ing이죠
@벌렌더
어차피 ing인데,,,
뭔일은 없을까요?
@jwha 음 가능공주가 나와야해요 원래가능은 이렇게 대접받아야해요
@벌렌더
이렇게가 뭔지를 모르겠네요.
@jwha 합기유술시연보면 알아요
@벌렌더
어렵네요 ㅎㅎ
@jwha 무술도주가 여러사람 술기하는거있어요 그거에요
@벌렌더
네...
@jwha 음 진짜 14.8들어주셔서감사해요
@벌렌더
아뇨~
어떻게 현실에 일어날지 정확하게 말할수 없으므로 모르는 것은 배워야해요. ㅎㅎ
@jwha 네 맞아요 14.8은 진짜 서방이개입했죠
@벌렌더
그랬을것 같아요.
@jwha 네 전 가능공주가 합기술도 할수있다고봐요
@벌렌더
아~~
그렇군요 ㅎㅎ
@jwha 모든지가능하다고하자나요
@벌렌더
그래서 가능공주인거군요? ㅎㅎ
@jwha 네
가인형 신자
복과 은혜를 부르짖음
아벨형 신자
이 죄된 몸을 부끄럽게 여기오니 모쪼록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이 변화될 수 있기를, 나도 거기에 응답 할 수 있기를
공감합니다.
성경은 모두 비유로 되어 깨달았을때 진리가 됨. 깨닫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믿으면 돈과 물질을 진리로 믿어버리는 거짓종교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