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족보에 오른 못된 여인들. 다말, 라합, 밧세바.
그 중 라합의 족보와 그 의미를 알아보자.
마1장
5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예수님 족보에 오른 여인들, 표면적으로는 못된 여자들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참으로 귀한 여인들이다.
그중 라합은 여리고성의 기생.
이방 죄악의 도시인 여리고의 창녀이다.
라합이 여리고 성의 기생일 때에는 그 여인은 나쁜 여자.
죄로 인해 멸망 할수 밖에 없는 여자이다.
그러나 그 여인이 이스라엘 병사들을 도와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와서 살몬과 결혼 보아스를 낳는 순간 그녀는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오른다.
아주 귀한 여인으로 그 이름이 오른다.
이방의 죄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집으로 시집을 와야 한다.
시집을 올 뿐 아니라 아들을 낳아야 한다.
우리는 기생 라합같이 천한 자요, 죄인이요, 죽을수 밖에 없는 이방인들이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적 아브라함의 집으로 시집을 와서 생명을 낳는 순간 내 이름이 영적 아브라함의 족보에 오른다.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
곧 구원 받는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라합이 낳은 아들은 보아스.
보아스는 모범적인 남편의 모습.
이웃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하나님으로 부터 큰 축복을 받은 남자이다.
보아스는 예수님의 모형이다.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룻은 모압여인.
룻은 남편이 죽은 후에 고향을 뒤로 하고 시어머니를 따라 가나안으로 온다.
라합이 죄악의 도시 여리고성의 창녀라면 룻은 모압 족속의 여인.
모압족속은 롯이 그 친 딸과 동침해서 낳은 모압의 후손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그 10대 까지 회중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죄인 중의 죄인.
아브라함은 하나님 명령을 따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온다.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온다.
가나안 땅으로 오다.
하나님의 나라로 오다.
하나님 나라로 오기 위해서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야 한다.
모압 족속이라고 해도 그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
죄악된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 두면 영적 아브라함 자손이 된다.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 눈에 들어 그와 결혼 오벳을 낳는다.
보아스는 예수님의 모형.
보아스의 밭은 예수님의 밭.
하나님의 쉼터.
예수님의 밭에서 진리의 말씀을 받아 들이다.
룻의 이런 모습을 본 보아스는 그를 자기의 신부 삼는다.
예수님의 눈에 들어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룻은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는다.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른 왕들은 그냥 이름만을 말하고 있는데 다윗만은 특별히 다윗왕이라고 기록했다.
다윗왕은 오실 참 왕이신 예수님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 초대 왕은 사울 왕이다.
그는 베냐민 지파.
그는 예수님 족보에 들지 못한다.
다윗왕은 참 왕, 예수님의 모형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보내 주신 왕이다.
사울은 백성들이 달라고 해서 주신 왕이다.
하나님이 보내 주신 왕이 아니라 인간들 스스로를 위해 달라고 한 왕이다.
사울왕은 땅의 왕의 모형이다.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인류의 평화를 위한 해결사로 등장하는 가짜 왕의 그림자이다.
사울왕이 먼저 나오고 다윗왕이 이어서 나온다.
마지막때 거짓의 왕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야만이 곧 참 왕이신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예수님의 공중강림과 재림의 세부적인 차이까지 봐야 하지만 그냥 주의 재림으로 표현함.)
기생 라합의 족보에서 예수님이 나신다.
라합은 못된 여자가 아니라 아주 귀한 여인이다.
첫댓글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으니.
우리야의 아내란 남의 아내란 뜻이다. 남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고 아들을 낳았다.
이는 다윗의 수치를 말함이니 영원히 전해질 수치스러운 일이로다. 이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첫째는 우리도 그보다 나은것이 없는 죄인이고 연약한 그릇이라는 뜻이니 겸손하라는 뜻이다. 잘난체하지 말라는 뜻이다.
밧세바라는 여인은 대낮에 집밖에서 목욕을 하여 여인의 정숙함을 잃었더니 족보에 이름도 올리지 못하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올려졌다. 우리는 아마도 천국에서 그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밧세바 사건은 교훈을 통해 우리의 삶에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이면적으로는 율법과 복음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남의 나라 정탐꾼을 숨겨준 반역자, 창녀같은 기생라합,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여 동침한 다말은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이들이 밧세바보다 더 못된 여자들이지 덜하지 않을겁니다.
밧세바를 우리야의 아내로 표현한 것은 의도적으로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겁니다.
그 이유를 말하려면 댓글이 너무 길어질것 같아 이만 줄입니다.
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염검 https://youtu.be/oDE18P9XZYM?si=6ooFb6IDxAuUA0sj
마지막 때의 파수꾼의 나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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