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배달하다
김영
피그미 마을에 첫눈을 메고 찾아갔다.
사흘만의 첫 끼라며 벌써 둥둥 떠 있는 발밑에
카사바 가루를 담은 자루를 내려놓았다
발톱이 다 닳아버린 맨발들이
첫눈을 밟지 않으려고 울컥울컥 물러섰다
남자 어른 하나가 첫눈을 한 꼬집 입에 털어넣는다
입 주위로 첫눈 가루가 환하게 흩어진다
어제 내린 비가 거처의 남루를 모두 거둬갔단다
고마운 비라고 해야겠다
남루가 떠난 집터는 차라리 환했다
누덕누덕하던 세간들이 모두 쓸려나간 자리는
바람이 기세 좋게 드나들고
빗방울도 억세게 쏟아질 판이었다
맨발들이 황토 흙바닥에 앉아
울퉁불퉁한 일기를 하소연한다
마을엔 벽돌 건물도 두어 개 있고
포장도로도 조금씩 번지고 있는데
이곳에 다시 집이라고 부르는 움막이 들어서도
지나가는 구름과 비
그리고 무심한 오토바이와 간간이 스치는 차량이
이 움집을 애써 못 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종족을 안고 도는 붉덩물에는
하늘도 내려앉지 않을 것이다
유칼립투스 가로수들은 상관없다는 듯 숲을 이루며 키를 잴 것이고
애써 찾아온 우리는
까무룩 하게 저무는 어둠 앞에서
더 짙어지는 낭패 앞에서
얼룩덜룩한 오점이 될 뿐
한 술도 되지 못했다
울음소리조차 쌓이지 않는 피그미 마을이다
구름을 갖고 싶은 아이들
허기보다 사람이 그리운 아이들
멍든 잎사귀를 끝까지 펼쳐 흔들어주던 아이들
가파른 비탈길을 구르듯 내려오던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눈꺼풀이 없는 것일까
한사코 깨어있지 않으면
희미한 아침조차 오지 않는 것일까
반짝이던 눈동자에 물기가 몰렸던가
후두둑 쏟아져버리는 빗줄기에 등짝을 얻어맞고
쫓기듯 나서는 피그미 마을
웹진 『시인광장』 2024년 10월호 발표
김영 시인
전북 김제에서 출생. 1996년 시집 『눈 감아서 환한 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파이디아』 『나비 편지』 『수평에 들다』 외 다수 출간. 윤동주 문학상, 석정촛불시 문학상, 월간 문학상,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외 다수 수상. 전북문인협회장, 전북문학관장 역임. 현재 석정문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