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량 직업 잔혹사 ] 토니 로빈슨・데이비드 윌콕 저 신두석 역 한숲(서울:2005)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밑바닥을 이루어온 직업들이 어떤 것이 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는 유난히도 극진한 동정심을 보낸다. 평소에 본인이 나름대로 고생을 많이 한다고 자기에게 격려한다.
그러나 가까이 사는 이웃들 속에는 이런 뽀사시한 공상을 할 겨를도 없이 매일을 고된 일로 정신 나가듯이 반복하며 사람들도 숱하게 많다. 이것은 스스로 선택한 운명인가 아니면 신이 지정해 놓으신 굴레인가?
본 책은 영국의 2000년 역사, 각 시대마다 천하디 천한 직업을 갖고 살아간 사람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1. 로마 통치 시대
(1)구토물 수거인
연회를 벌리는 귀족들은 계속되는 호화로운 음식 코스를 다 맛보기 위해 앞서 먹었던 음식으로 게워내었다. 그런데 그 게워내는 장소는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즉석에서 토해낸다. 중앙난방시설이 따스하게 잘 되어 있기에 구토물 수거를 담당하는 노예는 재빨리 냄새가 실내에 퍼지기 전에 흔적도 없이 닦아 놓아야 했다. 이런 노예들이 귀족들마다 다들 달고 즐기고 있었다.
(2)금광 광부
금 채굴을 위한 암반 제거에는 바윗면에 나뭇단을 쌓고 거기에 불을 붙여 바위가 뜨겁게 달구어질 때까지 이틀간 계속 태우는 방법이 동원된다. 열기로 후끈후끈한 데가 연기가 자욱이 퍼졌을 테니 갱도 안에서 불을 계속 피우는 일을 담당한 광부들은 분명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연기 속에서는 희미한 램프가 있다 해도 사실 무용지이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일을 이제부터다
바위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면 물과 식초를 끼얹어 급량시켰는데, 이러한 온도 변화로 바위는 갑자기 수축되면서 격렬하게 부서진다. 이틀간 숨 막히는 연기 속에서 지낸 광부들은 암흑 속에서 잘게 부순 폐석더미를 모두 손으로 수레에 실어 그 긴 갱도 밖으로 가져 나가야 한다.
(3)켈트 수도사
엄격한 금욕과 고행으로 정평이 나있다. 수도사들은 기존의 노예들처럼 자신도 그리스도의 노예임을 드러내기 위해 삭발했다. 그들이 숙소를 보면, 침상은 맨바위이고 베개는 돌덩이다. 새벽 2시. 수도사들은 조과(朝課)를 드리기 위해 딱딱한 침대를 털고 일어선다. 약 한 시간 동안 기도를 드린 후 동틀 무렵 찬과(讚課)를 드리기 위해 나간다. 찬가는 미사로 이어지고, 미사는 3시과로, 정오의 6시과로, 오후 3시와 9시과로, 6시의 만과(輓課)로, 8시나 9시에 잠자리 들기 직전의 종과(終課)로 이어진다.
(4)숯장이
숯장이가 숯을 만들기 시작하면 네댓새 동안 날을 꼬박 샜다. 비가 오든 햇볕이 쨍쨍내리쬐든 숯장이는 흙가마를 지키고 앉아 그 속에 잔뜩 넣어둔 나무너미를 살피며 거기서 내뿜는 희 연기가 파란 연기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잠시 방심했다간 가마 속에서 새로 나온느 우두둑 금 가는 소리를 놓치기 십상읻. 이렇게 되면 수 톤의 숯은 사라지고 며칠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2. 중세 시대(1066-1485)
(1) 갑옷담당종자
한마디로 똥 같은, 똥과 함께하시는 삶이다. 기사는 종일 더러운 환경에서 싸운다. 갑옷 바깥에서는 말과 사람의 피와 진흙이 튀기고 갑옷 안은 말할 것도 없이 더욱 끔찍하다. 게다가 중세에는 대부분의 전투를 여름에 치렀다. 그것도 몇 분만이 끝나는 전투가 아니라 몇 시간이 지나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질 판에 한창 전투가 벌어졌을 땐 얼마나 많은 땀이 흘렀을까. 그나마 상체 쪽은 나은 편이다. 하체 쪽 사정은 훨씬 나빴다. 특히 기사가 겁에 질릴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기사들은 용변이 급해도 화장실 다녀올 시간조차 없다. 갑옷에 지퍼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아무리 용변이 마려워도 갑옷에다 그냥 쏟아놓는다.
갑옷담당종자의 할 일은 전장에서 돌아온 주인의 갑옷을 벗기고 기운 나도록 포도주 한 잔을 제공하고 나서 다음날 출전을 대비해 갑옷을 깨끗이 손질해 놓는 일이다.
(2)거머리잡이
의료용 거머리는 영국 전역 소택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거머리 사냥의 요령은 무척 간단하다. 거머리잡이는 맨발로 갈대숲을 헤치며 얕은 웅동이로 들어가 물을 재빨리 휘젖는다. 그러면 거머리 떼가 이 움직임을 물을 마시러 온 ‘맛있는’ 양이나 소가 일어큰 것으로 알고 거머리잡의 다리에 달라붙는 것이다.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20분 이상 달라붙는데, 거머리들은 자신의 몸무게의 5 배나 되는 피를 빨아당긴다. 물론 한 번 물렸다고 크게 잘못되지는 않는다. 그저 조금 따끔할 뿐이다.
(3)축융업자
양털을 직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름과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양모를 세척하여 직물을 연하게 한 다음 오그라뜨려 털의 구멍을 막으면서 조직을 촘촘하게 하게 만드는 한편, 양털을 밟아 뭉개 엉키게 하여 풀어나갈 가능성을 줄인다. 이때 양털기름을 분해하기 위해선 헐렁하게 엉킨 직물을 알칼리성 용약에 적실 필요가 있는데 가장 값싼 용액이 바로 썩은 오줌이다. 축융없자는 이 값싼 재료를 알아서 얻어야 한다. 공중화장실을 여럿 설치해놓고 정기적으로 훔친다.
양털을 썩은 오줌이 가득 들어있는 통에 넣고 맨 다리로 밟을 때면 코로 풍겨 들어오는 암모니아의 냄새 때문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토하고 싶어진다.
3. 튜더왕조(1485-1603)
(1)사형집행인
도끼를 가지고 사형수의 목을 신속하게 쳐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베어죽이는 것이 아니라 척추를 박살내어 죽이는 셈이 된다. 반쯤 베인 목에서 동맥혈이 뿜어 나와 사형집행인과 참수대 근처를 다 적신다. 사형집행인이 사형집행을 할 때는 자신을 알리기 않기 위해 얼굴에 두건을 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신원이 밝혀지게 되면 평생을 사형수의 가족들의 협박에 시달리면서 숨어지낼 수 밖에 없다. 발각되면 보복당한다.
(2)왕의 변기담당관
들어간 음식은 결국 나오기 마련이다. 헨리 8세는 하루 두 번 총 20여 개의 접시에 담긴 요리를 마음껏 먹는다. 변기담당관은 나오는 쪽쪽 엉덩이를 닦아주는 일을 하는 고위직이다. 그리고 그 똥은 왕의 건강상태를 관찰하는 시료가 된다.
(3)분뇨 수거인
분뇨 수거인은 인분이 무릎이나 허리까지 심지어는 목까지 차는 환경에서 일했다. 그능 양동이를 손에 든 소년 두어 명과 함께 팀을 구성하여 작업한다. 왜냐하면 정화조 벽에 붙어있는 오래된 것들은 몸집이 작은 소년들이 일일이 긁어내어야 하는데 이들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작업은 밤 9시에서 아침 5시까지 야간에만 하도록 제한되어 있기에 가로등 하나 없던 그 시절. 동물성 지방으로 만든 수지 양초에 의지할 채 양초가 나뿜는 희미한 연기 속에서 밤새 밀폐된 공간 안에서 일해야 했다. 정화조 안에서는 갓난 아이의 시체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원치 않는 아이가 태어나면 변소에 버려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분뇨에서 내뿜는 황화수소에 중독된다.
4. 스튜어트 왕조(1603-1756)
(1)초석장이
초석은 화약을 만드는 필수 화학물질이다. 초석에 들어 있는 질산염은 연소 시 팽창하며 산소를 발생시켜 탄소와 폭발 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전쟁 시에 상당량의 초석이 요구되었다. 그 전부를 마련한 사람이 바로 초석장이다.
초석장이는 우유 배달원과 토지 관리인, 농장 일꾼, 분뇨 수거인의 요소가 다 혼합되어 있는 기능인이다. 질산염의 주요 공급원은 토양 속에 오랜 시간 묻혀 있는 질산칼슘과 질산나트륨으로 분해된 우리 인간에게 익숙한 친구, 오줌과 똥이었다. 초석장이는 우선 거리에서 오줌으로 흠뻑 젖은 흙을 찾아낸 뒤, 부족한 양은 구식이지만 쾌 효과적인 중노동을 동원하여 충당했다. 그는 변소, 돼지우리, 거름더미, 비둘기장을 비롯해 어디든지 찾아간다.
남의 집에 들어가 닭장과 변소를 파헤칠 때 똥과 흙으로 범벅이 된 채 작업했으며, 초석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된 땅을 알아차리는 비법은 다름 아닌 흙 맛을 직접 보는 방식이다. 완전히 오줌에 젖은 흙은 하얀 침전물을 포함하고 있고, 이 결정에는 나트륨이 함유되어 있어서 아주 얼얼한 짠맛을 내며 물과 화합하여 흡열반응을 일으켰다. 이는 초석장이가 이것에 혀를 대었을 때 거품이 일면서 차가운 느낌이 가져다 준다.
(2)의자 가마꾼
의자 가마는 17,18세기에 이용되던 택시다. 가마꾼 두 사람이 승객을 가마에 태워 장대 두 개로 받쳐 운반하는 일은 단순하지만 대단히 힘들었다. 가마와 승객의 무게는 장대에 매달린 가죽끈을 통해 가마꾼들의 양어깨로 전달된다. 그것도 느릿느릿하게 걸어서는 택시가 아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했다. 빈의자 자체는 30kg 정도이고 여기에 보통 80kg 나가는 성인 한 명을 태웠으니, 최대 1.6km나 되는 거리를 가마꾼 두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각각 55kg씩 나른 셈이다. 1728년 어느 여자는 가마꾼에 실려 런던에서 스위스까지 여행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3)물장수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깨끗한 물공급은 늘 부족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맥주나 포도주를 물대신 섭취했다. 그러나 요리나 어린 아이들 마실 신선한 물도 필요했다. 이 때 물통을 양쪽 끝에 단 물지개를 어깨에 멘 물장수는 스튜어트 시대의 일상적 풍경이다. 물 1리터는 1kg에 해당된다. 당시 물장수들은 한 명당 15리터의 물통 2개를 등에 잚어지고 다녔다. 물장수가 얼마나 하루하루 고된 일상을 꾸려갔을지 짐작된다.
5.조지 왕조(1756-1837)
(1)기마경관
그 당시 영국은 차가 사치품이란 어마어마한 양의 밀수품이 해안을 통해 쏟아졌다. 정부에서는 이것을 차단하기 위해 말 탄 무장경관을 해안에 배치했는데, 이들의 근무여건이 말이 아니다. 경비 구역은 16km이며 한 사람만 배당이 된다. 이것은 자살행위나 였는데, 그 이유는 해안에 침범하는 밀수꾼들은 많을 때는 중무장한 500명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거기에 비해 순찰하는 경관은 권총과 단검이 전부이다. 그리고 밀수꾼들은 주로 밤에 침범한다. 그들의 불빛을 발견한다하더라도 인력 지원을 위하여 요청할 수 있는 수비대가 무려 64km 떨어져 있는 곳일 때도 있다. 그리고 지역민들이 밀수꾼들의 밀수품을 되파는 데서 소득을 얻기에 비협조적이라서 자연적으로 기마경관은 밀수꾼과 손 잡는 부패 경관이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설사 밀수꾼을 적발했다 하더라도 그 밀수꾼을 법원에 기소하는 비용은 기마경관 자비로 담당해야 한다. 1822년에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
(2)시체도굴꾼
외과의사들에게나 자꾸만 증가하는 의과대학생들에게는 해부를 위한 해부실습용 시신이 많이 필요했다. 이 연구용 시신을 조달하는 자들이 시체도굴꾼이다. 교회 묘지를 불시에 침입하여 훔친 시체들을 부대 채로 의사들에게 팔았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시체 도둑을 막기 위해 장례식이 끝나도 친구들이 시체가 썩을 때까지 4,5 주 동안 무덤가를 지켰다. 이들 시체도굴꾼들은 더나아가서 물량이 모자라거나 보다 비싼 값을 받으려면 시신이 신선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직접 살아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살인을 저질러 그 신선한 시체를 의사들에게 넘겨주었다.
6. 빅토리아 왕조(1837- )
(1)돌 채집인
철도 부설 및 대규모 토목 공사가 여기저기서 벌어졌을 때, 지루하고 단순한 일들은 주로 여성들이나 아동들의 몫이었다. 건강한 아이 4,50명이 돌 채집을 위해 아침 6시 경 마을을 떠난다. 하루 14 시간의 노동의 일부로서 이들은 보통 3-5 km를 걸어 작업장에 도착한다. 그 때부터 아이들은 각자 손에 돌을 가득 채울 들통이나 바구니를 받아 손수레에 실는다. 그리고 그곳에 몇 시간이고 쪼그리고 앉아 땅에서 돌을 주워 바구니를 채운다. 만약 게으름 피우는 아이들이 발견되며 이들 뒤에서 채찍을 든 남자로부터 사정없이 매질이 날아온다. 아들 아이들은 바람과 우박, 진눈깨비를 그대로 맞으며 울타리 밑에서 차디찬 음식을 먹데 되고 비 내리는 날이나 일요일 외에는 휴일도 없었다.
(2)성냥 제조공
19세기에 성냥은 작은 나뭇개비들을 흰인에 담그는 공정인 침지를 거쳐 만들어졌다. 유독한 화학물질인 흰인에서 피어오르는 증기는 밀폐된 좁은 작업장이 가득차도록 멈추지 않고 피어오른다. 이것이 성냥 제조공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인산괴사’라는 무서운 병의 원인이 되었다. 이병의 최초 증세는 이가 욱신거리면서 잇몸과 턱이 부어오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종기가 생기고 더러운 배설물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 소녀 노동자들은 이런 공장에서 하루 최대 14 시간까지 일했다. 만약에 잡담, 성냥 떨어뜨리기, 화장실 무단출입 따위의 규칙을 위반할 경우 가차없이 벌금이 급료에서 떼인다. 여름철 근무 시간은 오전 6시 30분에서 오후 6시까지였다. 겨울철 근무 시작시간은 오전 8시였다. 지각한 경우엔 반나절치 급료가 벌금으로 떼인다.
(3)하수관 수색꾼
19세기 중반, 온갖 것이 다 섞여서 썩어버린 하수들이 템즈강으로 그냥 흘러들었다. 1858년 여름에는 대단한 악취가 템즈 강에서 일어나서 회의 중이든 의회가 냄새로 인해 중단되기도 했다. 이 더러운 템즈 강에 뛰어들어가서 온갖 금속 덩어리를 건지고 있는 직업이 하수관 수색꾼이다. 거이에는 동전과 보석, 칼붙이, 석탄, 철조각 같은 것들이 있다.
한쪽 끝에 철저 괭이가 달린 2m가 넘는 기다란 장대를 탁한 하수에 넣고 조정하려면 육체적으로 강해야 한다. 허리에 커다란 자루를 하나씩 차고 가슴에는 가죽끝으로 램프를 동여매고 하수 속으로 들어간다. 때로는 하수의 오물에서 방출하는 증기와 화학물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공격적인 쥐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세 명씩을 짝을 지어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이들이 하수관 속에서 찾은 동전은 사무원 벌이보단 나은 액수였다.
이들이 지나간 다음 템즈 강 하구에서 여전히 발견되지 못한 동전과 금속을 줏는 직업인들이 따로 생겼다. 그들을 ‘진흙탕 수색꾼’이라고 부른다.
(4)개똥 수거인
거리를 개똥으로부터 청결케 하기 위해 개똥만 전문으로 양동이에 담아 없애주는 직업인도 있다. 이와 유사한 직업으로서 ‘뼈 수거인’ ‘넝마주이’, ‘석탄재 수거인’, ‘여송연꽁초 수거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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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한 국가나 사회를 굴러가는데 있어 자연적으로 각자의 솜씨를 발휘하게 되어 있다.
모두 다 ‘자기 생존’이라는 거친 본성이 시키는대로 목표를 정해가면서 무작정 움직여본다.
도대체 ‘나’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나의 생존’이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하는가?
아름다움이니 진리니 선함이니 하는 것들은
그동안 자아(나)가 쏟아놓은 더러운 속성들을 덮어두는 변명에 불과하다.
인간이란 남을 생각하기 전에 나부터 생각하게 마련이다.
역사나 사회나 인류나 하나님을 생각하기 보다 인간은 자기부터 챙긴다.
바로 이것이 몸(신체)을 지닌 이유에서이다.
몸이 ‘나(자아)’를 만들어내고, 그런 ‘나’로부터 또 다른 ‘나’를 기대한다.
몸에 고통을 느끼면, 몸은 고통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고,
그렇게 해서 또 다른 ‘나’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나’가 누군지 모르는채
그저 몸이 요구하는대로만 자꾸만 새로운 ‘나’를 희망하게 된다.
나의 주인은 ‘나’가 아니라 그냥 ‘이 몸’이다.
‘나’라고 하는 것은 그 몸이 만들어내는 추상개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추상개념인 ‘나’가 가난하고 불쌍하다고 한탄하는 것이나
추상개념인인 ‘나’가 부자라고 우쭐대는 것이나
다같이 재앙인 것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몸의 고통이란 몸 자체가 있음이
고통 발생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개똥 수거인‘이 길에서 우연히 큰 개똥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부자가 새로운 저택을 우연히 구입했을 때의 기쁨 중
어느 기쁨이 각자에게 더 클까?
똑같다.
왜냐하면 내일이 되면 둘 다 더 큰 개똥과 저택을 희망하는 몸으로 인해
곧 허망한 결핍 속으로 해체될 허전한 기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출처:우리교회 이근호 목사