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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연예인을 실제로 만났을 때 그와 똑같은 인물을 만나리라 기대하면 오산이다. 이날 만난 오영실은 보던 대로 듣던 대로 유쾌 통쾌 상쾌했다. 같이 있는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웃음소리는 그녀의 가장 큰 무기. 배우이자 주부, 한 남자의 아내로 쉴 틈 없이 달려온 그녀가 지난 세월을 맛깔나게 풀어놓았다.
실제로 보니 정말 예뻐요.
방송보다 낫다는 소리는 들어요. 호호호.(좌중 웃음)
현재 40~50대 주부들에게는 오영실 하면 연기자 이전에 아나운서가 먼저 떠올라요. 처음 아나운서가 된 계기가 뭔가요?
제가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된 게 중학교 때 저희 집에 놀러 온 사촌 언니 때문이었어요. 방송반이라며 아나운서 자랑을 하더라고요. 뭔지는 잘 몰랐지만 ‘아나운서가 그렇게 좋은 거라면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아나운서가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도 모른 채 내 목소리와 모습이 방송에 나가고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시작한 거죠.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연기자의 길을 택했는데, 이유가 있었나요?
아나운서가 됐는데 막상 프로그램이 짜이고 촬영에 들어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이 직업은 내가 어떤 방송을 하고 싶어도 누구(PD, 작가 등)에 의해 선택되지 않으면 주도권이 없어요. 한번은 입사한 지 몇 년 안 됐을 때 나이 든 선배들을 전부 지방 발령 보내버리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회사에서 월급은 오르는데 부려먹기는 힘든 선배들을 싹 좌천시키는 자구책을 쓴 거죠. 그걸 보면서 저게 나의 미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나이 들어서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이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연기자는 70이 넘어도 할머니 역할이 있더라고요.
나이 들어서까지 일하기 위해 배우를 선택한 건가요?
그보다는 제가 남편을 오랫동안 뒷바라지했어요. 의사 본과생 때 만나서 인턴 때 연애하고 레지던트 때 결혼했는데, 남편이 애 낳자마자 군대를 갔어요. 그때 저는 아나운서 월급으로 생활을 이어가야 했고요. 이런저런 뒤치다꺼리가 끝날 즈음 남편이 삼성의료원에 입사했어요. 그때부터 애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애들이 (엄마를 못 나가게 하려고) 만날 제 핸드백을 숨겨서 저랑 실랑이를 벌였거든요.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그런 일이 잦아지면서 ‘내가 애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죠. 정말 그때는 엄마조차도 네 애는 네가 기르라고 했어요. 딸내미가 TV에 나오는 걸 낙으로 알고 사시던 분이 그 정도로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이젠 내가 정말 애들을 돌봐야겠구나’ 싶어서 일을 포기했어요.
아나운서가 갑자기 연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방송아카데미 시험을 봤어요. 금방 (아나운서를) 그만둘 순 없으니 IMF 때 시간이 좀 나면 여기저기 연극 단체를 기웃거리며 훈련생으로도 있었죠. <넌센스>라는 조그만 뮤지컬도 하나 했고요. 이 쉰 목소리로 뮤지컬을요! 호호호.(좌중 웃음) 왜, 가랑비에 옷 젖는지 모른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경험들이 나중에 <아내의 유혹>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어요. 아는 것 없이 멋모르고 연기를 시작했는데 그 작품이 흥행이 되는 바람에 제게는 어떤 근간이 되어주었어요.
사표 쓰고 나서 후회는 없었나요?
사표 쓴 지 딱 3일 지나고부터 ‘사표 반려하면 안 될까요?’ 하는 꿈을 꿨어요. 내가 어떻게 살림이라는 걸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쉽게 단정을 지었을까 싶더라고요.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고 그렇다고 티가 팍 나는 것도 아니고요.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하면서 번민이 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왕 그만둔 거 받아들이기로 했죠. 그리고 3개월 정도 지나니까 음악회 행사 등 소소한 일거리가 들어왔고 한 달에 3번 정도는 행사를 하게 됐어요. 운 좋게 몇 개월 후에는 케이블이 활성화되면서 이런저런 CF나 MC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요. 모든 걸 포기했지만 그게 끝은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됐어요.
연기자로서 아나운서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도 큰 숙제였겠어요.
제일 첫 과제가 유아 프로그램을 하면서 쌓인 이미지를 벗는 것이었어요. 꽤 오랫동안 유아 프로그램을 진행했기 때문에 ‘~그랬죠?’ ‘~해볼까요?’ 하는 말투가 배어 있었거든요. 그다음이 아나운서 이미지를 벗는 거였죠.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고 오랫동안 꾸준히 드라마를 하면서 자꾸 희석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40대 후반 이후 분들은 저를 아나운서로 아세요. 어린 친구들은 제가 아나운서였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요.
◆ 일, 육아, 내조 슈퍼우먼은 없다
그녀는 일에 있어서는 프로를 꿈꾸는 연기자, 육아에 있어서는 자식 농사에 100% 만족하지는 못하는 보통 엄마, 아내로서는 시댁이 여전히 어려운 평범한 며느리다. 얼굴이 알려진 연기자일 뿐 그녀의 고민은 우리네 주부의 고민과 다름이 없다.
일, 육아, 내조의 삶 중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요?
뭐 하나 콕 집기가 어려워요. 일 같은 경우는 운 좋게도 잘된 드라마(2008년 방영한 <아내의 유혹>)로 처음 연기를 시작했어요. 일을 하다 보면 ‘저게 고수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조명 나르랴 카메라 설치하랴 시끄러운데 그 가운데서 조용히 몰입하는 배우를 보면 그게 바로 집중력인 것 같아요. 주변 상황에 관계없이 빙의되는 그 순간이요. 저는 10번 중 3~4번 될까 말까 해요. 수학 문제 풀듯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백발백중 되고 싶은데 그게 안 될 땐 목구멍까지 뭐가 솟구쳐 올라오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제가 연기 방면에서 뚫어야 할 목표예요.
육아는 어땠어요?
제일 힘든 건 육아였어요. 내 맘대로 안 되니까요. 남편이 병원에서 불임 부부를 너무 많이 봐서 사실 가족계획이 없었어요. 그래서 한 번에 첫째를 갖고 둘째도 마음먹은 순간에 가졌죠. 그러다 보니 뭘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몰랐어요. 그렇게 첫째를 키웠고 그래서 첫째에게 가장 미안하죠. 좌충우돌이었거든요. 둘째는 돌 사진이 없어요.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난 거죠. 내 아이를 착한 아이, 주변을 배려하는 아이, 공부까지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만 어휴.(좌중 웃음) 내 자식(에 대해) 크게 못 말한다는 말이 맞아요. 어느 자식 하나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어요. 에이그, 입 다물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조는 성공적이었나요?
일, 육아 다음으로 힘든 게 법적인 가족으로 산다는 거예요.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동서, 누구의 제수씨로 산다는 거요. 정말 큰 거 바라지 않고 오랫동안 (아내 혹은 며느리 노릇) 했는데, 참 남의 집 식구가 된다는 게 녹록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자별 2013QR3>(이하 <감자별>) 스케줄이 굉장히 빠듯하더라고요.
그래도 녹화 전날까지는 대본이 딱딱 나와요. 그게 어디예요.
그럼 대사는 언제 외워요?
전날 나오면 그때부터 붙잡고 외워요. 심지어 녹음도 해요. 이 목소리 저 목소리 다 해서 녹음한 다음 설거지하면서도 계속 듣고요. ‘진아 엄마 어디 가세요?’ ‘에이, 재수 없이’ 이런 것까지 다요.(좌중 웃음)
연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아무래도 첫 번째 작품(<아내의 유혹>)을 잊을 수 없죠.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한 작품이었으니까요. 하얀 도화지처럼 순수한 상태에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이젠 뭘 좀 아니까 머리가 아~주 복잡해졌어요. 카메라는 어디에 있고 동선은 어떻게 해야 되고 등등을 생각하다 보니까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감자별> 같은 시트콤은 어때요?
밤을 1주일에 1~2번은 꼴딱 새워요. 이번 주, 다음 주 다 새벽 4시에 끝나요. 연기 양도 많고요. 감독님(<순풍산부인과>, <거침없이 하이킥> 등을 연출한 김병욱 PD)이 토씨 하나, 톤 하나 다 잡아서 시키시거든요. 이분은 밤을 새우더라도 본인이 그냥 못 넘어가세요. 이만한 감독님을 만난다는 게 저로서는 일생일대의 행운인 것 같아요.
몇 달 전 <황금알>에서 <동치미>로 옮겼어요. 둘 다 주부들이 정말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사실 그게 힘든 프로거든요. 가족 얘기가 많이 나오니까요. 한번은 저희 시어머니가 저를 불러다가 내 얘기도 하지 말라, 아들 얘기도 하지 말라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방송이라는 게 아예 안 할 수가 없어요. 드라마 욕하면서 본다고, ‘쟤는 저런 얘기까지 뭐하러 해?’ 하면서 하하하하하 웃잖아요.(좌중 웃음) 방송은 내 자랑만 하면 안 불러줘요.
방송에서 갑상선암 투병을 언급한 적이 있어요. 처음 암 선고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당시 미국에서의 요양 생활은 어땠는지도 궁금하고요.
사실 저는 ‘투병’이라는 말도 민망해요.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게 아니거든요. 발견한 지 1년 만에 수술을 했어요. 그리고 곧장 일에 복귀하려고 했는데 당시 아이가 미국에서 고3이었어요. 홈스테이도 싫다, 뭐도 싫다길래 제가 아이를 돌봐야 할 것 같아서 미국에 가게 됐어요. 사실은 안 가고 싶었어요. 여기서 좋은 작품 더 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놓쳐서 정말 후회하는 작품도 많아요.
예를 들면 어떤 작품이요?
<성균관 스캔들>의 믹키유천 어머니 역, <드림하이>에서 안선영 씨가 맡은 역할.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이 많았는데 아이가 중요하니까(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내 맘대로 안 되는 때가 있구나 싶더라고요.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이왕 간 김에 1년 쉬면서 한 1천 불짜리 집에 있었어요. 노인용 집이었는데 방송에서는 대저택으로 둔갑이 됐더라고요. 그때 뒷목 좀 잡았죠. 어쨌든 1년 동안 (일을 하지 못해) 주저앉혀진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암을 무사히 잘 이겨내서 다행이네요.
저는 아버지가 7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사람 운명은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요. 누구에게나 불행은 닥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병에 걸려도 그건 내가 받아야 할 시나리오라고 생각해요. ‘이거 먹으면 안 죽을까? 공기 좋은데 가면 오래 살까?’ 하는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집에 있어도 재수 없으면 천둥 맞아 죽는걸요. 그래서 갑상선암 선고 받았을 때도 담담한 편이었어요. 다만 치매 안 걸리고 병치레 오래 안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갖고 있어요. 하지만 그 또한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하지는 않아요. 그건 이미 애들 성적표를 받아 보면서 깨우쳤어요.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성적이!! 호호호.(좌중 웃음)
생각보다 아이들 성적에 의연한가 봐요.
10년 동안 번민을 많이 했죠. 속울음도 많이 생겼고요. 태교할 때 잘생긴 남자 사진만 봤지 수학책을 안 풀었어.(좌중 웃음) 옆에 유정아 아나운서는 수학책을 풀더라고요. 뇌 공부를 한다면서요. 나는 그걸 참 우습게 여겼는데 말이죠. 전에는 드러누운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뭐, 애들이 건강하고 밝은 걸로 위안 삼으려고요. (남의 자식과) 비교 안 하는 게 내 행복의 근원인 것 같아요.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했나요?
제가 안 하고 과외 선생님이 했어요.(좌중 웃음) 직접 가르쳐봤는데 저는 성질이 급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둘 다 머리 박으면서 울기도 했고 별별 짓을 다 했어요. 그다음에야 ‘선생한테 맡기는 게 낫겠다. 안 그러면 나와 애의 관계가 나빠지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애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마음이 푸근한 분, 오래 기다려줄 줄 아는 분이 맞는 것 같아요.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소통하기가 힘든데 오영실 씨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요. 둘 다 남자아이였으니 더욱 힘들었을 텐데요.
남자아이가 사춘기가 너무 무섭게 와요. 내가 물고 빨고 한 자식이 나한테 대드는데 그 충격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어요. 인연을 끊고 싶은 생각도 들었죠. ‘두고 봐라, 내가 너한테 한 푼이라도 남겨주나’ 하는 별별 복수심이 불타올랐죠. 용서가 안 될 줄 알았거든요? 근데 또 궁둥이 두들겨주고 하게 되는 걸 보면 신이 부모에게 내리사랑을 준 거예요. 그리고 아이가 대들 땐 내가 어떻게 못 하겠더라고요. 그땐 남편에게 넘겨서 남자 대 남자로 상대하게 해야 해요. 아빠는 무서워하더라고요. 근데 엄마는 만만하게 생각하는지 스트레스 쌓이면 엄마한테 풀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식이 연예인 한다고 하면 밀어줄 건가요?
안 밀어줘요. 재능이 없고 숫기가 없어요.
내성적인 사람도 연기 잘한다면서요.
내성적이어도 폭발하는 뭔가가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 되는데 그게 없어요. 우리 남편 쪽을 닮은 것 같아요. 무용 학원에도 보내봤는데 아주 나무토막이에요. 연예인 쪽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연예인 하려면 길게 오래 할 수 있는 재능이 있어야 돼요. 그러려면 머리도 똑똑해야 되고요. 연예인이란 직업이 쉬운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어느 분야에 잘 맞는 것 같아요?
큰애는 컴퓨터 쪽을 좋아해요. 둘째는 활동적이라 군인이 되고 싶어 하고요. 군인 좋죠. 그게 공무원 아니야. 호호호.(좌중 웃음)
◆ 아나운서, 연기자 그다음은 뭘까?
오영실에게 연기는 방송인의 연장선상이고 자아실현의 창구다. 그리고 또 하나, 노후 대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백 살까지 거뜬히 사는 시대, 그녀는 꾸준한 대비로 독립적이고 당당하게 나이 들고 싶다. 여전히 새로운 직업을 꿈꾸는 오영실의 미래는 무엇일까.
현재 꿈은 뭔가요?
제 꿈은요. 나이 들어서도 제 파트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게 첫째예요. 그래서 예능을 많이 하지 않아요. 예능에서는 본 색깔이 많이 드러나기 때문에 희석하기도 힘들고요.
아나운서, 연기자 말고 또 다른 타이틀의 오영실을 볼 수 있을까요?
꿈은 연기자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백 살까지 산다니 겁나는 세상이죠. 어느 전문가가 재수 없으면 백이십 살까지 산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 노후 준비가 돼야 하기 때문에 솔직히 직업 하나로는 불안해요. 시간적 여유만 된다면 심리학을 배워서 심리학 전문가로 나서고 싶어요. 말은 잘하니까 어려운 전문용어를 알기 쉽게 얘기하면 되죠. 하지만 과연 드라마 촬영하면서 공부할 시간이 날는지는 모르겠어요.
미술 전공을 살려도 좋을 것 같은데요.
대학 때 미술(홍익대 금속공예)을 전공했기 때문에 조용남 씨처럼 내 색깔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기도 해요. 생활이 어려워지면 작은 사이즈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팔기도 하고요. 또 하나는 책을 쓰는 거예요. 일생에 한 권 정도 집필하면 좋지 않을까.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빨리 출간해야죠.(웃음) <아내의 유혹> 때 그걸 했어야 됐는데….(좌중 웃음)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뭔가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스타일이네요.
저는 일하는 게 좋아요. 제 세계가 있으니까 남편에게 기대지 않아도 돼요. 그게 정신적이든 금전적이든지요. ‘언제 와 여보? 나 여기 좀 데려가줘’ 같은 말을 안 해도 된다는 거죠.
남편과 함께 즐기는 취미 생활이 있나요?
우리 남편은 추우나 더우나 골프예요. 저는 여름에는 수영, 겨울에는 스키, 날 좋을 때는 골프 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계절을 이용하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형광공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건 약간 이해할 수 없어요. 근데 그 사람은 그게 좋은가 봐요.
같이 배울 생각은 없나요?
저요? 저는 골프 잘 쳐요.(좌중 웃음) 잘 ‘쳤었’어요. 근데 남편과 둘이 골프 치니까 애들이 고아가 돼요. 우리나라는 3~4시간으로 끝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애들 대학 갈 때까지는 골프 안 친다고 선을 그었어요. 지금은 1년에 4번 정도 날씨 좋을 때 정말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가는 게 전부예요.
자신 있는 요리가 뭔가요?
치매에 좋다고 해서 카레라이스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먹어요. 그리고 샐러드가 끼니마다 빠지지 않아요. 저는 샐러드를 맛있게 해요.
소스를 잘 만드나 봐요.
소스는 ‘신세계’ 소스를 써요.(좌중 웃음) 유자드레싱을 주로 사용하고요. 과일이랑 호두를 믹스해서 채소 위에 유자소스 뿌려주면 내가 먹어도 질리지 않게 맛있어요. 김치는 집에서 안 담가요. 이번엔 빅마마 선생님이 김치를 해주셔서 그걸로 버티고 있어요.
빅마마 선생님 김장은 맛있던가요?
전에는 방배동 최경숙 선생님네 수업에서 받아 온 김치를 먹었어요.(좌중 웃음) 근데 이번에 여차저차 그러지 못했는데 빅마마 선생님이라는 구세주가 나타났죠. 백김치, 홍김치를 주셨는데 깊이가 있고 아주 명품 김치예요. 찌개를 해도 맛있죠.
아이들 밥은 직접 만들어주고요?
저는 못 먹어도 애들 먹을 건 차려주고 나와요. 엄마가 직접 음식을 해 먹인 집 자식들은 다른 길 가는 걸 못 봤어요. 근데 부잣집 살아도 엄마가 해준 밥 못 먹고 자란 아이들은 냉랭하고 유대가 끈끈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밥은 꼭 제가 해줘요. 약간 원시적인 엄마예요. 대치동 엄마를 못 쫓아가요. 밥 차려주는 대신 식탁에 돈 올려놓고 오는 건 못 해요.
나름 신조가 있네요.
신조는 내 새끼는 내가 먹인다.(좌중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