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와 후쿠시마 할머니의 연대 이야기
밀려오는 파도에서 다시 일어나고 깊은 물속에서 숨을 고르는 이들, 바로 제주 해녀들입니다.
제주 해녀와 후쿠시마 할머니들이 2025년 3월 4일, 바다를 넘어 서로를 만났습니다.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바다를 지키기 위한 깊은 연대의 시작이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오염수 방류에 맞서 싸워온 오가와라 사키 할머니가 제주로 향한 이유,
그리고 해녀들과 나눈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린피스와 인터뷰 중인 오가와라 사키 씨
“저는 방사능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이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것에 반대하며
동료들과 함께 반대 운동을 해왔습니다만, 이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매우 분합니다.”
후쿠시마에서 온 오가와라 사키 할머니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더 이상 바다를 더럽히지 마라! 시민회의 (2014년 설립)’ 및 ‘오염수의 해양투기를 멈추는
운동 연락회 (2023년 설립)’에 참여하며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를 멈추기 위한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오염수를 막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사키 할머니의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단단했습니다.
이어 할머니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고, 미래의 아이들에게 살기 힘든 환경을
물려주게 됩니다. 우리 어른들이 편안한 삶을 추구한 결과 이런 환경을 만들었다는 반성이 있습니다. 그 책임을 지고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을 남겨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키 할머니는 애플TV 다큐멘터리 '마지막 해녀들'을 보고 제주 해녀들이 바다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고, 그들을 직접 만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자신처럼 바다를 삶으로 살아오신 분들과 함께 이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만남은 단순한 위로와 사과를 넘어서, 국경을 넘어선 시민 연대와 바다를 지키기 위한 행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인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고, 미래의 아이들에게 살기 힘든 환경을 물려주게 됩니다. 우리 어른들이 편안한 삶을 추구한 결과 이런 환경을 만들었다는 반성이 있습니다. 그 책임을 지고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을 남겨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매일 바다에서 살아갑니다." -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바다를 품에 안고 살아온 해녀들에게 해녀의 삶은 단순한 직업이 아닌 숭고한 숙명이었습니다.
바다는 그들의 일터이자 삶의 터전, 그리고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최근 해녀들은 그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바다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조천면 북촌리에 사는 이희순 해녀는 “지금까지 해녀로 살면서 바다에서 물질해왔지만, 올해처럼 바다 환경이 이렇게 심하게 변한 건 처음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큰 문제는 없었는데, 올해는 상황이 너무 달라졌어요. 이게 일본에서 오염수를 방류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여름 날씨가 너무 더워서 자연적으로 생긴 현상인지, 솔직히 누구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해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합니다.”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애플 TV 다큐멘터리 '마지막 해녀들'에 출연하고, 제네바 UN 인권이사회에서 증언했던 장순덕 해녀는 후쿠시마에서 온 할머니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처음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오염수 문제를 잘 몰랐어요. 그런데 촬영을 하고 뉴스를 보면서 '이거 정말 심각하구나' 싶었습니다."
장순덕 해녀는 이어 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오염수가 바다를 오염시키면 우리는 생계를 잃습니다. 어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팔며 살아가는데, 오염되면 팔수도, 먹을 수도 없습니다. 오염수가 방류되면 바다가 어떻게 변할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피해는 결국 후손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문제를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책임지고 더 이상 바다가 오염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어서 장순덕 해녀는 "바다는 제 생업이자, 후손들에게 깨끗한 모습 그대로 물려주고 싶은 소중한 터전입니다. 이건 우리 해녀들만 외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시민들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순덕 해녀는 간절히 당부했다."우리 해녀들의 외침을 꼭 일본에 전달해주십시오"
제주 해녀와 후쿠시마 할머니, 서로의 목소리를 듣다
사키 할머니와 마리 씨는 해녀들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후쿠시마에서 살아오며, 원전 사고 이후 지역 주민들이 겪은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키 할머니는 “2011년 사고 이후, 우리는 고향을 떠나야 했고, 돌아온 후에도 방사능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냈고,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리 씨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제 아이들이 이제 부모 세대가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같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오염수 방류는 단순히 후쿠시마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오염수 방류의 위험을 알리고 행동을 촉구해 온 사키 할머니는 “일본에서는 정부의 홍보가 강해서인지 오염수 방류에 대한 반대 운동이 활발하지 못합니다. 소송을 걸어도 400명밖에 참여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4만 명이 헌법소원에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에서 우리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한국 시민들이 함께해 주고 있구나 싶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오염수 방류가 생존의 문제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싸움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제주 해녀들과 뜻을 모았습니다.
“우리, 같이 해봅시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장순덕 해녀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습니다.
바다를 맞대고 언제나 함께였기에,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 해녀들과 후쿠시마 할머니들의 만남은 바다가 연결되어 있듯, 시민 연대도 국경을 넘어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후쿠시마 할머니들은 칠전팔기를 상징하는 오뚝이와 해양 생물이 그려진 손수건을 제주 해녀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제주 해녀들도 이에 화답하며 바다에서 살아가는 자신들의 생명과도 같은 테왁 열쇠고리를 건넸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며 길을 만들어 갑니다. 오늘 이 만남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가는 한 걸음입니다. 마치 바다가 길을 내듯, 우리의 연대도 그렇게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