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 세계 PC 제조사가 눈 여겨 보고 있는 시장이다. 전반적인 소비자의 지식과 요구 수준이 높아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제품에 대한 피드백이 빠르고 복잡한 오류도 금새 찾아낸다는 것.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 터를 잡고 있는 PC 제조사는 몇 안 된다. 연구소까지 갖춘 곳은 손에 꼽힐 정도.
그중 하나가 스카이디지탈이다. 한때 TV 수신카드로 명성을 떨치다가 지금은 게이밍 기어로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안 좋은 소식이 들리기도 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브랜드 전략과 신제품을 발표하며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스카이디지탈 기획부 이상수 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용산 터줏대감, 스카이디지탈
스카이디지탈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설립 연도는 1999년. 용산전자상가 초기부터 활동한 장수기업이다. 출발은 수입, 유통이었다. 저렴한 제품을 국내에 공급하는 역할만 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제조, 개발로 돌아섰다. 소비자 눈높이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아 직접 만들기로 한 것. 2008년에는 기업부설 연구소를 설립하고 입력장치, 영상장치, 보안 저장장치 등에 대한 개발을 시작했다.
물론 직접 개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행히도 히트 상품이 꾸준히 나와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 심지어 지금은 스카이디지탈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이상수 부장은 “제품을 직접 개발하다 보니 소비자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며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소비자 요구에 대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연구소에서는 회로부터 IC 칩, 디자인 등 모든 부품을 직접 개발한다. 단 금형 제작과 생산만 중국에서 한다. 국내에서는 두 배 이상의 비용이 들기 때문.
▲ 지금도 영상장치를 개발 중이다. 슈퍼캐스트 U6T는 듀얼 HDMI 동시 입력을 지원한다
연구소 설립 초기에는 영상장치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다만 지금은 일반 소비자의 수요가 줄어 기업용 솔루션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 지금도 영상장치에 대한 기술 개발은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HDMI 단자 두 개를 동시에 입력하는 방송 장비도 개발했다. 세계적으로 몇 개 안 되는 제품을 국내 기술로 만들었다.
▲ 국내 게이밍 키보드 시장을 연 엔키1
요즘엔 키보드와 마우스 등 입력장치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부 소비자의 눈에는 시대 흐름에 맞춰 노선을 바꾼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연구소 설립 초기부터 연구하고 있던 분야다. 다만 시대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부각되고 있는 것. 대표작은 2009년에 선보인 엔키1이다. 멤브레인 방식으로 무한동시 입력을 지원하는 것이 특징. 이 기능으로 세계 특허까지 받았다. 선풍적인 인기도 얻었다. 출시 1년 만에 10만 대를 판매할 정도. 덕분에 국내 게이밍 키보드 시장을 만든 제품으로 꼽히고 있다. 지금은 다양한 기계식 키보드를 비롯해 영어 표준인 104키, 일본어 표준 109키, 한글 표준 106키 키보드를 생산하고 있다. 참고로 106키를 생산하는 곳은 스카이디지탈이 유일하다.
▲ 한글 표준 106키 키보드를 생산하는 건 스카이디지탈이 유일하다
스카이디지탈은 소비자와의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데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게시판과 커뮤니티에서 얻은 소비자의 의견을 통해 원하는 부분을 파악한 후 제품을 기획할 때 적극 반영하고 있다. 그렇게 만든 제품이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법정관리? 문제없어
승승장구하던 스카이디지탈이지만 최근 안 좋은 일이 터졌다. 금융권과의 문제로 자금 상황이 좋지 않은 것. 법정관리까지 신청했다. 지난해 12월 1일 법정관리를 개시했으며 현재 조사를 마치고 회생 계획안을 제출한 상태다. 2/4분기 안에 인가가 날 예정.
이상수 부장은 정상화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브랜드 전략과 강력한 신제품이 있기 때문. 그는 “안 좋은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며 “법정관리 절차를 밟다 보면 단기간에 회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 스카이디지탈 기획부 이상수 부장
한때 법정관리 절차 탓에 업무가 예상보다 지연되기도 했지만 지난 1월부터는 이마저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현재 스카이디지탈은 바뀐 게 없다. 총판이나 A/S도 그대로다. 특히 A/S의 경우 부정적인 인식을 의식해 오히려 신경 쓰고 있다고.
새로운 브랜드 전략과 강력한 신제품
스카이디지탈은 올해 새로운 브랜드 전략과 신제품으로 공격적인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우선 브랜드 전략. 지난해 9월 엔키보드와 엔마우스로 나누던 브랜드를 엔키(Nkey)로 통합했다. 이전에는 제품마다 로고도 달랐지만 이제부터는 단일 로고를 새긴다. 라인업도 재정비한다. 키보드는 R, A, K로 나눈다. R은 장기적으로 끌고 가는 모델이며 A는 보급형, K는 게이밍에 특화된 제품이다. 마우스는 보급형인 J와 게이밍인 G 시리즈로 나눈다. 이후 판매하는 제품은 물론 기존 제품도 곧 새로운 이름을 부여할 예정이다. 아직 임시 오픈 중이지만 새로운 홈페이지도 연다. 주소는 http://www.nkey.org/.
▲ 엔키보드와 엔마우스를 통합한 엔키의 로고
스카이디지탈이 새로운 브랜드 전략을 세운 이유는 수출 비중을 높여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함이다. 물론 뜬금없는 말은 아니다. 이미 해외 판매 경험도 있고 유통망도 보유하고 있다. 해외 제조사에 OEM으로 공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과 영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선 이미 계약이 진행된 상태다. 중국의 경우 최대 명절인 춘절이 지나면 R3, 4K 등의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미 생산까지 완료했다. 영국도 패키지 작업이 한창이라고.
올해 탄탄한 신제품도 준비 중이다. 포문을 연 건 엔키 G510 스파크. 게이밍 마우스답게 강력한 기능으로 무장했다. 우선 반응 속도가 빠르다. 일반 마우스가 1.5~2ms 정도인데 비해 G510은 0.8ms까지 당겼다. 민감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체감할 수 있을 정도. 포인팅 속도를 높이기 위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픽사아트 3세대 센서 PMW3336도 적용했다. 덕분에 10만 8,000dpi 해상도에 8,000FPS 스캔율, 150IPS 이동속도, 30G 가속력을 지원한다. 물론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버튼과 매크로, 휠 가속, LED 등의 세팅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 빠른 속도와 강력한 기능으로 무장한 엔키 G510 스파크
더블클릭 오류도 잡았다. RPG 게임을 하다 보면 실제 클릭 횟수보다 더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오류를 해결한 것. 소비자가 먼저 오류를 찾아내 수정 요청을 했고 연구소에서 원인을 찾아내 해결했다는 게 이상수 부장의 설명이다. 소비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스카이디지탈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본체, 버튼, 휠 동작에 따라 깜빡이는 LED 효과, 키보드 입력 저장 등의 기능을 담았다.
▲ 올해 게이밍 라인업인 R 시리즈 키브도 2종과 G 시리즈 마우스 3종을 출시할 예정이다
상반기에는 체리 스위치를 적용한 기계식 키보드 R7 RGB도 선보일 예정이다. 그간 체리 스위치의 물량 수급이 수월하지 않아 생산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물량을 확보한 상태. 여기에 매크로 기능도 넣어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게이밍 라인업인 R 시리즈 키보드 2종과 G 시리즈 마우스 3종도 준비하고 있다. 보급형도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다.
이상수 부장은 “지난해 소극적인 활동으로 소비자에게 불안감을 준 것이 사실”이라며 “올해는 새로운 브랜드 전략과 신제품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전했다. 신제품 출시나 기술 개발은 물론 필드테스트, 사용기 이벤트 등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그는 “올해 역경을 이기는 건 물론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는 해가 될 것”이라며 포부를 전했다. 아울러 소비자의 많은 도움에 대한 부탁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